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時事-萬物相]

[조선업 앞으로 20년 호황.. 청년들이여, 醫大 말고 바다로 가라] ....

뚝섬 2025. 4. 7. 10:28

[조선업 앞으로 20년 호황… 청년들이여, 醫大 말고 바다로 가라] 

[박정희의 '비전', 정주영의 '거북선'.. 트럼프가 탐낼 K조선 만들었다]

 

 

 

조선업 앞으로 20년 호황… 청년들이여, 醫大 말고 바다로 가라

 

[김윤덕이 만난 사람]

일등항해사 출신 '해양 대통령' 임기택 前 IMO 사무총장 

 

지난 1일 서울 여의도 해운빌딩에서 '세계 해양대통령'으로 불리는 임기택 IMO(국제해사기구) 전 사무총장이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임기택 IMO 명예사무총장은 퇴임 후에도 국내외를 오가며 해양 정책을 조언한다. 그는 “겸손해야 설득과 조정의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다”고 했다./남강호 기자

 

“위기는 늘 기회였다. 바다를 둘러싼 미·중 싸움이 치열하게 전개될 향후 10년은 대한민국이 해양 산업의 메카로 도약할 골든타임이다.”

 

대통령이 파면된 지난 4일, 임기택 전 IMO(국제해사기구) 사무총장은 “정치적 소용돌이로 잠시 흔들렸으나 세계 속 한국의 위상은 빠르게 제자리를 찾을 것”이라고 했다. 유엔 전문기구인 IMO(International Maritime Organization)는 전 세계 해운 산업의 국제 협약을 만들고 조정하는 컨트롤타워. 일등항해사에서 이른바 ‘해양 대통령’으로 불리는 IMO 사무총장직에 한국인 최초로 선출돼 8년간 연임한 임기택은, “지금은 서로를 바다처럼 품어줄 포용의 리더십이 절실한 때”라고 했다.

 

◇ 조정과 설득의 리더십

 

-IMF는 알아도 IMO는 생소하다.

 

“유엔 산하 15개 전문기구 중 하나로 런던에 본부가 있다. 전 세계 선박의 안전 기준과 항로 규칙, 인명 구조, 피해 보상 등 50개가 넘는 해운 관련 국제 협약을 만들고 관리하며 지속 가능한 해양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한다.”

 

-IMO 사무총장을 ‘바다의 대통령’이라고 부른다던데.

 

“상징일 뿐 특별한 권한은 없다. 다만 회원 175국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협력을 이끌어내야 하니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한 자리인 건 맞다.”

 

-8년을 연임해 화제였다.

 

“회원국 중엔 강대국도 있고 약소국도 있지만 차별 없이 공정한 소통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의 관점 차이를 좁히고 서로 연결하는 기능을 가장 중점적으로 했다.”

 

-기후변화부터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민감한 이슈가 한둘이 아니었을 텐데.

 

“국가별 친소 관계, 지정학적 관계에 따라 보통 7~8개 그룹이 다른 의견을 갖는다. 그룹을 대표하는 10여 국 리더들과 함께 집단 리더십을 실험했다. 이들이 먼저 토론한 뒤 자기 그룹의 국가들을 설득하고 조정하는 방식으로 합의를 이끌어냈다.”

 

-해운 산업계에 기후변화 대응 전략을 수립한 것이 최대 업적이라 들었다.

 

“2015년 유엔기후변화협약이 채택된 후 해운 산업 분야에서 만장일치로 합의된 첫 케이스였다. 선박의 탈탄소화, 탄소세 등 첨예한 쟁점이 많았지만 175국이 합의해 세계가 놀랐다.”

 

-조정과 설득의 노력이 어마어마했겠다.

 

“한국에서 살아남으면 유엔에서도 살아남는다(웃음). 한국의 복잡한 정치 환경과 역학 관계를 관찰하면서 배운 노하우가 큰 도움이 됐다.” 

 

대한민국이 조선업 강국으로 도약하는 발판을 만든 박정희 대통령(왼쪽)과 미중 해양패권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한국 조선업에 협력을 요청하고 있는 트럼프.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Midjourney

 

◇ 트럼프의 이유 있는 손짓

 

-미국과 중국의 해양 패권 경쟁이 치열하다.

