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표와 민주당의 국정 방해 방탄 올인 실패, 사필귀정]
[평범한 사람들이 무너트린 '이재명 알리바이']
[李 선거법 위반 1심 예상 밖 중형… 현실화하는 사법 리스크]
[그때 제대로 사과했다면]
이 대표와 민주당의 국정 방해 방탄 올인 실패, 사필귀정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5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관련 1심 재판에서 실형 선고를 받은 뒤 굳은 표정으로 법원을 나서고 있다. / 고운호 기자
법원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대법원에서 금고 이상 형이나 100만원 이상 벌금형이 확정되면 이 대표는 의원직을 상실하고 대선 출마도 불가능해진다. 민주당 또한 지난 대선 때 선관위에서 보전받은 선거비용 434억원을 반납해야 한다. 그동안 온갖 수단을 총동원해 사법 리스크 방탄에 나섰던 이 대표와 민주당이 최대 위기를 맞은 것이다.
재판부는 “허위 사실이 공표되면 민의가 왜곡되고 대의민주주의 본질이 훼손될 수 있어 죄책이 가볍다고 할 수 없다”고 했다. 이 대표는 지난 대선 당시 국회 국정감사에서 백현동 부지 용도 변경과 관련해 “국토교통부의 협박으로 용도를 상향 조정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성남시 문건에 국토부가 용도 지역 상향을 압박했다는 내용은 없었다. 성남시와 국토부 공무원들도 “국토부 협박은 없었다”고 증언했다. 재판부는 이를 근거로 “용도 지역 변경은 성남시 자체 판단”이라며 이 대표 발언이 허위라고 했다.
재판부는 이 대표가 방송에 나와 고(故)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 1처장 등과 ‘해외에서 골프를 치지 않았다’는 취지로 말한 것도 거짓이라고 했다. 다만 “김씨를 몰랐다”라고 말한 부분은 일체의 교유 행위가 없었다는 의미로 단정할 수는 없어 허위 사실 공표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대표는 “수긍하기 어려운 결론으로 항소할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은 “명백한 정치 탄압이며 사법부를 이용한 야당 죽이기”라며 대대적 투쟁을 예고했다. 법원 판결에 불복해 2심에서 유무죄를 다투는 것은 정해진 절차지만 정치 탄압으로 몰아 또다시 장외 투쟁으로 가선 안 될 일이다.
민주당은 그동안 국회 다수 의석을 앞세워 온갖 방식으로 검찰 수사를 방해하고 법원을 겁박해 왔다. 민주당은 쌍방울 불법 대북 송금 사건과 대장동·백현동 비리 수사를 담당한 검사들에 대해 줄줄이 탄핵 소추안을 내고 “이 대표를 괴롭힌 죄”라고 했다. 검사들을 국회 청문회에 부르고 검찰을 수사하는 특검도 추진했다. 민주당 지도부는 ‘판사 선출제’를 거론하고 강성 지지층은 판사 탄핵 서명운동을 했다. 이 대표 무죄를 탄원하는 100만 서명 운동도 벌였다. 재판부에 대한 압박이나 다름 없었다. 이 대표 재판은 하염없이 늘어져 6개월 안에 끝내야 할 선거법 재판이 1심까지 2년 2개월이 걸렸다.
방탄을 위해 입법권도 동원됐다. 민주당 의원들은 이 대표 처벌을 막기 위해 기소의 근거가 되는 선거법 조항을 바꾸는 개정안을 냈다. 검찰을 겨냥해 ‘수사기관 무고죄’를 만들고 ‘표적수사 금지법’도 발의했다. 불법 대북 송금 사건으로 구속 재판 중인 이화영 전 경기도 부지사는 국회 청문회에 불러내 일방적으로 변명할 기회를 줬다. 국회를 장악한 정당이 오로지 이 대표 한 사람을 위해 입법권을 마구잡이로 휘두른 것이다.
