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 넘보는 中國夢, 우리 해군력 키워 맞서야 한다]
[콜럼버스와 달리, 中 정화는 왜 '빈손'이었나]
['베트남 통일 50주년'에 걸린 깃발]
[뜨거운 솥 위의 개미]
서해 넘보는 中國夢, 우리 해군력 키워 맞서야 한다
중국이 동북공정(東北工程)에 이어 서해공정(西海工程)을 시작했다. 고조선과 고구려를 자신의 영토라고 궤변을 늘어놓더니, 이젠 이어도를 자기 것이라 우기고, 서해마저 자신의 앞마당으로 만들려 하고 있다.
중국이 한국과 중국의 서해 EEZ(배타적경제수역)가 겹치는 한중 잠정 조치 수역에 철제 구조물을 설치한 것은 전형적인 해양 영토 확장을 위한 계획된 수법이다. 중국은 이런 꼼수로 남중국해에서 베트남·필리핀·인도네시아 등과 해양 영토 확장을 위해 갈등을 빚고 있다. 중국은 왜 만리장성의 벽을 허물고 바다로 진출하려 몸부림치고 있을까.
중국이 수입하는 원유 등 80% 이상은 바다를 통해 들어온다. 바닷길이 막히면 중국은 살 수 없다. 중국 지도자들은 덩샤오핑에서부터 장쩌민·후진타오·시진핑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꿈(中國夢)이 바다에 있음을 뼈저리게 느꼈다.
중국은 국방비 대부분을 해군력 건설에 투자하고 있다. 중국 항공모함과 핵잠수함, 신형 구축함 등이 남중국해를 넘어 태평양, 인도양 등으로 진출하고 있다. 중국의 작년 선박 건조량은 전 세계의 50%를 넘었다. 한국은 25%, 미국은 1% 미만이다. 중국은 또 막대한 경제력으로 전 세계 나라와 항만 사용권 체결, 남극·북극 항로 탐색, 무진장한 자원이 저장된 심해저 개발 등에 국가적 사활을 걸고 있다. 중국의 해양 강국화는 서해를 함께하는 우리에게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 서해는 중국 핵심 해역(vitalal sea area)이다. 중국 수출입 물량은 거의 모두 서해를 통과해야 한다. 중국은 서해의 제해권(制海權)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 중국은 한미 연합 훈련 시 미국 항모가 동해와 남해에서 훈련할 때는 아무 소리를 안 한다.
그러나 지난 천안함 폭침 이후 한미가 서해에서 미 항모가 참여하는 훈련을 하려 하자 강력히 반발하며 서해가 자국의 영해로 착각될 정도로 오만한 태도를 보였다. 중국에 서해가 그만큼 중요한 것이다.
대한민국의 동서남해는 모두 우리의 안보에 중요한 바다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해군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해역은 수도권 서측의 바다이다. 우리 해군이 서해 NLL(북방한계선)을 단 1㎝도 북에 양보할 수 없는 이유는 NLL이 무너지면 적이 서해를 통해 바로 수도 서울을 공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해는 국가 생존이 걸려 있는 바다다. 중국은 앞으로도 서해에서 주인 행세를 하려 할 것이다.
대한민국 정부는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 서해 잠정 조치 수역 내의 중국 철제 구조물 철거를 중국에 요청하고, 옮기지 않으면 우리도 맞대응 성격의 구조물을 설치해야 한다. 미적지근하게 넘어갈 사안이 아니다. 중국은 약자에게는 한없이 무자비하고, 강자에게는 함부로 못 하는 나라다.
정부가 중국에 저자세로 나가면 안 된다. 중국몽(中國夢)이 우리의 꿈이라며 아부하고 “셰셰” 하며 중국을 치켜세우면 안하무인(眼下無人)으로 대할 뿐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의 해군력을 증강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의 해군력으로는 중국이 이어도를, 일본이 독도를 자기 것이라고 하며 충돌할 경우 대응할 힘이 부족하다.
우리 해군력은 중국과 일본의 20~30%에 불과하다. 막강한 중국의 해군력 때문에 굳건한 한미 동맹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대한민국의 해군력만으로는 중국 해군에 대적할 수 없다. 대한민국의 강력한 해군력 건설과 굳건한 한미 동맹만이 중국의 서해 공정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다.
