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판사, 나쁜 판사]
['침 뱉고 싶다' 이어 석궁 테러 위협까지 나온 판사 협박]
[이재용 사건, 피해자를 범죄자 만든 것 아닌가]
좋은 판사, 나쁜 판사

법정에서 판사의 권위는 절대적이다. 유죄와 무죄, 승소와 패소가 달려 있으니 소송 당사자와 변호인들은 판사 앞에서 몸을 낮출 수밖에 없다. 하지만 “판사는 재판할 때 재판을 받는다”는 말이 있다. 법정 내 모두가 판사의 발언과 태도, 실력을 꼼꼼히 지켜보고 기억하게 된다. 서울지방변호사회가 27일 내놓은 법관평가 결과에는 때론 당사자와 변호인을 경악하게 만드는 판사들의 실태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20명의 판사가 ‘하위법관’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는데,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막말’이었다. 서울의 한 법원에서 근무하는 A 판사는 조정 권유를 거부하는 피고에게 “예전 같았으면 곤장을 칠 일”이라고 했다. 조정을 받아들이지 않을 땐 재판을 진행하면 될 뿐 ‘곤장’ 운운할 일은 아니지 않나. 이 판사는 다른 재판에서 변호인에게 “욕 나오게 하지 말라”고 하는 등 수차례 모욕적인 발언을 한 전력도 있다고 한다. A 판사뿐 아니라 피고인에게 “아이 씨”라고 하거나 “꼴도 보기 싫다”며 질책하고, 변호인에게 “쓸데없는 소리 말라”고 면박을 준 판사들의 언행은 도를 넘었다.
▷“눈 속에 비친 ‘눈가 이슬’이 진심을 말해준다”며 가해자를 편드는 듯한 태도를 보이거나 재판 중 감정적 발언을 하면서 눈물을 흘린 판사 역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판결의 공정성에 의심을 불러온다는 이유에서다. 독단적인 재판 진행으로 도마에 오른 판사들도 있다. “할 말이 있다”는 당사자를 법정에서 끌어낸 사례, 변호인이 재판 진행에 이의를 제기하자 돌연 피고인을 구속한 사례 등이 대표적이다. 판사에게 주어진 소송지휘권을 지나치게 휘두르면 모자란 것만 못한 법이다. 이런 판사들의 행태가 사법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퍼뜨리는 주범 중 하나일 것이다.
▷재판에 직접적인 이해가 걸려 있는 변호사가 판사를 평가하는 건 객관성이 떨어진다는 주장도 있다. 변호사들의 증언 가운데 부정확한 내용이 들어 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하지만 서울변회는 적어도 10명 이상의 변호사로부터 평가를 받은 법관 중에서만 ‘하위법관’을 정하기 때문에 특정 사건에서 패소한 변호사의 일방적 비난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매년 실시하는 평가에서 반복적으로 문제가 지적되는 판사들에 대해선 사법부도 면밀하게 지켜볼 필요가 있다.
▷반면 ‘우수법관’으로 선정된 72명의 판사는 ‘피고인의 주장 경청’, ‘친절한 태도와 차분한 말투’, ‘소송관계인을 존중하는 태도’, ‘납득할 수 있는 설명 제시’ 등의 이유로 높은 점수를 받았다. 기본에 충실했다는 얘기다. 이런 판사들과는 재판 과정에서 충분한 소통이 이뤄지기 때문에 패소해도 수긍할 수 있었다고 변호사들은 입을 모았다. 사법부와 판사가 신뢰를 쌓을 방법이 그렇게 어렵거나 멀리 있지는 않다.
-장택동 논설위원, 동아일보(26-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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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 뱉고 싶다' 이어 석궁 테러 위협까지 나온 판사 협박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7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항소심 재판과 관련해 "판경(判經) 유착이 돼 버렸다"며 "궤변으로 재벌 편을 든 판결"이라고 했다. 안민석 의원은 "재판정을 향해 침을 뱉고 싶었다"고 했다. 정청래 전 의원은 "법복을 벗고 식칼을 들어라"고 했다. 재판장인 정형식 판사가 야권 정치인들과 친·인척이어서 이런 판결을 했다는 주장도 나왔고 상복같은 것을 입고 나온 의원도 있었다. 재판 결과에 대한 생각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법리적 견해 차이여야 한다. 민주당의 판사 비난은 원색적인 막말뿐이다. 정치권에 양식(良識)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해도 너무 도가 지나치다. 법정 소란과 다를 것이 뭐냐는 생각이 든다.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들의 자세가 아니다.
인터넷상의 재판부 공격도 도를 넘었다. 청와대 청원게시판 '재판장 파면' 클릭이 18만건을 넘어섰다. 재판장 가족 계좌 추적, 특별 감사 주장도 있다. 한 법원 직원은 법원 내부 게시판에 '석궁(石弓) 만드는 법 아시는 분'이라는 제목으로 '진심 쏘고 싶다'는 글을 올렸다. 이런 사람이 법원에서 일하고 있다. 이 사람이 있을 곳은 시위 단체이지 법원이 아니다.
