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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동맹, 시야는 넓게 방향 전환은 유연하게] ....

뚝섬 2025. 8. 4. 09:33

[한미 동맹, 시야는 넓게 방향 전환은 유연하게]

[한미동맹, 공동의 적이 모호해진다]

['평평한 세계'의 끝, 준비돼 있나?]

 

 

 

한미 동맹, 시야는 넓게 방향 전환은 유연하게

 

[朝鮮칼럼]

'동맹 현대화' 협의는 주한미군의 역할·책임을 對中 견제로 확대 조정
중·러 포괄한 확장 억제, 대만과 북한 이중 위기 등 안보 환경 변화에 대비해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7월 30일(현지 시각) 워싱턴DC 백악관에서 한국 정부 협상단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8월 중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주한미군 재조정과 한국 국방비 분담 증액이 쟁점이 될 것으로 알려졌다. /뉴스1

 

한미 정부는 주한 미군과 한국군의 역할과 책임을 재조정하는 ‘동맹 현대화’ 협의를 시작했다. 동맹 현대화’는 미국 트럼프 행정부에서 처음 나온 개념이라기보다는 워싱턴 정책 커뮤니티가 수년간 고민해 온 결과물이다. 중국의 패권 부상과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격동하는 세계 질서를 재편하는 과정에서 외부 안보 환경에 탄력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동맹의 개념과 관계를 재정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정책 전반에 걸친 근본적 재검토로 이어졌다.

 

트럼프 행정부의 국가 방위 전략은 본토 방어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을 억제하는 데 중점을 두고, 이를 위해 동맹국들이 자국의 방위 능력을 키워 역내 다른 위협에 맞서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하도록 지원할 것이라고 미 국방부는 밝혔다. 본토 방어 강화를 위해서는 골든 돔(Golden Dome·우주에 기반한 센서와 요격 시스템)을 추진한다. 인도·태평양 지역에서는 중국의 전례 없는 군사력 증강과 대만 유사 위기를 가장 큰 위협으로 보며, 국가 방위 전략도 이에 맞춰 우선순위를 정하고 효율성을 극대화하겠다는 것이다.

 

주한 미군은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으로 간주하고 역할도 ‘대중(對中) 견제’로 확대 조정하고자 한다. 한국의 방위비 책임 분담(burden sharing)을 늘려 한국군이 대북 억지에 주력할 수 있도록 미국은 핵심적이지만 제한적 수준에서 지원을 제공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동맹 현대화는 한미상호방위조약부터 전력 태세, 나아가 전작권까지 포괄하는 광범위하고 구조적인 사안을 지속적으로 논의하고 협의해야 하는 중장기적 작업이다. 한미 간 확장 억제 전략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선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동북아 안보 환경은 트럼프 1기 때와는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북러 군사 동맹과 중러 밀착을 토대로 북중러 연대가 강화되면서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은 지역 안보 차원이 아니라 글로벌한 위협이 됐다. 하지만 중국의 대만 침공 임박설에 집중하느라 북한 문제가 등한시되는 경향이 있다. 특히 대만 유사시 북한이 한반도에서 도발을 감행하는 경우도 가능성은 낮으나 고려해야 한다. 대만과 북한에서 ‘동시적 위기 상황(Simultaneous Contingency)’이 발생했을 때 미국의 군사력과 전략 자산이 분산돼 이중 위기에 대응하는 데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한국과 미국은 이런 시나리오를 전제로 전력 태세와 억제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한미 간 확장 억제는 한반도 비핵화라는 오랜 정책 목표 아래 북한의 남한 침공을 방지하는 데 초점을 두어 왔다. 그러나 북한은 이미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으므로 지금의 확장 억제는 더 이상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막는 장치라 보기 어렵다. 북한 관련 전문가들 사이에는 ‘한반도 비핵화에 도달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지 오래다. 특히 김정은이 2023년 12월 남북통일이라는 오랜 정책 목표가 실패했다고 선언하고 헌법 개정으로 대한민국을 ‘주적’으로 명시한 것은, 남한에 대한 정책 변화의 큰 변곡점이었다. 북한의 전략이 핵무기를 기반으로 한 위협과 강압에 초점을 맞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핵무기를 보유한 북한이 그 수를 계속 늘려가고 있다는 점에서 정책 목표는 북한의 핵무기 개발 억제가 아니라 ‘강제(compellence)’해야 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한미 간 확장 억제 전략 또한 변화한 환경에 맞춰 조정돼야 한다. 중국과 러시아가 더 이상 북한의 핵 개발이나 도발 행위를 억제하는 역할을 하지 않을뿐더러, 가상 자산 탈취 및 사이버 해킹도 암묵적으로 용인하는 태도를 보여 북한의 회색 지대 활동이 증가했다. 북한군의 우크라이나전 파병으로 북러 협력은 북한의 핵미사일 역량 개발, 첨단 무기 생산 체계 확립 등 군을 현대화할 기회로 이어졌다. 이런 변화 속에서 새로운 확장 억제 체계는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고립됐다는 전제를 버리고, 중국과 러시아까지 포괄하는 큰 방향으로 전환돼야 한다.

