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 쫓아낸 '다우존스 지수']
[23년 전 삼성 보고서의 교훈]
['주 52시간제 예외' 핵심 빠진 반도체 특별법]
인텔 쫓아낸 '다우존스 지수'
140여 년 전 뉴욕증권거래소를 취재하던 신문기자 찰스 헨리 다우(1851~1902)는 정제된 정보 유통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동료 기자 에드워드 존스와 함께 ‘주식 정보지’를 만들어 팔았다. 다우가 만든 정보지는 뛰어난 글솜씨와 탁월한 분석 덕에 불티나게 팔렸다. 다우는 몇 년 뒤 경제신문 ‘월스트리트 저널’을 창간, 초대 편집장이 된다.
▶다우는 주식투자 역사에서 ‘기술적 분석’의 창시자로 불린다. 그는 증시는 상승·하락장을 반복하기 때문에 ‘추세’를 파악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보고, 추세 파악에 도움이 될 지수를 개발했다. 각 산업을 대표하는 기업을 추려내 주가를 평균하는 개념이었다. 1896년 제너럴일렉트릭(GE) 등 12개 대표 기업의 일평균 주가로 구성된 다우존스 지수가 첫선을 보였다. 이후 18종목이 추가돼 1928년 이후엔 총 30종목으로 구성됐다.
▶다우존스 구성 종목은 지수산정위원회가 시장 흐름, 기업의 영향력, 성장성 등을 종합 판단해 부정기적으로 교체한다. 다우존스 종목 변화를 보면 미국의 산업 변천사가 보인다. 원년 멤버엔 석유·석탄 등 에너지 기업이 많았다. 1980년대 이후 미국 산업의 중심축이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정보통신(IT)으로 옮겨간다. 1990년대 후반 웨스팅하우스를 쫓아내고 인텔과 마이크로소프트를 새로 편입했다. 2004년엔 코닥, 글로벌 금융 위기 땐 제너럴모터스(GM)가 쫓겨났다. 2015년엔 AT&T가 퇴출되고 애플이 추가됐다. 2018년엔 마지막 원년 멤버 GE마저 쫓겨났다.
▶다우존스 지수는 산업의 변화 흐름을 좇아 편입 기업을 계속 물갈이하기 때문에 대공황, 2차 세계대전, 오일 쇼크, IT 버블 붕괴, 글로벌 금융 위기 등 온갖 풍파 속에서도 120년간 장기 우상향하는 성과를 보여왔다. 40선에서 출발한 지수는 1972년 1000, 1987년 2000, 1995년 5000. 1999년 1만, 2017년 2만, 2020년 3만포인트를 돌파했고, 지난 5월엔 4만포인트를 넘어섰다.
▶8일부터 다우존스 지수에서 인텔이 빠지고 엔비디아가 새로 편입된다고 한다. 세계를 호령했던 반도체 제국, 인텔이 모바일·AI 혁명에서 뒤처져 25년을 넘기지 못하고 쫓겨나는 신세가 됐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기술 산업 지형의 변화를 뚜렷이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했다. 기업의 살 길은 혁신뿐이라는 냉엄한 현실을 보여준다. 다우존스 128년 우상향 그래프를 만들어준 미국 경제의 혁신성과 역동성이 부럽기만 하다.
-김홍수 논설위원, 조선일보(24-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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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 전 삼성 보고서의 교훈
경기도 기흥의 삼성전자 비메모리 반도체 생산 시설. /삼성전자 제공
반세기 동안 전 세계 반도체 산업을 지배했던 인텔이 결국 공식적으로 반도체 대표주 자리에서 물러났다. 미국 대표 주가 지수인 다우지수에서 탈락하고, 그 자리를 엔비디아에 내준 것이다. 인텔과 함께 30년 가까이 세계 반도체 시장을 주름잡았던 삼성전자도 위기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두 회사가 경쟁력을 잃게 된 원인에 대해 기술보다 비용 절감에 치중했던 경영 전략, 수십 년간 1위 자리를 유지하며 나태해진 조직 문화 등 여러 공통점을 뽑는다. 다양한 원인이 지목되지만 가장 핵심은 최근 2년 새 급격히 변한 AI 시대에 적응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두 회사는 이런 시대를 예측하지 못했던 걸까. 적어도 삼성은 20년 전 지금의 상황을 예측했던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가 세계 1위 반도체 기업으로 입지를 공고히하기 시작한 23년 전 삼성그룹의 싱크탱크였던 삼성경제연구소는 ‘반도체산업’이란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 보고서에서는 “이제는 한순간의 방심과 전략 착오에 의해 생존이 엇갈리는 시대가 도래한다”고 강조했다. 마치 방심과 전략 착오로 AI 경쟁에서 밀려난 인텔과 삼성전자를 예측한 듯한 문장이다.
