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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 횡단… 아문센 시대보다 무게는 절반, 따뜻함은 두 배로] ....

뚝섬 2025. 1. 24. 05:30

[남극 횡단… 아문센 시대보다 무게는 절반, 따뜻함은 두 배로] 

[거위의 앞가슴 털이 체온을 보우하사]

 

 

 

남극 횡단… 아문센 시대보다 무게는 절반, 따뜻함은 두 배로

 

김영미의 방한의류 

 

 

내게 2025년 1월 ‘이 달의 한국인’은 산악인 김영미다. 그는 지난 18일 남극 대륙 단독 횡단에 성공했다. 1700km를 69일 8시간 31분 만에. 2023년 본인이 달성한 ‘아시아 여성 최초 남극점 무보급 단독 도달’에 이어 또 갔다. 탐험가 단 한 명이 영하 30도에 이르는 혹한에 하루도 쉬지 않고 약 24km씩 뛰다시피 걸었다. 100kg에 이르는 썰매를 끌고.

 

성마른 현대 한국인들은 ‘요즘 세상에 그게 내 삶에 어떤 의미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극한에 아무런 관심 없는 이들에게도 모든 탐험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많은 일상 용품이 탐험 속에서 연마된다. 김영미의 두 번째 남극 탐험 성공은 그와 함께한 장비들이 한번 더 발전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현대 방한복의 역사가 혹한에 도전하는 인류의 역사다. 영국의 버버리는 원래 기능성 의류 전문 회사였다. 버버리의 개버딘 소재 외투는 고성능 방한 의류였다. 라이벌 탐험가였던 노르웨이의 아문센과 영국의 스콧은 모두 버버리를 입었다. 오리털 파카 역시 개인 경험의 산물이다. 1935년 시애틀의 아웃도어 용품 사업가 에디 바우어가 겨울에 놀러 나갔다가 저체온증으로 죽을 뻔했다. 그가 이때 경험으로 고안한 게 오늘날 개념의 오리털 파카다.

 

자동차 회사의 경주 대회 출전도 비슷하다. F1이나 르망24 같은 유럽의 레이스 대회는 자동차의 한계 상황에 대한 실황 실험실이다. 완전히 달라 보이는 자동차 경주와 혹한 의류에도 공통점이 있다. 온도와 싸우는 일이라는 점이다. 자동차 경주는 초고열과, 혹한 의류는 초저온과 싸운다. 그 싸움에서 생긴 데이터가 대량생산 제품에 반영돼 사람들의 삶을 개선한다.

 

김영미의 혹한 장비도 발전했다. 2023년 남극점 무보급 도달과 최근 남극점 횡단 당시의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다. 외투 상의의 기장은 조금 짧아졌다. 2023년 탐험 당시 착용한 다운 치마도 보이지 않는다. 더 편한 움직임을 고려한 결과로 보인다. 방한 의류의 모자를 감싼 털도 반쯤 줄었다. 이에 대해서는 김영미 자신이 ‘월간 산’ 인터뷰에서 말했다. 털 무게마저 줄이고 싶었다고. 모든 환경에 철저히 대비하는 준비의 산물이다. 동시에 ‘겪어 보니 아래쪽 털 반은 없어도 괜찮겠구나’라는 경험의 결과다. 이렇게 작은 세부가 모여 진보를 이룬다.

 

나는 김영미의 장비를 본 적이 있다. 그가 남극점 무보급 도달에 성공했을 때 일하던 잡지사에서 김영미를 섭외해 인터뷰를 했다. 남극점 도달과 함께한 장비도 촬영 용도로 미리 요청했다. 그는 특수 제작한 방한 의류를 가져왔다. 붉은색 외투는 50일쯤 입었을 텐데 등 부분 색이 바래 있었다. 백야의 땅 남극 자외선의 힘을 본 것 같았다. 김영미는 탐험 중 고통에 대해 말을 아꼈다. 빛바랜 방한 의류만으로도 그의 고통과 남극의 혹독한 환경을 짐작하기엔 충분했다.

 

인간은 물건과 함께 계속 진화한다. 모험이 끝난 뒤 김영미는 69일의 모험 동안 손에 반창고 하나 안 붙이고 멀쩡하다고 적었다. 김영미의 기술과 경험 덕분이다. 특수 장비를 제작한 김영미의 소속사 노스페이스의 역량도 풍부할 것이다. 그러나 이건 한 사람이나 특정 회사의 공을 넘어서는 이야기다. 혹독한 환경의 탐험이라는 도전을 해온 인류의 경험과 기술이 쌓인 것이다.

