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이 사라진 광복절]
[‘쇼’는 끝내고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때]
이승만이 사라진 광복절

2023년 3월 1일 서울 유관순기념관에서 열린 제104주년 3·1절 기념식에 윤석열 대통령이 김영관 애국지사와 손을 잡고 입장하고 있다. 윤 대통령 뒤에 걸려 있는 현수막에는 김구·안중근·유관순 등 독립운동가의 얼굴 사진이 들어가 있다. 그러나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을 지낸 이승만 전 대통령 사진은 없어 논란이 일었다. /연합뉴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22회에서, 주인공인 한국계 전 미군 장교 유진 초이(이병헌)는 유학을 온 듯한 한국 청년(박정민)을 뉴욕 거리에서 마주친다. 1907년 고종이 퇴위하던 시점인데, 그 청년은 대학 캠퍼스로 가는 길을 묻는다. ‘혹시 곧 프린스턴대 박사과정에 들어갈 이승만인가’ 싶었지만 청년은 자신을 안창호라고 소개했다.
1902년 도미한 안창호는 캘리포니아에서 활동하다가 1907년에는 귀국했으니 이 장면은 역사와 맞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제작진으로서는 논란을 피할 셈이었겠구나.’ 청년 이승만이 ‘구국에 뜻을 둔 개화파 인사’라는 긍정적인 모습으로 등장하는 드라마는 1984년 KBS ‘독립문’ 이후엔 없었던 것 같다.
80주년 광복절에 ‘우리 독립운동가들을 되새기자’는 열풍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안중근과 유관순, 윤봉길과 김구를 요즘 사람들 모습처럼 AI로 재생한 동영상을 수백만 명이 조회한다. 한 10년 전부터 광복절마다 ‘독립운동가 선양’ 콘텐츠를 유심히 봐 왔다. 이승만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어느새 ‘금기’처럼 돼 버린 이승만은 독립운동가가 아니라 권력자일 뿐이었을까. 이시영, 이범석, 신익희, 지청천처럼 대한민국 정부 인사가 된 임정 출신 인사들도 잊히기는 마찬가지 같다. 혹시 어떤 의지가 반영되기라도 한 걸까.
요즘 일각에서 이상한 논리가 보인다. ‘우리 독립운동가들은 정말 독립이 될 줄 알고 독립운동을 한 것이 아니라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 그런 것’이라는 얘기다. 사실이 아니다. 일제의 식민 지배를 거부하고 독립운동을 했기 때문에 1943년 11월 미·영·중 정상이 모인 카이로 회담에서 연합국으로부터 한국의 독립을 보장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종래 김구와 임시정부가 중국의 장제스를 움직인 결과라고 봤으나, 최근에는 이승만이 미주에서 벌인 끈질긴 외교 독립운동 노선이 미국의 루스벨트를 설득한 공헌도 그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해방 직후 서울에서 좌익 주도로 조직된 ‘인민공화국’조차 주석으로 추대할 정도로 이승만은 독립운동의 거인이었다.
나아가 이승만은 1940년대 말 이미 유라시아 대륙 대부분을 장악한 공산주의 영역에서 한반도 남쪽을 끝까지 지켜냈다. 스탈린 연구의 권위자인 스티븐 코트킨 미 프린스턴대 명예교수는 최근 “이승만이 미국의 지원을 끌어내 남한의 안전을 보장한 ‘빅 픽처’를 실현한 것은 국내의 여러 정치적 실패를 넘어서는 큰 업적”이라고 평가했다.
최소한 우리가 이승만이 다져 놓은 자유민주주의와 한미상호방위조약의 터전에서 오랜 세월 번영을 이루며 두 발 뻗고 잘 수 있었다는 사실만큼은 부인할 수 없다. 올해는 이승만이 초대 대통령인 대한민국 수립 77주년이자 이승만 탄생 150주년, 서거 60주기이기도 하다.
-유석재 역사문화전문기자, 조선일보(25-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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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는 끝내고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때
현실 바로잡아야 할 때 ‘쇼’ 벌이면 부적절
‘커피 산책’도, 金여사 띄우기도 결국 뭇매
8·15에 ‘국민 임명식’ 과연 필요한 쇼인가
정치에선 실질 성과 있다면 쇼 없이도 박수
1990년대에 큰 인기를 끌었던 김원준이라는 가수의 히트곡 중에 ‘쇼’라는 노래가 있다. ‘쇼, 끝은 없는 거야’라는 노랫말로 시작되는 그 곡을 떠올리면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흥겨운 멜로디가 머릿속에서 재생된다. 비슷한 시기 일본에선 보이그룹 ‘스마프(SMAP)’가 최고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자니 기타가와라는 프로듀서가 설립한 연예기획사 ‘자니스’에서 배출한 그룹인데, 기타가와 사망 뒤 그의 성범죄가 널리 세상에 알려졌다. 2023년 9월 자니스는 기타가와의 범죄를 인정하고 사죄하는 회견을 했다. 그 직후, 스마프의 인기 멤버인 기무라 다쿠야가 인스타그램에 “쇼는 계속돼야 한다”는 글을 남겼다가 맹렬한 비난을 받았다.
