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時事-萬物相]

[우리가 알던 ‘그 윤석열’] [어떤 정치도 국민을 앞설 수 없다] ....

뚝섬 2024. 1. 27. 07:22

[우리가 알던 ‘그 윤석열’]

[어떤 정치도 국민을 앞설 수 없다]

[2막 맞는 尹-韓 브로맨스… 같음보다는 다름에 무게]

[윤 대통령 하고 싶은 말보다 국민이 듣고 싶은 말 하길] 

[‘여사 리스크’가 아니라 공천 문제가 핵심이다]

 

 

 

우리가 알던 ‘그 윤석열’

 

[박정훈 칼럼]

아무리 불리해도 피하는 일 없이 보편적 가치 편에서
거악에 맞서던 승부사 윤석열은 지금 어디 있나

 

2022년 2월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서울 광진구에서 이준석(왼쪽) 대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오른쪽)의 손을 잡고 '원팀' 유세를 벌이고 있다./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은 용장(勇將)형 리더다. 잔 계산이나 좌고우면 하지 않고 정면 승부하는 용맹함이 돋보이는 스타일이다. 그가 일약 국민적 스타가 되고 검찰총장을 거쳐 단숨에 정권까지 거머쥔 데는 그의 승부사 기질 덕이 컸다. 위기가 닥쳐와도 타협하거나 우회하지 않고 직선으로 돌파해 판세를 뒤집곤 했다.

 

그는 싸우되 큰 싸움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가 맞서 싸운 상대는 당대의 대통령, 권력 실세처럼 하나같이 ‘센 놈’들이었다. 그는 박근혜 정권 심기를 거슬러가며 ‘국정원 댓글 사건’을 수사해 3년간 지방 한직을 전전했다. 앞날을 가늠하기 힘든 처지였지만 검찰 고위층이 늘어선 국감장에 나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한마디로 국민 마음을 사로잡았다. 서슬 퍼런 정권 앞에서도 한 치 비겁함이 없었다.

 

그는 문재인 정권과도 정면 승부를 피하지 않았다. 최고 실세였던 조국 법무장관을 수사해 강남 좌파의 위선적 민낯을 세상에 알렸다. 청와대가 총동원된 울산 선거 개입, 대통령의 한마디로 강행된 탈원전 경제성 조작도 눈감지 않았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 식의 무모한 싸움처럼 보였지만 그는 온갖 탄압을 버텨내며 ‘살아있는 권력’ 수사를 끝까지 밀어붙였다.

 

그가 문 정권과의 대결에서 승리한 것은 이기는 길을 갔기 때문이었다. 공정과 상식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무기로 싸웠기 때문에 그에겐 힘이 있었다. 정권 아닌 법치, 진영 아닌 정의의 편에 선 덕분에 국민을 우군으로 삼을 수 있었다. 마침내 그는 정권교체 세력의 구심점이 되어 건곤일척의 대선 무대에 올라갔다. 정치 초보답게 실수도 잦고 작은 전투에선 무수히 졌지만 타고난 승부사 기질은 큰 선거 판에서 다시 한번 빛을 발했다. 그가 이준석을 끌어안고 안철수와 손잡으며 반문(反文) 대연합을 펼친 장면은 지난 대선의 최고 하이라이트였다. 그리고 정권 교체를 이루어 냈다.

 

대통령이 된 후에도 그는 큰 승부를 주저하지 않았다. 취임하자마자 전광석화처럼 미국과의 동맹 관계를 복원했으며, 빗발치는 비판을 뚫고 한일 관계 정상화를 이끌어냈다. 친중·친북 쪽으로 일탈했던 국가 진로를 정상 궤도로 되돌린 거대한 외교 승부수였다. 그 와중에 불거진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는 친일 프레임에 말려들 수 있는 폭탄 같은 이슈였지만 그는 도망가지 않았다. 온갖 괴담을 퍼트리던 민주당이 지금은 오염수의 ‘오’자도 꺼내지 않으니 그가 옳았음이 증명된 셈이었다.

