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쉬는 제헌절… 공휴일도 시대 따라]
[추석.. 최장 10일 '황금 연휴'?]
[제헌절 유감]
다시 쉬는 제헌절… 공휴일도 시대 따라

대한민국 헌법이 제정, 공포됐던 1948년 7월 17일을 기념하는 제헌절이 다시 공휴일로 지정됐다. 올해 제헌절은 마침 금요일이라 3일간 쉬는 ‘황금 주말’이 늘었다. 제헌절은 3·1절, 광복절, 개천절, 한글날과 함께 5대 국경일이었지만 유일하게 쉬는 날이 아니었다. 이 때문에 공휴일로 재지정하자는 법안이 이미 여럿 발의돼 있었고 12·3 비상계엄 이후 헌법 정신이 강조되면서 공휴일법이 29일 국회에서 통과됐다.
▷공휴일이 그 지위를 빼앗긴 건 근로 시간 단축 제도의 도입 과정과 관련이 깊다. 2004년 도입된 주 5일제는 6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확대됐다. 그래도 저항이 컸다. 기업들은 생산성 손실과 비용 부담을 호소했고 정부는 ‘당근책’으로 공휴일 축소를 추진했다. 2006년 식목일(4월 5일), 2008년 제헌절이 차례로 공휴일에서 제외된 까닭이다. 근로 일수가 줄어들긴 했지만 법정 공휴일도 줄어드는 일종의 거래가 이뤄진 셈이다.
▷이보다 앞서 1991년부터 공휴일에서 제외된 국군의 날(10월 1일)과 한글날(10월 9일)은 토요일 반나절만 근무하는 주 5.5일제 시행의 여파였다. 10월의 방학이라 불렸던 ‘퐁당퐁당’ 공휴일부터 퇴출당했다. 당시 이를 논의했던 국무회의 브리핑을 보니 “사회가 너무 노는 분위기로 가는 것은 문제”라며 “공휴일을 재검토하겠다”고 했다. 국무위원의 정제된 발언 수위가 이랬으니 사회적으로 얼마나 근면, 성실이 강조되던 분위기였을지 짐작이 간다.
▷공휴일은 정부가 공식적으로 쉬라고 하는 날이니 시대상이 반영되기 마련이다. 유엔의 날(10월 24일)은 6·25전쟁에 참여했던 유엔을 기억하자는 취지에서 공휴일로 지정됐다. 하지만 북한이 세계보건기구(WHO), 유네스코 등 유엔 산하 기구에 줄줄이 가입하자 정부가 그에 대한 항의 차원에서 공휴일 지정을 취소했다. 남북 경쟁이 쉬는 날을 갑자기 일하는 날로 만들었다. 1999년부터는 1월 2일이 신정 연휴에서 제외됐다. 양력설을 권장했으나 여전히 음력설을 고수하는 사람이 많자 휴일을 축소했다. 외환위기 이후 경제난 극복이라는 명분도 있었다.
▷제헌절이 추가되면서 올해 연간 법정 공휴일(대체 휴일 포함)은 22일까지 늘어났다. 토요일과 일요일을 합하면 모두 119일, 일 년의 약 3분의 1을 쉬는 셈이다. 현재 주 4.5일제 도입도 논의되고 있다. 예전 같으면 공휴일을 축소하자는 목소리가 벌써 나왔을 법도 한데 잠잠하다. 키오스크부터 휴머노이드까지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할 기술이 등장해 노동력 투입이 곧 생산성과 직결되지 않는다. ‘워라밸’을 중시하는 분위기도 대세로 자리 잡았다. 제헌절에 출근하던 18년 동안 세상이 이렇게나 바뀌었다.
-우경임 논설위원, 동아일보(26-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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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최장 10일 '황금 연휴'?
