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은 길 잃고 여론은 혼탁, 그 사이로 폭주하는 정치]
[대한민국이 가야 할 길은 열려 있다]
민심은 길 잃고 여론은 혼탁, 그 사이로 폭주하는 정치
감 못 잡는 야당과 민심 무시하는 여당의 싸움
막말이 난무하는 국회는 '쇼츠'용 스튜디오 같아
대화 실종되고 루머 증폭되면 전체주의로 흘러
우리가 설계한 민주주의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거덜내지 말고 다음 '세입자'에게 온전히 돌려주자
여당은 폭주 자제하고 야당은 더 건실해지기를

구글 검색창에 영어로 ‘한국 의회(Korea parliament)’를 치면 ‘싸움(fight)’이라는 단어가 자동 완성된다. 알고리즘 추천 콘텐츠는 그동안 외신을 타고 전해졌던 국회의 극렬한 몸싸움 현장 영상들이다. 의사봉이 있는 국회의장석을 둘러싸고 국회의원들이 몸으로 막고 부딪치며 서로 엉겨 있는 모양은 미식축구를 무색하게 하는 볼거리다. 그렇다고 특별히 부끄러워할 일도 아니다. 신생 민주주의 국가 의회에서는 흔한 장면들이기 때문이다.
후발 민주국가의 역동성과 절박함이 버무려진 그런 장면도 이제는 추억으로 사라질 것 같다. 요즘 국회에서 몸싸움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싸움이란 상대가 비슷한 체급일 때 성립된다. 거대 여당은 몸을 쓰지 않고도 모든 일을 처리할 만큼 힘이 세졌고, 야당은 그 싸움을 거리로 가지고 나와 지나가는 행인을 불편하게 한다. 요즘 국회는 인터넷 쇼츠(짧은 동영상) 촬영용 고성, 강성 지지층 겨냥 사운드바이트(짧은 클립) 막말이 무한 재생산되는 정치 스튜디오로 전락했다. 미디어 정치꾼에게 카메라 각이 안 나오는 몸싸움은 도움이 안 된다. 차라리 몸싸움을 벌이던 패기 만만 흘러간 정치인들이 그립다.
민심이 어디 있는지 감조차 못 잡는 야당, 그리고 민심을 무시해도 될 만큼 힘이 세진 여당 사이에서 민심이 길을 잃고 헤맨다. 본디 ‘민심(vox populi)’이란 왕정 시대 용어다. 조선 시대 냇가에서 빨래하던 여인들 사이에도 민심은 있었다. 언론도, 여론조사 기관도 없었던 시절에도 선왕(善王)은 그 민심을 듣기 위해 야행(夜行)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게 ‘여론(public opinion)’이라는 말로 대체된 것은 시민사회가 도래한 유럽 계몽주의 시대 이후다. 오늘날 민주국가는 여론조사도 하고 자유언론도 보장한다. 모두 여론의 말길을 터서 정치로 수렴하게 하기 위한 근대적 장치다.
왕이 선하면 왕정도 나쁘지 않지만, 보통 사람들의 오만과 탐욕으로 점철된 정치는 왕정보다 악취를 풍긴다. 대화와 타협이 실종된 막무가내 의회도 그에 못지않다. 민심은 그 근처에도 못 가고, 여론은 왜곡용 선전물로 둔갑해 나오는 우리 국회를 더 이상 민주 국가의 국회로 부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요즘 힘 과시에 여념 없는 여당은 입주하자마자 집 구조부터 인테리어까지 싹 뜯어고치는 세입자를 연상케 한다. 제 집도 아닌데 반대하고 타협해야 할 대상이 힘이 없다는 이유로 제멋대로 한다. 예산을 뚝 떼어 가고, 큰 방을 둘로 쪼개고, 있던 방은 없앤다. 그리고 위험물을 소지하고 있어 거리를 뒀던 불량 이웃과도 서로 비밀번호를 주고받을 태세다. 새 인테리어가 마음에 들거나 좋은 방에 재배치된 사람들에게는 신나는 일이다. 그러나 오래전 집을 설계한 사람들이나 이 방 저 방 짐 들고 이사 다니는 사람들은 ‘이래도 되나’와 ‘이건 아닌데’ 사이에서 난감하다.

