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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에 언제까지 사과하고 돈 내라 할 건가” 장훈씨의 고언] ....

뚝섬 2023. 5. 14. 06:02

[“日에 언제까지 사과하고 돈 내라 할 건가” 장훈씨의 고언]

[‘야구의 전설’ 장훈의 조막손]

 

 

 

日에 언제까지 사과하고 돈 내라 할 건가” 장훈씨의 고언

 

하리모토 이사오는 말을 참으며 반생을 돌아본다=2020년 1월 13일 도쿄에서 찍은 사진/2023.05.11마이니치 신문 도쿄 본사 사진영상보도센터

 

과거 일본 최고 야구 선수였던 재일교포 장훈씨는 “언제까지 일본에 ‘사과하라’ ‘돈 내라’ 반복해야 하느냐. 부끄럽다”고 했다. 장씨는 “그때는 우리가 약해서 나라를 뺏겼지만 이젠 자부심을 갖고 일본과 대등하게 손잡고 이웃나라로 가면 안 되겠느냐”고 했다. 히로시마 원폭 피해자인 장씨는 많은 회유에도 끝까지 한국 국적을 지킨 사람이다. 그런 그가 “나는 한국인이고 내 조국이니까 하는 말”이라며 가슴에 담아온 고언(苦言)을 던진 것이다. 장씨만의 생각이 아닐 것이다. 많은 우리 국민도 이제 한국은 선진국이 됐는데 언제까지 일본과 비정상적 관계를 끌고 가면서 ‘사과하라’ ‘돈 내놔라’ 할 것이냐는 생각을 갖고 있다.

 

외세 침략을 받고 식민지가 됐던 나라들은 많다. 하지만 우리처럼 80년 동안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는 나라는 없다. 베트남은 프랑스 통치와 일본군 진주, 미국과 전쟁 등으로 국민 800만명을 잃었다. 하지만 상대국에 배상 요구 대신 “미래를 위해 협력하자”고 했다. 김대중 정부가 ‘한국군의 베트남 양민 학살 의혹’에 대한 보상 의사를 밝히자 ‘필요 없다’고 했다. 독일과 러시아의 침공으로 560만명이 숨진 폴란드는 독일과 안보 협력을 강화했다. 과거는 잊지 않되 미래로 것이다.

 

1965 한일 청구권 협정에는 징용 피해자 보상이 명백히 명시돼 있고 보상도 했다. 노무현 정부도 ‘일본에 다시 배상을 요구할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그때 문재인 전 대통령도 참여했다. 하지만 대통령이 되자 반일 몰이에 이용했다. 위안부 합의도 사실상 파기했다. 윤석열 정부가 어렵게 징용 대위 변제 방안을 내놓았지만 민주당은 ‘굴종 외교’라고 비난하기 바쁘다. 아무런 대안도 제시하지 않는다. 오로지 국민 감정을 자극해 정치 이득을 계산뿐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세계 6위 수출 대국이고 1인당 GDP는 일본과 비슷하다. 국가경쟁력 순위는 일본에 앞섰다. 일본에선 “이러다 한국에 뒤진다”는 우려가 높다. 그런 우리가 끝없이 ‘돈 내라’고 하면 국제 사회가 어떻게 보겠나. 역사의 교훈은 잊지 말되 피해의식에선 벗어나야 한다. 그럴 때가 됐다. 반일 몰이를 돈벌이와 정치에 이용하는 세력도 이제 그만해야 한다.

 

-조선일보(23-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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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의 전설’ 장훈의 조막손

 

‘일본 프로 야구의 전설’ 장훈(張勳·83)은 원래 오른손잡이였다. 왼손잡이가 된 것은 네 살 때 입은 화상 때문이다. 가난한 재일교포의 2남2녀 중 막내로 태어난 장훈이 한겨울 모닥불에 고구마를 익혀 먹으려 할 때 트럭이 후진해서 밀어버렸다. 불 속에 오른손을 짚어 약지와 새끼손가락이 붙어 버렸다. 엄지와 검지도 심하게 구부러졌다. 조막손이 된 것이다. 어머니 박순분 여사가 그를 업고 사방팔방으로 뛰었으나 허사였다. 장훈은 “오른손으로는 작은 널빤지 하나만 들 수 있을 정도가 됐다”고 했다.

 

▶타자가 스윙할 때는 두 손으로 배트를 잡고 회전하면서 끝까지 뻗어줘야 한다. 장훈의 오른손 힘은 다른 선수보다 현격히 떨어진다. 그럼에도 23년간 2752경기에서 통산 3할1푼9리, 안타 3085개, 수위 타자 7회의 대기록을 남겼다. 전무후무하다. 백인천 전 롯데 감독은 “그런 손으로 그런 기록 낼 수 있는 사람은 절대 없다”며 “새벽 1시에 팬티만 입고 연습하는 것을 본 적도 있다”고 했다.

 

▶장훈은 그렇게까지 피나는 연습을 한 이유로 어머니를 꼽는다. “성공해서 어머니에게 비단저고리 사주고 돈을 많이 드리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사랑하는 어머니로부터 크게 야단맞은 적이 있다. 프로야구 구단에 입단하면서 일본에 귀화하려고 했다. 그러자 어머니가 “조국을 팔겠다는 것이냐. 당장 야구를 그만두라”고 했다. 장훈은 “그때만큼 어머니가 화난 적은 없었다”고 했다. 장훈은 귀화하지 않았고 프로 계약금 200만엔을 신문지에 싸서 전부 어머니에게 바쳤다.

 

▶일본 특파원 시절, 장훈 선수를 몇 차례 본 적이 있다. 일본 방송에 출연 후 한국인이 많은 식당과 술집에서 사람들과 자주 어울렸다. 팔순의 나이에도 언제나 당당한 ‘한국 사나이’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한국 미디어와 인터뷰에서는 “국적은 종이 하나로 바꿀 수 있지만, 민족의 피는 바꿀 수 없다”고 얘기해왔다.

 

▶항상 웃는 얼굴의 장훈이 본지 인터뷰에서 히로시마 원폭 투하 때 누나를 잃은 사실을 밝히며 눈물을 흘렸다. 한일 양국 지도자가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를 함께 참배하기로 한 데 대해 “감사하다”고 했다. 기시다 총리가 징용 피해자들에 대해 “가슴 아프다”고 한 데 대해 “사과한다는 말은 안 썼지만 (재일교포인) 나는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히로시마 생존 피폭자인 그의 눈물은 한일관계가 요동칠 때마다 숨죽여 지내야 하는 교포들의 고통을 상징하는 것 같다. 노(老)영웅이 다시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으면 한다.

 

-이하원 논설위원, 조선일보(23-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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