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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는 왜 '24조원어치 잭팟'을 축하하지 않나] ....

뚝섬 2024. 11. 9. 09:39

[좌파는 왜 '24조원어치 잭팟'을 축하하지 않나 ]

[10년 공들인 체코 원전 ‘판 깨자’는 野 의원들 제정신일까 ]

[탈원전 야당들 이젠 원전 수출 훼방, 정쟁에도 정도가 있어야] 

[물구나무 서서 세상을 보는 사람들]

 

 

 

좌파는 왜 '24조원어치 잭팟'을 축하하지 않나


체코 원전 수주에 절망한 좌파 본색
 

 

“원전 계약 파토 났네요ㅋㅋㅋㅋ.” 2024년 10월 30일 밤 10시 56분, 좌파 사이트 ‘클리앙’에 글 하나가 올라왔다. 제목은 ‘[속보] 체코 반독점 당국, 원전 계약 일시 중단 조치’. 공감 44개를 얻어 짧은 시간 내에 ‘최다 추천글’ 리스트의 한 자리를 차지한 이 글에는 댓글이 수십 개 달렸는데, 글쓴이가 그런 것처럼 다들 좋아 죽겠는 표정이 느껴진다. ‘XX도 이런 XX이 없습니다. 면전에서 능욕당하고ㅋㅋㅋ’ ‘될 리 없었어요 멍청한 게ㅋㅋ’ ‘다행이네요. 수주해도 국가적으로 손해잖어요.’ ‘이제 많이 참았습니다. 끌어내리자고요.’

 

원전 계약이 무산된 것도 사실이 아니지만, 설령 사실이라 해도 그게 이렇게 축배를 들 일인지 모르겠다. 문제는 이게 인터넷에 서식하는, 일부 정신 나간 좌파들만의 반응이 아니라는 점. 잠시 두 달 반 전 있었던 일을 떠올려 보자. 7월 17일 밤 8시 49분, KBS는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체코에서 신규 원전 2기를 건설할 우선 협상자로 선정됐다고 보도한다. 2009년 UAE의 바라카 원전 수주 이후 15년 만의 경사로, 팀 코리아가 원전 강국인 프랑스전력공사(EDF)를 유럽 무대에서 꺾은 것이다. 금액으로 따지면 24조원어치, 이 정도면 문재인 정권의 탈원전으로 고사 위기에 몰렸던 한국 원전이 다시 날아오르기에 충분하다.

 

보수 지지층은 기본적으로 대한민국이 잘되기를 바라는 이들, 그래서 보수는 좌파 정부 집권기에도 국가적으로 좋은 일이 있으면 같이 기뻐해 줬다. 훗날 사기극으로 드러난 2018년 판문점 회담 당시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84.1%를 기록한 것은 문 정권의 대북 화해 정책에 보수층이 화답한 결과였다. 그 와중에 보수층은 다음과 같은 착각을 하게 됐다. 보수와 좌파는 그 방법에선 차이가 있을지언정, 대한민국을 잘되게 만들자는 데 이견이 없는 이들이라고. 이 명제가 성립하려면 이번 원전 수주에 대해 좌우가 한마음으로 축하해 주는 게 맞다. 물론 좌파 입장에선 탈원전의 원죄 때문에 좀 머쓱하긴 하겠지만, 그 문재인조차 2018년 체코를 방문해 원전 세일즈를 한 바 있으니, 그의 꿈을 대신 이뤄준 윤 정부의 쾌거에 같이 기뻐해 주는 게 도리가 아니겠는가? 

