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팅하우스는 母회사 도시바까지 망하게 한 기업]
['K원전 자부심'과 불편한 진실]
[젠슨 황도 걱정하는 전력난… ‘뉴노멀’이 된 원전 회귀]
웨스팅하우스는 母회사 도시바까지 망하게 한 기업
30년 원전 건설 공백으로 시공 능력 부실화
원전 짓다가 비용 초과로 파산.. 툭하면 주인 바뀌어
원천 기술 갖고 있다지만 신뢰할 만한 합작 대상인지

현대건설과 웨스팅하우스가 공동으로 추진하는 대형원전 AP1000® 조감도./ 현대건설 제공
한수원과 웨스팅하우스의 지난 1월 계약 내용은 한수원이 과하게 양보했다는 지적을 받을 수밖에 없다. ‘원전 1기마다 로열티 2400억원, 설비 9000억원 구매’도 그렇지만 원전 건설붐이 달아오르고 있는 유럽 시장 포기 각서를 써준 것도 납득이 안 간다.
우리 원자력 업계는 그간 기술 자립을 이뤘다고 설명해 왔다. 그러나 웨스팅하우스는 한국이 자기네 원천 기술을 갖다 쓴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때 원천 기술이란 특허와는 다른 개념으로 일종의 지식재산권이라고 한다. 우리 원전은 웨스팅하우스 원전을 모델로 했기 때문에 형태부터 같은 요소가 있을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한국 원자로에 들어가는 연료봉 길이는 381cm이다. 웨스팅하우스의 과거 표준 노형 연료봉 길이(150인치)와 같다. 다르게 디자인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려면 복잡한 파생적 수정과 검증 테스트가 필요했기 때문에 웨스팅하우스의 디자인 기본 계수를 채택한 것이다. 웨스팅하우스는 “380cm도, 385cm도 아니고 왜 하필 381cm인가”라고 파고들었다. 그런 사소한 요소들이 한수원 목덜미를 잡았다.
세계 원전 절반이 웨스팅하우스 브랜드다. 그만큼 존재감이 막강한 기업이다. 그런 웨스팅하우스의 주인이 지난 26년 사이 세 번이나 바뀌었다. 경영 측면에선 거의 불량 기업 수준이다. 웨스팅하우스는 1999년 원자력 부문을 떼내 영국 국영 핵연료공사(BNFL)에 11억달러에 팔았다. 2006년엔 일본 도시바가 BNFL에 54억달러를 주고 인수했다. 당시 시장 평가의 두 배 이상 금액이었다. 한국의 두산중공업(현 두산에너빌리티)도 인수전에 뛰어들었지만 역부족이었다.
지금 와서 보면 두산중공업이 도시바의 고액 베팅에 밀린 것은 큰 다행이었다. 웨스팅하우스는 2009년 조지아주 보글 원전 3·4호기,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서머 원전 2·3호기 등 원전 네 기 건설에 착수했다. 원자로는 신형 3+ 세대 AP1000 노형이었다. 미국에선 스리마일 사고(1979년) 이후 30년간 신규 원전 건설이 끊겨 부품 공급 생태계가 해체됐고, 숙련 인력도 고갈된 상태였다. 게다가 신규 설계를 처음 적용하는 초(初)호기라서 시행 착오가 속출했다. 건설 도중엔 후쿠시마 사고(2011년)가 터졌다.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는 상업 항공기의 직격 충돌 또는 초강력 지진에도 견딜 수 있게 설계를 바꾸라고 요구해 격납 용기를 완전 재설계해야 했다. 그것이 12번째 설계 변경이었다고 한다. 그때마다 작업 일정이 중단되거나 뒤틀려 장비와 인력의 시간 손실이 컸다.
원전 사업은 리스크가 커서 조달 자금의 이자율이 9% 선이다. 건설이 지연되면 재정에 큰 부담이 된다. 당초 보글 원전은 2016~17년, 서머 원전은 2017~18년 완공 목표였다. 그러나 보글은 2023~24년에야 상업 발전을 시작할 수 있었다. 원전 건설비 중 금융 비용이 보통 15~20% 정도인데 보글 원전은 50% 선이었다고 한다. 서머 원전은 2018년 공사 진도 40%에서 건설을 포기했다.