기무라의 ‘쇼’에 관한 뉴스를 들었을 때 김원준의 노래 ‘쇼’가 떠올랐다. 둘 다 ‘쇼는 계속돼야 한다’고 외치는데, 김원준의 ‘쇼’와 달리 기무라의 ‘쇼’는 기분을 망칠 뿐이었다. 왜 그럴까? 쇼를 멈추고 현실을 바로잡아야 할 때 쇼를 계속하자고 외쳤기 때문이다.
정치에서도 자주 쇼를 본다. 문재인 정부 초기에 커피를 들고 산책하는 대통령과 비서진의 사진이 일간지 1면을 장식했다. 사진은 권위주의 시대, 소통 부재의 시대가 끝나고 유쾌한 소통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대통령 지지율이 80%를 넘던 시절이라 관련 댓글도 대부분 우호적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 사진을 보고 긍정적인 평가를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당시 청와대에는 천재적인 공연기획자가 있었고, 많은 사진과 영상이 실제로는 기획된 것이었다는 게 알려졌다. 공도 있고 과도 있었지만, 비교적 무난하게 끝난 정권이다. 하지만 많은 부분 기획된 쇼가 있었다는 게, 점수를 깎아먹는 요인이 됐다. 5월의 신록이 찬란한 청와대를 배경으로 한 그 멋진 사진이 지금은 오히려 서글퍼 보인다.
윤석열 전 대통령 시대의 사진은 더 서글프다. 왜 그렇게 대통령 부인을 띄우는 쇼를 했을까. 더욱 민망한 것은 그 쇼의 기획자에게는 재능이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 능력에 넘치는 쇼를 벌이기보다 후보 시절 약속했던 대로 영부인으로서 조용히 내조에 전념했다면 훨씬 더 나았을 텐데. 그런 점에서 이재명 대통령 부인인 김혜경 여사의 조용한 처신이 현명해 보인다.
그렇다고 지금 정권이 어설픈 쇼를 포기한 건 아니다. 7월 이 대통령과 김민석 국무총리는 일반에 공개된 소셜미디어를 통해 업무를 협의했다. 국민이 긴급히 알아야 하는 업무도 아니었기에 뜬금없었다. 누구의 아이디어인지는 모르겠는데, 기획 능력이 부족해 보인다.
이게 과연 필요한가 싶은 쇼도 있다. 이달 15일 광복절 저녁에 열리는 ‘국민 임명식’이 그렇다. 당일 오전 진행되는 경축식은 광복 80주년을 맞는 뜻깊은 자리다. 그런데 같은 날 저녁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축제를 연다는데, 그 축제의 중심이 ‘국민 임명식’이란 이름의 대통령 취임식이다. 행사 전이라 섣불리 말할 수 없지만, 광복절의 주인공으로 대통령을 내세우는 행사라면 기분 좋게 볼 수만은 없을 것 같다. 김원준의 ‘쇼’는 평범한 사람들을 향해 “당신의 하루는 당신이 주인공인 쇼”라고 외치기 때문에 우리를 설레게 했다.
정말 하지 않았으면 싶은 쇼도 있다. ‘민생회복 소비쿠폰 사연 공모전’이다. 1970년대도 아니고 2025년에 정부 주최의 사연 공모전이라니. 지지자들로부터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찬사를 얻는 것 외에 이 공모전에서 얻을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너무 촌스러워 손발이 오그라드는 기획이다. 우리 경제에 미치는 소비쿠폰의 긍정적 효과가 쿠폰에 든 비용보다 크다면, 그 때 가서 이 사업의 성공을 대대적으로 홍보해도 된다. 박수를 미리 쳤는데 현실이 초라하면 이 쇼는 참가자들에게 또 얼마나 서글픈 기억으로 남을 것인가.
최근 이 대통령이 산업재해 방지를 위해 많이 애쓰고 있는 것이 보인다. 임기 동안 산업재해율이 떨어지고 노동자들이 보다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다면, 특별히 쇼를 기획하지 않아도 대통령에게 박수가 쏟아질 것이다. 이 밖에도 우리 사회에는 하나씩 해결해야 할 난제가 첩첩이다. BTS와 블랙핑크를 가진 나라에서 정치가는 멋진 쇼로 국민을 기쁘게 해야 한다는 부담을 가질 필요가 없다. 김원준이 노래하는 쇼, 끝이 없는 유쾌한 쇼는 그들에게 맡기고, 정치는 현실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자.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동아일보(25-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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