민주당은 공공연하게 윤석열 대통령 탄핵과 하야를 주장했다. 이 대표 선고가 임박하자 매 주말 정권 규탄 장외 집회를 열었다. 이 대표 처벌을 막으려 윤 정부 흔들기에 나선 것이다. 이 대표는 민생·경제가 우선이라며 ‘먹사니즘’을 내세웠지만 실제 국정과 민생에 도움 되는 일은 거의 하지 않았다. 국회는 파행되고 주요 정책과 민생은 뒷전이 됐다.
하지만 결국 진실은 법정에서 가려졌다. 민주당이 아무리 정치 공세를 펴도 비리 혐의를 덮을 순 없었다. 사법부를 힘으로 내리 누르면 통할 것이라고 여겼겠지만 오산이었다. 국민도 이런 민주당을 보며 오히려 이 대표 혐의에 실제 문제가 있는가 보다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판사 입장에서도 민주당의 압박에 밀렸다는 평가를 듣게 될까 신경이 쓰였을 법하다. 민주당의 방탄 행태는 민주당이 원하는 대로 이 대표의 판결을 이끌어내는 데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했다. 사필귀정이다.
이 대표는 지금 위증교사, 대장동 비리, 불법 대북 송금 사건 등 4개 재판을 받고 있다. 25일엔 위증 교사 사건에 대한 판결이 내려진다. 법원은 선거법 위반과 위증 교사 사건에 대해 최대한 신속하게 후속 재판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 그래야 이 대표 재판으로 인한 정치적 혼란과 국민 분열을 막을 수 있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민주당도 이제 상궤를 벗어난 방탄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 국회를 책임진 제1당으로서 해야 할 역할과 이 대표 사법 리스크는 분리해야 한다. 70년 역사의 공당이 걸어온 정상 궤도로 돌아가야 한다. 그것이 이번 판결의 의미이고 국민의 뜻일 것이다. 이 대표와 민주당이 이번 판결 이후 또다시 장외 집회를 통해 대정부 투쟁에 나서며 법원을 겁박한다면 국민이 납득하지 못할 것이다. 정치 공세를 중단하고 국정과 민생을 위해 전념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것이 민주당이 바로 서고 국민 지지를 받는 길이다. 이 대표도 자신의 방탄에 공당을 이용한다는 비판에서 벗어나는 것이 큰일을 도모하는 지도자로서 평가받는 데 보탬이 될 것이다.
-조선일보(24-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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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사람들이 무너트린 '이재명 알리바이'
[박정훈 칼럼]
이 대표의 혐의를 뒷받침한 것은 검찰도, 정권도 아니다…
경기도 7급 별정직, 성남시 과장·팀장, 고인의 유족 등이
정치 권력자에 맞서 유죄 판결을 끌어냈다
이재명 대표가 15일 서울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공직선거법 위반 1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은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뉴스1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아내 김혜경씨가 선거운동 식사비를 불법 결제한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받자 일부에선 “고작 10만4000원 갖고...”라 했다. 그러나 이것은 지금부터 펼쳐질 ‘법카 스캔들’의 시작일 뿐이다. 검찰이 선거법 시효에 쫓겨 10만원짜리 사건부터 급하게 기소했을 뿐, 이 대표 부부가 식비·생활비 등에 경기도 법인카드를 썼다는 의혹은 수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이 대표 집 근처 복집에서만 318만원, 단골 과일 가게에선 1000만원 가까이 결제된 정황이 드러났다. 의심받는 유용액을 합치면 수천만원에 달한다. ‘겨우 10만원’이 아니다.