 

미·중의 긴장과 대립은 우리에겐 기회다. 조선·항만·해운 분야에서 무섭게 성장하고 있는 중국에 대해 우위를 지킬 수 있는 시간을 벌기 때문이다. 중국과 미국의 지정학적 긴장이 계속될 향후 10년은 그래서 골든타임이다.”

 

-일본도 막강한 해양국인데.

 

일본은 90년대 초반까지 세계 상선대의 20%, 조선 능력의 30%를 가진 강국이었지만 이를 뒷받침할 해기사 양성에 실패하면서 패권을 잃어갔다. 일본 애니메이션 중에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총리, 사카모토 료마가 관방장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재무대신으로 설정된 작품을 봤다. 과거 영웅들이 그리울 만큼 일본 리더십이 원활히 작동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미국은 어쩌다 바다에서도 중국의 위협을 받게 됐나?

 

“제2차 대전 때 바다의 모든 수송로를 장악했던 미국은 자기를 넘볼 수 있는 나라가 없을 거라 자만했다. 세계 최대 수입국인 미국에 전 세계 배들이 물류를 수송하니 해운·상선을 발전시킬 필요성도 못 느꼈다. 1년에 수백 척씩 만들던 조선소가 문을 닫고 해운 인력이 급감했다. 중국은 달랐다. 마오쩌둥 이후 덩샤오핑을 거쳐 시진핑에 이르기까지 파격적인 해양 팽창 정책을 펼쳤다. 현재 중국의 군함은 380척으로 이미 미국(295척)을 추월했다. 1000톤 이상 국적 상선도 중국은 7000척인 데 비해 미국은 80척에 불과하다.”

 

-자국 상선(商船)의 규모가 안보에 왜 중요한가?

 

유사시 전략 물자 수송 능력은 국가의 존망을 좌우한다. 상선을 ‘제4군’이라 부르는 이유다. 코로나 시기 전 세계 수송망이 마비된 데 이어 곳곳에서 국지전이 일어나자 미국은 자국 상선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 얼마나 치명적인지 깨달았다.”

 

-그래서 트럼프가 한국에 조선업 협력을 요청한 건가?

 

작년 12월 미국 의원 4명이 초당적으로 해운조선부활법안(Ships for America Act)을 발의했다. 해운 산업을 재건하고 해기사 인력을 증대해 전략 물자의 수송망을 구축한다는 내용이다. 외국 조선소에서도 미국 군함을 지을 수 있도록 적극 검토하고 있다. 트럼프가 조선업 1위인 한국에 SOS를 친 배경이다.” 

 

경남 창원특례시 진해구에 자리한 케이조선 조선소 전경/ 조선일보DB

 

◇ 배를 지어도 운항할 선장이 없다?

 

-미국 군함을 완전체로 건조하는 게 아니라 수리·정비(MRO) 하는 수준에 머물러 돈도 못 벌고 배제될 거란 시각도 있더라.

 

우리가 하기 나름이다. 배의 품질, 기술, 경제성 모두에서 우위를 점하면 미국은 물론 유럽 국가들도 한국과 협업을 확대할 것이다.”

 

-현재 한국의 해운·조선·항만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세계 5위 해운국이다. 전 세계 선대의 4.2%를 차지한다. 특히 LNG 수송선 등 IMO 기후변화 전략에 맞는 새로운 선박의 수요로 조선업은 앞으로 20년 이상 호황을 맞을 것이다. 문제는 해기사(海技士)다. 항해사와 기관사를 포괄하는 해기사의 숫자가 심각할 정도로 부족하다.”

 

-배를 만들어도 운항할 사람이 없다는 뜻인가?

 

“보통 상선 한 척에 해기사 10명이 필요하다. 한국은 상선 1200척을 보유하고 있어 최소 1만2000명의 해기사가 필요한데, 현재 승선이 가능한 해기사는 6000여 명뿐이다.”

 

-외국인 해기사를 고용할 수는 없나?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각국마다 자국선과 자국 해기사 확보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미국은 해기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연방상선사관학교(킹스 포인트)와 6개 주립 해양대학에 대대적으로 입학 정원을 늘리는 계획을 세웠다. 중국은 대련 해사대와 상해 해사대 등 10여 개에 달하는 해양대학에서 매년 수천 명의 해기 전문 인력을 배출하고 있다.”

 

-우리는 한국해양대와 목포해양대가 있는데.

