[한일 정상, 히로시마를 넘어 제암리로]
[尹·기시다, 盧·고이즈미의 실패를 넘어서라]
[기시다 답방으로 셔틀외교 복원, 관계 개선 화답 카드도 내놔야]
[‘도덕적 강자’로 日 총리를 맞이하자]
[후쿠시마 처리수, 과학 우선이지만 국민 정서도 살피길]
한일 정상, 히로시마를 넘어 제암리로
[시론]
‘한인 원폭 위령비’ 동반 참배… 재일 한국인 울분 씻어줄 수 있어
3·1운동기념관 동반 참배한다면 양국 역사 화해에 성큼 다가설 것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지난 7일 공동 기자회견에서 오는 19∼21일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선진 7국(G7) 정상회의 기간에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 있는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를 함께 참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한일 역사 문제를 오래 지켜본 필자는 동반 참배를 잘 살리면 세 가지 점에서 역사 화해의 물꼬를 틀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첫째, 일본이 홀대하고 한국이 무시한 ‘위령비’를 제대로 대접함으로써 재일 한국인의 원한을 풀어줄 수 있다. 재일본대한민국거류민단 히로시마 본부는 일본에서 차별받다 억울하게 원폭을 맞고 숨진 동포의 넋을 기리기 위해 1970년 4월 평화공원 밖에 위령비를 건립했다. 일본의 지원을 받지 못해 병마와 생활고에 시달리던 피폭자도 뜻과 돈을 모았다. 역대 한국 대통령은 아무도 눈물 어린 위령비를 참배하지 않았다.
히로시마 원폭 피해 한국인은 5만명으로 추정한다. 그중 사망자가 3만명, 생존자가 2만명(귀국자 1만5000명, 잔류자 5000명)이다. 그런데도 히로시마시는 한국인만 특별 대우할 수 없다며 위령비를 평화공원 안에 세우는 것을 막았다. ‘민단’은 일본인과 연대해 위령비 이전 설치 운동을 벌여 1999년 5월 마침내 공원 안으로 옮겼다. 동반 참배는 한국인 원폭 피해자의 넋을 위로하고 재일 한국인의 울분을 씻어주는 행사가 될 수 있다.
둘째, 일본, 특히 히로시마에서 벌어지는 피해 의식의 확산과 가해 의식의 축소에 제동을 걸 수 있다. 평화공원에 있는 히로시마 평화기념자료관은 1955년 개관 이래 전시를 세 번 대대적으로 개편했다. 개관 이후 30년은 오로지 피해 전시에 초점을 맞췄다. 이 때문에 중학생 관람자조차 아시아 침략의 거점이었던 히로시마의 가해 사실도 전시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가와모토 관장은 “침략자는 도쿄에 있다. 자료관의 유일한 목적은 1945년 8월 6일에 일어난 일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일축했다.
1991년 히라오카가 히로시마 시장에 취임했다. 그는 경성중학과 경성제국대학에서 공부했는데, 일본 정부보다 먼저 아시아 침략과 식민지 지배를 사죄했다. 히로시마 평화기념자료관은 동관(東館)을 신축해 히로시마가 청일전쟁부터 태평양전쟁까지 군도(軍都)로서 기능한 내력을 전시했다. 여기에는 한국인 강제 동원과 원폭 피해도 들어 있었다.
그런데 아베 정권 아래 역사수정주의가 득세하자 평화기념자료관은 2017년과 2019년에 전시 내용을 크게 바꿨다. 피폭자의 시점에서 원폭의 비참함을 전한다는 방침 아래 피해자의 유품과 사진 등을 대폭 늘렸다. 반면 히로시마가 피폭에 이르는 과정, 곧 침략 전쟁과 식민지 지배에 관련된 내용은 훨씬 줄였다. 게다가 한국인 원폭 피해 상황을 독일인 신부 등 소수 외국인과 한 묶음으로 간략히 다뤘다. 한일 정상의 동반 참배는 한국인의 피해를 생생하게 증언하는 위령비를 부각시킴으로써 히로시마 시민뿐만 아니라 일본인이 가해 의식에 눈뜨도록 자극할 것이다.
