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크로 돌린 암표상 처벌]
[10배 비싼 암표.. 법으로 못 막자 가수들이 ‘암행어사’ 노릇까지]
매크로 돌린 암표상 처벌
옛날 야구장이나 콘서트장 앞에서 웃돈을 주고 암암리에 사고팔던 암표를 요즘 디지털 세대는 ‘플미’(프리미엄) 티켓이라고 부르고, 시간 안 되고 손 느린 사람들은 ‘댈티’(대리 티케팅)를 시킨다. 온라인 공간에서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해 재빨리 티켓을 선점한 뒤 비싸게 되파는 식의 암표가 확산되면서 벌어진 일이다. 컴맹이어도 몇만 원에 프로그램을 구매해 쓸 수 있다 보니 티켓 예매뿐만 아니라 대학교 수강 신청, 캠핑장 예약 등에도 매크로가 활용된다고 한다.
▷매크로는 자주 사용하는 여러 개의 명령어를 하나로 묶어 자동 반복 작업을 시키는 프로그램이다. 통상 티켓을 예매하려면 사이트 로그인→부정사용 방지 문자 입력→좌석 선택→결제 등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하는데 매크로를 동원하면 클릭 한 번으로 순식간에 처리할 수 있다. 몇 년 전부터는 보안 절차를 무너뜨리는 자체 매크로를 개발하는 건 물론이고 예매 총책부터 티켓 운반책, 자금 모집책 등을 두고 표를 싹쓸이하는 조직화된 암표상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
▷이렇다 보니 ‘피케팅’(피가 튈 만큼 치열한 티케팅)이 벌어지는 공연이나 스포츠 경기의 암표는 부르는 게 값이다. 지난달 피아니스트 임윤찬과 서울시향 얍 판 츠베덴 음악감독의 협연 연주회는 예매 창이 열린 지 1분 만에 매진되더니, 당일 중고거래 사이트에 15만 원짜리 R석 티켓이 100만 원 넘는 암표로 등장했다. 롤드컵(리그오브레전드 월드 챔피언십) 결승전은 400만 원, 가수 임영웅 콘서트는 500만 원까지 암표 가격이 치솟았다. 부모님을 위해 효도 한번 해보려던 자녀들이 엄두도 못 낼 금액이다.
▷늦었지만 이달 22일부터 ‘매크로 암표상’이 처벌 대상이 된다. 개정된 공연법에 따라 매크로를 동원해 사재기한 공연 티켓을 팔다 적발되면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 원 이하 벌금이 부과되는 것이다.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도 최근 국회 문턱을 넘어 이르면 8월부터 스포츠 경기 암표를 팔다 적발돼도 같은 처분을 받는다. 하지만 법의 그물이 성글어 벌써부터 실효성이 크지 않을 거라는 얘기가 나온다.
▷매크로가 사용됐는지 확인하기가 어려운 데다 암표 몇 장만 팔아도 벌금을 충당할 수 있을 정도로 처벌 수위가 낮은 탓이다. 최근 공연 현장에서 ‘본인 확인’을 강화하자 암표상들이 제3의 아이디로 예매한 뒤 구매자 아이디로 곧장 바꾸는 ‘아옮’(아이디 옮기기)으로 빠져나갈 구멍을 속속 만드는 실정이다. 일본, 대만처럼 아예 제도적으로 티켓을 웃돈 주고 판매하는 것 자체를 금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K컬처의 위상은 세계적 수준으로 높아지는데 암표를 뿌리 뽑을 법과 제도는 언제나처럼 뒤늦게 따라오고 있다.
-정임수 논설위원, 동아일보(24-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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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배 비싼 암표... 법으로 못 막자 가수들이 ‘암행어사’ 노릇까지
티케팅 전쟁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팬인 김모(39)씨는 지난달 19일 회사에 반차까지 내고 다음 달 열리는 뮌헨 필하모닉 예술의전당 내한 공연 티케팅에 도전했지만 실패했다. 오픈과 동시에 접속해 클릭했지만 “이미 선택한 좌석”이라는 메시지만 떴다. 그리고 한 시간 뒤 김씨는 네이버 카페 중고나라에 접속했다가 분노하고 말았다. 티켓을 되판다는 글이 우수수 올라왔던 것이다. 정가 8만~36만원인 티켓은 재판매 가격 시작가가 140만원부터였다. 김씨는 “전문 암표상들이 매크로(자동 입력 반복) 프로그램을 돌려 티켓을 사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현상”이라며 “팬들 사이에서 티케팅에 성공한 일반인은 ‘하늘이 내리신 분’이라고 부른다. 매크로상들 다 잡아 처벌할 수는 없느냐”고 물었다.
