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대륙에 팔린 '영국의 자부심'

토머스 게인즈버러, 블루 보이, 1770년쯤, 캔버스에 유채, 177.8×112.1 cm,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머리노, 헌팅턴 미술관 소장.
18세기 중반, 영국 최고의 초상화가였던 토머스 게인즈버러(Thomas Gainsborough·1727~1788)가 남긴 걸작 중의 걸작이 ‘블루 보이’다. 커다란 캔버스 앞에 서면, 앳된 얼굴에 기품과 기개를 담아 당당하게 선 소년이 압도적으로 다가온다. 검은 구름이 낮게 깔리고, 나무가 바람에 흔들려, 마치 폭풍우가 곧 밀려올 듯한 날씨다. 어두운 지평선 위에 오렌지색 태양빛이 걸려 있는데, 그것이 여명인지 석양인지는 알 수가 없다. 청년기로 나아가야 하는 이 불안하고 낯선 세상 속에서, 소년의 푸른 옷은 마치 갑옷처럼 그를 감싸며 찬란하게 빛난다.
게인즈버러는 1770년 이 작품을 전시했지만, 그때도 제목은 ‘어린 신사의 초상화’였을 뿐, 누구의 초상인지는 아직도 확실히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오늘날 ‘블루 보이’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은 미국의 철도 및 부동산 재벌이자 예술 컬렉터인 헨리 헌팅턴이다. 헌팅턴은 1921년, 당시 소장가였던 영국 제2대 웨스트민스터 공작에게서 이 그림을 약 73만달러, 현재 가치로 수천억 원에 이르는 경이로운 금액에 구입했다. 1차 세계대전 직후의 경제난 속에서 유럽 귀족들은 고가의 예술품과 부동산을 소유하고도 상속세를 내거나 호화로운 생활을 유지할 현금은 없었다. 그때 신대륙에서 막대한 부를 쌓은 미국 재벌들은 그들에게 자금을 지불하고 유럽의 역사와 문화적 자부심을 사들였다.
1922년, 영국을 떠나기 직전, 고별전에 나선 ‘블루 보이’를 보기 위해 9만명이 모였다. 당시 미술관 관장은 그림틀 뒷면에 ‘Au revoir(또 만나자)’라고 연필로 써뒀다. 그러나 ‘블루 보이’가 헌팅턴 미술관을 떠나 영국 땅을 밟은 건 그 후로 100년이 지난 2022년, 단 한 번뿐이었다.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조선일보(25-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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