셋째, 동반 참배는 일본 총리의 사죄를 행동으로 보여주는 상징이다. 독일 브란트 총리가 1970년 유대인 희생자 위령탑 앞에서 무릎을 꿇은 것과 차원은 다르지만,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에 버금가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한일 정상의 동반 참배가 앞으로 제암리 3·1운동순국기념관 등으로 이어지면 양국은 역사 화해에 성큼 다가서게 된다.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가 그 길을 닦은 인물로 역사에 기록되길 바란다.
-정재정 서울시립대 명예교수, 조선일보(23-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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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기시다, 盧·고이즈미의 실패를 넘어서라
2000년대 한일 셔틀 외교 실패 교훈 얻어 ‘플랜 B’ 만들어야
CVID 방식의 과거사 해결하며 노벨 평화상에도 도전해보라
2004년 7월 제주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 기자회견장. 나란히 등장한 노무현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는 정장 대신 밝은색 콤비를 입고 있었다. 넥타이도 매지 않았다. 노 대통령이 고이즈미 총리가 지켜보는 가운데 복장만큼 파격적인 선언을 했다. 자신의 임기 내에 한일 간 과거사 문제는 공식화하지 않겠다고 한 것이다. “(과거사) 합의를 이루기 어려워 공식 의제나 쟁점으로는 제 임기 동안엔 제기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2003년 일본 국빈(國賓) 방문 때 “모든 문제를 다 후벼 파는 것이 후손들을 위해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한 것에서 더 나아간 것이었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소인수 회담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3.5.7/ 대통령실
2004년 제주 회담 당시는 한국 드라마 ‘겨울연가’가 일본에서 인기가 있을 때였다. 노무현은 회담 중에 이 드라마가 화제에 오르자 고이즈미에게 “오늘 우리 둘이서 ‘여름연가’ 한번 찍어 보자”고 말하기도 했다.
같은 해 12월 노무현은 일본 가고시마현 이부스키의 온천을 셔틀 외교차 방문했다. 그는 “한국은 아버지, 일본은 어머니의 나라”라고 말하는 도공 15대 심수관을 고이즈미와 함께 만나 양국 관계를 한 걸음 더 진전시키는 사진을 남겼다.
취임 1주년을 맞은 윤석열 대통령은 한일 관계에서는 집권 초기의 노무현을 닮았다. 2018년 대법원 판결 이후 양국 관계를 숨 막히게 했던 징용 문제에 대해 한국이 우선 배상, 단칼에 해결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일본 정부에 과거사 관련해 어떤 요구도 하지 않은 채 도쿄를 방문, 20년 전의 노무현처럼 일본 지식인 사회를 감동시켰다. 7일 기시다 일본 총리가 답방하자 “과거사가 완전히 정리되지 않으면 한 발자국도 내디딜 수 없다는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다시 강조했다.
문제는 노무현·고이즈미 관계가 영속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두 정상의 관계는 일본 시마네현의 ‘다케시마의 날’ 조례, 역사 교과서 왜곡 등으로 틀어져 버렸다. 노무현은 2005년 원고지 30매 분량의 ‘국민에게 드리는 글’에서 “(양국이) 서로 얼굴을 붉히고 대립하는 일도 많아질 것”이라며 “이번에는 반드시 (역사 왜곡의) 뿌리를 뽑도록 하겠다”고 했다. 그것으로 두 정상 관계는 끝이었다. 그 이후는 독도 주변 해역에서 충돌 위기를 거치며 악화일로였다.