 

앞으로 한미 간 확장 억제의 초점은 세 가지다. 첫째, 북한의 핵 위협이 러시아와 협력함으로써 더 대담해질 가능성을 고려해 북한의 침략 및 핵 강압 행위 억제에 집중해야 한다. 둘째, 향후 중국은 한국이 동맹 현대화에 기반한 미국 군사작전 및 군사 태세에 적극 참여할 것으로 간주할 가능성이 높으므로, 중국의 군사적 공격 행위를 억제하는 데 방점을 둬야 한다. 셋째, 북한의 공격 혹은 핵 강압 행위에 대해 러시아가 물자·기술·외교로 지원하는 경우를 상정한 억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A More Flexible U.S.-ROK Alliance

 

-오미연 美 랜드연구소 한국 석좌 겸 국방안보선임연구원, 조선일보(25-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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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동맹, 공동의 적이 모호해진다

 

[김승련 칼럼]

글로벌 공공재 생산하던 美, 이젠 없다
‘동맹의 적’ 불분명한 것이 진짜 문제
트럼프도 對中 강경일변도 쉽지 않을 듯

 

1953년 체결된 뒤 우리 안보와 경제 발전에 버팀목이었던 한미동맹이 기로에 섰다. 미국은 “동맹의 현대화”를 추진하겠다고 했다. 모호한 외교적 수사인데, 한국에 선물같이 찾아왔던 한미동맹을 달라진 세상에 맞게, 정확히는 미국의 뜻대로 바꾸겠다는 것이 본질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동맹을 통해 한국이 무임승차했다고 믿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8월 첫 한미 정상회담 때 이 문제를 핵심 의제로 다룰 전망이다.

트럼프의 미국은 우리가 알던 미국이 아니다. 미국은 지난 1000년간 패권국 가운데 글로벌 공공재를 고안하고, 자기 돈 들여 유지한 유일한 나라다. 그런 미국이지만 이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떠안았던 글로벌 질서 유지 책무를 벗어던지고 있다. 나토 탈퇴를 거론하고 있고, 자신이 만든 국제무역 질서인 WTO 체제를 깼고, 유엔의 존재를 성가시게 여기고 있다.

미국은 이런 글로벌 공공재를 만든 뒤 반대급부를 챙긴 것도 사실이다. 자국 기업 이익을 챙겼고, 달러 발권국의 지위를 누렸다. 그럼에도 패권국이 굳이 모두를 위한 제도를 만든 것은 ‘우리는 인권 자유 민주주의 시장경제의 수호자인 특별한 나라’라는 독특한 믿음이 작용했다는 걸 부인하긴 어렵다.

 

역대 미 대통령들은 이런 질서 유지 책무를 운명처럼 받아들였다. 하지만 모든 걸 손익(損益)으로 치환하는 트럼프는 반대편 길을 걷고 있다. 징벌적 관세 부과로 자유무역 흐름에 제동을 걸었고, 기후변화협약과 유네스코 등에서 탈퇴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확인된 것처럼 ‘미국은 더 이상 유일 패권국이 아니다’라는 자각도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이런 트럼프가 한미동맹을 ‘돈 먹는 하마’로 보는 건 이상할 게 없다. 올봄 공개된 미 국방부 내부에서 회람된 지침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가정이 가능하다. 트럼프는 김정은과 3차례 만남을 통해 ①북핵 위협은 핵우산을 한국에 제공하면 통제 가능하고 ②북한의 탄도미사일 등 재래식 군사 위협은 한국과 일본이 손잡으면 막을 수 있다고 믿게 됐을 수 있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군 2만8500명은 엉뚱한 곳에서 힘을 쓰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고 ③대만처럼 더 민감한 방어에 투입한다는 정책 제안을 받았을 때 솔깃했을 수 있다.

