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통일·동족 개념 지워야”… 옛 동독 같은 ‘자멸의 길’ 가나]
[북한 도발의 저편, 길어지는 러 그림자]
[아직도, 우리의 소원은 통일인가]
김정은 “통일·동족 개념 지워야”… 옛 동독 같은 ‘자멸의 길’ 가나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6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0차 회의가 1월15일 수도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진행되었다”라고 보도했다. 회의에선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와 민족경제협력국, 금강산국제관광국 기구를 폐지하는 결정이 나왔다.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는 ‘공화국의 부흥발전과 인민들의 복리증진을 위한 당면과업에 대하여’라는 시정연설을 통해 헌법 개정과 전통적 남북관계의 단절을 선언했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5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을 통해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 같은 표현을 헌법에서 삭제하고 한국을 ‘철두철미 제1의 적대국, 불변의 주적’으로 간주하는 내용을 명기하라고 지시했다. 또 “전쟁이 일어나면 대한민국을 완전히 점령·평정·수복해 편입시키는 문제”도 반영하라고 했다. 김정은은 특히 선대(先代)의 남북 합의를 부정하고 그 상징물까지 철거할 것을 지시하며 “공화국의 민족역사에서 통일, 화해, 동족이라는 개념 자체를 완전히 제거해 버려야 한다”고도 했다.
김정은의 발언은 작년 말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한 이래 헌법까지 그에 맞춰 개정함으로써 남측과의 단절을 되돌릴 수 없는 확고한 노선으로 만들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새해 벽두부터 해안포 사격과 탄도미사일 발사 같은 도발을 감행한 데 이어 대남 정책과 이념, 역사까지 바꾸는 노선 변경 작업에 들어간 것이다. 대남 대화기구와 선전매체를 정리한 데 이어 할아버지 김일성의 ‘조국통일 3대 원칙’ 삭제, 나아가 아버지 김정일의 대남 성과를 상징하는 ‘조국통일3대헌장기념탑’ 철거까지 지시하며 선대의 유산까지 건드리고 있다.
이 같은 김정은의 노선 전환은 한미를 동시에 위협하는 핵무장을 이뤄냈다는 자신감, 그리고 러시아와의 무기 거래 등을 통해 신냉전의 유리한 국면에 올라탔다는 정세 판단의 결과일 것이다. 더욱이 4월 한국 총선과 11월 미국 대선을 앞둔 올해는 정치적 유동성의 시기인 만큼 국제정세의 판을 흔들 절호의 기회라는 계산도 엿보인다. 하지만 그처럼 무모해 보이는 호전성의 근저엔 체제 유지에 대한 불안감이 깔려 있는 것도 분명해 보인다. 내부의 시선을 외부로 돌리는 공세야말로 주민들의 불만을 차단하기 위한 독재체제의 만능 수법이다.
무엇보다 김정은이 ‘통일’ ‘동족’을 지우려는 모습은 옛 동독이 ‘독일 단일민족론’을 부정하며 서독과 단절해 분단을 고착화하려 했던 자멸적 시도와 흡사하다. 동독은 1970년대 들어 헌법에서 ‘분단 극복과 통일 노력’ 조항을 삭제하고 통일을 염원하는 국가(國歌)의 제창을 막기도 했다. 나아가 ‘독일(Deutschland)’이란 단어 사용조차 꺼리면서 독일은 곧 서독과 동의어가 되는 결과를 낳았다. 반면 서독은 일관되게 ‘독일 민족은 하나’라는 원칙을 고수하며 통일을 추구했다. 그 결과는 모두가 아는 바다.
-동아일보(24-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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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도발의 저편, 길어지는 러 그림자
지난해 9월 북-러 정상회담 직후 필자는 양국 군사협력에 초점을 맞춘 칼럼을 썼다. 북한은 러시아에 무기를 전달한 것 같지만 러시아가 북한에 군사 기술 등을 보낸 구체적 정황은 드러나지 않았다고 했다. 러시아 사정에 정통한 당국자도 그때 “(러시아가) 민감한 기술까지 북한에 쉽게 내줄 것 같진 않다”고 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김정은을 초대한 것만으로 ‘포탄을 받은 답례’는 다 했을 거란 얘기였다.