 

윤석열 대통령과 페트르 피알라 체코 총리가 지난 9월 20일 체코 플젠 산업단지에서 발전용 터빈 원천기술을 보유한 기업 두산스코다파워 공장을 방문했다. 윤 대통령과 피알라 총리는 이날 터빈에 장착되는 블레이드(회전날개)에 공동으로 서명했는데, 대통령실은 "양국이 원전을 함께 짓고, 기업 간 협력을 지원한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명색이 공영방송인 MBC는 수주 소식이 알려진 첫날엔 그 흔한 속보조차 내지 않았고, 그 다음 날에도 폭우와 채 상병 사건 등으로 뉴스 앞부분을 채우더니 무려 15번째 꼭지로 수주를 따냈다는 보도를 내보냈다. 자사 뉴스를 봐줄 좌파 시청자들이 속상해할까 봐 “한수원이 덤핑에 가까운 거절할 수 없는 가격을 제안했다”는 악의적인 멘트를 넣는 것도 역시 MBC다웠다. JTBC도 다음 날 23번째 꼭지로 원전 소식을 전한 걸 보면, 좌파들에게만 적용되는 무슨 보도 지침 같은 게 있는 모양이다. 이 밖에도 민노총 언론노조의 기관지인 미디어오늘은 ‘전국적 폭우인데 재난 주관 KBS 뉴스만 ‘K원전’ 앞세웠다’며 KBS를 비판했고, 오마이뉴스는 ‘체코 원전 수주 가시화에 신난 여당’이라는 기사 제목을 뽑았다.

 

아니, 국가적 경사인데 같이 좀 기뻐하면 안 되는 걸까? 민주당의 반응은 더 가관이었다. 뉴스 초기에는 아예 논평을 내놓지 않더니, 이틀 뒤 노종면 원내 대변인을 내세워 다음과 같은 코멘트를 하게 했다. “최종 계약이 아닌데도 대통령실이 생중계 발표까지 하는 모습에서 ‘깡통 논란’을 촉발한 윤 대통령의 동해 유전 발표 장면이 떠오른다” “경제 효과나 사업성이 얼마나 될지 특정할 수 없는데도 잭팟이니 쾌거니 국가적 경사니 떠드는 모습에서 대국민 사기로 들통난 MB 자원 외교가 떠오른다.” “대통령 부부를 둘러싼 의혹들을 속이 뻔히 보이는 치적 기사들로 가릴 수 없다. 미리미리 대통령 부부의 특검 수사에 대비하는 편이 낫다.” 이것이 의원 개인이 아닌, 무려 제1야당 원내 대변인의 말이라니, 절망감이 든다.

 

원전 수주로 절망하던 좌파들은 물어뜯을 구석을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첫 번째 딴지는 덤핑 의혹, 우리나라가 프랑스의 절반 가격으로 입찰했다는 거다. 하지만 이건 우리나라 원전 기술이 그만큼 뛰어난 결과였다. 세계원자력협회(WNA)에 따르면 2021년 기준 한국형 원전의 건설 단가는 1kW당 3571달러로, 프랑스(7931달러)의 절반도 안 된다. 게다가 UAE 바라카 원전에서 보듯 예정된 공기를 맞추는 것도 우리 특기고, 안전성 면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체코 총리가 괜히 “한국이 모든 평가 기준에서 더 우수했다”고 한 게 아니다. 두 번째 딴지는 금융 지원. 김정호 민주당 의원은 국정감사에서 우리나라가 체코 원전 건설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하기로 약속했다는 내용이 입찰 당시 제출한 투자의향서에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산자부 안덕근 장관은 이건 관행적인 문구라고 반박했고, 이를 뒷받침하는 보도자료까지 배포한다. 이쯤 되면 미안하다고 하는 게 도리건만, 좌파에게 사과란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민주당 김한규는 “당신들만 애국자입니까? 사업의 적절성을 따지는 저희들은 다 매국노입니까?”라고 SNS에 울분을 터뜨리는, 적반하장의 극치를 보여줬다.

 

체코 두코바니 원전 /한국수력원자력

 

이런저런 공격이 다 무위로 돌아가자 의기소침한 좌파들이 기댈 곳은 딱 하나밖에 없었다. 이번 입찰에서 탈락한 프랑스 EDF와 ‘한국 기술이 원래 우리 거였다’는 망상에 빠져 있는 미국 웨스팅하우스. 실제로 이 둘은 사이 좋게 손을 잡고 체코 반독점사무소에 이의 제기를 한 상태였다. 한수원을 우선 협상 대상자로 선정한 게 공공 조달의 원칙을 어겼다는 것, 위에서 말한 ‘원전 계약 일시 중단 조치’는 그 결과물이다. 하지만 이건 체코 당국이 ‘탈락한 애들이 서러워하니 듣는 척이라도 해주겠다’며 달래주는 절차일 뿐, 실제 계약에는 아무런 영향도 못 미치는 일이었다. 어차피 정식 계약은 내년 3월이고, 한수원과 계약을 안 하면 더 큰 손해를 보는 건 체코였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던 좌파들은 이 뉴스에 들뜬 나머지 밤새 자기들만의 축제를 벌였다.