재판부는 판결 후 여권과 인터넷에서 어떤 공격이 있을지 충분히 예상했을 것이다. 정 판사는 "여론의 비난을 피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결정은 실형(實刑)을 유지하는 것이었지만, 고민 끝에 사건의 성격을 고려해 석방을 결정했다"고 했다. 정 판사도 쉬운 길을 택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법리가 가리키는 길로 갔다. 이 사건은 특검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더 큰 죄를 가하기 위해 이 부회장을 희생양으로 이용한 것이란 견해가 많았다. 법률과 양심이라면 이 무리한 수사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을 것이다. 오로지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해야 하는 판사가 '정치권과 여론의 압박'에 두려움을 갖고 있다면 이미 독립된 재판이라고 할 수 없다. 사법 제도 자체의 위기다.
-조선일보(18-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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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사건, 피해자를 범죄자 만든 것 아닌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준 혐의 등으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5일 2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아 353일 만에 석방됐다. 전직 삼성 임원 4명도 모두 집행유예 선고를 받았다. 앞서 1심은 최순실 측에 대한 삼성의 승마 지원 등에 대해 개별적이고 구체적 청탁은 없었다면서도 '묵시적(默示的) 청탁'은 있었다는 이유로 이 부회장에게 징역 5년 실형을 선고했다.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이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라는 현안에 관해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마음속 청탁'을 주고받았다는 것이다. 판사가 증거가 아니라 다른 사람 마음을 들여다보고 '마음속 청탁'을 발견했다는 것은 다시는 있어선 안 될 판결이었다.
이런 무리한 판결은 2심에서 대부분 바로잡혔다. 2심은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에게 청탁을 했다는 증거가 없다고 했다. 실제 제시된 증거가 없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나 삼성생명 금융지주사 전환이 순전히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때문에 진행됐다고 볼 수 없다고 했고, 박 전 대통령이 삼성 승계 작업 추진에 대해 알고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도 했다. 청탁을 하지도 않았고 할 상황도 아니었다는 뜻이다. '마음속 청탁'의 전제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사건을 처음 수사했던 검찰은 사건 성격을 '박 전 대통령의 강요에 의한 것'으로 정리했었다. 그걸 특검이 '뇌물 사건'으로 방향을 틀었다. 박 전 대통령에게 더 심한 형(刑)을 가하려고 사건 구도를 바꾼 것이다. 그런데 뇌물이 성립되려면 뇌물을 준 사람이 있어야 한다. 강요당한 사람이 갑자기 뇌물 공여 범죄자로 바뀌었다. 희생양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기업들을 겁박하고 강요한 사건을 기업의 뇌물 상납으로 바꾸기 위해 정부는 고비마다 재판에 개입했다. 청와대는 재판 도중 캐비닛 문건을 찾아 특검을 통해 법원에 제출했고, 공정거래위원장이 이례적으로 증언대에 서 이 부회장에게 불리한 증언을 했다. 특검은 이 사건을 "정경 유착의 전형"이라고 했지만 2심 재판부는 "권력과의 뒷거래로 문어발식 사업 확장이나 불법·부당 대출 등 전형적인 정경 유착의 모습을 이 사건에선 찾아볼 수 없다"고 했다. 온갖 무리수를 동원해 억지로 '정경 유착' 모양을 만들려고 했다면 수사가 아니라 정치 공격이다.
이 사건 본질은 애초부터 강요 내지 공갈에 가깝다는 견해가 많았다. 박 전 대통령이 최순실에게 이득을 주려고 기업들을 겁박했다는 것이다.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의 요구를 거절했다면 보복을 당했을 가능성이 높다. 과거 그런 사례가 한둘이 아니다. 그런데도 2심 역시 삼성의 일부 승마지원금을 '뇌물'이라고 판정했다. '거절하기 힘들었다 해도 공무원 부패에 조력(助力)해선 안 된다는 것이 국민의 의무이자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며 뇌물죄 유죄를 선고했다. 말은 맞는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현실과 너무나 동떨어진 얘기라고 할 수밖에 없다. 현 정권에서도 기업들은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 기업인은 대통령 요구를 거절해도 감옥 가고 거절하지 않아도 감옥에 가야 하나.
작년 1월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던 판사는 '삼성 장학생'이라는 매도와 문자 폭탄 피해를 입었다. 누구라도 이런 사회 분위기에 위축되기 마련이다. 이미 사법부 지도부도 정권과 코드를 맞추는 사람들로 교체됐다. 이 상황에서 재판부가 순전히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을 내릴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법원에는 아직 법과 양식(良識)을 우선하는 꼿꼿한 판사들이 있었다. 2심 판사들도 온갖 공격을 당할 것이다. 그래도 우리 사회를 받치는 기둥이 아직은 건재하다고 느낀다.
-조선일보(18-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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