-윤연 前 해군작전사령관, 조선일보(25-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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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버스와 달리, 中 정화는 왜 '빈손'이었나
중국 명나라의 정화와 이탈리아 제노바의 콜럼버스를 비교해 보는 것은 흥미롭다. 정화는 1405년에 해외 원정을 시작했고, 콜럼버스는 그보다 87년 후인 1492년에 탐험을 시작했다.
정화는 300척의 배를 가지고 원정을 진행했으나, 콜럼버스는 3척의 배를 가지고 탐험을 시작했다. 선단의 규모에서 100배 차이다. 정화는 2만7000명의 선원을, 콜럼버스는 90명의 선원을 가지고 탐험을 했다. 선원 규모에서는 300배 차이가 난다. 정화는 120미터 길이 2000톤 규모의 대형 선박을 가지고, 콜럼버스는 19미터 길이의 산타마리아호를 타고 모험했다. 규모 면에서 정화의 함대가 콜럼버스의 함대를 압도한다. 대기업과 벤처기업의 차이 정도다.
그런데도 콜럼버스는 신대륙을 발견하여 역사의 흐름을 바꾸었지만, 정화는 30년 가까이 7차례의 탐험으로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까지 도달하였음에도 이후 역사에는 큰 영향을 끼친 바가 없다. 왜 그런 차이가 났을까?
가장 큰 이유는 콜럼버스는 망망대해 바다를 향해서 나갔고, 정화는 해안선을 따라서 항해했다는 점이다. 콜럼버스는 인도·중국·일본으로 갈 수 있는 새로운 항로를 발견하려는 목적으로 바다를 건넜지만, 정화는 그저 옆에 있는 나라를 조공국으로 만들기 위해서 안전하게 해안선을 따라서 항해하였다.
그런 이유로 콜럼버스는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했지만, 정화는 대단한 발견을 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왜 정화는 바다로 나갈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둘은 공간을 이해하는 방식이 달랐다. 두 사람 모두 해안선에서 배를 띄웠다. 하지만 정화는 해안선이 땅의 끝이라고 생각했고, 콜럼버스는 해안선은 새로운 바다라는 공간의 시작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왜 정화는 해안선을 새로운 시작으로 보지 않았을까? 그는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반면 콜럼버스는 자신은 변두리에 있다고 생각했다. 과거 인류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생각했었다. 온 우주가 지구를 중심으로 돈다고 생각했을 때는 과학 발달이 없었다. 하지만 훗날 태양이 중심이고 지구가 태양 주변을 도는 행성이라는 점을 인정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인류는 과학 문명을 이룰 수 있었다.
중국이라는 이름에서 느껴지듯이 중국은 자신이 가운데, 즉 중심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상태에서는 멀리 있는 것들은 중요하지 않다. 그러니 먼 곳을 탐험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중국은 이미 유럽에서 많은 상인이 찾아와서 물건을 사 가는 경험을 하였다. 하지만 동쪽으로 항해해서 자신이 직접 유럽에 갈 생각을 하지는 못했다. 자신이 중심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동쪽으로 항해를 했더라도 태평양의 폭은 대서양 폭의 5배나 되기 때문에 태평양을 건너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런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반면에 자신이 변두리라고 생각했던 이탈리아 제노바의 청년은 서쪽으로 항해해서 신대륙을 발견했다.
중국이 자신의 중심이라고 생각한 데는 지리적 이유가 크다. ‘지리의 힘’의 저자 팀 마샬에 의하면 중국은 해안선이 둥그런 모양이어서 중원에서 같은 거리를 가지게 되기 때문에, 중원을 차지하는 자가 해안선까지 장악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자리를 잡았을 것이다. 유럽은 세로 폭이 좁은 지중해를 사이에 두고 아프리카 대륙과 접하고 있으므로 바다 건너에 거대한 대륙이 있다는 경험을 했다.
그런데, 그 많은 유럽 사람 중에서 왜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을까? 우리는 그의 직업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콜럼버스는 유능한 지도 제작자였다. 유럽의 지도는 바다에서 배가 항해할 때 사용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그는 항상 땅뿐 아니라 바다도 생각했다. 지도를 만드는 사람은 공간을 파악하는 자이자, 자신의 위치가 어디인지 확인할 수 있는 객관적 정보를 추구하는 자다. 즉 주제 파악이 되는 메타인지가 잘되는 사람이었다는 말이다. 게다가 콜럼버스는 놀라운 의지의 사나이였다.
