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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면 名家 ‘을지면옥’이 2년 만에 돌아온다] [을지로 재개발]

뚝섬 2024. 3. 17. 05:50

[냉면 名家 ‘을지면옥’이 2년 만에 돌아온다] 

[을지로 재개발] 

 

 

 

낙원상가 뒷골목에서 4~5월 중 영업 재개

 

'을지면옥'이 영업을 재개할 서울 종로구 낙원동 새 건물 입구(오른쪽)와 옛 을지로점 입구. /김성윤 기자·조선일보DB

 

낙원상가 뒤 종로세무서가 있는 골목길을 걷다가 깜짝 놀랐다. 공사가 한창인 건물 출입구 위로 ‘을지면옥’ 네 글자가 보였다. 냉면 마니아라면 익숙한 그 필체였다. 통유리문에는 ‘을지면옥 리모델링 공사 중’이라고 인쇄한 종이가 붙어 있었다. 1층 안쪽 주방 공간에서는 냉면 틀이 보였다.

 

지난 12일 을지면옥에서는 홍정숙(69) 대표가 공사 진행 상황을 점검하고 있었다. 홍 대표는 “을지면옥을 이곳에 다시 연다”며 “아직 수리 중이라 개점 날짜를 정하지 못했다”고 했다. 현장 인부들은 “4월 초면 내부 공사까지 끝날 것”이라고 했다. 4월 말이나 늦어도 5월에는 을지면옥이 낙원동에서 영업을 재개할 것으로 보인다.

 

인근 부동산 중개업자는 “본래 요리 연구가 한정혜씨 소유 건물인데, 2022년 별세 후 자손들이 내놓은 걸 을지면옥 측에서 인수했다고 들었다”며 “허물고 새로 지으려 했지만, 역사적인 지역이라 규제가 많고 비용도 많이 들어서 기존 건물을 리모델링하는 선에서 마무리한 듯하다”고 했다. 건물은 총 5층으로, 1·2·3층을 냉면 집으로 사용할 것으로 보인다.

 

평양냉면 3대 계열

 

을지면옥은 ‘우래옥’ ‘평양면옥’ ‘필동면옥’과 함께 서울을 대표하는 평양냉면 4대 노포로 꼽힌다. 서울 평양냉면의 계보는 크게 ‘의정부 계열’ ‘우래옥 계열’ ‘장충동 계열’로 나뉜다. 을지면옥은 의정부 계열에 속한다. 평안도 대동군 출신 홍영남씨가 1969년부터 경기도 전곡 ‘평양면옥’에서 냉면을 만들어 팔다 소문이 나면서 1987년 의정부로 이전했다. 장남 홍진권씨가 대를 이어 운영하고 있다. 1985년 문 연 서울 을지면옥은 홍영남씨의 둘째 딸 홍정숙씨가, ‘필동면옥’은 맏딸 홍순자씨가, 서초구 잠원동 ‘본가 평양면옥’은 막내딸 홍명숙씨가 경영한다.

 

의정부 계열 냉면은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섞는 육수가 무미할 정도로 심심하지만 먹을수록 특유의 감칠맛이 올라온다. 곱게 빻은 고춧가루를 살짝 뿌려 내는 게 특징이다. 냉면은 거의 같지만 기타 메뉴는 식당별로 조금씩 다르다. 을지면옥은 돼지고기를 삶아서 차갑게 식혀 얇게 저민 ‘편육’이 냉면만큼 인기였다. 마니아들은 “부드러운 편육을 소스에 찍었을 때 궁합이 매우 좋다”며 “소주 안주로 이만한 게 없다”고 격찬한다.

 

'을지면옥'의 평양냉면(앞)과 돼지편육. /조선일보DB

 

우래옥 계열은 평양에서 고급 한식당 ‘명월관’을 운영하다 광복 후 서울로 온 장원일씨가 1950년 6·25전쟁 후 을지로 4가 인근 주교동에서 영업을 재개하며 ‘다시 돌아온 곳’이란 의미로 간판을 걸었다. 서울 평양냉면 집 중 가장 역사가 길다. 장씨 손녀 경선씨와 쌍둥이 여동생 고(故) 경원씨의 큰딸 안지민씨가 공동 운영한다. 한우 암소만으로 우려낸 감칠맛 진한 육수에 강원도 평창 메밀만으로 뽑은 사리를 말아 낸다. 서울 최고(最古)·최고가(最高價)인 최고 냉면 집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서울 대치점과 미국 워싱턴점도 가족이 나눠 운영했지만 모두 폐업했다. ‘벽제갈비’와 ‘봉피양’의 평양냉면을 우래옥 계열로 분리하기도 하는데, 우래옥에서 오래 일한 고(故) 김태원 조리장이 1992년부터 벽제갈비와 봉피양 냉면의 기틀을 잡았기 때문이다.

 

장충동 계열은 평양에서 ‘대동면옥’을 운영하다 월남한 김면섭씨와 며느리 변정숙씨가 1985년 장충동에서 개업한 ‘평양면옥’에서 출발했다. 본점은 변씨의 큰아들 김대성씨가, 논현점은 변씨와 둘째 아들 김호성씨가 운영한다. 대성씨 둘째 딸 유정씨와 사위 서상원씨는 2014년 도곡점을 개점했다. 신세계백화점에 문 연 평양면옥은 호성씨 둘째 딸 은성씨가 이끈다. 논현동 ‘진미평양냉면’은 주방장 임세권씨가 논현점에서 오래 일했기 때문에 장충동 계열로 분류한다. 육수는 의정부 계열과 비슷하지만 조금 더 간이 있고, 사리는 다소 까슬까슬하지만 씹으면 구수한 여운이 남는다.