 

남북이 대치한 상황에서 해기사는 전시 제4군으로 육성돼야 한다. 내가 해양대학다닐 때만 해도 ROTC 군사훈련을 필수로 받았다. 해기사는 하이테크로도 무장해야 한다. 미래 선박이 자율운항·탈탄소·빅데이터 등 신기술로 급속히 진화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재 해양대학의 교육 시설과 장비는 턱없이 부실하고 낙후돼 있다. 혁신을 위해 해양대 두 곳이 연합해 정부의 ‘글로컬대학30’ 프로젝트에 지원했는데 연거푸 탈락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해양 산업에 대한 교육 당국의 인식 부족이 참으로 아쉽다.” 

 

1일 서울 여의도 해운빌딩에서 임기택 IMO(국제해사기구) 전 사무총장이 대형 벌크선 캄사르막스 모형을 들고 활짝 웃었다. 2025.04.01 /남강호 기자

 

◇ 마산항에서 헤엄치던 소년

 

-‘이순신의 나라’인데도 우리가 해양국이라는 생각은 잘 들지 않는다.

 

“문(文)을 숭상하는 유교 문화 때문이다. 서울에 집중된 엘리트와 인프라도 바다를 멀리 느끼게 한다. 지금도 ‘뱃놈’이란 멸칭을 쓰지 않나(웃음). 바다를 지배했던 영국은 상선대를 왕립상선해군(Royal Merchant Navy)이라 부른다.”

 

-바다를 알았던 두 지도자는 이승만과 박정희라고 한다.

 

“이승만은 대한민국을 대륙 세력에서 해양 세력으로 바꿔 놓은 대통령이다. 해양주권을 선포하고 독도를 지켜냈다. 박정희는 조선 강국의 기반을 닦았다. 세계적 조선 기술자였던 신동식을 미국에서 데려와 정주영으로 하여금 배를 만들게 했다. 현재 우리에게 그런 리더십이 있나? 남중국해에 이어 북극항로 개척이 전 세계 이슈로 떠올랐지만 우리는 어떤 전략을 세우고 있나? 머뭇거리기만 하면 중국에 따라잡히는 건 시간문제다.”

 

-딥시크의 충격이 크긴 했다.

 

미국을 움직이는 게 돈이라면, 중국은 굴기에 의한 애국으로 움직인다. 얼마 전 어느 중국 대학 부총장이 내게 초빙교수를 제안하려고 서울에 왔는데 아침에 와서 그날 밤에 가더라. 일해야 한다면서. 전투 태세가 느껴졌다(웃음).”

 

-그래도 트럼프의 미국을 넘기는 어렵지 않을까.

 

요즘 중국은 소프트 외교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아프리카·중남미와 손잡은 데 이어, 관세 전쟁으로 미국에 반감을 갖게 된 유럽 국가들까지 파고들고 있다. EU 국가들이 중국에 대해 갖고 있던 공포심, 거부감을 걷어낸 데에는 트럼프의 공이 크다(웃음).”

 

-트럼프는 어떤 사람인가?

 

“국제 무대에서 내가 관찰한 트럼프는 똑똑하고 생산적이며 실천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상대는 인정하는 사람으로 보였다. 제왕의 성정을 지닌 사람은 굽신거리는 이들을 업신여기고, 성냥개비 하나라도 빳빳이 세우고 오는 사람에겐 움찔한다. 트럼프는 승부사의 기질로 대응해야 한다.”

 

-현재 대선 후보군 중에 그런 자질을 갖춘 인물이 보이나?

 

“국내 정치인은 내가 잘 몰라서 말씀드리기 어렵다(웃음).”

 

-마산 바닷가에서 자랐더라.

 

“무역선 드나드는 마산항에서 헤엄치며 놀았다.”

 

-한국해양대에 진학했다.

 

“당시엔 SKY 대학보다 경쟁이 치열했다(웃음).”

 

-바다가 두렵지 않나.

 

“해군 중위 시절 고속정이 하얀 물줄기를 뿜으며 바다를 가를 때, 항해사 시절 태평양에서 만난 집채만한 파도가 수만 톤 무역선의 뱃머리를 때릴 때 어마어마한 희열을 느꼈다.”

 

-직업병 같은 게 있다면?

 

“앞이 콱 막힌 아파트에선 못 산다. 무조건 뚫려야 한다(웃음).”

 

-스무 살 청년들에게.

 

“의대 말고 바다로 가라! 바다에 우리의 미래가 있다.”