2010년 12월 예산안 및 '친수법(4대강 사업 당시 강 주변 2km에 주택·관광시설 등을 개발할 수 있도록 한 법안)'처리를 두고 국회의장석 주위에서 처리를 강행하려는 여당 의원들과 이를 막으려는 야당 의원들이 뒤엉켜 있다. /조선일보DB
그나마 함께 살도록 해 지붕 밑에서 비라도 피할 수 있으면 행운이다. 그 세입자는 모두 함께 살라고 지어준 집에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들만 선별해 집어넣고 나머지는 거리로 내몰 기세다. 그 세입자가 지금 벌이는 일을 보면 집을 비워줄 생각이 영영 없어 보인다.
반면 힘없는 야당은 가장 승산 없는 싸움에 올인한다. 싸움의 결기는 인정할지언정 그 과정과 결과는 바람직하지도, 생산적이지도 않다. 선수는 자신의 체급과 강점과 약점을 먼저 파악해야 한다. 모자라는 힘은 채우거나 밖에서 빌리고, 약점은 최대한 관리해야 한다. 야당은 지금의 사태를 가져온 계엄·탄핵조차 타개하고 관리할 능력이 없어 보인다. 그때도 지금도 야당에 가장 필요한 것은 자신을 냉정하게 객관화하는 ‘메타인지’다.
“민심과 여론의 차이를 논하시오”는 내가 즐겨 내는 시험문제다. 정답은 “민심이란 절대 통치자의 독단과 권위를 거부하거나 비판할 수 없는 피지배자들의 개별적으로 흩어진, 막연하고 추상적인 신민(臣民)의 의견이다. 여론이란 계몽된 시민(市民)의 합리적이고 보편적인 공동 의지로서 독단과 불합리를 거부할 수 있는 동력이 있는 일반의지다”이다. 요약하면 민심은 사회를 변화시킬 힘이 없고, 여론은 그 힘이 있다. 이론대로라면 여론은 사회를 더 민주적으로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그 힘이 선하게 작동하면 시민사회를 지탱하지만, 독을 품으면 민주주의를 무너뜨릴 수도 있다. 특히 소셜미디어의 전파력과 나쁜 정치인들의 콘텐츠가 결합할 때, 또 정체불명의 개인 방송이 조작한 루머가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확대 증폭될 때, 민주주의는 순식간에 전체주의로 돌변한다. 돌아다니는 민심을 청취하기는커녕 자신들에게 유리한 여론을 조작해 퍼뜨리는 데 열을 올리는 정치인들이 법을 만들고 사회를 주무르는 한, 민주주의는 요원하다.
우리가 애초에 설계한 집이 그런 집이 아니었음을 상기시켜 줄 사람이 많이 나와야 한다. 원래 방들의 크기 사이에는 균형이 있었으며, 그 거주자들은 자유로웠고, 거주에는 계약 기간이 있었다. 그러기에 사는 동안 집을 조심해서 다뤄야 하고, 다음 세입자에게 온전히 돌려줘야 한다. 기둥째 거덜내서는 안 된다. 요즘 미쳐 돌아가는 일부 정치인을 제외한 나머지 우리 사회의 하부구조가 모두 나서서 그 집을 지켜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지금 세입자가 폭주를 자제하고 긴장하도록 야당이 정신 차리고 건실해졌으면 좋겠다.
-박성희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한국미래학회 회장, 조선일보(25-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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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 가야 할 길은 열려 있다
[김형석 칼럼]
李대통령, 유엔에서 ‘대한민국’ 33번 외쳐
‘자유민주 외 길 없다’는 소명 받아들인 것
반면 국회와 민주당, 反자유-逆민주 현실
정치권은 본궤도서 평화통일 기반 닦아야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유엔 총회에서 국민을 대표해 연설했다. 채 20분이 되지 않는 연설에서 ‘대한민국’이라는 국호가 33차례나 언급됐다는 뉴스를 접했다. 어떤 의도가 깔려 있었을까. 더불어민주당 일각에서는 이를 윤석열 정권이 시도한 계엄령을 억제하고 새로운 민주정치를 이끈 성과를 선언한 것으로 보는 것 같다.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국민과 적지 않은 야당 인사들 역시 윤석열 정부의 계엄령 선포는 실책으로 본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가 계엄 사태 이전까지는 대한민국의 정치 방향을 자유민주의 길로 복원시킨 게 엄연한 사실이다. 유엔에서 국호를 강조한 이 대통령의 연설은 김대중 정부 후반부터 문재인 정부까지 보여 온 정치 방향을 자유민주의 길로 다시 끌어와 정착시키겠다는 선택으로 인식한다.