지난 대선 국면에서 법카 의혹을 폭로한 것은 43세 조명현씨였다. 경기지사실 7급 별정직으로 근무한 그는 업무의 90%가 이 지사 부부 수발 드는 일이었다고 했다. 출근하면 샌드위치 세트를 사다 공관 냉장고에 넣어두고, 이 지사가 입을 속옷·셔츠 등을 준비해 옷장을 채우는 일로 일과를 시작했다. 김혜경씨 식사며 생일 케이크까지 챙겼다. 모든 경비는 법카로 결제했다. 이 지사가 즐겨 쓰는 일제 샴푸며 초밥·한우, 제사상 차림, 명절 선물, 심지어 개인 차 수리비까지 법카를 긁었다. 주말엔 일단 개인 카드를 쓴 뒤 평일에 다시 가서 취소하고 법카로 재결제하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조씨는 자신이 “공노비 같았다”고 했다. 그런데 피해자는 자기 한 사람이 아니었다. 세금으로 이 지사 부부 먹고 쓰는 돈 대주고, 개인 수발 드는 공무원 월급까지 주는 국민 모두가 피해자였다. 그는 부조리를 기록해 세상에 알렸다. 평범한 삶을 꿈꾸던 원래 인생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그것은 책임감 때문이었다. 조씨는 침묵해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 후보가 당선되면 ‘세금 도둑’이 대한민국을 이끌게 될 테니 덮어둘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는 김혜경씨 재판에도 나가 “김씨가 간장이냐, 초장이냐, 회덮밥 소스까지 일일이 정했다”고 증언했다. 그리고 결국 1심 유죄 선고를 받아냈다.
그다음 날엔 이재명 대표의 공직 선거법 위반 사건에 대해 징역 1년형의 유죄 선고가 내려졌다. “백현동 용도 변경이 국토부 협박 때문”이라는 이 대표 발언이 ‘허위 사실 공표’임을 뒷받침한 것 역시 지자체의 전직 공무원들이었다. 성남시 주거환경과장을 지낸 전모씨는 이 대표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압박은 없었다”고 밝혔다. 압박은커녕 국토부가 ‘성남시가 임의로 판단할 사항’이란 공문을 보내왔고 이를 당시 이재명 시장에게 “대면 보고했다”고 증언했다. 피고인석에 있던 이 대표가 마이크를 잡고 직접 신문에 나섰지만 전씨는 “오로지 시장님 지시 사항만 따랐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전씨뿐 아니었다. 성남시 도시계획과 팀장을 지낸 김모씨, 도시계획과 주무관을 지낸 장모씨도 ‘압박받은 사실이 없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백현동 개발 담당자들이 일관되게 이 대표 발언의 근거를 부정한 것이다. 이들로선 한때 상관이었고, 지지율 1위를 달리는 유력 대권 후보와 맞서는 것에 두려운 마음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고(故) 김문기 전 성남도개공 처장을 “몰랐다”고 했던 이 대표 발언에 대해선 고인의 아들이 증언대에 서서 이 대표에게 맞섰다. 이들이 국회 권력 앞에서 회피하지 않고 진실을 밝히는 데는 적지 않은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 용기가 유죄 판결을 이끌어 냈다.
11개 혐의로 4개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는 자신의 모든 혐의가 “검찰의 창작”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윤석열 정권 검찰이 정적(政敵)을 죽이려 ‘수사 아닌 정치’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대표를 궁지로 몬 것은 검찰도, 정권도 아니다. 단군 이래 최대 비리라는 대장동 스캔들은 지방 인터넷 매체 기자의 기사에서 시작됐다. 수원 소재 경기경제신문의 박종명 대표 기자가 ‘화천대유는 누구 것이냐’고 묻는 칼럼을 써 비리 의혹을 처음 고발했다.
위증 교사 사건에선 성남시장 수행비서 출신 김모씨가 이 대표를 외통수로 몰았다. 김씨는 과거 자신이 이 대표에게 유리하게 위증했음을 인정하며 “이 대표가 시키지 않았다면 거짓 증언할 이유가 없었다”고 증언했다. 위증을 요구한 적 없다는 이 대표 주장을 정면 부인한 것이다. 이 사건의 1심 판결도 열흘 뒤 나온다.
이 대표는 사법 시스템을 정치로 오염시키려 했다. 거대 야당을 앞세워 국회 상임위를 범죄 방탄의 무대로 만들고, 수사 검사들을 탄핵 소추로 보복하는 폭주를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이 대표의 혐의를 뒷받침한 것은 경기도 7급 별정직, 성남시 전직 과장·팀장, 극단적 선택을 한 고인의 유족 같은 이들이었다. 권력과 거리가 먼 평범한 사람들이 이 대표의 ‘알리바이’를 하나둘씩 무너트렸다. 정치로 사법 리스크를 돌파하려는 이 대표의 방탄 전략이 핀트도 맞지 않고 우스꽝스럽게 보였던 것은 그 때문이다.