지난해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역대 최연소로 우승한 피아니스트 임윤찬(왼쪽)과 29년 만에 정규 리그에서 우승하고 잠실 야구장에서 세리머니를 한 LG트윈스. 티켓이 초고속 매진돼 암표가 돌았다. /조선일보DB, 뉴스1, 그래픽=송윤혜
‘10월 6일 금요일 | ㅇㅇ 구역| 네이비석 1장 60만원’
프로야구 LG트윈스가 29년 만에 정규리그 1위를 확정하고 처음으로 안방인 서울 잠실야구장으로 돌아와 우승 세리머니를 하기로 예정된 지난 6일 기아타이거즈와의 경기. 초등학교 때부터 LG 팬이었다는 김모(45)씨는 티켓을 사기 위해 앱에 접속했다가 깜짝 놀랐다. LG트윈스 공식 앱과 티켓링크에서는 일찌감치 매진됐지만, 티켓 거래 사이트 ‘티켓베이’에는 20~40배가 뛴 가격으로 판매 중이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벌써부터 티켓값이 이렇게 상승한 걸 보니 한국시리즈 티켓 사기가 두렵다”며 “구단에서는 이런 암표상들을 좌시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두 사람의 질문에 답하자면, 둘 다 잡을 수 없다. 온라인에서 티켓을 되파는 행위도, 매크로를 이용해 티케팅을 하는 것도 불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법의 사각지대에서 오늘도 티케팅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온라인 암표가 합법이라고?
‘해도 해도 너무한다.’
티케팅에 참전한 팬들의 마음이다. 과거에도 암표는 없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규모가 커진 중고 거래 사이트와 소셜미디어 등을 중심으로 더 많은 양이 빈번히 거래된다. 유명 내한 가수 공연은 정상 티켓 가격에 ‘0′이 하나 더 붙는 게 기본이다. 오는 20일 열리는 팝스타 찰리 푸스의 공연도 티케팅 직후 그런 가격으로 거래됐다. 특히, 지난달부터 잠실종합운동장 올림픽주경기장이 공사에 들어가면서 큰 내한 공연들이 규모가 작은 곳에서 열리는 바람에 티케팅 전쟁은 더 살벌해지고 있다.
비정상적으로 티켓이 매진되고 가격이 뛰는 것은 전문 온라인 암표상들이 매크로 프로그램으로 티켓을 대량 매입하기 때문이라고 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이렇게 매입된 티켓들이 가장 활발하게 거래되는 곳은 소셜미디어 엑스(옛 트위터)다. ‘#티켓’, ‘#아옮(아이디옮기기라는 뜻으로 티켓의 소유자를 바꾸는 것)’ 등의 해시 태그로 수 초마다 올라온다. 엑스의 아이디는 별도의 인증 절차가 필요 없기 때문에 추적이 불가능하다. 그만큼 티켓 거래 사기도 많이 일어난다.
중고나라·당근마켓·번개장터 같은 중고 거래 플랫폼도 티켓 거래가 활발한 곳이다. 최근에는 암표상들의 아지트로 불리는 ‘티켓 베이’가 강자로 떠오르고 있다. 티켓 재거래 시장이 커지면서 지난 3월에는 네이버의 계열사 크림이 티켓 베이의 운영사 팀플러스의 지분을 확보해 2대 주주로 올라섰다.
◇가수들이 암행어사!
온라인 암표 사업에 대기업까지 참전한 이유는 불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경범죄 처벌법에 따르면, 암표 매매의 처벌 조건은 흥행장·경기장·역·나루터·정류장 등에서 웃돈을 주고 티켓을 팔 때만 가능하다. 다행히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한 티케팅은 지난 3월 관련법이 통과돼 내년 3월부터는 처벌 대상이 된다.
이러다 보니 가수들이 직접 암표상 잡기에 나서기도 했다. 일명 ‘암행어사’다. 아이유 소속사 이담엔터테인먼트는 티켓 부정 거래자로 의심될 경우 공식 팬클럽 제명 조치뿐 아니라 예매 사이트 멜론 티켓 아이디도 1년간 제한한다. 임영웅 소속사 물고기뮤직도 “최근 부정 예매 및 불법 거래가 의심되는 16개 계정을 제보받아 강제 취소 및 소명 요청 메시지를 발송했다”고 했다.
가수 성시경의 매니저는 수시로 당근마켓에 접속해 암표 거래자들을 직접 잡는 것으로 유명하다. 지난달 데뷔 25주년 콘서트를 가진 그룹 GOD는 앞자리 스탠딩석의 경우 예매자와 티켓 소지자의 신분증을 확인해 다를 경우 입장을 막기도 했다.
아무리 법적으로 틈이 있다고 해도 대기업이 암표를 조장하는 사업에 뛰어드는 것이 맞느냐는 비판도 많다. 패션플랫폼 무신사는 개인 간 거래 사이트 ‘솔드아웃’이 온라인 암표 거래를 부추긴다는 비판을 받자 지난달 티켓 부문 서비스를 출시 40여 일 만에 접었다. 윤동환 한국음악레이블산업협회 회장은 “자체적으로 암표상들을 잡아도 현행법으로는 처벌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당당하다”며 “암표는 언제든 사고팔 수 있는 신발, 가방 등과 달리 일정 기간이 지나면 무용지물이 되는 시간 상품이다. 약자인 소비자의 마음을 악용한 범죄로, 법무부와 문화체육관광부의 적극적 개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혜운 기자, 조선일보(23-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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