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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리더의 마지막 실패] [대통령 주변에 왜 배신자와 적 생기나]

뚝섬 2024. 11. 9. 08:48

[성공한 리더의 마지막 실패 ]

[대통령 주변에 왜 배신자와 적이 생기나]

['김 여사 특검법' 무한 반복의 끝은 뭔가]

 

 

 

성공한 리더의 마지막 실패

 

[박상준 칼럼]

평사원의 전설이었던 日 세븐일레븐 회장
말년에 후계자 제대로 못 세워 쓸쓸한 퇴장
바이든 너무 늦게 사퇴해 민주당 대선 참패
좋은 후계자 키우는 것이 마지막 성공 조건

 

2016년 4월 7일 오후, 200여 명의 기자가 몰린 회견장에서 세븐일레븐의 지주사 ‘세븐앤드아이홀딩스’의 스즈키 도시후미 회장이 사퇴를 표명했다. 그날 오전 스즈키는 세븐일레븐 사장인 이사카 류이치의 해임안을 이사회에 냈는데, 그 해임안이 부결되자 사퇴를 결심한 것이다.

1932년생인 스즈키는 31세에 슈퍼마켓 사업을 하는 이토요카도에 입사했고, 1970년대 초에 미국 편의점 세븐일레븐을 일본에 들여왔다. 1974년 도쿄에 세븐일레븐 1호점을 열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추진력 덕분이었다. 편의점에서 24시간 영업을 시작한 것도 그의 아이디어다.

실력을 인정받은 그는 1978년에 세븐일레븐 사장이 되었고, 1991년에는 세븐일레븐의 모기업을 인수해서 세븐일레븐을 완전한 일본 회사로 만들었다. 73세가 되던 2005년, 이토요카도와 세븐일레븐 지주사의 회장에 취임했다. 직원들은 그가 주재하는 회의를 어전회의라 불렀고, 창업주 일가는 존재감마저 희미해졌다.

 

2016년 84세의 스즈키 회장은 별안간 당시 세븐일레븐 사장이던 이사카를 해임하겠다고 밝혀 세상을 놀라게 했다. 스즈키가 이사카의 후임으로 지명한 사람은 따로 있었지만, 시장은 스즈키 회장이 자신의 아들을 후계자로 세우려는 포석이 아닌가 의심했다.

시장은 스즈키의 결정을 환영하지 않았고, 특히 외국인 기관투자가들이 격렬히 반발했다. 실력이 검증되지 않은 사람을 후계로 삼으면 기업 가치가 떨어질 거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당시 일본은 2014년에 제정된 스튜어드십 코드, 2015년에 제정된 거버넌스 코드 때문에 사외이사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던 때였다.

이사카 해임안은 부결되었고, 어전회의에서 망신당한 스즈키는 은퇴를 선언했다. 평사원에서 출발해서 일본 최대 소매그룹의 수장이 되었던 이 전설의 경영인은 화려한 경력의 마지막 순간에 실패자가 되었다. 후계자를 키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소니를 부활시킨 영웅으로 기억되는 히라이 가즈오처럼 자신보다 더 나은 후임을 찾으려 노력하고 적절한 시기에 자기 자리에서 내려왔다면 사람들은 스즈키를 실패자로 기억하지 않았을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이번 미국 대선을 보며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서 같은 연민을 느낀다. 스즈키 회장보다 10년 뒤에 태어난 그는 41세에 미국 상원의원이 되었고, 67세에 부통령, 79세에 대통령이 되었다. 연임에 도전했을 때는 82세의 고령이었다. 그가 좀 더 빠르게 연임을 포기했더라면 미국 민주당은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대통령 후보를 고를 수 있었을 것이다. 그 결과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후보가 되었다고 해도, 대선을 위해 더 많은 준비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그의 후계자가 선거를 준비할 시간이 별로 남아 있지 않을 때 연임을 포기했다. 그와 그의 참모들이 좀 더 일찍 현실을 직시하고 결단을 내렸다면 선거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지금처럼 초라한 민주당은 아니었을 것이다.

앨 고어가 2000년 대통령 선거에서 낙선했을 때는 아무도 화살을 전임인 빌 클린턴에게 돌리지 않았다. 민주당도 지금처럼 초라해 보이지 않았다. 바이든 재직 시에 미국은 일자리가 늘었고 코로나 충격에서 벗어났다. 양적 완화를 끝내면서 걱정했던 경착륙 문제도 그리 심각하지 않았다. 성공한 리더로 기억될 수도 있었는데 마지막 순간이 실패로 끝났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리더들은 어떨까? 후계자를 키우는 일에 진심일까? 그래 보이지 않는다. 특히 정치 리더들이 그렇다.