국방부가 9월 이후 공식 발표할 ‘국방전략 잠정지침’의 초기 구상에는 한반도와 밀접한 ①②③ 구상이 담겨 있었다. 정신이 번쩍 들 수밖에 없다. ①은 당연한 일이지만, ②는 한반도 방위공약 약화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1950년 초 미국은 남한을 뺀 채 애치슨 라인을 긋는 바람에 북한의 오판을 재촉했다. 트럼프식 애치슨 라인이 2개 그어지는 것으로 비유하자면, 핵 애치슨 라인에는 한국이 포함되지만 재래식 애치슨 라인에는 한국이 포함되는지 불분명한 것 아닌가. 트럼프 요구처럼 ①은 주한미군 분담금 늘리고 ②는 우리 국방비를 국내총생산 대비 5%까지 늘리는 방식 등으로 풀어갈 수 있다.

동맹은 친구끼리가 아니라, 공동의 적을 가진 나라가 맺는 것이다. 극적인 사례가 나치 독일과 싸운 루스벨트의 미국과 스탈린의 소련이다. 상극 관계인 두 나라는 ‘연합국’의 이름으로 느슨한 동맹이 됐다가 종전 후 곧바로 적으로 돌아섰다.

북한을 상대로 강고했던 한미동맹은 안보 환경 변화로 느슨해질 여지가 생겼다. 우리 정부에 북한을 적으로 부르길 꺼리는 기류가 분명히 생겼고, 트럼프 역시 김정은과의 우정을 자랑하고 있다. 중국도 그렇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을 ‘전략적 경쟁자’로 불렀고, 바이든 행정부는 적국(foreign adversary)으로 묘사했다. 하지만 한국은 중국을 적으로 여기기 어렵다. 좌건 우건 마찬가지다. 이재명 대통령도 ‘셰셰’나 ‘외계인 침공’ 발언에서 알 수 있듯이 공개 발언은 매우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한미동맹이 흔들린다면 미국이 달라진 탓도 크지만 공동의 적이 모호해진 것이 더 본질적일 수 있다.

알려진 대로 ③은 한국엔 큰 리스크 요인이다. 한미 외교장관 회담 후 “동맹의 생각이 다 같을 순 없다”는 설명은 ③에 대한 설명일 것이다. 미국은 일본과 호주에 했듯이 우리에게도 “대만서 미중 충돌 때 한국은 뭘 할 거냐”를 물었을 수 있는데, 선뜻 답을 내놓기 어렵다.

미국은 중국과 관세 협상을 매듭짓지 못하고 11월까지 3개월 유예했다. 미국의 압박에 중국이 호락호락하지 않았다는 방증이고, 이런 기류라면 미 국방부가 9월쯤 국방전략(NDS) 보고서를 발표할 때 대만과 관련한 군사적 대응을 대놓고 거론하기 쉽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쩌면 관세 타결과 미 정부의 의견 일치가 먼저 이뤄져야 하는 만큼 이재명 정부는 시간을 조금 더 벌게 될 수 있다.

-김승련 논설실장, 동아일보(25-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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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평한 세계'의 끝, 준비돼 있나?

 

[특파원 리포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미·중 패권 경쟁,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국제 정치’가 한때 '평평했던' 세상에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왼쪽부터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 푸틴 러시아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미국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1992년 저서 ‘역사의 종말’에서 자유민주주의가 인류 최종의 정치 체제가 될 것이라고 했다. 민주주의와 자유로운 시장, 개방경제가 결국 세계를 한 방향으로 이끌 것이라는 예언이었다. 그 10여 년 뒤인 2005년, 미국 언론인 토머스 프리드먼은 ‘세계는 평평하다’라는 책과 칼럼에서 후쿠야마의 낙관이 현실화하고 있음을 방증했다. 기술 혁신과 활발해진 글로벌 분업으로 국경은 허물어지고, 경쟁의 장은 평탄해졌다며 인류가 역사상 처음으로 같은 경기장에서 달리는 시대를 맞이했다고 했다. ‘평평한 세계’라는 표현은 단순한 비유가 아닌, 새로운 세계 질서의 요약이었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프리드먼이 본 세계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미·중 패권 경쟁,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국제 정치’에 허물어졌다. 당시 프리드먼이 제시한 ‘10대 평탄화 요인’ 중 지금도 유효한 것은 별로 없다. 베를린 장벽 붕괴는 나토와 중·러의 새로운 장벽으로 대체됐다. 정보 평등의 상징이었던 인터넷은 거짓과 혐오를 퍼뜨리는 도구로도 악용되는 모습이다. 아웃소싱·오프쇼어링은 리쇼어링(reshoring)과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으로 대체됐고, 디지털 혁명을 이끈 오픈 소스의 이념도 기술의 주권화·무기화 흐름 속에서 “모든 기술은 전략물자”라는 개념으로 바뀌고 있다.

