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법기술자 윤석열’이 ‘대통령 윤석열’ 잡았다]
[‘500명 수거해 처리’]
[“아무리 거짓말을 해도 부하들은 다 안다”]
결국 ‘법기술자 윤석열’이 ‘대통령 윤석열’ 잡았다
[천광암 칼럼]
尹 발언이 尹 주장 깨는 주요 논거
탄핵 찬성 여론에 담긴 ‘尹 불신’ 읽었나
헌재 “尹 복귀 시, 권한 행사할 때마다
국민은 숨은 목적 의심해야 돼 혼란”
탄핵심판 변론에 출석하지 않았던 노무현·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과 달리 윤석열 전 대통령은 총 11차례 중 8차례의 변론에 나왔다. 단순히 출석만 한 것이 아니라 변호사에게 귓속말이나 메모를 건네며 변론을 진두지휘하다시피 했고, 중요한 대목에서는 본인이 직접 나서서 많은 말을 쏟아냈다.
여기에는 자신이 ‘검찰총장을 지낸 우리나라 최고의 법 전문가’라는 생각이 깔려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윤 전 대통령이 그 과정에서 보여준 모습은 ‘법 전문가’라기보다는 ‘법 기술자’에 가까웠다. 뻔해 보이는 거짓을 사실로 포장하거나, 궤변이나 억지를 막무가내로 늘어놓는 경우가 많았다.
윤 전 대통령은 이렇게 함으로써 헌재재판관들을 설득할 수 있을 것으로 봤겠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이번 헌재 결정문을 자세히 보면 윤 전 대통령이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 쏟아낸 말들이 윤 대통령의 다른 핵심적인 주장과 논리를 무너뜨리는 주된 근거로 인용됐다는 사실을 여기저기서 확인할 수 있다. ‘법 기술자 윤석열’이 ‘대통령 윤석열’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예컨대 헌재는 ‘비상계엄 선포의 목적은 군사상 필요에 따르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계엄법 2조 2항에 12·3 비상계엄이 위배되는지 여부를 판단하면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피청구인(윤 전 대통령)은 줄곧 이번 계엄이 야당의 전횡과 국정 위기 상황을 국민에게 알리고 호소하기 위한 목적으로 선포된 ‘경고성 계엄’ 또는 ‘호소형 계엄’이라고 주장하는데, 이러한 주장만으로도 피청구인이 이번 계엄을 중대한 위기 상황에서 비롯된 군사상 필요에 따르거나 위기 상황으로 인하여 훼손된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선포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어 헌재는 ‘대국민 호소’라는 목적 자체도 진실성이 없다고 판단했는데, 그 주된 논거 중 하나가 “계엄 해제에 적어도 며칠 걸릴 것으로 예상했는데 예상보다 빨리 끝났다”고 한 윤 전 대통령의 발언이었다.
이뿐 아니다. ‘대통령의 국법상 행위는 문서로써 하며, 이 문서에는 국무총리와 관계 국무위원이 부서(副署)한다. 군사에 관한 것도 또한 같다’고 돼 있는 헌법 82조와 관련해서, 윤 전 대통령은 ‘보안상의 이유 때문에 이를 이행할 수 없었다’는 취지로 변명했다. 그러나 헌재는 “대통령실 대접견실에 국무회의 구성원 11명이 모여 있을 때 부속실장 강OO가 계엄선포문 10부를 복사하여 김용현에게 전달했다”고 한 윤 전 대통령의 발언을 들어 앞부분 윤 전 대통령의 ‘변명’은 수긍하기 어렵다고 결론지었다.
국회의원의 국회 출입 통제 논란과 관련해서도 비슷한 장면이 있다. 윤 전 대통령은 8차 변론에서 “종이를 놓고 (김용현) 장관이 경찰청장하고 서울청장에게 국회 외곽의 어느 쪽에 경찰 병력을 배치하는 게 좋겠다고 해서 그림을 그리는 것을 제가 봤습니다”라고 진술했다. 윤 전 대통령은 다른 의도로 이 말을 했지만, 헌재는 이를 “경찰로 하여금 국회의원의 출입을 통제하도록 한 사실이 없다”는 윤 전 대통령의 주장이 거짓이라고 판단하는 증거로 삼았다.