 

그는 역대 정권이 겁내며 피해온 노동 기득권과의 일대 혈전도 벌였다. 대한민국 최강의 투쟁 집단으로 군림하는 민노총의 불법·폭력에 무관용 원칙 대응으로 맞섰고, 귀족 노조가 수십 년간 감춰오던 회계 장부도 공개시켰다. ‘건폭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건설 범죄꾼 수천 명을 잡아들이면서 돈 뜯고 행패 부리는 공사 현장 관행을 퇴출시켰다. 윤 정권의 공과를 따지긴 아직 이르지만 이런 성과들은 분명 평가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승부의 스케일이 작아졌다. 가치보다 정파적 이익, 대의보다 정치 공학을 중시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많은 국민이 이것을 실감한 계기가 지난 3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였을 것이다. 자기 사람을 당 대표에 앉히려 나경원을 끌어내리고 안철수에게 “방해꾼이자 적”이란 이례적 메시지를 날렸다. 대통령이 여당 인사에 관여할 순 있지만 그 방식이 너무도 거칠었다. 공정하지도 상식적이지도 않았다. 대통령이 내부의 적과 싸우는 모습은 거악(巨惡)에 맞서 큰 싸움을 벌이던 승부사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았다. 검사 일색의 편중 인사, 국민과의 소통 부재 등이 쌓여기면서 윤 대통령에겐 기득권의 색채가 더해져 갔다.

 

김건희 여사 논란에서 그는 더욱 작아 보인다. 그토록 서릿발 같던 윤 대통령이 이 문제 앞에선 원칙을 잃고 표류한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김 여사가 함정 공작의 피해자인 것은 틀림없지만 많은 국민이 김 여사의 부적절한 처신에 의구심을 갖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왜 뇌물에 가까운 고가 명품을 받았는지에 대해 대통령실은 설명하지 못한다. 명품 백을 국고에 귀속시켰고, “돌려주면 오히려 국고 횡령”이라는 해명 같지 않은 해명만 늘어놓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런 요령부득 논리 뒤에 숨어 김 여사 지키기에 몰두하는 듯 보인다.

 

윤 대통령은 올해 신년 회견도 생략했다. 대신 공영방송 대담으로 대체할 것이라고 한다. 만약 김 여사 관련 질문이 부담스러워 각본 없는 회견장에 서지 못하는 것이라면 아무리 궁지에 몰려도 피하는 법 없던 ‘윤석열다움’과 거리가 멀다. 김 여사 문제 때문에 한동훈 비대위원장을 사퇴시키려 한 것이 사실이라면 더욱 더 그렇다.

 

과거의 윤석열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지금 상황은 아연하기만 하다. 보편적 가치의 편에 서서 위기를 직진 돌파하던 큰 승부사 윤석열은 어디 갔나. 우리가 알던 ‘그 윤석열’은 어디에 있나.

 

-박정훈 논설실장, 조선일보(24-01-27)-

_____________

 

 

어떤 정치도 국민을 앞설 수 없다

 

[朝鮮칼럼]

명품 백 문제가 민주당 총선 프레임이니 속으면 안 된다는 주장도 옳다
하지만 국민은 뭘 기대하나.. 결정적 순간에 선택 잘못되면
이번 총선도 다음 대선도 통한의 눈물 흘릴 것

 

윤석열 대통령이 23일 오후 충남 서천군 서천수산물특화시장 화재 현장을 찾아 피해 상황을 점검하기 앞서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만나 악수하고 있다. 2024.01.23. /대통령실

 

한국 정치가 갈림길에 섰다. 모든 게 열려 있는 ‘결정적 순간’(decisive moment)이 시작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김건희 여사의 명품 백을 둘러싼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대립이 그 계기다. 이 사건은 해프닝처럼 보이지만, 갈등은 근본적인 것이다. 그 해법에 따라 짧게는 4월 총선, 길게는 향후 3년간 윤 대통령의 국정, 그리고 2027년 대선의 향방이 갈릴 것이다.