 

한때 평평하던 세상은 이제 크고 높은 산맥과 낭떠러지로 울퉁불퉁해지고 있다. 많은 유럽 정치인이 이 ’지각 변동’을 바라보면서 “100여 년 전 겪은 세계사적 패턴이 반복되는 게 아니냐”고 불안해한다. 대여섯 가지 유사점이 지적된다. 글로벌화가 절정을 찍고 붕괴하고, 신흥 패권국이 부상해 구(舊) 질서에 도전한다. 기존 동맹은 구조적 불안에 약화하고, 지정학적 충돌이 세계 곳곳에서 고조된다. 보호주의 무역이 확산하고, 기술과 안보가 결합하며, 진보와 자유주의에 대한 믿음도 흔들린다. 20세기 초 그 결과는 경제 공황과 세계 대전이었다.

 

경제사학자 애덤 투즈도 “오늘 우리의 상황은 20세기 초 유럽과 너무나 닮았다”고 경고한다. 후쿠야마가 조망한 인류 역사는 해피 엔딩은커녕, 반복되는 위기의 한가운데로 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광복 80주년을 맞은 한국에는 120여 년 전보다 더 아슬아슬한 상황일 수 있다. 아시아 변방의 최약소국에 불과하던 나라가 ‘평평한 세계’를 거치며 세계적 리더 국가로 변모했기 때문이다. 잃을 게 많아졌다는 의미, 더 이상 ‘수동적 약자’가 아닌 무게 있는 행위자로서 ‘강자의 게임’에 뛰어들어야 할 위험이 커졌다는 의미다. 이 나라 정치인들과 외교관들이 마음의 준비가 돼 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파리=정철환 특파원, 조선일보(25-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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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새로운 미래” 다짐했던 이시바, 퇴진 압박에 戰後 80년 담화 안 낼 듯. 참 마음대로 안 되는 게 한일 관계.

 

-팔면봉, 조선일보(25-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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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권 대립·곳곳서 커지는 갈등… 세계는 1차대전 직전과 닮았다

 

인구수 獨에 밀린 佛은 러와 협력
고립 위기 느낀 독일도 세력 형성
전쟁이 척박한 사회 바꿀 거라 착각
 

 

평화를 끝낸 전쟁

마거릿 맥밀런 지음 | 허승철 옮김 | 책과함께

 

A국(國)은 오래도록 세계의 패권을 쥐고 있는 강대국이다. 늘 여러 나라의 일에 간섭하고 자기 뜻대로 흔들려 하며, 약소국의 두려움과 우려에는 무감각한 편이다. 여기에 맞서 새로 부상하는 강대국 B국이 있다. 독재 정치를 유지하고 있지만 영토가 넓고 인구가 많은 데다 산업과 군사력이 빠른 속도로 성장해 A국을 위협한다.

 

A국에서는 “이젠 우리 아이들이 유치원에서 쓰는 장난감이나 인형조차 죄다 B국산(産)”이라 투덜거리며 걱정하지만, 정작 B국은 신장된 국력에 맞는 대접을 충분히 받지 못한다는 불만에 차 있다. 세계 여러 곳에서 민족주의가 발흥하고 작지 않은 규모의 국지전이 벌어지며, 각국의 이해관계가 어긋나는 가운데 ‘기존 강국’ A국과 ‘신흥 강국’ B국의 대규모 군사적 충돌 가능성은 점차 높아진다.

 

A국과 B국의 정체는 무엇일까. ‘현재 미국과 중국의 상황을 묘사한 게 아니냐’고 할 사람이 많겠지만, 사실 이것은 20세기 초 제1차 세계대전(1914~1918) 직전의 유럽 상황이다. 여기서 A국은 영국, B국은 독일이었다. 