지난 1년간 신뢰를 쌓아온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는 웃으며 출발했던 노무현·고이즈미 관계가 비극으로 끝난 것에 주목해야 한다. 특히 우리는 일본이 과거처럼 또다시 갈등을 야기할 경우,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치밀하게 전략적으로 대응하는 ‘플랜 B’ 시나리오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마이크 폼페이오 전 미 국무장관은 최근 본지 인터뷰에서 “한일 (정상의) 셔틀 외교 재개는 양국 관계가 전환되는 일대 사건”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미국뿐만 아니라 인도, 호주, 베트남,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전 세계 모든 사람에게도 유익한 일”이라고도 했다. CIA 국장을 지냈고 차기 미 공화당 대선 후보로도 거론됐던 그의 발언은 과장이 아니다. 한일의 화해와 항구적인 협력은 중요한 전환점을 만드는 세계사적인 사건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동안 북핵 문제 해결 방법으로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해체’를 의미하는 ‘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가 자주 쓰여왔다. 윤석열·기시다 커플이 한일 과거사 문제를 CVID 방식으로 해결하고 미래로 나아가는 길을 확고히 닦으면, 동아시아 평화에 기여한 공로로 노벨 평화상 후보 명단에 오를 수도 있을 것이다.
-이하원 논설위원, 조선일보(23-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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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다 답방으로 셔틀외교 복원, 관계 개선 화답 카드도 내놔야

윤석열 대통령과 1박 2일 일정으로 한국을 찾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7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한일 정상 확대 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7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가 방한해 윤석열 대통령과 회담했다. 지난 3월 윤 대통령 방일 이후 52일 만에 이뤄진 기시다 총리의 답방으로 양국 정상이 빈번하게 상대국을 오가는 ‘셔틀 외교’가 12년 만에 복원됐다고 할 수 있다.
기시다 총리는 과거사 문제와 관련, 역대 일본 내각의 입장을 계승하는 것이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며 “(식민 지배 당시) 어려운 환경 속에서 많은 분들이 매우 힘들고 슬픈 경험을 하신데 대해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사죄와 반성’을 언급하는 대신에 강도 낮은 유감을 표명한 것으로 한국 사회가 바라는 데는 미치지 못했다.
이런 한계에도 불구,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는 왕복 외교 복원으로 최근 1년간 동아시아에서 가장 뚜렷한 변화를 만들어 낸 주역들이 됐다. 윤 대통령은 지난 3월 양국 관계를 질식시켜 온 징용 피해자 문제에 대해 한국 정부가 배상하는 방안으로 돌파구를 열었다. 그러자 기시다 총리가 방일한 윤 대통령을 국빈(國賓)처럼 환대한 데 이어 한국을 방문한 것이다. 두 정상은 오는 19일 일본 히로시마 G7 정상회의를 계기로 열리는 한·미·일 정상회의에서 다시 만날 계획이다. 히로시마 평화공원의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를 함께 찾아 참배도 한다.
지난 1년간 신뢰를 쌓은 양국 정상은 한일 신(新)시대를 열었던 김대중-오부치 관계를 재현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1998년 DJ·오부치 선언은 “한일 관계를 더 높은 차원으로 발전시켜 나가자”며 양국 관계를 획기적으로 도약시키는 계기를 만들었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 2002년 고이즈미 일 총리의 방북, 2003년 북핵 6자 회담도 미래 지향적 한일 관계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한일 양국은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국의 주변 국가를 위협하는 해양굴기(海洋崛起)로 더욱 큰 협력이 절실하다. 북한 핵·미사일 문제에 공동 대응할 필요성도 어느 때보다 커졌다. 더욱이 두 나라는 경제 위기, 인구 감소로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과거에 얽매여 있을 시간이 없다.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는 한국의 반일(反日) 좌파와 일본의 혐한(嫌韓) 우파에게 휘둘리지 않고 미래로 나가야 한다. 그러려면 윤 대통령이 국내 정치의 부담을 안고 선도한 한일 관계 개선 노력에 기시다 총리가 더욱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용기와 성의를 보여야 한다.
-조선일보(23-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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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강자’로 日 총리를 맞이하자
[朝鮮칼럼]
나치의 희생자 폴란드, 日 제국주의 피해자 한국
이런 기억들은 난공불락… 부정될 때 실존 위태롭다 느껴
어렵고 힘든 일이지만 희생자가 가해자 먼저 다독이면
세계 시민사회는 한국을 ‘도덕적 강자’로 보게 될 것
외교의 풍경이 달라졌다. ‘국익’을 앞세워 권력 엘리트가 독점하는 외교 시대가 끝났다. 시민사회가 외교의 행위자로 나서는 ‘공공 외교’는 21세기 국제 관계의 새 현상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공동기자회견을 마친 뒤 악수하고 있다./뉴시스
독특한 문화적 매력과 세계주의적 가치를 통해 세계 시민사회의 공감을 얻으려는 공공 외교의 중요성은 작금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보여주는 바와 같다. 글로벌 시민사회가 등을 돌린다면, 그 전쟁은 이겨도 진 전쟁이다.
