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는 왕이 아니다”]
[‘마가’에 올라 탄 머스크의 정치 실험]
“트럼프는 왕이 아니다”
백악관과 상하원을 모두 장악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행보는 거침없었다. 취임 첫날부터 강하게 밀어붙이려는 듯 역대 정부보다 몇 배는 빠른 속도로 ‘충성파’ 인사들을 주요 요직에 지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법무장관으로 지명했던 맷 게이츠 전 연방 하원의원이 자진 사퇴하면서 처음으로 제동이 걸렸다. 견제는 진영 내부에서 나왔다.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트럼프는 왕이 아니다”라고 논평했다.
▷게이츠 전 의원은 법무장관 지명 전부터 미성년자 성매수 등 각종 의혹에 휩싸였지만 트럼프 당선인의 신뢰는 굳건했다. 하지만 각료 인준 권한을 가진 상원에서 부정적 분위기가 퍼졌다. 트럼프 당선인이 상원의원들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지지를 당부했지만 인준에 필요한 표를 확보하지 못했고, 결국 게이츠 전 의원에게 자진사퇴를 종용할 수밖에 없었다. 가장 위세 등등한 당선인 신분임에도 상원의 벽을 넘지 못한 것이다.
▷미국에선 대통령이 장차관, 연방판사, 대사, 군 장성 등 1200여 고위 공직자를 임명할 땐 상원에서 과반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공화당은 상원 100석 가운데 53석을 확보했지만, 단 4표만 이탈해도 과반이 깨진다. 뉴욕타임스는 최소 4명의 의원이 게이츠 전 의원의 인선에 반대했다고 전했다. 여성인 리사 머카우스키, 수전 콜린스 의원은 트럼프 1기 때 대통령 탄핵소추에도 찬성표를 던졌다. 공화당의 전통 노선을 상징하는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와 기후위기 회의론과 싸워 온 존 커티스 당선인도 부정적이었다. ‘보편관세’에 공개적으로 반대해 온 존 슌 의원이 차기 상원 원내대표로 당선된 것도 의미심장하다. 외교, 무역 등 사안에 따라 상원이 트럼프 2기 행정부를 막아설 가능성이 있다.
▷공화당이 상원 다수당이던 트럼프 1기 때도 상원은 수차례 대통령의 독주를 제지했다. 임기 초인 2017년 ‘오바마 케어 폐지’ 법안이 공화당 의원 6명의 반대로 무산됐다. 2019년 3월엔 예멘 내전에서 미군의 개입을 중단하는 결의안과 국경 장벽 건설을 위한 비상사태 선포를 무력화하는 내용의 결의안이 연이어 상원에서 가결됐다. 공화당 상원의원들의 ‘반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미국 상원(Senate)의 명칭은 고대 로마 공화정에서 집정관을 견제한 원로원(元老院·Senatus)에서 따왔다. 임기가 6년으로 긴 상원의원들은 소속 정당의 방침이나 여론의 눈치를 덜 보고 ‘국가 지도자(statesman)’라는 자부심이 강하다. 노련한 참모들인 ‘어른들의 축’이 과도한 트럼피즘을 견제했던 트럼프 1기와 달리 젊은 충성파들로만 채워진 트럼프 2기에서, 상원이 미국 민주주의를 지킬 어른의 역할을 해낼지 주목된다.
-김재영 논설위원, 동아일보(24-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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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에 올라 탄 머스크의 정치 실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에 대한 총애는 이례적이다. 대선을 앞두고 200여 명의 미 정신건강 전문가들은 “트럼프는 심각하고 치료 불가능한 성격 장애인 ‘악성 자기애(malignant narcissism)’ 증상을 보인다”고 진단했다. 자신보다 주목 받거나, 권위에 도전하는 이들에 대해선 가차 없이 공격해 온 그의 과거 언행을 돌아보면 영 근거 없는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트럼프 당선인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정상 통화에 머스크를 참석시킨 것을 시작으로 대부분의 공개 행사에 그와 함께 나타나고 있다. 19일(현지 시간) 트럼프 당선인은 가족과 측근들을 이끌고 텍사스를 방문해 머스크의 우주기업 스페이스X의 우주선 시험 발사를 지켜봤다. 세계의 이목이 온통 쏠리는 대선 허니문 기간의 스포트라이트를 머스크와 나누고 있는 트럼프 당선인의 모습은 예상치 못한 행보다.
‘트럼프 레거시’ 좌우할 머스크
그 배경을 두고는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머스크는 대선 기간 실리콘밸리 억만장자들의 자금을 모아 슈퍼팩(super PAC·정치자금 모금 단체)인 ‘아메리카 팩’를 세워 트럼프 당선인을 지원했다. 머스크는 2억 달러(약 2800억 원)를 쏟아부어 자금력에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에게 밀리던 트럼프 당선인을 대신해 7대 경합주 선거운동을 도맡다시피 했다. 최대 격전지였던 펜실베이니아와 미시간, 위스콘신의 득표율 격차가 1% 남짓이었음을 고려하면 트럼프 당선인의 대선 승리에 대한 머스크의 지분을 무시하기 어렵다.
머스크는 대선 직후 소셜미디어에 “선거가 끝나면 활동을 중지하는 다른 곳과 달리 아메리카 팩은 중간선거를 준비할 것”이라고 밝혔다. 재선인 트럼프 당선인은 2026년 중간선거에서 패하면 곧바로 레임덕에 빠질 위험이 크다. 올해 대선은 물론이고 중간선거와 차기 대선까지 트럼프 당선인은 머스크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특히 머스크가 공동 수장을 맡은 정부효율부(DOGE)는 트럼프 당선인의 정치 슬로건인 ‘마가(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의 핵심에 맞닿아 있다. 머스크가 목표로 내건 ‘딥스테이트(deep state·엘리트 관료제)’ 해체는 트럼프가 정치에 뛰어들면서부터 내건 궁극적인 목표이기 때문이다. ‘트럼프 레거시(legacy·유산)’가 사실상 머스크의 손에 달려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AP통신은 머스크의 행보를 두고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이 미 민주주의에 미치는 영향력을 보여줄 시험대”라고 분석했다. ‘코크 형제’처럼 자금력으로 정치에 영향을 미치려 한 억만장자들은 많았지만, 머스크처럼 개인이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자하고 직접 정치에 뛰어든 사례는 찾기 어렵다.
정부 개혁의 영웅인가, 금권정치의 악당인가
머스크는 지난달 한 인터뷰에서 정치 전면에 나선 이유로 환경단체의 민원을 받은 연방항공청(FAA) 지시로 태평양 한가운데서 바다표범을 납치해 헤드폰으로 스페이스X의 우주선 발사 소음을 들려주는 실험을 했던 일화를 공개했다. 공룡 정부의 과잉 규제가 원인이 됐단 것이다.
트럼프 당선인과 손잡은 머스크의 행보에는 기대와 우려가 공존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머스크의 정부 개혁 구상에 “리바이어던(leviathan·무한정 증식하는 괴물)을 길들여 정부를 축소하려는 시도는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고 했다. 성패에 따라 머스크는 인공지능(AI) 기술 시대 새로운 정치 참여와 정부 개혁의 영웅이 될 수도, 금권선거로 민주주의를 훼손한 희대의 악당이 될 수도 있다. 머스크의 베팅에 주목해야 할 이유다.
-문병기 워싱턴 특파원, 동아일보(24-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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