 

그 축제의 시간은 너무도 짧았다. 10월 31일 밤, 체코 반독점사무소가 프랑스와 미국 기업의 이의 제기를 기각해 버렸으니까. 클리앙 등 좌파 사이트들은 원전에 관심을 끊고 다시 ‘대통령 부부를 구속하라’고 외치는 중이다. 손자병법에는 ‘知彼知己 百戰不殆’란 말이 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뜻. 이제 보수도 좌파의 실체에 대해 제대로 공부하자. 힘겹게 선진국에 진입한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서.

 

-서민 단국대 기생충학과 교수, 조선일보(24-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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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공들인 체코 원전 ‘판 깨자’는 野 의원들 제정신일까

 

[천광암 칼럼]

한수원 가격경쟁력-적기시공실적
막판 경쟁상대 프랑스 EDF 압도
野 의원들 밑도 끝도 없이 “韓 덤핑” 자해
마음속에 ‘국적’ ‘국익’ 있나
 

 

“체코 정부가 향후 원전 건설을 추진하기로 결정할 경우 우수한 기술력과 운영·관리 경험을 보유한 한국 기업이 참여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달라.”

 

2018년 11월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원전 세일즈차’ 체코를 방문해 안드레이 바비시 체코 총리에게 한 말이다. ‘탈원전 선언’으로 국내 원전산업 생태계를 쑥대밭으로 만든 문 대통령의 ‘원전 세일즈’에 얼마나 진심이 담겼겠으며, 또 상대국에 얼마나 설득력이 있겠느냐는 등의 비판이 쏟아졌다. 뭐 하나 틀린 지적이 아니었다.

다만 일부에서는 ‘원전 건설이 확정되지도 않은 나라에 가서 무슨 원전 세일즈냐’는 비판도 있었는데, 이것만큼은 ‘원전 수주전(戰)’의 세계를 잘 몰라서 나온 소리다. 국가의 안위와 직결된 에너지 안보의 영역이자 1기당 10조 원이 넘는 건설비용이 드는 원전은 기술과 가격 경쟁력이 있다고 해서 수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공식 계획이 확정되기 전부터 해당국 정부는 물론이고 국회, 산업계와 학계 등을 대상으로 오랫동안 공을 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체코 원전만 하더라도 이미 10년 전 박근혜 정권 때부터 우리 업체들이 입찰 참여 의사를 체코 정부에 공식 표명하고 꾸준한 수주 활동을 해왔다.

 

그런데도 사실 4년쯤 전까진 한국의 체코 원전 수주 가능성은 ‘0’에 가까웠다. 이미 체코가 운영 중인 원전 6기 모두를 건설한 실적이 있고, 압도적 세계 1위 경쟁력을 가진 러시아 국영 원자력기업 로사톰의 수주가 거의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졌다.

 

한국에 갑작스러운 ‘천운’이 찾아든 것은 2021년 4월. 과거 체코에서 발생한 탄약고 폭발 사고의 배후에 러시아 정부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양국 관계가 사상 최악의 상태에 빠져들었고, 마침내 체코 정부는 러시아 로사톰을 퇴출시켜 버렸다.

이로써 수주전은 한국수력원자력, 프랑스전력공사(EDF), 미국 웨스팅하우스 간 3파전이 됐다. 하지만 웨스팅하우스는 2017년 파산 이후 지식재산권을 무기로 ‘삥’이나 뜯는 존재로 전락했고, EDF는 방만한 경영 탓에 기술·가격 경쟁력 없이 덩치만 큰 공룡으로 추락한 상태였다. ‘프랑스의 정치력’이란 변수 하나만 빼면 승부가 이때 이미 결정됐다고 할 수 있다.