 

☞임기택

 

1956년 경남 마산 출생. 마산고, 한국해양대를 졸업한 뒤 연세대와 스웨덴 세계해사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해양대 졸업 후 6년간 항해사로 일하다 인천해운항만청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해양수산부 주영국 대사관 공사참사관, 국토해양부 중앙해양안전심판원장을 거쳐 부산항만공사 사장을 지낸 뒤 2016년부터 8년간 국제해사기구(IMO) 사무총장을 역임했다.

 

-김윤덕 선임기자, 조선일보(25-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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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의 '비전', 정주영의 '거북선'… 트럼프가 탐낼 K조선 만들었다

 

[노석조의 외설(外說·ExTalk)]
1970년 美는 차관 요청마저 외면
거북선 500원 지폐로 모래밭에 조선소를 지었다
2025년 K조선은 미국보다 강해
기술이 나라의 운명을 바꾼다
박정희와 트럼프의 시공을 초월한 만남 스토리
 

 

트럼프 당선 후 한국과 미국 정상간 소통은 지난해 11월 7일 윤석열 대통령과 12분간의 전화 통화가 처음이자 마지막입니다. 현재로서 유일한 이 통화에서 트럼프가 콕 집어 ‘SOS’ 친 것은 쉽빌딩(Shipbuilding), 즉 조선(造船)입니다.

 

“윤 대통령님, 나는 한국의 군함과 선박 건조 능력이 세계 최고인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선박 수출뿐만 아니라 MRO(Maintenance Repair Overhaul·유지 보수 정비) 분야에서도 한미가 긴밀하게 협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출처 :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발표자료)

 

첨단 기술 산업의 ‘쌀’이라 불리는 ‘반도체’도 아니고 굴뚝 산업의 표상 같은 ‘조선업’을 한미 전략 사업으로 트럼프가 먼저 제안했습니다. 뜻밖이었습니다.

 

◇조선 생태계 무너진 美, 세계 최고인 K조선

 

저는 지난해 미 대선이 한창일 때 최대 경합주인 펜실베이니아의 철강 도시 피츠버그, 필라델피아 등을 둘러볼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는데요, 그 때 느낀 낯설움은 잊혀지지 않습니다. 워싱턴 D.C.와 뉴욕 사이에 있고 할리우드 영화의 단골 배경인 펜실베이니아의 주요 도시는 생각보다 많이 허름했습니다. 괜히 러스트벨트(쇠락한 중공업 지역)라고 하는게 아니구나 싶었습니다.

 

철강 도시가 녹슬고 조선업이 무너지면서 미국은 현재 민간 선박은 물론 군함도 새로 건조할 수도, 고장 난 걸 제대로 수리 정비하지도 못하는 난감한 상황에 처해있습니다. 전략핵잠수함(SSBN), 항공모함 등 전략자산의 만들 첨단 기술력은 있지만 그걸 구현해낼 조선업 생태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지경이 됐습니다.

 

그 사이 ‘제조업 굴기’에 성공한 중국은 해군력을 빠르게 증강했습니다. 전투함의 경우는 보유수가 370척을 넘어서 280척인 미국을 앞질렀습니다. 트럼프는 이 같은 위기를 타개할 핵심 파트너로 영국이나 프랑스가 아닌 한국을 택한 것입니다. 종전 협상을 압박하기 위해 젤렌스키에게 “넌 카드가 없잖아”라고 면박을 주는 뉴욕 부동산 거부 출신의 트럼프가 마냥 한국이 좋아서 그랬을리는 만무합니다. 이유는 분명합니다. K조선이 ‘월드 클래스’이기 때문입니다. K조선과 손 잡으면 이득이라는 계산이 나온 것입니다.

 

◇K조선의 아버지 박정희, 직접 전문가 영입

 

세계 최고 기술의 K조선은 박정희 시대에 시작됐습니다. 그 때 씨를 심고 싹을 틔우고 키웠습니다. 이견이 없습니다. 작년 11월 트럼프가 조선 협력을 말하며 통화한 대상은 윤석열 대통령이었지만, 윤 대통령의 뒤에는 대통령 선배인 박정희도 있었던 셈입니다.

 

1945년 해방이 됐을 때 일본인들은 본국으로 철수하면서 큰 선박은 챙겨갔습니다. 남은 건 100t(톤) 이하의 작은 배뿐이었습니다. 그것마저도 고장 나면 일본에 끌고갔습니다. 고칠 기술이 없었습니다. 철강 조선은 꿈도 꾸기 어려웠습니다.