윤석열 대통령이 유승민과 이준석을 쳐내는 것을 보며, 저런 식으로 당의 인재를 내치면 당에 손해가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나중에는 나경원이나 김기현 같은 이들마저 모욕하는 것을 보며 경악했다. 무리하게 한동훈을 세웠다가 지금은 그를 끌어내리려 한다. 그들 모두에게 공정한 경쟁의 장을 마련해 주는 것이 리더의 역할 아닌가. 더불어민주당도 마찬가지다. 박용진 전 의원을 끝내 공천에서 배제한 것은 여러 사례 중 하나에 불과하다. 선진국 공당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성공한 리더는 좋은 후계자가 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줌으로써 성공을 완성한다. 그 토양을 파괴하는 리더는 성공의 마지막을 실패로 장식한다. 윤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가 성공한 리더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동아일보(24-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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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주변에 왜 배신자와 적이 생기나

 

한동훈·이원석 이탈, 이준석 적대
'보스 의식·金 여사 노터치'서 비롯
"배신 심판" 박근혜 데자뷔 피하고
2·3·4인자 끌어안아 경쟁시켜야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총장 시절인 지난 2020년 1월 참모진들과 점심을 함께 하기 위해 서울 서초구 대검청사 별관 구내식당으로 걸어가고 있다. 윤 대통령 뒤로 강남일 대검 차장과 한동훈 대검 반부패·강력부장, 이원석 대검 기획조정부장 등이 따르고 있다. /뉴스1

 

윤석열 대통령은 ‘보스 검사’였다. 따르는 특수통 후배 검사들이 넘쳤다. 검찰총장 시절 정권의 탄압을 받을 때 이들이 똘똘 뭉쳐 보위했다. 윤 대통령은 집권하자 이들을 대통령실과 검찰, 정부 요직에 중용했다. 야당은 ‘검사 정권’이라고 했다.

 

2년이 지나면서 윤 사단은 금이 갔다. ‘윤의 분신’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가장 먼저 배신자로 낙인찍혔다. 김건희 여사 명품 가방 문제로 “국민 눈높이”를 거론하고, 김 여사 문자 메시지를 수차례 ‘읽씹’ 했다. 대통령의 격노를 불렀다. 비대위원장에서 쫓겨날 뻔했고 당대표 선거에서도 비토를 받았다. 다음은 이원석 전 검찰총장이었다. 한 대표 못지않은 ‘윤 핵심’이었지만 김 여사 수사에서 다른 목소리를 냈다. 사건을 종결시키지 않고 김 여사 소환 조사를 주장했다. 수사심의위에도 회부했다. “여론 눈치 보며 자기 정치 한다”는 말이 나왔다.

 

하지만 일부 수사 라인 검사들은 이 전 총장 편에 섰다. 친윤이 장악한 여당의 일각도 한 대표를 지지했다. 한때 친윤이나 검사 출신도 있었다. 측근과 우군이 등 돌리는 상황에 윤 대통령은 당혹했을 것이다. 검찰 인사로 급한 불은 껐지만 한 대표 당선은 막지 못했다.

 

사법시험 9수 만에 늦깎이 검사가 된 윤 대통령은 고시생 때부터 후배들을 몰고 다녔다. 검찰에선 부하 검사들과 술자리를 즐겼다. 상명하복의 ‘검사 동일체’는 그의 말을 듣고 따랐다. 아무도 토를 달지 않았다. 이른바 ‘왕초와 똘마니’ 같은 ‘보스 문화’가 일부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정치는 다르다. 일방적으로 지시한다고 무조건 따르지 않는다. 경청하고 토론해도 설득이 쉽지 않다. 대통령은 다양한 목소리를 듣고 이견을 조율하는 ‘용광로’여야 한다. 그런데 정치 입문 10개월여 만에 대선에서 승리했으니 이런 정치권 생리가 낯설 수밖에 없다. 사사건건 부딪히는 이준석 전 대표가 눈엣가시 같았을 것이다. 후보 단일화 때부터 껄끄러웠던 안철수 의원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 전 대표는 밀어냈고 안 의원은 ‘국정의 적’이라 했다. 지시한 대로 못 하거나 딴소리하는 측근들은 질책받았다. 친구였던 김성한 전 국가안보실장도 하루아침에 날아갔다.