이번 탄핵정국을 돌이켜보면 심판 절차가 진행된 4개월간 탄핵 찬성 의견이 줄곧 반대를 압도했다. 한국갤럽 조사를 기준으로 두 답변의 격차가 가장 좁혀졌을 때가 57% 대 38%, 19%포인트 차이였다. 우리 국민들이 복잡한 법적 쟁점을 조목조목 가려가며 이런 판단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더 이상 국가긴급권이 정치적 목적으로 남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던’ 국민에게 큰 충격을 던지고도, 반성은커녕 변명과 거짓으로 일관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불신이 이런 숫자로 나타난 것이 아닐까 싶다.
이번 결정문에는 헌재가 ‘이런 국민 불신과 불안을 이심전심으로 읽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구절이 있다.
“만약 피청구인이 대통령으로서의 권한을 다시금 행사하게 된다면, 국민으로서는 피청구인이 헌법상 권한을 행사할 때마다 헌법이 규정한 것과는 다른 숨은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닌지, (중략) 끊임없이 의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피청구인의 권한 행사에 대한 불신은 점차 쌓일 수밖에 없고, 이는 국정운영은 물론 사회 전체에 극심한 혼란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필자는 이 대목이 헌재가 대통령 파면을 결정하게 된 가장 중대한 사유라고 본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의 신임을 잃은 대통령’이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민의 신임을 잃은 민주국가의 대통령이란 ‘호수 위에 뜬 달그림자’일 뿐이다.
-천광암 논설주간, 동아일보(25-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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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명 수거해 처리’
‘노상원 수첩’은 내란 혐의로 구속 기소된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의 점집에서 경찰이 확보한 약 70쪽짜리 메모장이다. 그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불러준 내용을 받아 적은 것”이라고 진술했는데 국립과학수사연구원 필적 감정에서는 ‘감정 불능’ 판정이 나왔다. 누가 썼는지는 수사 중이지만 일부 언론이 입수해 보도한 수첩 속 비상계엄 계획은 충격적이다.
▷먼저 눈에 띄는 건 체포자 명단. 수첩에는 계엄 선포 10일 차까지 체포 대상자를 ‘수거’해 ‘수집소’로 보낸다는 내용이 나온다. 체포 대상은 “여의도 30∼50명 수거” “언론 쪽 100∼200(명)” 등 “500여 명 수집”으로 적혀 있다. 이 중 A급은 문재인, 이재명, 유시민, 권순일, 김명수, 조국, 민노총 등이다. 검찰 조사 결과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김 전 장관에게서 넘겨받았다는 ‘체포자 명단 16명’과 비교하면 ‘한동훈’이 빠지고 ‘이준석’이 들어가 있다. 이재명 대표의 구속영장을 기각한 판사, 조국 전 장관을 위해 탄원서를 쓴 축구대표팀 감독 차범근 씨도 ‘수거’ 대상이다.
▷“A급 수거 대상 처리 방안”은 살벌하다. ‘수집소’는 “강원도 화천, 양구, 울릉도, 마라도, 전방 민통선 쪽”이고, “확인 사살 필요” “막사 내 잠자리 폭발물 사용” 등의 메모로 보아 ‘처리’는 ‘살해’를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내국인 사용 시 수사를 피하기 어렵다”는 문장과 함께 “외국 중국 용역업체” “북한과의 접촉 방법” “무엇을 내어줄 것이고 접촉 시 보안 대책은”이라는 메모가 적혀 있다. 수거 대상자들을 제거하려 ‘북풍’ 공작을 검토한 흔적들이다.