 

1950년 6·25전쟁이 터졌습니다. 이승만 대통령 시절엔 철강 조선업을 키워낼 형편이 안 됐습니다. 미국은 자칫하다간 한국이 북진 통일을 기도할 수 있다고 봐 군함 등 중장비 무기를 주거나 관련 기술을 이전하기를 꺼렸습니다.

 

군인 박정희는 1961년 5·16 군사 쿠데타로 집권하고선 조선 전문가를 찾았습니다. 삼면이 바다인 나라에서, 수출 아니면 먹고 살 길이 없는 처지에서 선박은 필수였습니다. 그는 직접 스카우트에 나섰습니다. 1965년 5월 린든 존슨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을 하기 위해 방미한 일정 가운데서도 짬을 내 인재 영입에 나섰습니다.

 

미선급협회(ABS)의 유일한 한국인 신동식 검사관을 호텔방으로 불러 독대했습니다.

 

“같이 조선을 키우고 나라 경제도 살립시다.”

 

신동식은 거절을 거듭하다 박정희의 계속된 설득에 진정성을 느껴 넉달 뒤 귀국길에 올랐다고 합니다. 박정희는 그를 극진히 대우했고, 3년 뒤인 1968년 청와대 경제2수석을 신설해 그를 앉혔습니다. 신동식 초대 경제2수석은 구두굽이 닳을 정도로 거제도를 오가며 K조선의 초석을 쌓았습니다.

 

박정희는 가발·신발 같은 경공업만으로는 경제 성장을 이루는데 한계가 있다고 봤습니다. 특히 남침을 호시탐탐 노리는 북한에 맞서기 위해선 경제와 국방이 동시에 튼튼해야 했습니다. 국력을 격상시키기 위해선 중화학공업이 필수였습니다. 기술과 자본, 그리고 노동 집약적인 중공업은 미래 지향적이고, 전기전자 등 또다른 성장의 발판이 되며, 무엇보다 농사 아니면 소상공의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국민에게 다른 차원의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었습니다.

 

◇불굴의 기업인 정주영도 포기했던 조선업

 

큰 일은 혼자할 수 없는 법. 박정희는 현대 정주영 회장에게 미션을 맡겼습니다. 이미 정주영은 1967년 현대차를 설립해 미 포드와 합작 파트너십을 맺었고, 1968년 현대건설로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착공해 2년 5개월만인 1970년 5월 완공해낸 불굴의 기업인이었습니다.

 

박정희는 정주영에게 이번에는 조선업을 일으켜보자고 했습니다. 사실 정주영은 건설과 자동차만 해도 족하고 버겁다 생각했다고 합니다. 불굴의 정주영도 조선업은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주위에 알아보니 포기하라는 조언뿐이었습니다. 그래도 그는 미국도 가보고 일본도 가보았습니다. 차관을 달라고 했지만, 이들은 콧방귀를 끼며 상대도 해주지 않았습니다. 지금와서 보면 그렇게 K조선을 외면했던 미국이 50년이 지난 지금은 K조선에 도움을 요청하는 입장 바뀐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미·일로부터 퇴짜를 맞은 정주영은 청와대를 찾아가 대통령에게 조선업은 못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정주영은 나중에 기지와 끈기로 조선업 신화를 쓰고 그것이 널리 퍼졌지만, 사실 이렇게 조선업에서는 자포자기했던 순간이 있었던 것입니다. 야당 정치인들의 결사 반대와 방해에도 경부고속도로를 최단기간 완벽하게 지었던 정주영이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싶습니다.

 

그러나 박정희는 정주영에 대한 기대를 놓지 않았습니다. 그는 엄포를 놓았습니다. 배석한 김학렬 부총리에게 큰 소리로 “정주영 회장이 앞으로 무슨 사업을 하든 도와주지 마시오”라고 했습니다. 정주영은 다시 도전하기로 했습니다. 그는 이번에는 영국으로 날아갔고, 그곳에서 그 유명한 ‘거북선 지폐’ 일화가 탄생했습니다.

 

조선소 건설의 성패는 외자 확보에 달려있었습니다. 그는 영국에서 바클레이은행과 4300만 달러에 이르는 차관 협상을 벌였습니다. 하지만 은행은 무엇을 믿고 빌려주냐, 조선 능력과 기술 수준이 너무 부족한 것 같다고 거절했습니다.

