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隨想錄]

[내 엄마이기 전에 당신도 꿈이 있었지요?]

뚝섬 2025. 5. 18. 05:25

내 엄마이기 전에 당신도 꿈이 있었지요?


어버이날 뒤늦은 통화
비로소 엄마를 이해했다
 

 

연극 '가을 소나타'의 한 장면. 딸(추상미·왼쪽)과 엄마(손숙)가 충돌할 때 과거의 상처와 고통이 드러난다. /신시컴퍼니

 

“엄마, 미안. 이제야 어버이날이라는 걸 알았네. 오늘 하루 종일 너무 바빴어.” 밤늦게 집에 돌아와서 소파에 구겨지듯 누워 있다가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시계를 흘끗 보니 밤 11시. “괜찮아, 밥 잘 챙겨 먹고 다니고.” 언제나 그렇듯 엄마는 길게 잔소리하는 법이 없다. 나도 곰살맞게 하루에 있었던 일을 읊어대지 않는다. 우리 사이의 짧은 침묵. “용돈 좀 보내드릴게요. 맛있는 거 사드세요. 집에 한번 갈게.” 또다시 짧은 침묵. “그래, 행복해라.” 그리고 엄마는 전화를 끊었다. 그날 밤, ‘행복해라’라는 엄마의 말이 가시처럼 목구멍에 걸려 내려갈 줄 몰랐다. 엄마는 가끔 외로워 보이고, 불행해 보였다. 이제 와 엄마 나이가 되어 돌이켜 보니, 엄마는 그랬다. 엄마의 외로움을 잠깐 엿보기도 했다. 담배를 깊게 물고 있다가 긴 한숨과 함께 연기를 내뱉는 엄마. 허공에 흩어지는 담배 연기를 바라보는 쓸쓸한 눈빛. 담배 피우는 엄마를 처음 본 게 언제였더라, 중학교 1학년 때였나.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현관문은 열려 있는데, 인기척 없는 집 안은 오후의 나른한 침묵 속에 잠겨 있었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평소처럼 “엄마!”라고 큰 소리로 부르는 대신 까치발을 하고 닫혀 있는 주방 미닫이 문 앞으로 다가갔다. 문을 열기도 전에 새어나오는 희미한 담배 냄새. “엄마?”

 

내 목소리에 엄마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우리는 그렇게 한참이나 서로를 바라봤다. 엄마는 싱크대에 물을 틀어 담뱃불을 껐다. 엄마의 뒷모습을 남겨두고 나는 아무 말 없이 돌아섰다. 그날 이후로 난, 엄마가 내게 들킨 외로움과 불행에 불안해졌고, 그저 침묵했다. 위로의 말을 건네기에는 내가 어렸다. 같은 나날들이 흘러갔다. 그리고 내가 외면했던 그 시간 뒤에, 이제는 늙은 엄마가 내 곁에 있다. 엄마는 얼마나 자주 그렇게 늦은 오후 텅 빈 집에서 혼자 담배를 피웠을까. 나는 모른다. 내 엄마이기 전에 한 여자로서 꿈꾸던 당신 삶의 모습들을, 나로 인해 바꿔야 했던 당신 삶의 계획들을.

 

엄마는 다정하지 않았다. 시시때때로 학교를 오가며 담임 선생님께 인사를 전하고, 비가 올 때면 우산을 들고 교문 앞에서 기다리는 법을 잊은 적도 없고, 학교에서 돌아오면 내어줄 간식들도 손수 만들어 식탁에 가지런히 올려 두었지만, 엄마는 어딘지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난 엄마가 엄마의 역할을 성실하게 하는 것에 감사했다. 그리고 우리에게 그 사건, 엄마의 담배 피우는 모습을 내가 엿본 뒤에는 서로에게 ‘예의’를 지키려 노력했다. 각자 맡은 바 주어진, 그러니까 엄마와 딸 역할을 한 치도 어긋남 없이 하려는 몸짓.

 

기억 속에서 엄마의 모습을 다시 뒤져본다. 담배 연기 피워 올리던 엄마의 뒷모습이 스쳐 지나간다. 그래, 엄마가 화장실 문을 열고 소변을 보는 소리. 사람의 오감은 늘 시각이 지배하지만, 이 청각의 기억은 끈질기다. 반쯤 열려 있는 문이 떠오르고, 엄마의 소변 보는 소리만 생생하게 떠오른다. 오래전에 본 연극 ‘가을 소나타’에서도 유독 이 장면이 기억난다. 7년 만에 딸 에바의 집을 방문한 엄마가 화장실 문을 열고 소변을 본다.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세계를 누비며 연주를 하던 ‘완벽한 피아니스트’가 아니라 그래도 ‘엄마’라고 부를 수 있는 순간. 딸 에바는 혼란스럽다. 이젠 나이가 들어 흐트러진 늙은 엄마의 모습에 연민을 느껴야 하는 걸까, 아니면 옛날처럼 마음대로 집을 비우고 또 마음대로 돌아와 가족을 지배하는 엄마의 한결같음을 미워해야 하는 걸까. 에바는 엄마를 모른다. 

 

월정사의 눈 내리는 밤 풍경. /월정사

 

“넌 내 딸인데 한 번도 쉬운 적이 없었어.” 언젠가 말다툼 끝에 돌아서며 중얼거리던 엄마의 말이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다. 엄마는 내 엄마로 산 삶이 행복했을까. 지난겨울, 엄마에게 ‘둘이 여행을 가자’고 청했다. 엄마가 좋아하는 평창 오대산 월정사로 차를 몰았다. 일주문으로 향하는 전나무 숲에는 눈이 하얗게 내려앉아 있었다. “엄마는 꿈이 뭐였어?” 엄마는 아무 말도 없이 눈을 밟으며 걸었다. 마당을 쓸고 계시는 스님을 향해 합장을 하고 나서 나를 돌아본 엄마의 눈빛은 조금 떨렸고, 참 오랜만에 미소를 지었다. “시인.”

 

나는 엄마가 피워 올리던 담배 연기와 한숨을 그제야 이해했다. 엄마는 침묵 속에서, 엄마가 할 수 있는 만큼 힘껏, 나를 사랑했다. 때론 더 좋은 엄마가 되지 못하는 게 아닐까 하는 자책감으로, 때론 당신의 꿈을 포기한 데 대한 아쉬움으로, 그 모든 감정이 그리는 그림자를 이해하게 되었다. 엄마 괜찮아, 엄마도 엄마는 처음 하는 거였어. 어느새 새벽빛이 밝아온다. 엄마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엄마, 내 엄마가 되어 줘서 고마워.”

 

-최여정 작가, 조선일보(25-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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