▷메모 작성 시기는 지난해 4월 총선 이전으로 짐작된다. 수첩 첫 장에 “총선 후 입법으로 집행하는 건 쉽지 않다. 실행 후 싹을 제거해 근원을 없앤다”는 문장이 있다. “여의도 봉쇄” “역행사에 대비해야 한다” “민주당 쪽” “9사단과 30사단” 등의 문구로 보아 국회의 계엄 해제 결의를 무력으로 진압하려는 계획도 세웠던 듯하다. “행사 후속 조치 사항”으로 “헌법, 법 개정” “3선 집권 구상 방안” “후계자는?”이 나온다. 메모 작성자 머릿속엔 ‘경고성 계엄’이 아니라 윤석열 대통령의 장기 집권용 비상계엄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수첩 속 메모는 휘갈겨 쓴 필체라 동일인이 썼는지 확인하기 어렵다는 게 필적 감정 결과다. 검찰은 메모 내용이 파편적이어서 해석의 여지가 있고, 수첩 주인이 작성 경위에 대해 입을 닫고 있다며 그의 공소장에 수첩 내용은 담지 않았다. 하지만 허튼 망상이라고 덮고 넘기기엔 체포 명단 작성과 국회 표결 무력화 등 실제 시도한 대목이 적지 않다. 누구 지시로 작성한 것일까. 유혈 친위 쿠데타 모의의 흔적이 ‘계엄의 설계도’였는지 규명할 필요가 있다.
-이진영 논설위원, 동아일보(25-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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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거짓말을 해도 부하들은 다 안다”
조성현 수도방위사령부 제1경비단장(대령)이 1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8차 변론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헌법재판소 제공12·3 비상계엄 당시 국회에 출동했던 조성현 수도방위사령부 제1경비단장이 13일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 재판에서 “이진우 수방사령관으로부터 국회의원을 끌어내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증언했다. 조 단장은 윤 대통령 측이 자신의 진술을 허위로 몰아가는 데 대해 “저는 의인이 아니다. 1경비단장으로서 제 부하의 지휘관이다. 제가 아무리 거짓말을 해도 부하들은 다 알기 때문에 일절 거짓말을 할 수 없고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도 말했다.
조 단장은 헌재가 직권으로 채택한 유일한 증인이다. 국회에 군을 투입한 행위가 윤 대통령 주장대로 ‘질서 유지’ 차원이었는지, 아니면 ‘입법부 무력화’를 위한 것이었는지 가려 비상계엄의 위헌·불법성을 판단하기 위해 헌재가 직접 부른 것이다. 그간 윤 대통령 측은 “의원 아닌 요원을 끌어내라고 했다”고 주장하고, 이 전 수방사령관은 형사재판을 이유로 입을 닫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현장 지휘관의 증언은 진실을 가리는 데 중요했다.
조 단장은 당시 지시 내용이 ‘국회 본청 내부로 들어가 의원을 끌어내라’는 것이었다고 명확히 증언했다. 나아가 조 단장은 그 같은 지시를 받고 이 전 사령관에게 다시 전화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역할도 아니고 단독으로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라며 재고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자칫 유혈 사태를 초래할 수 있었던 지시가 그대로 실행되지 않은 데엔 현장에 나간 군인들의 올바른 판단이 작용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일 것이다.
윤 대통령은 그간 ‘두 시간짜리 경고성 계엄’을 내세워 의원 끌어내기, 정치인 체포 같은 지시를 내린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의원을 끌어내라는 지시는 조 단장 증언대로 출동한 군인들이 모두 들은 내용이었다.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도 “전투통제실 마이크가 켜져 있어 모든 내용이 예하 전체 인원에게까지 라이브로 생방송이 돼 버렸다”고 밝힌 바 있다.
정치인 등 체포자 명단에 대해서도 윤 대통령 측은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 증언에 대한 신뢰성을 문제 삼으며 그 자체를 부정했다. 하지만 방첩사령관에게서 명단을 전달받았다는 사람은 홍 전 차장뿐 아니라 경찰청장과 방첩사 관계자도 있는데, 그 이름과 인원이 거의 일치한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도 ‘포고령 위반 우려 대상자’라며 사실상 인정했다.
윤 대통령은 자신을 향한 혐의들에 대해 “호수 위에 뜬 달 그림자” “뒷다리 잡는 이야기”라고 깎아내렸다. 그러면서도 자신에게 유리한 증언자에겐 “영어의 몸이 될 게 아니라 칭찬받아야 할 사람”이라며 이중적 태도를 보였다. 지시한 적 없다지만 지시받은 이들은 넘쳐난다. 아무리 감추고 부인하려 해도 계엄 그날 많은 이들이 듣고 본 진실을 가릴 수는 없다.
-동아일보(25-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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