웨스팅하우스는 2017년 2월 파산 보호 신청을 해야 했다. 결국 2018년 캐나다 사모펀드 브룩필드에 46억달러에 팔려 나갔다. 보증을 했던 모기업 도시바도 63억달러 손실을 끌어안았다. 도시바는 반도체, 의료 기기 등 알짜 부문까지 매각해 공중 분해됐다가 2023년 12월 상장 폐지됐다. 웨스팅하우스가 모기업 도시바까지 끌어안고 동반 추락했다.
한수원이 이런 오욕의 역사를 가진 웨스팅하우스와 합작 법인을 만들어 미국 시장 진출을 모색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마침 트럼프의 ‘원전 르네상스’ 정책이 나온 마당이다. 한미 합작 기업이 성사된다면 미국 거대 시장이 활짝 열릴 수 있지 않겠느냐는 기대를 갖게 된다. 합작 법인이 유럽 시장에도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야말로 ‘제2의 마스가’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미국에서 원전을 건설하기는 녹록지 않다. 웨스팅하우스가 겪은 고초는 공급망 붕괴, 시공 관리 능력 부족뿐 아니라 규제 제도의 경직성, 강력한 환경 단체, 엄격한 노동 법규 등 정치 사회 제도적 요인까지 얽힌 문제다. 우리가 통제하기 힘든 변수에 따른 불확실성이 만만치 않다.
웨스팅하우스와 합작하는 건은 우리에게 기회도 될 수 있지만 위험도 작지 않다고 봐야 한다. 단순히 부품과 설비를 납품하고 시공에 참여하면 모르겠지만, 전체적인 사업 관리와 건설 일정 준수의 법적 책임까지 떠맡는 것이라면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합작 법인 뉴스가 나온 시점도 묘했다. 웨스팅하우스와 한 1월 합의가 굴욕적이었다는 비판이 거세자 시선을 돌리는 용도로 활용하려 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피할 수 없다. 합작은 할 때 하더라도 최대한 신중하게 따져보고 접근해야 한다는 뜻이다.
-한삼희 환경칼럼니스트, 조선일보(25-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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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원전 자부심'과 불편한 진실

체코 테믈린 원전의 모습. 한국수력원자력은 지난 6월 체코 두코바니 5·6호기 계약을 수주한 데 이어, 향후 테믈린 3·4호기 추가 수주에도 나서겠다는 계획이다. /한국수력원자력
미국, 캐나다, 프랑스, 중국, 러시아 그리고 한국. ‘세계 6대 원전 수출국’이다. 쟁쟁한 국가 가운데 미·프·중·러는 핵무기 보유국이다. 캐나다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자적 원전 모델을 개발한 나라다. 핵보유국도 아니고 원전 원천 기술도 없는 한국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것이다. K원전은 원전 불모지에서 그런 자부심과 함께 성장해 왔다. 수출 신화까지 일군 한국 원전 산업이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이유다.
그 자부심 뒤에 가린 ‘불편한 진실’이 최근 수면 위로 떠올랐다. K원전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지난 1월 한국수력원자력이 미 원전 기업 웨스팅하우스와 맺은 합의가 일부 언론 등에 공개돼 ‘불공정 계약’이라는 비판이 불거진 것이다.
웨스팅하우스는 1970년대 국내 고리 1호기 원자로를 만든 K원전의 스승이다. 그 후 반세기 동안 한국은 우리만의 원전 모델 개발에 들어갔고 핵심 부품 국산화에도 나섰다. 한수원은 2017년 ‘100% 기술 자립’을 선언하며 홀로서기를 외쳤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마음먹는다고 원전을 자유롭게 수출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원전에 들어가는 핵연료는 핵무기로 활용될 위험 때문에 겹겹 규제를 뚫어야 한다. 핵보유국도 아니고 독자 원전 모델도 없는 한국은 원전을 수출하려면 미국 승인을 받아야 한다. 미국 기술에 기반을 뒀다는 태생적 한계 때문에, 지금의 K원전은 미 정부 허락 없이 독자적으로 수출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한계는 우리 원전 산업이 한 단계 발전할 때마다 늘 치명적 약점으로 꼽혔다. 체코에 단독 수출을 하려다가 ‘지식재산권’을 주장하는 웨스팅하우스에 밀려 여러 차례 수세에 몰리기도 했다. 그 벽에 부딪혀 올 초 웨스팅하우스와 ‘50년간 원전 1기 수출 때마다 로열티 2400억원, 기자재 9000억원 구매’라는 내용의 계약을 맺은 것이다. 웨스팅하우스와 사실상 동반 수주한 UAE 원전 이후 16년, 사상 첫 단독 수주인 체코 원전 수출은 이런 어려움 끝에 이뤄졌다.