4개월이 지났다. 지금도 당시 평가가 유효할까. 최근 다시 만난 이 당국자는 “상황이 훨씬 진지하고 심각해 보인다”고 했다. 북한으로부터 적당히 무기를 빼먹고 적당하게 성의를 표시하는 선에서 정리될 것 같던 북-러 군사협력이 예상보다 훨씬 진지하고 밀도 있게 굴러가고 있다는 의미였다.
북-러 정상회담 이후 북한 도발 시계는 긴박하게 움직였다. 지난해 11월 북한은 군사정찰위성 ‘만리경-1호’를 발사했다. 앞서 2차례 발사 실패 후 결국 궤도에 진입시켰다. 12월에는 신형 고체연료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8형’을 고도 6000km 이상 고각(高角)으로 발사했다. 최근엔 고체연료 방식의 극초음속 중장거리탄도미사일(IRBM)을 시험 발사하며 기습 타격 능력도 과시했다.
이런 자신감 넘치는 도발의 저편에 러시아의 그림자가 묵직하게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은 점점 힘을 얻고 있다. 한 정보 당국자는 “주변 눈치 안 보고 러시아에 펑펑 무기를 내줄 수 있는 국가가 지금 북한 말고 있느냐”며 “무기가 절실한 푸틴이 이젠 북한의 군사 기술 요청을 무시하긴 힘들 것”이라고 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최근 러시아가 북한으로부터 100만 발 넘는 탄약을 공급받았다고 밝혔다. 미국 백악관은 북한이 러시아에 탄도미사일까지 제공했다고 지적했다. 북한의 전방위적 무기 지원이 누적될수록 군사 기술을 내어 달라는 북한 요구를 러시아가 적당히 뭉개기 힘들 거라는 게 우리 당국의 판단이다.
북한이 러시아로부터 군사 기술을 얼마나 지원받았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일부 탄도미사일이나 정찰위성 기술은 이미 이전받았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진짜 문제는 그 다음 페이지다. 러시아가 북한의 최신 전투기, 핵추진잠수함 생산을 돕거나 핵 개발 관련 ‘게임체인저’ 기술까지 내준다면 우리 방위는 치명타를 입을 수밖에 없다.
이런 우려 섞인 시선을 즐기듯 북한 최선희 외무상은 최근 러시아를 방문했다. 당장 러시아의 군사 기술 이전에 대한 타임라인이 논의됐을 가능성이 크다. 러시아 크렘린궁은 조만간 푸틴 대통령의 방북이 이뤄질 수 있다고도 했다.
필자는 앞서 쓴 칼럼의 마지막 대목에서 “푸틴을 방치해 두면 자칫 김정은에게 황금 열쇠를 쥐여줄 것”이라고 썼다. 북한의 무기 지원을 축으로 맺어진 북-러 밀월 관계는 그때보다 훨씬 깊고 끈적해졌다. 김정은과 푸틴의 손을 떼어놓을 수 없다면 러시아의 폭주를 막을 ‘원포인트’ 해결책이라도 모색해야 한다. 김정은에게 핵잠수함 기술 설명서를 쥐여주는 건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신진우 정치부 차장, 동아일보(24-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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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우리의 소원은 통일인가
[朝鮮칼럼]
김정은의 노동당 연설… 통일 민족주의, 棺에 못 박아
남이건 북이건 힘 더 강했을 때 상대에게 ‘통일하자’ 큰소리… 김정은 발언은 결국 두려움일 뿐
지금 한반도에서 시급한 건 통일 아닌 평화적 외교 관계다
2023년 12월 30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9차 전원회의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연설하고 있다./노동신문 뉴스1
우리의 소원은 통일인가? 북한 지도부의 답변은 결단코 ‘노’이다. 지난 12월 30일 북한 노동당 전원회의 연설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남북 관계가 ‘동족 관계’가 아닌 ‘적대적 두 국가 관계’임을 분명히 했다. 또 조선중앙통신은 ‘민족, 동족이라는 개념’이 북에서 이미 삭제됐다고 천명했다.
놀랍지만 놀랍지 않다. 1990년대 김정일 위원장이 강조한 ‘우리 민족 제일주의’의 민족이 남한을 배제하고 북한만을 가리킨다는 것은 이미 북한 전문가들 사이에서 잘 알려진 일이다. 민족주의적 미련 때문에 그저 모르는 척했을 뿐이다. 지난 연말 김정은의 공식 연설은 통일 민족주의의 관에 못을 박았다. 현실 정치 관점에서 본다면, 이념과 정치 체제, 사회 구성 원칙과 경제적 삶의 양식이 근본적으로 다른 두 국가를 혈통적 민족의 잣대를 들이대 한데 묶는다는 발상은 황당하기 그지없다.