푸틴은 2차 대전 당시 폴란드인과 유대인을 학살한 나치에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이 협력한 사실을 거론하며, 우크라이나의 탈나치화를 침략 명분으로 내세웠다. 파시즘의 계보를 잇는 우크라이나 현 정권 응징은 히틀러에 대한 스탈린의 전쟁과 같다는 의미였다.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은 자신이 유대계라는 점을 강조하고, 자기 정부가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가담한 극단적 민족주의와는 다름을 분명히 했다. 파시스트 성향 민족주의 지도자이자 나치 협력자 스테판 반데라를 우상화하는 역사 수정주의에도 일정하게 선을 그었다.
우크라이나의 ‘국뽕’ 역사 서술에 대한 유럽연합, 폴란드, 이스라엘 등의 반발을 고려해서 절박한 전쟁 와중에 펼쳐진 젤렌스키의 ‘기억 외교’는 더욱 돋보인다. 덕분에 러시아와 벌이는 기억 전쟁에서 우크라이나는 먼저 이기고 들어갔다.
기억 외교가 공공 외교의 새로운 화두로 부상한 것은 더 최근 일이다. 전통적 ‘국가 안보’ 못지않게 역사적 정체성을 지키는 ‘실존적 안보’가 중요하다는 깨달음이 그 밑에 있다. 국가 안보가 국익에 대한 이성의 정치를 요구한다면, 실존적 안보는 국민 정서를 보듬는 감정의 정치를 소환한다.
일본 식민주의의 가장 큰 희생자라는 한국인들의 집단적 기억, 전대미문 대학살인 홀로코스트의 희생자라는 이스라엘인들의 기억, 지구 상에서 유일무이한 원자폭탄의 희생자라는 일본인들의 기억, 단위 국가로는 나치의 가장 큰 희생자였다는 폴란드인들의 기억 등은 난공불락이다.
이들에게 이 기억은 과거 역사가 아니라 현재의 실존을 지탱하는 보루다. 그 기억이 손상되거나 부정당할 때, 이들은 자신의 실존이 위태롭다고 느낀다. 윤 대통령이 방일 기간 중 징용 피해자에 대한 일본 정부와 재계의 책임을 유예하는 방안을 제시하자, 격렬한 감정적 비판과 더불어 지지율이 급락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일청구권협정에서 개개인에게 가야 할 배상금을 국가가 가로채서 경제 개발을 위한 자본으로 전용했으니 그 기금으로 성장한 포스코 등이 배상한다는 해결책은 그 나름대로 논리적이다. 그러나 정치는 법리가 아니다. 또 국익을 위해 내가 용단을 내렸으니 따라오라는 식의 태도로는 실존적 위기에 빠진 국민 정서를 보듬기 어렵다.
징용공을 착취한 일본 기업의 배상과 일본 정부의 사과가 빠진 데 대한 한국인들의 분노는 일제의 희생자라는 자신의 정체성이 위협받고 있다는 위기감의 표현이다. 당사자에 대해서도 수개월 설득을 했다고 들었다. 하지만 그것 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국민에 대한 설득도 부족했다. 추후 징용공 생존자 15명 중 10명이 이 배상안을 받아들인 걸 보면, 더 아쉽다. 대통령실의 생각과 태도가 너무 낡았다.
기억 외교의 어려움은 여기에 있다. 화해와 동맹을 위해서는 자민족 중심 역사를 벗어나 국경을 넘어 공유할 수 있는 기억과 역사가 필요하다. 길고 힘든 과제다. 또 한국의 기억 문화가 변한다고 능사는 아니다. 자기들이야말로 서양 제국주의의 가장 큰 희생자라며 사과에 인색한 일본 사회의 기억 문화도 같이 변해야 한다.