-박정훈 논설실장, 조선일보(24-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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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명 대표의 선거법 사건 1심 유죄 선고에 野圈 충격. 25일 위증 교사 사건 1심이 2차 충격파 일으킬 수도.
-팔면봉, 조선일보(24-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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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 선거법 위반 1심 예상 밖 중형… 현실화하는 사법 리스크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5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공직선거법 위반혐의로 징역 1년, 징행유예 2년 형을 선고 받은 뒤 청사를 나서고 있다. 박형기 기자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기소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에 대해 1심 법원이 15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민주당은 물론이고 국민의힘에서도 “예상 밖 중형”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이번 판결이 확정될 경우 이 대표는 의원직 상실은 물론이고 다음 대선에 출마할 수 없게 되고, 민주당이 대선 선거 비용으로 보전받은 434억 원도 반환해야 해 상당한 정치적 파장이 불가피하게 됐다.
재판부는 먼저 이 대표가 2021년 국정감사에서 성남시 백현동 한국식품연구원 부지 용도변경과 관련해 “국토교통부에서 안 해주면 직무유기 이런 것을 문제 삼겠다고 협박해서 어쩔 수 없이 한 것”이라고 한 발언은 거짓이라고 판단했다. 또 호주·뉴질랜드 출장 중 대장동 개발사업의 실무자였던 고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과 골프를 쳤는지와 관련해 방송에서 “국민의힘에서 단체사진 중 일부를 떼어 내서 보여줬다. 조작한 것”이라고 말한 부분도 ‘함께 골프를 치지 않았다’는 의미로 해석돼 사실이 아니라고 봤다.
이 대표 측은 백현동 관련 발언에는 고의성이 없었고, 김 전 처장 관련 발언은 ‘사진이 조작된 것이라는 취지’라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선 당시 대장동, 백현동 개발 의혹은 국민적 관심사였고, 이 대표가 대선 후보로서의 능력과 자질에 관련된 중요 사항에 대해 허위 발언을 한 만큼 죄책이 무겁다는 게 1심 재판부의 판단이다. “허위사실을 공표하는 경우 민의가 왜곡되고 선거 제도의 기능이 훼손될 염려가 있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도저히 수긍하기 어려운 결론”이라며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항소심과 상고심을 지켜봐야 하겠지만, 1심에서 징역형의 집행유예가 나오면서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한층 커진 것은 사실이다. 이 사건 외에도 25일에는 이 대표의 위증교사 사건에 대한 1심 선고가 예정돼 있고, 대장동·백현동·위례·성남FC 사건과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에 대한 재판도 진행 중이다.
판결이 나오기 전부터 정치권은 과열된 양상을 보였다. 민주당은 당내에 ‘검찰독재대책위원회’, ‘사법정의특별위원회’를 설치해 이 대표 방어에 나섰고 이 대표 지지층은 100만 명 넘게 서명한 ‘이재명 무죄 탄원서’를 제출했다. 국민의힘은 이 대표의 유죄 선고를 촉구하는 주장을 쏟아냈고 재판을 생중계하라고 법원에 요구했다. 판결 뒤에도 “사법부를 이용한 야당 죽이기” “비겁한 거짓말에 사죄하라” 등 여야에서 격한 목소리가 쏟아졌다. 이제 이 대표가 받고 있는 4개의 재판 가운데 처음으로 1심 판결이 나온 것인 만큼 과도한 해석과 반응은 자중할 필요가 있다.
-동아일보(24-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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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제대로 사과했다면
불 끄려다 불붙인 謝過들
英 총리·美 대통령 운명도 '흔들'
절절한 참회는 그래도 통했다
이제라도 사과가 답임을 알아야
때론 안 하느니만 못한 사과도 있다. “많이 후회합니다. 전 그저 직원들을 격려하는 업무 행사라고 여겼습니다.” 2020년 5월 코로나 방역 수칙을 어기고 술 파티를 벌였다는 증거가 잇달아 나오자 당시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머리를 조아렸다. 민심을 돌이키기엔 애석하게도 사과가 어설펐다. 직원들과 술 마신 것을 깨끗이 인정했다면 차라리 나았을 것이다. ‘업무인 줄 알았다’는 해명에 여론은 들끓었다. 야당은 “국민을 바보로 아느냐”고 했고 ‘사임하라’는 국민 요구는 더 거세졌다. 서툰 사과가 불붙은 사태에 기름을 끼얹은 것이다.