그는 이탈리아 제노바 출생이지만, 이탈리아에서 자신의 꿈을 지원해 줄 사람이 없자, 당시에 해양 강국이었던 포르투갈로 1480년에 이주했다. 그곳에서도 후원자를 찾지 못하자, 5년 후인 1485년에 스페인으로 옮겼다. 스페인에서 7년을 고생한 후에 1492년이 되어서야 후원자를 만나 최소한의 비용을 얻어 겨우 출항하게 된 것이다. 고향을 떠난 후 12년을 고생한 다음에야 꿈꾸던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탈리아 제노바의 청년이 스페인의 지원을 받아서 신대륙을 발견했다는 점이다. 이는 마치 베트남 사람이 우리나라에 와서 벤처기업을 세워서 네이버나 삼성전자 같은 기업을 만든 것이나 마찬가지다. 스페인이라는 나라가 얼마나 대단한 제국이었는지 새삼 느낄 수 있다.
콜럼버스의 모국인 이탈리아와 콜럼버스를 지원해 준 스페인의 공통점은 두 나라 모두 반도라는 점이다. 네덜란드와 영국도 대륙의 중심이 아닌 바다에 접한 면이 많은 작은 나라였다. 거대한 땅을 소유하지 못했던 반도나 섬의 국가들은 바다로 진출했다. 우리나라도 반도에 있다. 북한이 막고 있어서 지금은 섬나라에 가깝다.
우리는 더 넓은 공간에 진출할 생각을 해야 한다. 바다도 좋고, 북쪽으로 진출해도 좋다. 21세기에는 더 넓은 공간이 있다. 우주 공간도 있고, 인터넷 공간도 있다. 다행히 우리는 90년대에 초고속 인터넷망을 깔고 반도체 산업도 발전해서 인터넷 공간에서는 지금까지는 잘해 왔다. 싸이월드도 페이스북보다 5년 앞서서 만들었고, 아이팟이 나오기 전부터 MP3플레이어로 음악을 들었던 이유도 인터넷 공간으로 빨리 진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많은 부분에서 미국·중국·대만에 추월당했다. 관세 전쟁으로 무역 영토도 줄어들고 있다. 작은 나라일수록 우리는 더 큰 공간으로 확장해 나갈 궁리를 해야 한다. 지금의 공간에 안주하면 그 나라와 사회는 분열하고 결국 망한다. 우리의 지금 모습을 보라.
-유현준 홍익대 교수·건축가, 조선일보(25-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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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통일 50주년'에 걸린 깃발
지난 30일 베트남 호찌민은 이른 아침부터 축제 분위기로 달아올랐다. 국가권력 서열 1위 또럼 공산당 서기장 등 수뇌부와 외국 귀빈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건국 이래 최대 규모의 열병식이 열렸다. 1만3000여 명의 군인이 시가행진을 벌였고 화려한 문화 예술 공연도 진행됐다.
행사 이름은 ‘남부 해방 및 국가 통일 50주년 기념식’. 북베트남이 미군 철수로 군사 지원이 끊긴 남베트남을 공격해 1975년 4월 30일 남베트남 수도 사이공을 함락시키고 무력으로 병합한 지 꼭 반세기 되는 날을 맞아 진행한 승전 행사였다. 이후 사이공은 북베트남 공산 지도자의 이름을 딴 호찌민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베트남 전역에서 승전과 통일을 축하하는 각종 전시회·심포지엄·콘서트 등이 열리고 있다. 곳곳에는 붉은 바탕에 황금별이 있는 베트남 국기인 금성홍기(金星紅旗)가 펄럭이고 있다.
1975년 4월 30일 일어났던 일을 기념하는 행사는 미국에서도 열리고 있다. 그중 하나로 지난달 27일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 있는 군함 미드웨이호 기념관에서는 ‘프리퀀트 윈드 작전(Operation Frequent Wind) 50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사이공 함락 당시 수천 명의 남베트남 주민들을 군함에 태워 탈출시킨 미국의 베트남전 마지막 작전 반세기를 기리는 행사다.