원래는 하루만 쉬었죠

1972년 추석, 고향으로 가는 열차를 타려고 밤늦게까지 옛 서울역 앞에 줄을 선 귀성객들의 모습이에요. /서울역사박물관
‘민족의 대명절’인 추석이 다가왔어요. 오랜만에 가족을 만날 생각에 마음이 설레는 날이지요. 특히 이번 추석은 최장 10일간 쉴 수 있는 ‘황금 연휴’라 여행을 계획하는 분들도 많을 겁니다. 그런데 추석은 언제부터 시작됐을까요? 오늘은 추석의 역사에 대해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신라 시대부터 이어져 온 추석
추석은 아주 오래된 명절입니다. 그 시작은 신라의 잔치인 ‘가배’였다고 해요. 당시에는 여인들이 두 편으로 나뉘어 천을 짜는 길쌈 대회를 하고, 모두 함께 술과 음식을 나누며 즐겼습니다. 이 가배가 변해서 ‘한가위’의 ‘가위’라는 말로 이어졌다고 합니다. 이런 풍습은 고려와 조선 시대에도 이어져 조선 사람들은 “추석은 신라 때부터 있었다”고 여겨왔습니다.
흥미롭게도 중국, 베트남, 말레이시아, 태국에도 추석과 비슷한 명절이 있습니다. 특히 중국에서는 ‘중추(中秋)’라고 부르는데, 가을의 한가운데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1977년 추석 대목을 맞은 남대문시장. 당시 전통시장은 차례용품을 마련하는 시민들로 붐볐습니다. /국가기록원
왜 여러 나라에서 비슷한 시기에 명절을 즐겼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가을은 1년 농사의 결실을 거두는 계절이기 때문이에요. 옛날 농경 사회에서는 가난한 집이라도 이 시기만큼은 먹을 것이 넉넉해 떡과 술을 빚어 나누며 풍요를 즐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추석은 중국의 중추와 달랐습니다. 우리 추석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는 바로 성묘, 즉 조상의 무덤을 찾아가는 일이었죠. 고려 말의 학자 이색은 추석이 되면 성묘를 가야 한다는 글을 남겼습니다. 이를 보면 적어도 고려 말부터는 추석 성묘 풍습이 있었고, 이것이 조선 시대 내내 이어져 내려온 것을 알 수 있죠.
재미있는 점은, 조선의 유학자들 중에는 추석 제사를 제대로 된 풍습이 아니라고 본 사람들이 있었다는 겁니다. 율곡 이이는 “추석은 바른 명절이 아니라 속절(속된 명절)”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잘못된 명절은 사치로 흐를 수 있다”며 비판도 했어요. 유학자들은 ‘예기’ 같은 유교 경전에 나와 있어야 명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1977년 추석을 맞아 망우리 묘지를 찾은 성묘객이 절을 하고 있어요. 당시엔 도시 인근 공동묘지에 인파가 몰리며 극심한 교통 혼잡이 빚어졌습니다. /서울역사박물관
하지만 조선 사람들은 추석이 되면 신분의 높고 낮음을 따지지 않고 모두 조상의 묘를 찾았습니다. 유학자들이 뭐라고 비판해도, 실제로는 전통과 관습의 힘이 더 강했던 거죠.
피란 중에도 제사를 지냈대요
요즘은 명절에 제사를 지내는 집이 많지 않아요. 지내더라도 약식 제사인 차례를 지내거나, 아니면 이마저도 아예 지내지 않는 가족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조선 시대엔 조상이 돌아가신 기일 외에도 제사를 올리는 네 가지 큰 날이 있었습니다. 바로 설날, 단오, 추석, 동지예요. 이렇게 하면 1년에 네 번 제사를 지내는 셈인데, 요즘 기준으로 보면 꽤 많다고 느껴질 겁니다. 게다가 제사는 보통 4대조, 즉 증조부모까지 지냈습니다. 집안에 특별한 예절이 더해지면, 한 집에서 1년에 십수 번 이상 제사를 지내기도 했지요. 이런 원칙은 조선 후기로 갈수록 점점 더 지켜지지 않게 됩니다.