새삼스럽게 체코 원전 수주전의 경과를 되짚어본 것은, 이 과정을 모르면 최근 더불어민주당 등 일부 야당 의원들의 ‘무리한 체코 원전 수출 전면 재검토’ 주장에 현혹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판을 엎자’고 주장하는 핵심 논거는 ‘덤핑 입찰’과 ‘공사비 증가 가능성’이다.

먼저 이들은 “체코 언론들은 윤석열 정부가 ‘덤핑 가격을 제시했다’고 지적했다”고 주장한다. 국익이 걸린 수주전에서 우리 기업들의 발목을 잡는 주장을 펴려면 어느 언론사의 어떤 기사를 가리키는 것인지, 그 기사를 믿는 근거는 무엇인지 분명히 밝혀야 할 텐데, 밑도 끝도 없는 외마디 주장뿐이다. 행여라도 경제 포털인 ‘에코노미츠키 데니크’의 올해 5월 16일자 58행짜리 장문의 기사에서 딱 두 문장 언급된 “정통한 소식통은 한수원의 가능성을 더 높게 보고 있다. 덤핑에 가까운 가격으로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했다고 한다”를 침소봉대한 것은 아니기를 바란다.

또 의원들은 공기가 예정보다 길어지고 공사비가 늘어날 것이라는 주요 근거로 영국 힝클리 원전과 핀란드 올킬루오토 원전의 사례를 들었는데, 황당할 따름이다. 힝클리 원전은 프랑스 EDF의 대표적 실패 사례 중 하나고, 올킬루오토 원전은 EDF에 원자로를 납품하던 회사가 떨어져 나와 공사를 맡았다가 회사를 통째로 말아먹고 다시 EDF에 흡수 통합된 사연이 있는 프로젝트다.

EDF가 탈락한 가장 큰 이유는 형편없는 가격 경쟁력과 함께 이들 프로젝트의 실패로 ‘시공능력’에 의문부호가 찍혔기 때문이다. 반대로 한수원이 선택된 가장 큰 이유가 ‘예정된 공기(工期) 안에 주어진 공사비’로 시공을 해온 그간의 ‘검증된 능력’ 덕분이다. 경쟁력이 한참 떨어지는 EDF의 실패를 한수원이 답습할 것이라고 보는 근거가 대체 뭔가.

한수원은 아직 체코 원전의 ‘우선협상 대상자’다. 내년 3월로 예상되는 최종 계약까지 갈 길이 멀다. 넘어야 할 고비도 많다. 웨스팅하우스는 계속 몽니를 부리고 있고, EDF도 끊임없이 시비를 거는 중이다. 10년 동안 노심초사하며 갖은 공을 들여온 우리 기업들의 인수전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아예 판을 깨자’는 의원들의 마음속에도 국적이나 국익이라는 게 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천광암 논설주간, 동아일보(24-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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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원전 야당들 이젠 원전 수출 훼방, 정쟁에도 정도가 있어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김정호 의원 등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 의원들이 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무리한 체코 원전 수출을 재검토하라며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뉴스1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 의원들이 체코 원전 수출과 관련해 “윤석열 대통령의 체코 방문은 ‘24조원 잭폿’이라던 원전 수출이 미국의 문제 제기로 어려워지자 부랴부랴 만든 일정”이라며 “이대로 가면 수조원대 손실이 발생해 국민 혈세를 쏟아부어야 할지 모른다”고 했다. 이 주장은 한마디로 아무 근거가 없다.

 

한국수력원자력이 지난 7월 우선 협상 대상자로 선정된 체코 원전은 1000메가와트급 최대 4기를 짓는 24조원 규모 사업으로 2009년 UAE 원전 수출 이후 15년 만의 쾌거다. UAE(20조원)보다 크고 유럽 시장 강자인 프랑스를 제쳤다. 체코는 중동 사막에서도 한 치 오차나 지연 없이 원전을 건설·운용한 우리 기술·시공 능력을 인정했다. 체코 대통령은 윤 대통령에게 추가 원전 사업과 유럽 시장 공동 진출도 희망했다.