 

먼저 4월 총선이다. 지난 21일로 한 위원장은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사이 지지율이 이재명 대표와 대등한 수준으로 급상승했다. 대선 후보에 성공적으로 데뷔했다. 하지만 국민의힘 지지율은 답보 상태였다. 전국 순회와 정치개혁은 총선의 결정적 계기를 만들지 못했다. 이대로라면 필패다. 총선은 대통령 얼굴 가지고 하는데, 대통령의 낮은 국정 지지율이 여당 지지율과 연동되어 있다.

 

한 위원장은 지지하지만, 대통령과 여당은 아니라는 게 지금 민심이다. 지난해 강서구청장 선거에서 드러난 정권심판론이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김건희 여사의 명품 백 문제, 그리고 대통령의 허수아비 같은 여당이 아킬레스건이라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다. 총선에서 이기려면, 한 위원장의 선택은 외통수다. 여당을 대통령에게서 떼어내고, 명품 백으로 엉킨 매듭을 잘라내야 했다. 하지만 총선 80여 일을 앞두고, 누구도 그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다. 참다못한 김경율 비대위원이 마리 앙투아네트에까지 빗대며 ‘김 여사 리스크’를 제기하고 나섰다. 그제야 한 위원장도 “국민이 걱정할 만한 부분이 있다” “국민 눈높이에서 생각할 문제”라고 동조했다.

 

일단 말뿐이지만, 그 효과는 쿠데타에 가까워 보인다. 윤 대통령은 명품 백 사건의 본질은 ‘함정 몰카’이고, 김 여사는 억울한 피해자일 뿐이라고 본다. 70%의 ‘국민의 눈높이’와 정면충돌하는 견해다. 한 위원장이 그 점을 밝히자, 윤 대통령은 바로 사퇴를 요구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후배에게 “바보같이 뒤통수를 맞았다”고 분노했다. 한 위원장은 “국민 보고 나선 길, 할 일 하겠다”고 단호하게 거부했다. 윤 대통령이 민심 반대편에 서서 국민과 싸우고 있고, 그런 사퇴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선언한 것이다. 심하게 말해, 이제부터 대통령이 아닌 국민과 함께 가겠다는 독립선언이다. 이렇게 일단 당의 독립, 김 여사 리스크 해결을 위한 실마리를 열었다. 하지만 더 확실히 매듭을 지어야 한다.

 

윤 대통령은 취임 후 최대의 정치적 위기를 맞았다. 취약한 통치력이 가감 없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먼저 대중의 생각과 유리된 판단 문제다. 지난해 강서구청장 선거, 엑스포 유치 과정에서 대통령의 판단이 현실과 크게 동떨어진 사실이 드러났다. 명품 백 문제에서도 되풀이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정부와 국민 사이에 핵이 터져도 깨지지 않을 만한 두툼한 콘크리트 벽이 있다. 그것을 깨야 한다”고 했다. 그 벽이 어느 쪽에 있나. 그게 문제다. 한 위원장이 사퇴하면, 다른 대안은 있는가?

 

공정과 상식이라는 윤 대통령의 국정 원칙도 의심받고 있다. 국민이 윤 대통령을 선택한 것은 문재인 정부의 내로남불과 후안무치에 질렸기 때문이었다. 국민은 명품 백 문제가 어떻게 처리되는지 주시하고 있다. 김경율 비대위원은 “(윤 대통령에게 투표한 합리적 중도층이) ‘명품 백 수수’ 의혹 이후 윤 대통령을 향한 태도가 많이들 바뀌고 있다. 나는 그게 두렵다”고 말했다. 원칙이 훼손되면 신뢰가 깨지고, 국정의 초석이 무너진다.

 

윤 대통령의 당 장악력도 눈 녹듯 사라졌다. 이준석·김기현 전 대표는 대통령 말 한마디에 갈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마력이 전혀 통하지 않았다. 친윤 이용 의원이 “용산이 한 위원장 지지를 철회했다”고 의원 단체방에 올렸지만, 아무도 호응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 위원장에게 민심과 명분이 있다” “딴소리를 하는 사람들부터 정리해야 한다”는 질책이 돌아왔다. 이렇게 공천권은 물론 당권이 한 위원장에게 넘어갔다. 총선이 끝나면 대통령에게 더 험한 일들이 기다리고 있다. 어떤 대통령도 예외가 없었다. 남은 3년을 어떻게 통치할지, 윤 대통령은 숙고를 거듭해야 한다.