2003년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두고, 서울을 빠져나가는 귀향 차량들이 고속도로에 길게 늘어서 있는 모습. /조선일보 DB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제사 횟수가 아닙니다. 조선 사람들에게 제사는 그렇게까지 괴로운 행사가 아니었어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차린다는 마음이 강했거든요. 곽주의 아내 하씨 무덤에서 발견된 편지 중에는 아버지의 제사에 참석 못 하자 “제사를 못 지내다니 내가 전생에 무슨 죄라도 지은 거야?”라는 딸의 하소연이 담긴 것도 있지요.
심지어 사람들은 전쟁 때문에 피란을 다니는 와중에도 제사를 거르지 않으려 애썼습니다. 세상을 떠난 가족들에게 음식을 차려주는 것이 제사의 본질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가족이 직접 제사를 지내는 게 가장 좋았지만, 그러지 못하는 사정이 벌어지면 다른 사람에게 대신 제사를 지내달라고 부탁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제사 비용으로 자신의 재산을 떼어주기도 했죠.
연휴가 길어지며 귀성객도 늘어났죠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근대화·도시화가 진행되자, 추석 풍습도 크게 달라집니다. 1920년 무렵부터 도시 근교에 공동묘지가 만들어지기 시작했지요. 서울에서는 이태원, 청량리 근처 망우리, 미아리 등이 대표적인 공동묘지였습니다.
이때 사람들은 처음 경험하는 공동묘지 문화에 적응하지 못해 여러 사건이 벌어졌답니다. 추석이 되면 사람들은 저마다 성묘를 와서 제물을 차려놓고 제사를 지냈습니다. 그런데 여러 가족들이 한데 모이다보니 공동묘지로 가는 길은 극심한 교통체증을 겪었고, 다른 집 무덤과 헷갈리거나 서로 시끄럽다고 싸움이 나기도 했습니다.
현대에 새로 나타난 추석의 풍습은 귀성입니다. 6·25전쟁 이후 우리나라가 급격히 도시화되면서, 많은 사람이 고향을 떠나 서울이나 큰 도시로 모여들었지요. 그래서 추석이 되면 시골에 남아 있는 가족을 만나기 위해 대부분 고향으로 내려가곤 했습니다.
이미 1960년대 초반부터는 추석 기차표를 구하려는 사람들로 서울역이 북새통을 이뤘습니다. “고향에 꼭 가야 한다!”는 마음으로 수많은 사람이 역으로 몰려든 것이지요. 특히 1968년 추석에는 기차에 사람이 너무 많이 몰려서 좌석은 물론이고 객실 선반에까지 사람들을 태우고 달리는 일도 벌어졌습니다.
추석은 1949년 처음 국가 공휴일로 지정됐습니다. 이때는 추석 당일만 휴일이었지만 1986년에 2일로, 그리고 1989년에 3일 연휴로 늘어나게 됩니다. 이렇듯 쉬는 날이 늘어나고, 이 시기 자가용도 보급되면서 자연스레 귀성객도 늘어나게 됐지요. 고속도로 정체도 일상이 됐습니다. 고향으로 내려가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1990년대에는 고향에 살고 있는 부모가 도시에 사는 자식들을 만나러 가는 ‘역귀성’ 현상도 본격적으로 나타나게 됐답니다. 소득 수준이 높아지며 2000년대부터는 추석 연휴에 해외로 여행을 가는 사람도 많아졌지요.
현대 사회에 이르러 추석, 그리고 제사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지금까지 추석 풍습은 몇 번이나 변했고 앞으로도 그럴 테지만, 가족을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마음만큼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한 작가·'한잔 술에 담긴 조선’ 저자/기획·구성=윤상진 기자, 조선일보(25-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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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헌절 유감
[김황식의 풍경이 있는 세상]

일제 강점기에서 해방된 남북한은 3년간 군정을 거쳐 각각 별도로 정부를 수립하였습니다. 그로부터 75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 국가이자 모든 면에서 세계 수준의 선진 국가로 변모하였으나, 북한은 그 반대로 경제적 최빈국이자 인권 등 모든 분야에서 최악의 수준입니다. 같은 민족으로서 동일 선상에서 출발한 두 나라가 이처럼 극명한 차이를 보이는 원인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건국의 기초이자 국가의 설계도인 헌법, 그 내용의 차이이자 그 헌법을 만들어낸 리더십의 차이입니다. 민족 역량의 차이가 아닌 것이 분명합니다. 남북한 모두 같은 민족이니 민족 자체의 역량은 차이가 없을 테니까요.