 

덤핑 수출이란 주장 역시 사실과 거리가 멀다. 우리가 프랑스보다 낮은 건설비를 제시했지만 이는 우리 원전 건설 단가(㎾당 3571달러)가 프랑스(7931달러)의 45%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가격 경쟁력이 높은 것을 ‘덤핑’이라고 하는 것은 왜곡이다. 또 건설비 못지않게 비중이 큰 유지·운영에서도 우리 경쟁력이 높아 상당한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이것이 원전 사업의 세계다. 앞으로 체코에서 원전 사업을 추가로 따낼 수도 있다. 이걸 덤핑이라는 것은 원전 산업에 대한 무지일 뿐이다.

 

이번에 탈락한 웨스팅하우스가 원천기술 문제로 이의를 제기하지만 이는 결국 돈을 더 달라는 요구로, 종내 해소될 것이다. 이 회사 최대 주주는 캐나다 사모펀드로 미국 정부와 관련된 것도 아니다. 이를 대미 외교 마찰로 연결하는 것은 억지 논리다.

 

민주당 정권의 탈원전 자체가 엉터리 논리에 기반한 것이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원전 사고를 다룬 공상 영화를 보고 “울었다”고 했고, 비전문가를 앞세워 탈원전을 밀어붙였다. 탈원전 선언문조차 기본 사실관계가 틀린 엉터리였다. 멀쩡한 원전을 없애려고 경제성까지 조작했다. 그랬던 사람들이 이제는 원전 수출 쾌거를 훼방 놓으려 한다. 아무리 정쟁이라고 해도 정도가 있어야 한다.

 

지금 세계 각국이 경쟁적으로 원전 건설에 나서면서 ‘원전 르네상스’가 펼쳐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 원전에 대한 제재와 중국 업체 배제 기류로 우리 원전 경쟁력은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이 기회를 살려야 한다.

 

-조선일보(24-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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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구나무 서서 세상을 보는 사람들

 

[한삼희의 환경칼럼]

佛 따돌린 체코 원전 수주… 50년간 32기 연속해 지은 '반복 건설'의 승리
'덤핑' 주장은 봐야 할 부분 안 보고 보고 싶은 것만 보겠다는 것
 

 

체코 신규원전 예정부지 두코바니 전경.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한국수력원자력이 프랑스를 따돌리고 체코 원전 프로젝트의 우선 협상 대상자로 선정되자 일각에서 “덤핑으로 따냈다”는 말이 나왔다. 한수원은 확실히 프랑스 전력공사(EDF)보다 낮은 건설비를 제시했을 것이다. 세계원자력협회 자료를 보면 한국의 원전 건설 단가(㎾당 3571달러)는 프랑스(7931달러)의 45%밖에 안 됐다. 이런 가격 경쟁력으로 입찰 경쟁에서 이겼을 것이다. 이걸 덤핑이라고 하는 것은 물구나무 선 채로 보면서 세상이 뒤집혀 있다고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왜 저가의 출혈 입찰로 국민과 기업에 손해를 끼쳤냐고 비난하고 싶은 것이다.

 