 

대통령 주변 배신자 상당수는 김 여사 문제에서 비롯됐다. 한 대표, 이 전 총장이 그 길을 갔다. 김성한 전 실장 낙마도 순방 과정에서 김 여사 일 처리가 원인이었다고 한다. 윤 대통령은 성격이 급해도 사리에 닿으면 귀를 연다. 하지만 김 여사 문제는 예외였다. 이른바 ‘노터치’다. 김 여사 얘기를 잘못 꺼냈다가 ‘대통령의 격노’를 경험한 인사들이 적잖다. 여론이 나빠지고 주변 우려가 깊어져도 대통령은 바뀌지 않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5년 최측근이었던 유승민 전 원내대표가 자신의 정책에 반기를 들자 “배신의 정치를 심판해 달라”고 했다. 1호 배신자였다. 김무성 전 대표가 뒤를 이었다. ‘진박(眞朴)’ 아니면 ‘배신’으로 편 가르는 마이너스 정치의 결과는 여권의 분열과 총선 참패, 대통령 탄핵이었다. 힐러리 클린턴은 2008년 대선 경선 패배가 내부 배신자 탓이라고 여겨 살생부까지 만들었다. 하지만 나중에 보니 본인의 인사와 정책 잘못이 더 컸다고 한다.

 

집안싸움 하고 잘된 정권은 없다. 대통령과 측근·후계자가 갈등을 빚으면 다음 선거는 보나 마나다. 대통령은 내 생각보다 주변 목소리에 더 귀 기울여야 하는 자리다. 2·3·4인자를 끌어안는 동시에 경쟁시켜야 대통령이 빛난다. 이들을 적대시하고 쓴소리에 화를 내면 주변에 배신자와 적이 생기게 된다. “배신의 정치 심판”을 외치다 되레 분열과 역풍을 자초했던 박 전 대통령의 데자뷔가 어른거리도록 해선 안 된다.

 

-배성규 논설위원, 조선일보(24-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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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여사 특검법' 무한 반복의 끝은 뭔가 

 

4일 국회 본회의에서 '김건희 여사 특검법', '채상병 특검법', '지역화폐법 개정안'에 대한 개표 결과가 우원식 국회의장에게 전달되고 있다. /연합뉴스

 

‘김건희 여사 특검법’이 4일 국회 재의결에서 다시 부결됐다. 민주당이 강행 처리한 김 여사 특검법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이후 국회 재투표에서 부결된 것은 두 번째다. 민주당은 이날 김 여사 특검법을 다시 추진하겠다고 했다. 특검법 강행, 거부권, 재투표의 정쟁 악순환이 무한 반복되고 있다.

 

국민의힘 김재섭 의원은 이날 “특검법안 자체에 대한 위헌성 때문에 양심상 거부했지만 김 여사 문제는 심각하다”고 했다. 지금 김 여사는 기존의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사건과 코바나컨텐츠 전시회 기업 후원, 명품 백 수수 외에도 인사·공천 개입 의혹을 받고 있다. 지난 총선을 앞두고 공천과 관련해 김 여사와 주변 인물이 주고받은 메시지와 녹취록 등이 공개되고 있다. 이날 국회 재표결에서 김 여사와 해병대원 특검법은 찬성 194표, 반대 104표, 기권 1표, 무효 1표로 부결됐다. 108석인 국민의힘이 부결을 당론으로 정했지만 반대가 104표에 그친 만큼 적어도 4명의 이탈표가 나온 것으로 풀이된다. 8명이 이탈하면 김 여사 특검법은 국회 재의결 문턱을 넘게 된다. 대통령 거부권으로도 막을 수가 없다.

 

여권 내에선 ‘다음 재표결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분위기라고 한다. 민주당이 현재 ‘김 여사 특검법’의 독소 조항을 빼고 특검법을 추진한다면 여당 내 이탈표가 더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은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 사실상 특검 후보 2명을 추천하도록 했는데 특검 수사의 공정성을 애초 기대할 수 없게 만드는 조항이다. 특검은 보통 여야 합의로 해왔다. 둘 중 어느 한쪽의 의혹을 수사하는 특검일수록 합의가 중요하다. ‘민주당 특검’의 수사 결과는 또 다른 분란을 낳을 것이다. 김 여사 관련이면 뭐든 수사할 수 있다는 내용도 문제가 많다. 혐의가 아니라 사람을 찍어서 털겠다는 것은 법이 아니라 린치다.

 

민주당 특검안이 법리에 안 맞지만 김 여사 특검 찬성 여론은 60~70%에 이르고 있다. 국민 의문이 그만큼 크다는 뜻이다. 대통령실과 여당은 야당의 ‘정치 공세’라며 거부권·당론 부결만을 외치고 있을 상황이 아니다. 민주당 원내대표가 이날 김건희 한 사람 지키려다 전체 보수를 궤멸시키는 어리석은 선택을 하지 말라고 했는데, 이재명 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 온갖 무도한 일을 다 하는 민주당이 할 말은 아니지만, 그 말의 내용 자체는 맞는다고 할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조선일보(24-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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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여사 특검법 재표결 부결, 2월보다 이탈표 비율 더 커져. 與 “위헌성 더 커졌다”지만 고민 만만찮은 듯.

 

-팔면봉, 조선일보(24-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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