 

아문센 시대의 버버리 방한복과 비교하면 방한복은 혁명 수준으로 발전했다. 가볍고 따뜻하고 저렴해졌다. 2012년 영국 러프버러대학 조지 하베니스는 역사에 기록된 아문센과 스콧의 탐험 의류와 현대 방한 의류의 방한 성능을 비교했다. 아문센 시대의 방한 의류 소재는 울 기반 개버딘이나 물개 가죽이다. 오늘날 오리털이나 나일론 등에 비해 무겁고 값비쌀 수밖에 없다. 실험 결과 현대 방한 의류는 아문센 시대 방한 의류에 비해 무게 대비 2배 이상 따뜻했다.

 

그러니 우리가 탐험에 경의를 표해야 할 이유는 많다. 똑같은 몸을 가진 사람이 극한 도전에 성공해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었으니. 인간 한계를 시험하는 영역에 들어가 소중한 데이터를 가져왔으니. 이 모든 요소가 인류가 진보하는 한 걸음씩의 영양소가 된다. 김영미도 한 걸음씩 걸으며 전인미답의 영역에 도달한 것처럼.

 

-박찬용 칼럼니스트, 조선일보(25-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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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위의 앞가슴 털이 체온을 보우하사

 

[이기진의 만만한 과학]

 

얼마 전 눈 덮인 산을 등산했다. 여러 겹의 옷을 껴입고 한 발 한 발 미끄러운 산길을 걷는 것도 힘든 일이었지만 얼굴을 때리는 영하의 칼바람은 고통스럽기까지 했다. 오르면서, 왜 산을 오를까를 생각했다. 1953년 최초로 8848m 에베레스트를 정복한 에드먼드 힐러리 경과 텐징 노르가이가 떠올랐다, 이 두 산악인은 분명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위대한 사람들임이 분명하다.

 

당시 이들은 어떤 복장을 하고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랐을까? 사진 속 그들은 두툼한 등산화를 신고 산소마스크와 고글을 썼다. 고글은 반사된 햇빛과 자외선을 차단하고 날아오는 작은 얼음 조각으로부터 눈을 보호하며, 강한 바람이나 눈보라 추위에 눈물이 흐를 때 얼지 않도록 막아준다.

두 등반가가 입은 옷은 후드가 달린 두툼한 파카다. 파카는 북극에서 추위를 막기 위해 순록이나 물개 가죽으로 만든 방한용 외투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에베레스트의 추위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체온이 빠져나가지 않게 하기 위해 단열이 잘되는 옷을 입어야 한다. 최고의 단열 효과를 내는 옷은 오리나 거위의 앞가슴 털로 만든 파카다. 새의 솜털을 의미하는 ‘다운(Down)’은 북극 지방에서 이불 속 재료로 사용되다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고공의 추위를 견뎌야 하는 폭격기 조종사들의 옷에 사용되기 시작했다. 지금은 겨울 방한복으로 발전했지만 다운은 인간이 발견해낸 단열재 중에서 무게 대비 최고의 단열 성능을 지녔다.

 

새의 솜털은 열전도율이 매우 낮은 ‘공기층’을 효율적으로 만들어 준다. 이런 솜털의 품질을 수치화한 단위가 필파워(FP)다. 1온스를 24시간 압축했다가 풀었을 때 공기층이 차지하는 정도를 수치화한 것으로, 필파워가 높을수록 복원력이 크고 보온성이 크다. 오리털로 만든 덕다운과 거위털로 만든 구스다운은 필파워가 600 안팎이며 전문 아웃도어 브랜드 제품은 700∼900 수준이다.

최고의 덕다운은 북유럽과 북아메리카에 사는 아이더오리의 앞가슴 털인 아이더다운이다. 아이더오리는 해변 가까이 둥지를 트는데, 암컷이 자기 가슴 털을 뽑아 둥지를 만든다. 둥지를 만들 때, 암컷은 알과 새끼들을 따듯하게 보호하려는 본능에 의해 최고로 좋은 털만 뽑아 만든다. 새끼들이 다 자라서 둥지를 떠나게 되면 아이더다운을 수확할 수 있다. 하나의 둥지에서 얻을 수 있는 아이더다운은 약 15g이다.

아이더다운은 탄성이 좋고 갈고리 모양의 미세섬유가 발달해 있어 서로 치밀하게 결합하기 때문에, 한 번 모양이 만들어지면 변형되지 않는 특징이 있다. 바다에 사는 새답게 자연적으로 물이 닿는 순간 표면에 스며들지 못하도록 방수 처리가 돼 있다. 아이더오리 솜털의 필파워는 1500 이상이다. 아이더다운 파카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아이더 둥지가 필요할까? 이 새는 보호종으로 지정돼 있다고 한다.

날이 추워지면 우리 몸은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혈관이 수축해 혈압이 상승한다. 온도가 1도씩 내려갈 때마다 혈압이 0.5mmHg 올라간다. 추위에 오래 노출되면 저체온증이 올 수 있다. 혈관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겨울 추위를 조심해야 하는 이유다.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동아일보(25-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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