미국에 정착한 베트남계 주민과 후손들이 주축이 돼 미군에 감사 인사를 전했고 베트남 민속 공연을 선보였다. 이런 성격의 행사가 미국 내 베트남계 거주 지역마다 진행됐다. 다만 행사장에는 금성홍기 대신에 노란 바탕에 가로로 세 개의 붉은 줄이 그어진 옛 남베트남 국기 황저삼선기(黃底三線旗)가 휘날렸다.
빨강과 노랑, 두 색깔로 그려진 깃발 중 하나는 주권 국가의 깃발이자 승리의 징표로 휘날렸고, 다른 하나는 망국의 설움을 달래는 상징으로 펄럭였다. 서로 총부리를 겨눴던 미국과 베트남은 올해로 수교 30주년을 맞았고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까지 격상되면서 남베트남의 흔적은 빠르게 지워지고 있다.
베트남전 종전 반세기가 그저 역사적 순간으로만 느껴지지 않는 건 현재 한국의 현실이 겹쳐 보여서다. 사이공 함락은 나라가 분열하고 부패하면 강대국의 지원이나 체제의 우월성 같은 건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줬다.
한국은 계엄·탄핵 사태로 5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정치적 혼돈 속에 새 권력 선출을 앞두고 있다. 그 사이 서해의 해양 주권을 훼손하려는 중국의 시도, 러시아에 파병돼 실전 경험을 쌓은 북한군 병사를 지켜봤다. 혈맹 미국은 모든 가치를 거래의 관점으로 보며 예전과 부쩍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런 겹겹의 안보 위기에 한국 사회의 정치적 분열은 전례 없는 수준이다. 우리가 반세기 전 남베트남전처럼 백척간두에 서 있는 건 아닌지 하는 불안함, 자칫하면 태극기가 황저삼선기처럼 될 수 있다는 조바심은 과한 것일까.
-정지섭 기자, 조선일보(25-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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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솥 위의 개미
용(龍)을 제 문화의 대표 상징으로 삼으니 이 전설 속의 동물은 아무래도 중국인에게는 으뜸이다. 그다음으로 잇는 동물도 여럿이다. 우선 호랑이(虎)가 있다. 둘을 이어 용호(龍虎)라고 하면 대단한 성어부터 떠오른다.
영화 제목으로도 잘 알려진 용쟁호투(龍爭虎鬪)나 용호상박(龍虎相搏) 등이다. 꼭대기에 있는 두 존재가 주도권을 손에 쥐기 위해 서로 싸우는 상황 등을 가리킨다. 숨어 있는 인재를 뜻하는 와호장룡(臥虎藏龍)도 비슷한 맥락이다.
용이나 호랑이 모두 대단한 인물을 지칭한다. 게다가 봉황새의 봉(鳳)까지 덧대면 더 그럴싸하다. 이른바 용호봉(龍虎鳳)이다. 권력과 존귀함의 용, 용맹과 힘의 호랑이, 아름다움과 행복의 봉황이다. 모두 중국인의 희구를 담은 상징이다.
거북이 또한 장수(長壽), 실재하지 않았던 기린(麒麟)은 상서로움을 뜻한다. 코끼리 또한 그 한자인 상(象)이 좋은 징조의 상(祥)과 같다고 해서, 박쥐는 한자 편복(蝙蝠)이 복(福)을 뜻한다고 해서 특별한 동물로 대우받는다.
그에 비하면 개미는 중국인에겐 참 보잘것없는 동물이다. 중국에서는 흔히 마의(螞蟻)라고 적는데, 기껏해야 은혜를 알아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곤충쯤의 대접이다. 그래서 개미가 등장하는 언어 풍경은 대개가 초라하다.
“펄펄 끓는 솥 위의 개미(熱鍋螞蟻)”라는 말은 지독하게 군색한 입장에 빠진 누군가를 지칭한다. 우리말 ‘허둥지둥하다’와 거의 동의어다. 그러나 중국의 그 개미가 큰 히트를 친 적이 있으니, 주인공이 바로 마윈(馬雲)의 ‘개미그룹(螞蟻集團)’이다.
민간이 일궜던 중국의 가장 대표적인 인터넷 상거래 업체다. 당국의 견제로 일선에서 물러났던 창업자 마윈이 최근에는 지배권을 완전히 잃었다고 한다. 잠깐의 개미들 시대가 덧없이 저물었음을 알린다. 뜨거운 솥 위에 올라선 중국 개미들의 행보가 또 어지럽다.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장, 조선일보(25-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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