 

명품 백 문제가 더불어민주당의 총선용 프레임이며, 이런 마타도어(흑색선전)에 속으면 안 된다는 견해도 강력하다. 그럴 것이다. 그런데 국민은 무엇을 기대하나? 정치가 매 순간 던져야 하는 질문이다. 어떤 정치도 국민을 앞설 수 없다. 이 결정적 순간의 선택이 잘못되면, 가까이는 총선, 그리고 2027년 대선에서 통한의 눈물을 흘릴 것이다.

 

-김영수 영남대 교수·정치학, 조선일보(24-01-26)-

______________

 

 

2막 맞는 尹-韓 브로맨스… 같음보다는 다름에 무게

 

“서로 다른 것을 같아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고 지내왔다.”

검찰 내 윤석열 사단의 핵심이던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윤석열 대통령과 자신의 관계를 두고 이같이 얘기한 적이 있다고 한다. 비슷함이 아닌 다름이 오랜 신뢰의 기반이었다는 얘기다. “맹종(盲從)하지 않는다”는 그의 말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던 대통령 말과 같게도, 다르게도 들린다. 문재인 정부 검찰총장과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이던 두 사람은 올 신년인사회에서 대통령과 여당 대표로 마주했다. 한 위원장의 서열이 수직 상승했다. 검찰에서 20년을 함께한 두 사람의 균열이 표면화한 것은 처음이다.

비대위 입성 때만 해도 대통령 호위무사 소리를 듣던 한 위원장은 취임 한 달이 되도록 용산 대통령실에 가지 않았다. 윤 대통령에 대한 언급도 없었다. 기존 당 대표와 다른 리더십이다. 김기현 전 대표가 당 4역과 함께 용산 대통령실을 찾아 윤심(尹心·윤 대통령 마음)으로 영향력을 확대하려 한 것과 달랐다. 거리 두기가 총선에 유리하다고 본 것 같다. 야권의 ‘윤석열 아바타’ 프레임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이는 김건희 여사의 명품 디올 백 논란 등 ‘김건희 리스크’ 대응 국면에서 두드러졌다.

 

반면 용산에서는 “취임한 지 2년이 안 됐다. 총선은 대통령 중심으로 치르는 것”이라는 얘기를 많이 한다. 한 위원장이 용산 지지율을 함께 끌어올릴 생각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참모들은 “하필 영부인 이슈를 치고 올라가나. 자기 장사하려고 대통령 망신을 줬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뒤통수를 맞았다는 소리까지 들었다”며 인간적 배신감마저 표출했다고 한다. 문 정부에서 좌천을 이어가던 한 위원장이 정권 교체 후 자신의 발탁으로 법무부 장관이 됐고, 여당 비상대표직에 오르는 데는 대통령 후광도 작용했기 때문이다. 한 위원장의 김경율 비대위원 ‘서울 마포을 출마’ 발언과 김 위원의 마리 앙투아네트 언급은 누적된 대통령의 분노를 촉발한 방아쇠가 됐을 수 있다.

한 위원장 취임 한 달도 안 된 상황에서 양측은 강한 파열음을 노출했다. 윤 대통령은 예와 같은 직선적인 모습 그대로 신뢰·지지 철회라는 직구를 던졌고, 한 위원장은 전면전은 피하되 사천 사당화 프레임은 깨뜨리며 긴장을 유지한다.

이번 국면에서도 일부 언론을 통한 ‘지지 철회’ 메시지 발신과 여론 조성, 윤심에 착실한 언론 플레이, 친윤(친윤석열)의 연판장 완력 행사로 이준석, 나경원, 안철수의 리더십을 무력화하던 패턴이 나타났다. 윤심의 명징한 발신에도 한 위원장은 일단 자리를 지켰다. 총선을 앞두고 친윤의 결집력과 실력 과시가 예전만 못했다. 격노한 대통령 발언이 상세히 보도됐음에도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대통령 입장에서는 그 지점이 오히려 더 불편할 수 있겠다.