1909년 9월 독일 뷔르츠부르크에서 독일 황제 빌헬름 2세(오른쪽에서 둘째)가 영국 정치인 윈스턴 처칠(맨 오른쪽·당시 35세)에게 군사 훈련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제1차 세계대전 직전 독일은 한때 영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자 했으나, 독일의 군사력 강화를 영국이 우려한 결과 다른 진영으로 갈라졌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캐나다 출신의 저명한 영국 역사학자 마거릿 맥밀런이 2013년에 쓴 이 책(원제 The War That Ended Peace)의 부제는 ‘1914년으로 가는 길(The Road to 1914)’이다. 산업혁명과 기술 혁신, 식민지 확장을 통해 부(富)를 쌓았으며 예술의 황금 시대로서 눈부신 번영을 구가하던 20세기 초의 화려한 유럽이, 게다가 나폴레옹 전쟁 이후 한 세기 가까이 대규모 전쟁이 발발하지 않았던 유럽이, 도대체 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대전쟁으로 치닫게 됐는가? 맥밀런은 다소 냉소적인 문체로 당시의 거미줄 같은 국제 정치와 각국 인간 군상의 유대 관계를 세밀화처럼 복원해 낸다. 이를 위해 정치·외교·군사·문화사(史)의 온갖 자료가 동원된다.

 

먼저 대형 체스 게임과도 같은 외교 시스템의 재편이 있었다. 인구 경쟁에서 독일에 밀리던 프랑스는 러시아와 손을 잡았고, 러시아는 프랑스의 자본과 기술로써 산업화와 군사력 강화에 나섰다. 유럽 한가운데서 포위·고립됐다고 느낀 독일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유대를 강화하고 이탈리아까지 끌어들였다. 이렇게 ‘3국 동맹’이 형성됐다. 독일의 해군력 신장에 위협을 느낀 영국은 유럽 대륙 문제에서 초연하려던 정책을 접고 프랑스와 협상을 맺었으며 뒤이어 영·불·러의 ‘3국 협상’이 이뤄졌다. 이렇게 유럽은 두 세계로 나뉘었다.

 

모로코 등에서 대규모 전쟁 위기가 여러 차례 발생했으나 그때마다 유럽 전체를 뒤덮는 전화(戰火)만큼은 가까스로 벗어나는 듯했다. 하지만 유럽인들의 마음속엔 ‘세계가 이제 진보 대신 퇴보하면 어떡하지?’ ‘전쟁이 이 척박한 사회를 한번 정화(淨化)해 주지는 않을까?’란 생각이 자리 잡았다. 각국은 위기 시 정치인의 결정 여지를 줄이고 대응 시간을 단축하는 비상 계획을 수립했다. 전쟁은 점점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방아쇠’는 발칸 반도였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남슬라브계 주민 문제로 새로 독립한 세르비아와 이해관계가 충돌했고, 세르비아 청년 프린치프가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를 저격하면서 1차대전이 발발했다. 6500만명이 참전해 4000만명에 가까운 사상자를 내는 참상이 빚어졌다. 세계는 전쟁 이전과 달라졌다.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 러시아, 오스만의 네 제국(帝國)이 무너졌고 파시즘과 공산주의가 태동했으며 도시와 농촌, 남성과 여성의 관계를 비롯한 사회 질서가 바뀌었다.

 

저자는 “1차대전을 초래한 사람들은 두 가지 잘못을 저질렀다”고 말한다. 전쟁이 얼마나 파괴적으로 치달을지 상상하지 못했고, 전쟁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당당히 맞설 용기가 부족했다는 것이다. ‘끝내 대전쟁을 막을 해결책을 찾아내 평화가 유지될 것’이라는 안이한 생각은 마지막 순간에 철저히 깨졌다. 전쟁은 피할 수 없는 것이 아니며, 피하려는 노력이 없을 때 일어나는 것이 전쟁이라는 것이다.

 

역자는 주(駐)우크라이나 대사를 지낸 허승철 고려대 명예교수로, ‘옮긴이의 말’에서 “1차대전 직전처럼 유럽에 더 이상 전쟁이 없다는 최근의 안이한 환상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깨졌다”고 경고했다.

 

-유석재 역사문화전문기자, 조선일보(25-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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