 

벼랑 끝에 몰렸습니다. 1971년 9월 정주영은 바클레이에 영향력을 행사할 인물을 찾아나섰고, 극적으로 선박 컨설턴트 회사 ‘애플도어’의 롱바텀 회장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설명을 한참 들은 롱바텀도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이 때 정주영은 지갑에서 이순신의 거북선 그림이 있는 500원짜리 지폐를 꺼내 보였습니다.

 

“우리는 1500년대에 이미 철갑선을 만들었습니다. 영국보다 300년이나 앞서 있었는데, 산업화가 늦어졌을뿐입니다.”

 

이 재치가 롱바텀의 마음을 움직여 추천서를 쓰게했고, 이걸 계기로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일이 하나둘 풀려 1972년 3월 23일 울산 미포만 백사장에서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기공식이 열렸습니다. 

 

1966년 발행된 500원권 지폐. 뒷면에 거북선이 그려져 있다. 박정희 대통령의 특명을 받은 정주영 현대 회장은 "기술도 없는 한국에 차관을 줄 수 없다"는 영국 애플도어사(社) 회장에게 이 지폐의 거북선 그림을 보여주는 기지로 설득에 성공했다. 거짓말 같은 실화고, 비즈니스 신화다. /아산 정주영 기념관 조선일보DB

 

◇3차 경제개발 계획 9년만에 조선 1위 오르다

 

정주영은 이날 “세계 조선사상 전례가 없는 최단 공기(工期), 최소 비용으로 최첨단 초대형 조선소와 2척의 유조선을 동시에 건설하겠다”고 외쳤습니다.

 

1974년 6월 28일,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준공식 겸 1, 2호선 명명식이 TV로 생중계됐습니다. K조선이 세계 무대에 데뷔하는 순간이었습니다. 현대중공업은 조선소 기공식을 가진 지 11년 만인 1983년 건조량 기준으로 조선부문 세계 1위 기업이 됐습니다. 거짓말 같은 실화입니다.

 

박정희가 1962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경공업, 1967년 제2차 개발로 새마을 운동과 공업 기틀 마련에 이어 1972년 제3차 개발에서 중공업·과학기술 육성을 내걸어 ‘조선 강국’ ‘해양 강국’을 선포한지 9년만의 쾌거였습니다.

 

◇기술력이 나라 운명 바꾼다

 

한달 전 출간된 외서가 있습니다. ‘세계 건설자들: 기술과 새로운 지정학(World Builders: Technology and the New Geopolitics)’이란 제목입니다. 저자는 포르투칼 고위 외교관 출신이자 저널리스트인 브루노 마새스입니다.

 

그는 책에서 첨단 기술 시대에는 지정학을 다시 해석돼야한다고 주장합니다. 과거엔 이념이나 지리적 요소로 국가간 연대와 협력 사업이 이뤄지는 등 국제 정치가 동맹 관계가 돌아 갔다면, 오늘날에는 첨단 기술력에 따라 국가간 이합집산이 이뤄진다는 것이죠.

 

그는 미중 패권 경쟁도 첨단 기술의 영토 싸움으로 해석했습니다. ‘세계 건설자들: 기술과 새로운 지정학’이란 외서를 읽으면서 ‘박정희와 트럼프의 만남’이란 제목의 뉴스레터를 쓸 영감을 얻었습니다.

 

트럼프와 작년 11월 통화한 대상은 2024년 한국 대통령이었지만, 그가 협력하려는 대상인 K조선의 뒤에는 50년 전 박정희가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K조선이 월드 클래스가 아니었다면, 트럼프가 당선 이틀만의 짧은 전화 통화에서 양국 제1 협력 사업으로 K조선을 찍으며 잘해보자고 했을까요.

 

대만이 TSMC 보유국이기 때문에 미국이 각별히 챙겨주는 것처럼 오늘날의 외교에서 첨단기술은 국가 운명을 바꿀만한 ‘결정적 변수’입니다.

 

며칠 전 디자인팀에 이런 뉴스레터 요지를 설명했더니 이 글 맨 위의 작품이 탄생했습니다. 박정희와 트럼프가 새빨간 쇳물과 철강 선박 사이로 마주 본 사진은 세계에서 유일할 듯합니다. 작품명은 ‘K선박으로 시공을 초월한 한미 정상의 만남’입니다.

 

-노석조 기자, 조선닷컴(25-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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