윤 대통령은 배신감 속에 과거를 돌아보고, 한 위원장은 같도록 강요하지 않던 그를 반추했을 것이다. 두 사람이 만든 예기치 않은 파열음이 당정 관계와 여권의 4월 총선 구도에 긴장을 형성하고 있다. 거리 두기가 총선 특효약일지, 단일대오가 정답일지 예단하기는 어렵다. 서초동 20년 브로맨스를 뒤로하고 2막의 초입에서 불거진 긴장감이 정책과 민생 실력으로 연결되지 못한다면 국민들이 냉정한 표심으로 ‘검찰 당정’을 평가할 거라는 점은 분명하다.


-장관석 정치부 차장, 동아일보(24-01-26)-

______________

 

 

윤 대통령 하고 싶은 말보다 국민이 듣고 싶은 말 하길

 

윤석열 대통령이 25일 경기 의정부시청 다목적체육관에서 열린 GTX-C 착공기념식에서 기념사를 마친 뒤 인사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 2024.01.25. /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이 부인 김건희 여사의 ‘명품 백 수수 의혹’과 관련한 입장을 직접 밝히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시기는 이르면 이달 중이고 TV 방송사 대담 형식이 유력하다고 한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최종 결정된 것은 아니지만 검토하고 있는 사안”이라고 했다.

 

명품 백 의혹이 불거진 지 벌써 두 달이 돼간다. 그동안 대통령은 이 문제와 관련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대신 ‘국민 눈높이’에 맞는 해명을 요청한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에게 사퇴를 요구했다. 이 문제가 여당 대표에게 사퇴를 요구할 사안인지 국민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윤 대통령이 국민에게 설명을 한다면 문제를 해소하는 자리가 돼야 한다. 설명하기 전보다 더 답답해지고 더 궁금해진다면 하지 않느니만 못하다. 무엇보다 대통령이 하고 싶은 말보다 국민이 듣고 싶은 말을 해야 한다. 이번 일은 김 여사가 친북 목사의 몰래 카메라 함정에 당한 것이 분명하다. 상식 있는 사람이면 함정을 파고 몰카 행각을 한 목사의 행태를 비판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김 여사의 문제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김 여사는 이런 친북 목사를 어떻게, 왜 만났는지부터 납득할 수 없다. 이 목사가 운영하는 인터넷 매체는 윤석열 정부를 ‘괴뢰 역도’라며 타도를 주장했다. 북한을 ‘우리’라고 지칭하고 북핵도 정당하다고 했다. 인터넷만 확인해도 금방 알 수 있는 이런 사람을 윤 대통령의 부인이 어떻게 만날 수 있나. 김 여사는 이런 사람을 대통령 취임식 만찬장에 초대해 대기업 총수는 물론 대통령과 사진을 찍게 했다. 부친과 친분이 있다고 주장하면 아무나 이렇게 대우하나. 대통령실의 경호와 일 처리는 어떻길래 이런 일이 벌어지나. 다른 사람도 아닌 대통령 부인이 명품 백을 그렇게 쉽게 받을 수 있나. 그 백은 왜 돌려주지 않았으며, 지금 어디에 있나. 이런 의문은 상식적인 것이다. 윤 대통령이 이 문제들에 대해 진솔하게 설명하고 사과한다면 국민의 의문은 상당 부분 풀릴 것이다.

 

윤 대통령은 재발 방지 대책도 함께 제시할 필요가 있다. 부인 관련 업무를 전담할 제2부속실 설치와 특별감찰관 임명에 대해 더 적극적이고 실질적인 입장 표명이 있어야 국민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이 문제가 불거진 초기에 즉각 대통령이 해명하고 사과했으면 이렇게까지 번질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그때나 지금이나 설명은 할 수 있어도 사과는 하기 어렵다는 생각이라고 한다. 누구도 다른 사람에게 사과를 강요할 수는 없다. 하지만 안보 경제 위기 상황에서 부인 문제로 집권당 대표와 갈등을 빚고, 민생토론회에 불참했다. 임기가 3년 넘게 남은 대통령이 스스로 리더십에 상처를 내 국민이 국정 차질이 빚어질까 걱정했다. 대통령에게 국정이 우선인지 부인이 우선인지 국민이 궁금해 한다. 이런 상황이 빚어진 것만으로도 사과할 일이다. 친윤 정치인들은 선거를 앞두고 대통령이 사과하면 야당이 물어뜯을 것”이라고 한다. 그런 주장의 근거도 의문이지만 사과하지 않고 선거를 치르면 어떻게 될 것 같은지도 묻지 않을 수 없다.