 

을지로 37년 끝내고 ‘낙원동 시대’

 

을지면옥은 서울 중구 세운지구 재개발로 주변 노포들이 문 닫는 가운데서도 끝까지 을지로를 사수하려 했다. 하지만 재개발 시행사가 을지면옥을 상대로 낸 ‘부동산 명도 단행 가처분’ 소송에서 2022년 법원이 시행사 손을 들어주자 떠나기로 결정했다. 을지면옥은 2022년 6월 25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까지 마지막 영업을 했다.

 

단골들은 이날 이른 아침부터 ‘마지막 냉면’을 먹으려 길게 줄을 섰다. 그중에는 BTS(방탄소년단) 리더 RM도 있었다. 그는 인스타그램에 을지면옥 입구 사진과 ‘ㅠㅠㅠ’라는 문구를 남겼다. 을지면옥은 밀려드는 손님을 40여 분간 더 받고 37년간 이어온 영업을 끝냈다.

 

공사 중인 '을지면옥' 새 건물. /김성윤 기자

 

홍 대표는 당시 손님들과 일일이 손을 붙잡고 “추억의 공간을 지키고 싶었는데 잘 안 돼 안타깝지만, 세대에 걸쳐 찾아준 모든 분께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내년 여름에 만나자. 새 장소는 인터넷에 공지하겠다”며 마지막 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마침내 을지면옥은 2년 만에 낙원동에서 문을 연다. 재개발이 끝나면 을지로로 돌아가는지 묻자 홍 대표는 “이제 여기서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답했다. 을지면옥 낙원동 시대 개봉 박두.

 

-김성윤 기자, 조선일보(24-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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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로 재개발 

 

청진동 해장국집 '청진옥'에 오랜만에 들렀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예전 맛을 잃은 노포(老鋪)'로 꼽은 곳이다. 기자 초년병 시절 야근 후 이곳에서 소주잔 기울이며 해장국을 먹곤 했다. 재개발로 헐린 원래 가게에서 80m 떨어진 빌딩 1층에 들어갔다가 재작년 인근 독립 건물로 다시 옮겼다. 낮은 천장 아래 낡은 탁자에 옹기종기 앉아 숟가락을 뜨던 풍경은 사라졌다. 식당 내부는 깔끔했고 선지와 양, 우거지를 듬뿍 넣은 해장국은 푸짐했다. 맛도 여전한지 손님이 붐볐다. 1937년 문을 연 창업주의 손자는 예전 식당에서 쓰던 가마솥까지 가져와 맛을 지켰다고 했다.

▶서울시는 엊그제 유명 식당과 공구상이 밀집한 을지로 세운지구 재개발 사업을 연말까지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10년 넘게 재개발을 기다려온 지역 주민들은 몇몇 식당 때문에 또 미뤄야 하느냐며 반발한다. "건물까지 그대로 지키는 게 노포를 보존하는 길"이라는 목소리도 맞선다. 이 와중에 한 식당이 재개발에 동의했다가 보상가를 몇 배 올려달라며 반대로 돌아섰다는 주장도 나와 시끄럽다.

 

▶을지면옥, 양미옥, 안성옥이 있는 을지로 골목은 휴지가 뒹굴고 냄새가 날 만큼 지저분하다. 건물도 낡았다. 흉한 슬럼일 뿐이다. 어떤 식으로든 재개발이 필요하다는 데는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낡고 더러워서 노포가 아니라 맛과 전통이 있어서 노포다. 멋지게 재개발한 뒤에도 맛만 유지하면 여전히 노포다.

▶뉴욕 맨해튼 53번가엔 유별난 모양의 빌딩이 있다. 단층 교회 지붕을 감싸듯 그 위에 건물을 올린 59층 시티콥센터다. 빌딩을 지을 때 이곳에 있던 오래된 교회가 이사를 꺼렸다. 건축주는 교회당 위로 건물을 올릴 수 있는 '공중권'을 사들였다. 교회당을 새로 지어준 뒤 교회 지붕 위로 건물을 올렸다. 벽 대신 기둥 4개로 떠받친 필로티 공법으로 12층 높이를 비웠다. 1층 광장은 시민들의 휴식 장소로 개방했다. 뉴욕시는 원래 30층까지 지을 수 있는 땅이지만 더 높이 짓도록 인센티브를 줬다. 이 빌딩은 맨해튼 랜드마크로 떴다. 모두가 만족하는 도심 재개발로 주목받았다.

▶박원순 시장은 노포가 사라지는 걸 아쉬워하는 여론을 읽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민들이 보존 가치도 없는 식당 건물까지 놔두라며 무작정 재개발을 반대하는 건 아니다. 낡은 건물은 안전 때문이라도 손봐야 하고 골목도 깨끗하게 단장해야 한다. 건축가와 행정가들의 창의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김기철 논설위원, 조선일보(19-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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