대한민국은 1948년 5월 10일 총선거를 실시하여 제헌국회를 구성하였습니다. 의원 200명 전원이 참여한 삼독토의(三讀討議)를 거쳐 7월 12일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헌법 1조에서 민주공화제의 원칙을, 이어서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헌법 2조에서 주권재민의 원칙을 선언하며 이를 기본 틀로 한 총 103개 조항으로 된 헌법을 의결하고, 7월 17일 이를 공포하였습니다. 4조로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한다”라고 규정하여 대한민국이 한반도를 대표하는 정부임을 선언하고, 16조로 “모든 국민은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 적어도 초등교육은 의무적이며 무상으로 한다”라고 규정하여 국가발전의 토대로서 교육의 중요성을 천명하고, 84조로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모든 국민에게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할 수 있게 하는 사회 정의의 실현과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기함을 기본으로 삼는다”라고 규정하여 사회적 연대를 지향하고, 나아가 86조로 “농지는 농민에게 분배하며 그 분배의 방법, 소유의 한도, 소유권의 내용과 한계는 법률로써 정한다”라고 규정하여 구체적인 사회통합을 꾀하였습니다.
헌법 공포 당시 이승만 국회의장은 공포사(公布辭)에서 “지금부터는 우리 전 민족이 고대전제(古代專制)나 압제정체(壓制政體)를 다 타파하고 평등 자유의 공화적 복리를 누릴 것을 이 헌법이 담보하는 것”이라고 선언하고 “일반 국민은 이 법률로 자기 개인의 신분상 자유와 생명, 재산의 보호를 받을 것”임을 강조하였습니다. 또한, “이북 동포에게 눈물로 고하고자 하는 바는 아무리 아프고 쓰라린 중이라도 좀 더 인내해서 하루바삐 기회를 얻어서 남북이 동일한 공작(工作)으로 이 헌법의 보호를 동일히 받으며 (중략) 자유 활동에 부강 증진을 함께 누리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하였습니다. 제헌헌법의 핵심 내용과 분단국가로서 대한민국의 지향목표를 명확히 밝힌 것입니다.
또한, 대한민국은 온 국민이 참여한 선거를 통하여 헌법을 제정하고 정부를 구성하였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소련 공산당 정권에 의하여 지명된 김일성이 국민의 의사와 관계없이 정부를 구성하였습니다. 이 차이가 국가 및 정권의 정당성과 정통성을 가르는 분기점입니다. 북한이 정통성 없는 소련의 괴뢰 정부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입니다. 유엔도 대한민국을 한반도 유일의 합법 정부로 인정하였습니다.
우리 선배들이 조선 왕조 시대와 일제 식민 지배만을 경험하였음에도 이처럼 온 국민이 참여하는 총선거를 실시하고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와 함께 사회적 연대를 지향하는 훌륭한 헌법을 제정한 것은 기적과 같은 일입니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번영의 출발점입니다. 그 선배들의 노고에 감사하고 제정된 헌법에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나 제헌헌법이 공포된 7월 17일을 기념하는 제헌절은 5대 국경일 가운데 유일하게 공휴일이 아닙니다. 2005년 주5일제 시행과 관련하여 공휴일을 재조정하는 과정에서 공휴일에서 제외된 결과입니다. 지난 월요일 제헌절 행사도 국회 로텐더 홀에서 열렸습니다. 너무 조촐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자라나는 세대에 대한 교육 관점에서도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헌법의 의미나 가치를 생각한다면, 제헌절은 이처럼 가볍게 취급받아서는 안 되는 날입니다.
-김황식 전 국무총리, 조선일보(23-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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