 

-조선일보(24-01-26)-

_______________

 

 

‘여사 리스크’가 아니라 공천 문제가 핵심이다

 

[박성민의 정치 포커스] 

용산의 일관된 목표는 ‘윤석열당’ 만들기
역대 모든 대통령이 똑같은 생각 가져
윤·한 충돌의 속 깊은 곳엔 공천 주도권
명품 백 문제 해소, 공천 물밑 조율이 타협책
파국이냐 타협이냐, 선택은 윤 대통령 몫

 

윤석열 대통령이 정권 명운을 결정할 중대한 갈림길에 섰다. 어느 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돌이킬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 지난 일요일 국민의힘 이용 의원은 ‘윤 대통령, 한 비대위원장 줄 세우기 공천에 기대·지지 철회’라는 ‘쿠키 뉴스’ 기사를 의원 단톡방에 올렸다. 올린 사람도 올린 내용도 충격이었다.

 

기사에서 인용한 대통령실 관계자는 “윤 대통령은 한 비대위원장에게 보냈던 기대와 지지를 철회하고 비대위원장 거취 문제에 대해서는 당 결정에 맡기겠다고 전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가급적 빠른 시간 안에 이 모든 사태에 책임지는 처신을 보여주기 바란다”는 직설적 표현으로 사퇴를 종용했다.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초현실적 상황이었다.

 

‘채널 A’와 SBS 후속 보도를 통해 한동훈 비대위원장에게 사퇴를 종용한 인사가 이관섭 대통령 비서실장임이 밝혀졌다. 상황은 걷잡을 수 없는 눈사태가 되고 있었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국민 보고 나선 길, 할 일을 하겠다”며 사퇴 요구를 일축했다.

 

사태가 일파만파로 커지자 대통령실은 “비대위원장 거취 문제는 용산이 관여할 일이 아니다”라며 사퇴 요구 보도를 부인했지만 한 비대위원장은 “제가 사퇴 요구를 거절했다”며 이관섭 실장의 사퇴 요구를 공개적으로 확인해 줬다. “당은 당의 일을 하는 것이고, 정은 정의 일을 하는 것이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는 것”이라며 대통령실의 당무 개입에 대해 경고하는 듯한 발언도 했다.

 

사태의 발단이 된 ‘김건희 여사 리스크’에 대한 질문에도 “제 입장은 처음부터 한 번도 변한 적이 없다”며 물러설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저는 선민후사(先民後私)하겠다”는 말로 윤심보다 민심을 따르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한 비대위원장이 공세적으로 나오자 확전에 부담을 느낀 대통령실이 서둘러 봉합했다. 예견된 결과였다. 한동훈 비대위원장 사퇴는 총선 패배를 의미하므로 애당초 불가능한 시나리오였다.

 

이 사태의 최대 패자는 윤석열 대통령이다. 윤 대통령은 ①민심 ②여론 ③당 신뢰를 모두 잃었다. 정치 싸움의 승패는 명분·타이밍·세력이 결정하는데 지금은 모든 조건이 최악이었다. 싸움에서 이기려면 ①누구와 싸우느냐 ②왜 싸우느냐 ③언제 싸우느냐 ④어디서 싸우느냐에 대한 전략적 판단이 중요한데 준비 없이 나섰다가 패배를 자초했다.