지난 80년의 역사를 돌아보면 대한민국은 출범부터 자유민주국가로 성장해 왔다. 자유민주주의 외에 다른 길이 없음을 이 대통령이 국민을 대표해 33차례나 선언한 것은, 그 뜻을 역사적 잠재의식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 길이 대한민국 출범 때부터 먼 미래까지 이어지길 바라는 게 국민의 염원이다.
그런데 유엔 총회 이후 현재까지 국내 정치는 어떠한가. 대한민국의 근현대 정치에서 보기 어려운 반(反)자유, 역(逆)민주의 수준 낮은 현실이 펼쳐지고 있다. 지금의 국회가 국민을 대표한다고 믿는 이는 드물다. 국회는 본래의 주어진 기능을 민주당에 빼앗겼고, 민주당은 잘못된 운동권 세력과 스스로를 ‘개혁의 딸’이라 지칭하는 집단에 실권을 내주었다.
민주당은 강성 지지층에 소구력을 가진 인물이 당 대표로 선출되면서 자유정신은 배제되고, 민주정치의 본령과 절차마저 사라진 모습이다. 정청래 대표는 민주당의 정치적 경계선마저 무시한 채 월권 행세를 독점하는 모습이다. “대통령도 갈아치우는 마당인데, 대법원장쯤이야”라는 발언은 민주국가 어디에서도 용납될 수 없는 발상이다. 그런 주장도 한두 번으로 그치지 않는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국가와 국민에게서 위임받은 법의 권한을 독차지한 듯한 태도를 보인다. 만약 이것이 민주당 전체의 의도와 일치한다면, 국민은 민주당 정권의 이용 가치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국민은 여야 정당이 대화를 나누고, 협치하는 민주정치의 열린 방향과 길을 재창출해 주기를 요청하고 있다.
지난 80년 동안 국민은 4·19의 희생을 치르며 독재정권을 뒤로하는 강을 건넜다. 군사정권의 난국과 모순을 극복하면서 경제 창건에 성공했다. 또 권력의 후진성을 불식하며 법치민주국가의 기반을 세우고 정착시켰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지금, 민주당 정권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애국심을 품고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다시 제 궤도로 되돌려놓아야 한다.
우리는 민족 통합과 통일된 조국을 되찾아야 하는 과업을 안고 있다. 그러나 지난 정권들은 세계사의 현실과 공산정권의 본질을 깊이 인식하지 못한 채 잘못을 거듭했고, 그 결과 오늘의 모순된 결과를 낳았다. 이제는 남북이 단순히 두 나라가 아닌, 두 갈래의 강물처럼 갈라졌다. 다시 합쳐지려면 지혜와 인내, 그리고 서로를 위하는 인간애의 정신이 필요하다. 정권과 정치 이념까지 모두 해결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통일은 무엇보다 민족이 같은 국민의식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어야 한다. 강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자유도 그 순리를 따른다. 경제가 높아지면 낮은 곳으로 흘러가고, 문화와 정신적 가치도 마찬가지다.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을 억지로 끌어 올리려는 노력은 지혜롭지 못하다. 북한 정권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도 바로 그것이다. 대한민국의 경제와 자유, 문화가 북쪽 동포들의 삶에 스며들면 공산정권은 스스로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혜롭게 공론을 모아야 한다. 국민은 통일된 공존을 위해 북한 동포를 이끌고 위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 인적 교류는 그중에서도 최고의 방법이다. 문화적 교류와 동질성 회복은 물론 공정한 경제 교류가 중요하다. 정치는 그 길을 뒷받침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이념과 목적이 다른 정권들이 과거에 취했던 접근과 정책은 한계가 있었다. 두 강물이 하나로 합쳐지려면 국제 정세의 변화와 함께 수준 높은 정신적 가치와 문화를 통해 동질성을 회복해야 한다. 이는 평화통일을 위한 필수 과정이다.
민족과 정신문화의 동질성은 언젠가는 반드시 되찾게 돼 있다. 북한 동포를 향한 우리의 의무는 인간애의 정신이다. 길은 열려 있다. 그 길을 가지 않고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우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김형석 객원논설위원·연세대 명예교수, 동아일보(25-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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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野 당 지지율 격차에도 지방선거 민심은 근접한 여론조사 나와. ‘내란 프레임’보다 ‘경제’가 중요하다는?
○내란 특검 검사들, 재판에 검은 정장에 검정 넥타이 매고 출석. 상의 주머니엔 검찰판 ‘조의제문(弔義帝文)’이?
-팔면봉, 조선일보(25-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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