그런데 통일 민족주의자들이 ‘진보’의 고지를 선점하고 또 보수 언론조차 그들을 ‘진보’라고 규정하는 한국의 정치 담론은 답답하다. 통일 민족주의를 위해 다수의 행복을 희생해야 한다면, 그 진보는 일그러진 권력의 장식에 불과하다. 남·북한 지도부에게 민족은 권력 유지를 위한 정치 공학의 쏠쏠한 도구였다. 대중의 감정에 호소하는 민족주의의 폭발적 힘 때문에 어느 정치 세력도 통일을 대놓고 부정할 수는 없었다.
통일에 대한 남과 북의 입장은 두 국가 사이에서 힘의 균형이 어디로 기우는가에 따라 계속 바뀌었다. 북의 군사력이 남보다 강할 때는 북이 민족 통일을 강조했고, 통일의 명분을 버릴 수 없었던 남은 소극적이었다. 남이 북보다 통일에 적극적으로 된 것은 1990년대 일이었다. 남의 우위가 확실해지자 의사소통이 가능한 북의 값싼 노동력에 대한 기업들의 욕구와, 보수든 진보든 민족주의적 호소력을 간파한 권력의 정치 공학이 통일이라는 정치적 목표를 공유했다.
반면 북은 계속 움츠러들었다. 1991년 남북 문제를 특수한 민족적 문제라고 정의한 남북기본합의서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등장한 북의 ‘우리 민족 제일주의’는 남한을 배제한 북한 민족 제일주의였다. 최근 북이 남의 호칭을 남조선에서 대한민국이라는 정식 국호로 바꾼 것도 예사롭지는 않다. 남과 북은 국제 관계로 보아야 할 별개의 나라임을 천명한 것이다. 통일 민족주의의 미망에서 벗어나 보면, 남북 문제는 하나의 민족 문제가 아니라 전혀 다른 체제를 지향하는 국가들 사이의 국제 문제다.
‘흡수통일’을 기조로 하는 한국과는 달리 “그 언제 가도 통일이 성사될 수 없다”고 한 데서 통일에 대한 김정은 위원장의 두려움은 잘 드러난다. 잇따른 군사적 도발 또한 그런 두려움의 표현일 것이다. 남의 통일 민족주의자들이 갖는 북에 대한 민족적 호의조차 성가실지 모르겠다. 같은 민족이라고 해서 한반도의 평화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통일 민족주의는 민족은 하나라는 허울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 허울 때문에 남북의 민족적 정통성 경쟁을 부추기고 오히려 긴장을 고조시켜 왔다. 한국의 국제 관계에서 다른 이웃 국가보다 가장 근접한 이웃인 남북 관계가 가장 경색된 데는 그것도 한 이유가 됐다.
남북이 긴장을 완화하고 평화로운 이웃으로 살려면 국제 관계 원칙에 따라 국교를 수립하고 평양과 서울에 대사관을 개설하는 것이 옳다. 외교적 프로토콜을 따르면, 일본 총리처럼 ‘각하’라는 말을 들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괴뢰’라고 칭하지는 못할 것이다. 2024년의 ‘햇볕 정책’은 민족이라는 공허한 표제어를 버리고 군사적 억지력을 견지하면서 우선 남과 북 두 국가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국제 관계를 도모해야 한다. 외교부가 남북 협상의 주역으로 나서서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의 평화적 국제 관계를 구상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 외 환경부, 산업부 등 소관 부처마다 북한국, 북한과 등을 두어 가장 근접한 이웃 국가인 북과 국제 협력을 도모하면 될 것이다.
지금 한반도에서 시급한 것은 민족 통일이 아니라 가장 근접한 이웃인 남과 북이 평화적 외교 관계를 수립하는 일이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아니라 평화다.
-임지현 서강대 교수·역사학, 조선일보(24-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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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은 계속된 협박에 韓美 여기저기 “타협하자” 목소리. 北이 노리는 게 이런 韓美의 우왕좌왕.
-팔면봉, 조선일보(24-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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