 

베트남 전쟁 영웅 보응우옌잡은 ‘3불 전략’으로 프랑스·미국과 싸워 이겼다. 전략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준 ‘3불 전략’은 ①적이 원하는 시간에 싸우지 말고(회피 전략) ②적이 유리한 장소에서 싸우지 말고(우회 전략) ③적이 예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싸운다(혁파 전략)는 세 가지다. 그런 점에서 대통령실은 ①총선이 임박한 시점에 ②공천 이슈로 ③늘 하던 방법으로 비대위원장을 사퇴시키려고 했으니 이길 수가 없었다.

 

사태의 발단은 겉으로는 김경율 비대위원의 ‘김건희 리스크’ 발언이다. 김 위원은 지난 8일 “3·4선 의원도 알고 있고, 대통령실도 알고 있고, 전직 장관(한동훈 비대위원장)도 알고 있음에도 여섯 글자(김건희 리스크)를 지금 말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여당 지도부 인사로는 처음으로 ‘언터처블’ 이슈를 건드렸다. 한동훈 위원장도 “기본적으로는 ‘함정 몰카’이고 처음부터 계획된 것이 맞지만 전후 과정에서 분명히 아쉬운 점이 있고 국민들께서 걱정하실 만한 부분이 있다”고 호응했다.

 

역사학자 E·H. 카는 “필연은 우연의 옷을 입고 나타난다”는 날카로운 통찰을 남겼는데, 여당의 본질적 갈등은 ‘김건희 리스크’가 아니라 ‘공천’이다. 윤석열 대통령 임기 2년도 안 됐는데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벌써 세 번째 비대위원장이다. 그 사이 전당대회에서 뽑힌 이준석·김기현 당 대표가 쫓겨났다. 누가 봐도 비정상이다. 이준석 대표를 쫓아내고, 전당대회에서 ‘김·장 연대’로 김기현 대표를 앉히고, 다시 한동훈 비대위원장을 앉힌 주류의 일관된 목표는 ‘윤석열당’이다.

 

모든 대통령이 (예외 없이) 똑같은 목표를 가졌기 때문에 그건만으로 뭐라 할 수는 없다. 윤석열 대통령이 그 목표에 집착할수록 목표에서 멀어졌다는 게 문제다. 윤석열 대통령을 만들어준 이준석·안철수와의 ‘선거 연합’ 해체로 중도와 2030의 지지를 잃은 것은 자기가 앉은 의자 다리를 스스로 자른 격이지만, 권성동·장제원·김기현에 이어 한동훈 비대위원장마저 내치려고 한 것은 아예 팔다리를 자르려고 한 격이다.

 

정치 분석은 의도·의지·역량·실행·결과·파장을 동시에 읽어야 한다. 이준석 대표를 내쫓을 때는 윤석열 대통령 의도대로 실행해서 원하는 결과는 얻었지만, (선거 연합 해체로) 지지율 급락이라는 파장으로 위기를 자초했다. 김기현 대표를 사퇴시키고 한동훈 비대위원장을 앉히는 과정에서는 (미래 권력의 조기 등판으로) ‘조기 레임덕’이라는 파장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 지금은 의도와 의지가 있더라도 실행할 힘이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운 상황이다.

 

예상되는 세 가지 시나리오가 있다. ①한동훈 위원장의 정치적 패배 ②한동훈 위원장의 정치적 승리 ③적당한 타협. ①은 한동훈 위원장이 사퇴하거나 김경율 비대위원이 사퇴하는 것인데 만약 그렇게 되면 총선 전망은 어두워질 것이다. ②는 명분·타이밍·세력에서 승기를 잡은 한동훈 위원장이 ‘한동훈당’으로 만드는 것인데, 이 경우 총선 전망은 조금 밝아지겠지만 신구 권력의 충돌을 피할 수 없다. ③은 특수한 신뢰 관계로 알려진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위원장이 파국을 막기 위해 타협하는 것으로, ‘김건희 리스크’는 대통령실에서 부담을 덜어주고 공천은 물 밑에서 조율하는 것이다. 한동훈 위원장 효과를 극대화하면서 총선 전망이 밝아지는 시나리오다. 현 시점에서 가능성은 ①20% ②40% ③40% 정도로 보인다. 선택은 윤석열 대통령 몫이다.

 

-박성민 정치콘설턴트, 조선일보(24-01-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