뼛속 깊은 사과는 반면 얼어붙은 마음을 움직인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물러난 뒤 국민 비호감으로 찍혀 은둔했다. 이후 한 언론과의 TV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친구들을 실망시켰습니다. 나라를 실망시켰습니다. 미국 국민을 실망시켰습니다.” 투박했지만 절절했다. 영국 인디펜던트지는 “그에겐 미국 사회에서의 점진적 재활을 가능케 해준 고백이었고, 미국인들은 이 말로 그를 (용서하고) 보낼 수 있었다”고 했다.
사과(謝過)도 기술이다. 제대로 된 사과는 위기를 기회로 바꾼다. 심리 치료사 가이 윈치는 사과를 두고 ‘죄책감의 해독제’와도 같다고 했다. “사람들이 서로 사과하는 것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고통스러울 뿐 아니라 생존에 필요한 관계가 악화될 수 있어서다.” 거꾸로 해석하면 사람들이 사과를 받아들이는 것도 결국 ‘그래야만 살 수 있어서’라는 소리다. 누구나 결국엔 사과를 받아주고 싶어 한다. 그래야만 덜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다만 전제는 있다. 그 사과가 제대로 된 것일 때만 그렇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사과란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빈다’는 뜻이다.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확실하고 구체적으로 말해야 한다(認定)는 얘기다. ‘유감이다’라는 말로 넘기거나 ‘제가 ~한 것이 맞다면’ 식의 조건이 붙는다면 역시 제대로 된 사과일 순 없겠다.
문제는 제대로 사과하는 모습을 보는 경우가 여전히 드물다는 데 있다. 15일 오후 우리는 남색 정장을 입은 남자가 서초동 법원 앞에서 판결 결과를 놓고 “기본적인 사실 인정부터 도저히 수긍하기 어렵다”고 말하는 것을 보았다. ‘유감이다’ ‘안타깝다’는 회피의 말조차 꺼내지 않았다. 자기 잘못을 한 톨도 인정할 수 없고 사법부가 문제라는 식이었다. ‘도둑이 도리어 매를 든다(賊反荷杖)’는 표현을 우리는 이럴 때 쓴다.
지난 7일엔 연보랏빛 넥타이를 맨 남자가 고개를 숙이는 것도 보았다. 그러나 무엇에 대해 사과하는지 물었을 때 그는 “구체적으로 말하기 어렵다”고 했고, “기자회견 하는 마당에 팩트를 다툴 순 없는 노릇”이라고도 했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구체적으로 말하라’는 기본 원칙조차 챙기지 못했다.
언제쯤 온전한 사과를 들을 수 있을까.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부인 로라 부시 여사는 자신이 17세에 실수로 낸 자동차 사고로 친한 친구가 숨진 것을 고백했고 이를 책으로 썼다. 그는 “그 일은 내 몸에 난 큰 상처와 같고 평생 짊어지고 살아가야 할 죄책감”이라고 했다. 전 세계 최대 도서 리뷰 업체 굿리즈는 이 책에 상(賞)을 수여하며 이렇게 밝혔다. “완벽한 사람은 없다. 영부인이라고 해도 예외는 아니다. 좋은 사람이란 그럼에도 자기 잘못을 인정하는 용기를 통해 완성된다는 것을 그가 보여준다.”
결국 용기만이 답이라는 얘기다. ‘내가 정말 잘못했다’고 진심으로 말하는 용기를 낼 수 있다면, 그 짧지만 뜨거운 말이 얼어붙은 빙하를 녹일 테니까. 우리에겐 그저 먼 얘기만은 아니길 바랄 뿐이다.
-송혜진 기자, 조선일보(24-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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