한국은 지난 50여 년간 아랍에미리트 4기를 포함해 원전을 32기 지었고 4기는 짓고 있다. 1년 내지 1년 반에 한 기씩 꾸준히 원전을 건설하면서, 부품·설비를 조달하고 기술 인력을 키워내는 생태계를 유지해 왔다. 원자력 산업은 품질관리가 엄격하다. 특히 원자로 내 ‘1차 구역(nuclear island)’ 부품은 극심한 방사선과 고열·고압의 가혹한 환경을 견딜 수 있다는 보증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밸브 하나라도 1차 구역에 납품하려면 어느 용광로에서 언제 나온 쇳물로 제작한 것인지부터 기록해 관리에 들어간다. 샘플 밸브로 성능 시험을 통과한 경우에만 그 샘플과 같은 쇳물의 밸브들이 납품 자격을 얻는다. 각 부품을 누가 언제 어떻게 설치했는지에 관한 설치 족보도 만들어 추적이 가능케 해야 한다. 외국 자료를 보면 구조강 비용의 41%, 콘크리트 비용의 23%가 이런 품질보증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더구나 원전 부품은 대개 다품종 소량 생산이다. 지속 발주가 이뤄지지 않으면 부품 몇 개 팔려고 극도로 까다로운 품질관리를 견뎌내는 기업이 별로 없을 것이다. 10년, 20년 만에 한 번씩 원전을 건설한다면 부품을 만들어 팔겠다는 업체가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다. 쌓아놓은 경험도 소진되고 말 것이다. 보증된 부품 공급 못지않게 정밀한 공정관리 능력도 중요하다. 공정 간 간섭을 최대한 줄여 여러 작업을 겹쳐 시행해야 건설비를 줄일 수 있다. 이런 노하우도 건설 사이클이 꾸준하게 돌아갈 때 쌓이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은 그런 인적, 시스템적, 제도적 지식의 축적을 쓰레기통에 갖다 버리겠다고 한 것이다.

 

생태계가 취약한 상황에서 무리하게 원전을 건설하는 것은 기업의 무덤을 파는 일이다. 체코에서 우리와 수주 경쟁을 벌인 프랑스는 최근 20여 년 사이 핀란드에서 1기(올킬루오토 원전)를 건설했고 자국 내 1기(플라망빌)를 짓고 있지만 둘 다 참혹할 정도의 공기 지연과 경비 증가를 겪었다. 한국의 바라카 원전은 기당 평균 8년이 걸렸는데 올킬루오토 원전은 건설에 17년이나 걸렸다. 경험이 부족한 하청 기업들이 콘크리트 배합 등에서 실책을 거듭했다. 37억유로로 목표했던 건설비는 110억유로(약 16조원)로 뛰었다. 건설을 맡은 원전 기업 아레바는 신용 등급 강등을 거쳐 원전 사업 부문을 EDF로 넘겨야 했다. 역시 체코 원전 사업에 응찰했던 미국 웨스팅하우스는 30년간 신규 원전 수주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2009년 원전 네 기 건설을 시도했다가 두 기는 포기했고 두 기를 예정보다 7년 늦은 올해 겨우 완공했다. 두 기의 공사비는 원래 140억달러(약 19조원)로 예정했는데 최종 평가액은 340억달러(약 47조원)였다. 웨스팅하우스는 2017년 파산 신청을 거쳐 2018년 캐나다 자산 운용사로 넘어갔다.

 

프랑스 원전(EPR)은 2중 격납 구조, 미국 원전(AP1000)은 피동 안전 설계를 처음 적용한 이른바 초(初)호기였다. 반면 한국의 APR1400은 국내외에서 8기 건설을 완료했고 4기를 건설 중인 N차 호기이다. 입증된 설계로 여러 호기를 건설하기 때문에 반복 건설을 통해 설계와 공정이 매번 개선되고, 시행착오가 줄고, 부품·설비와 건설 과정의 표준화가 가능하고, 기자재를 싸게 조달하고, 재고 관리가 용이하고, 경험·지식 축적으로 공기가 단축되고, 설계·인허가 비용 부담을 여러 연속 호기가 질 수 있고, 자본 조달 비용은 낮출 수 있다.

 

원전의 안전도 최신 설비를 겹겹이 갖다 붙여 매번 새 노형을 다시 설계하기보다, 표준 노형을 누가 더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효율적으로 건설하고 운전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바로 이런 부분에서 한국 원전을 배워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항공 여행 안전이 개선된 것은 비행기 설계가 개선된 점도 있겠지만 항공사들이 승무원들을 끊임없이 훈련시키고, 안전 문화를 정착시키고, 항공 당국도 항공 통제사들을 철저히 교육한 덕분이 크다고 한다. 물구나무 서서 세상을 보는 사람들에겐 이런 관점이 눈에 들어올 리 없다.

 

-한삼희 환경칼럼니스트, 조선일보(24-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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