미래를 향한 동아시아의 기억 외교를 열기 위해서는 그야말로 담대한 발상 전환이 필요하다. 구매력 대비 한국의 소득 수준이 일본을 넘어선 올해야말로 좋은 기회다. 과거의 희생자가 현재의 자신감 위에서 머쓱한 과거 가해자의 등을 먼저 다독인다면, 세계 시민사회에 비칠 희생자의 모습은 비굴한 약자가 아니라 도덕적 강자이다. 주저하는 독일 주교단을 먼저 용서하고 또 용서를 구한 1965년 폴란드 주교단의 사목 서신이 보여주는 바, 그것은 가해자의 사과를 끌어내는 고도의 수법이기도 하다. 한국 사회가 도덕적 강자의 새로운 모습으로 기시다 수상을 맞이해서 기억외교의 새 장을 열었으면 한다.
-임지현 서강대 교수, 조선일보(23-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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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처리수, 과학 우선이지만 국민 정서도 살피길

기시다 일본 총리의 방한을 하루 앞둔 6일 서울 일본대사관 앞에서 환경단체 회원들이 후쿠시마 오염처리수 해양 방류에 반대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일 양국 정상은 후쿠시마 오염 처리수 방류 문제에 관해 국제원자력기구(IAEA) 검증과는 별도로 한국 전문가단의 후쿠시마 현장 시찰에 합의했다. IAEA는 이미 2021년 7월 한국을 포함한 11국 전문가로 모니터링TF를 구성해 오염수 처리 과정을 검증해 오고 있다. 또 작년 세 차례에 걸쳐 IAEA 입회 아래 채취한 오염 처리수와 물고기·해조류·해저 퇴적물 등 시료를 한국·미국·프랑스·스위스에서 분석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가 한국 전문가단의 별도 현장 검증에 동의하고 나선 것은 지난 3월 윤석열 대통령 방일 이후의 한일 관계 개선이 일본 측 성의를 끌어냈다고 볼 수 있다.
후쿠시마 오염 처리수가 한국 바다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과학적으론 쟁점이 되기 어려운 사안이다. 방류수는 태평양을 시계 방향으로 크게 한 바퀴 돌아 4~5년 뒤에나 우리 해역에 도착한다. 그 사이 거대한 태평양에서 희석돼 한반도 인근에 도착할 때는 우려 대상인 삼중수소가 의미 없는 농도가 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 원전 단지 4곳에서 매년 바다로 방류하는 삼중수소가 후쿠시마 방류 예정 삼중수소량의 10배쯤 된다. 이뿐만 아니라 중국 해안 지대 원전에서 서해로 배출하는 양도 후쿠시마 방류 예정량의 10배쯤이라고 한다. 이런 문제들을 제쳐두고 후쿠시마 방류수에 시비 건다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렇더라도 정부는 후쿠시마 오염 처리수 방류 문제만큼은 극도로 조심스러운 자세로 다뤄야 한다. 방사능은 어느 국민이라도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대상이다. 국민이 느끼는 체감 리스크는 실제 리스크와는 완전히 다를 수 있다. 특히 정부 당국자의 사소한 말 한마디, 문구 몇 글자가 국민의 감정을 건드릴 수 있다. 일본과 연관된 문제일 때 더욱 그렇다. 2008년 광우병 사태 때 ‘미국에서 광우병 소가 새로 발견되더라도 즉각 수입을 중단하지는 못 한다’는 조항이 국민 건강을 우습게 보는 검역 주권의 포기로 인식되면서 시민 분노가 증폭됐다. 후쿠시마 오염 처리수 문제는 어디까지나 과학적 사실에 입각해서 침착하게 처리하되, 정부 당국자들은 살얼음 밟고 서있다는 심정으로 말 한마디 행동 하나 조심해서 다뤄야 한다.
-조선일보(23-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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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日 총리, 과거사 피해자들에게 “가슴 아파.” 한 번에 배부를 순 없지만 이렇게 조금씩 물잔 채워 나가는 것.
-팔면봉, 조선일보(23-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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