K원전은 숱한 난관을 뚫고 온 저력이 있다. 논란 한두 번으로 무너질 수 없다는 뜻이다. 한국은 첫 원전 가동 이후 약 50년간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수십조원대 원전 수출을 두 번이나 달성한 경쟁력이 있다. 미국과는 소형 모듈 원전(SMR)과 대형 원전 부문에서 협력하기로 해 K원전이 ‘제2의 마스가(MASGA)’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한국 혼자선 어렵다면 미국과 손잡고 내년에만 270조원대로 커지는 세계 원전 시장을 공략하면 된다. 미 웨스팅하우스와 조인트 벤처를 만들어 북미, 유럽 시장까지 동반 진출한다면 더 큰 가능성이 열릴 수도 있다. 기술 소유권을 놓고 갈등하는 미국과 협력해 ‘기술 자립’이라는 이상과 실리를 조화시키는 노력이 이어진다면, 세계적 원전 강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조현재 산업부기자, 조선일보(25-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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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슨 황도 걱정하는 전력난… ‘뉴노멀’이 된 원전 회귀
대만계 미국인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22일 대만을 찾아 세계 최대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회사인 TSMC 관계자들과 만났다. 엔비디아 제품의 상당수는 TSMC에서 생산된다. 황 CEO는 취재진에게 “인공지능(AI) 산업의 발전을 위해 여러 형태의 에너지가 개발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하루 뒤 대만에서는 석 달 전 폐쇄된 남부 마안산 원전의 재가동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가 치러졌다. 전체 투표자의 74%인 약 434만 명이 찬성해 반대(약 151만 명)를 압도적으로 눌렀다. 찬성표가 전체 유권자의 25%(약 500만 명)를 넘어야 한다는 법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부결이었다. 그러나 원전 재가동을 바라는 민심이 상당함을 보여줬다. 대만 언론들은 황 CEO의 하루 전 발언 또한 원전 재개를 촉구하는 차원에서 이뤄졌다고 풀이했다.
대만은 한국, 싱가포르, 홍콩과 함께 ‘아시아의 네 마리 용’으로 불리던 1980년대 총 6기의 원전을 운영했다. 당시 대부분의 전력을 원전에서 충당했다. 그러나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환태평양지진대에 위치한 대만 원전의 안전 우려가 고조됐다.
2016년부터 지난해 5월까지 집권한 민진당 소속 차이잉원(蔡英文) 전 총통 또한 탈(脫)원전 정책을 적극 시행했다. 이 여파로 6기의 원전이 모두 폐쇄됐고 현재는 천연가스, 석탄 등 화력 에너지에 의존하고 있다. 다만 탈원전이 시작된 후 대만은 만성 전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해 6월에도 엔디비아, 폭스콘 등이 있는 타이베이의 네이후 과학단지에서 정전이 발생해 3000여 개 입주 기업이 피해를 입었다.
대만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제조업 중심의 산업 구조를 가졌고 수출 의존도가 높아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필수다. 특히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글로벌의 최근 자료에 따르면 TSMC의 전력 소비량은 대만 전체 전력 사용량의 8%를 차지한다. TSMC가 엔비디아의 고성능 AI 반도체를 대량 생산함에 따라 2030년에는 이 비중이 24%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거의 전량을 해외에서 수입하는 화석 에너지에만 의존하기엔 국가 전체의 위험 부담이 크다.
대만 경제는 반도체 업계의 실적 호조 덕에 올 2분기(4∼6월)에 지난해 2분기보다 8.0% 성장했다. 중국이 사실상 장악해 자본 및 인재 유출이 심각한 홍콩, 전 분기 대비 기준으로 올 1분기(1∼3월)에는 마이너스 성장세를 보였고 2분기 성장률 또한 고작 0.6%에 그친 한국과 대조적이다.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뒷받침됐다면 대만 경제가 8%보다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을 가능성도 충분하다.
원전은 완전무결하지 않다. 그러나 다른 에너지보다 경제성이 우수하고 탄소 배출량이 적다는 점도 자명하다. AI 시대의 도래, 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 기후 변화 여파 등으로 이탈리아 벨기에 리투아니아 덴마크 스웨덴 등 탈원전을 추진했던 유럽 주요국 또한 최근 속속 ‘원전 회귀’를 선언하거나 검토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발생 확률이 지극히 낮은 원전 사고만을 이유로 원전 반대를 외치는 일각의 주장은 그야말로 공허하다.
-하정민 국제부 차장, 동아일보(25-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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