인텔은 PC와 서버용 CPU 시장에서 꾸준한 성장을 자신하다가 모바일과 같이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 대응을 게을리했다. 뒤늦게 모바일용 프로세서와 통신반도체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퀄컴을 비롯한 경쟁사를 따라잡지 못해 사업을 중단하거나 외부에 매각할 수밖에 없었다. 인텔이 과거 엔비디아와 오픈AI 인수 기회를 놓쳤다는 것도 뒤늦게 드러났다.
23년 전 보고서에서는 반도체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필요한 것도 언급했다. 보고서에서는 “그동안 반도체산업 핵심 경쟁력은 선행 기술력을 기반으로 하는 대규모 생산 능력이었다면 앞으로는 점차 고객이 원하는 것을 신속히 공급할 수 있는 능력으로 바뀔 것”이라며 “설계 기술력, 시스템 응용력, 소프트웨어 개발력이 더 강조될 것”이라고 했다. AI 가속기 핵심 칩인 고대역폭메모리(HBM)의 등장을 암시하는 듯하다. HBM은 고객사 요청에 맞게 최적화하는 작업이 필수적이다. 삼성이 HBM 경쟁에서 밀린 것에 대해 경쟁사보다 고객사와 긴밀하게 소통하지 못한 것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제 인텔과 삼성은 모두 더 이상 ‘1등’이라고 부르기 민망한 상황에 처했다. 지금이라도 기술 중심 경영으로 되돌아가 전열을 다듬지 않으면 AI 리더 기업들과의 격차는 더 벌어지는 것은 둘째 치고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중국에게도 추월당할 수 있다. 23년 전 보고서가 언급한 것처럼 이제는 생존의 문제다.
-윤진호 기자, 조선일보(24-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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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52시간제 예외' 핵심 빠진 반도체 특별법
모든 산업 분야에 획일적으로 적용한 '주 52시간' 근로제가 기술 패권 경쟁이 치열한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 이상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특정 직군의 근로시간 규제를 면제하는 '화이트칼라 면제 제도'를 반도체 연구개발 분야에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진은 SK하이닉스 청주 반도체 공장 내부 모습. /SK하이닉스
정부 여당이 발의할 ‘반도체 특별법’에 연구개발(R&D) 인력의 ‘주 52시간 근무 제외’ 조항이 포함되지 않은 것이라고 한다. 그동안 반도체 기업을 비롯한 산업계는 R&D 인력만이라도 세계에서 가장 경직적인 주 52시간 근무 규제 대상에서 빼달라고 요청해왔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반도체 특별법’을 추진하면서도 반도체 업계의 숙원인 ‘주 52시간제 유연화’는 포함시키지 않은 채로 관계 부처 등과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주 52시간제 예외를 도입하면 야당과 노동계 반발로 특별법 추진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라고 한다.
글로벌 경쟁 기업들은 한국처럼 경직적인 근로 시간 규제의 적용을 받지 않고 기술 개발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얼마전 미국 포천지(誌)는 인공지능 반도체의 선두 주자인 엔비디아 직원들이 “종종 주 7일 새벽 2시까지 일한다”는 취지의 기사를 실었다. 세계 1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기업인 대만 TSMC의 연구 센터도 하루 24시간, 주 7일간 가동된다. 한국 반도체 산업만 ‘주 52시간’의 족쇄를 차고 있다. 연구 개발에 어떻게 시간 제한이 있을 수 있나. 이래서 어떻게 반도체 경쟁에서 이기겠나.
노동자 보호를 위해 근로 시간의 상한선을 두면서도 연구개발 인력이나 고소득 사무직에 대해선 유연하게 적용하는 것이 세계적 추세다. 미국은 주급 684달러 이상의 고위관리직·전문직·컴퓨터직이나 연소득 10만7432달러 이상 고액 연봉자는 근로시간 규제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일본도 연봉 1075만엔 이상 연구개발 인력, 첨단 기술 엔지니어, 금융 애널리스트 등은 예외를 인정하고, 대만은 노사 합의하에 근무 시간을 늘릴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한국만 경직적이고 일률적으로 주 52시간 규제를 적용하고 있다.
세계 주요국의 경쟁 기업들은 심야에도, 주말에도 쉬지 않고 핵심 부서가 가동된다. 하지만 한국에선 저녁만 되면 연구소 불이 꺼지는 일이 일상화됐다. 여야와 노동계 모두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조선일보(24-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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