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감 '최악 빌런' 뽑아봤다... 대상 최민희, 신인상 최혁진
팀으론 고성·파행 거듭한 '법사위'
베스트커플상엔 與 김우영·野 박정훈

지금까지 이런 국정감사는 없었다. 갈비도 통닭도 아니었다. 초호화 뷔페에 처음 가본 시골 소년의 마음이 이러했을까. 내딛는 걸음마다 생전 보지 못한 기묘한 음식들의 연속이었다. 모든 것이 새로웠던 ‘뉴노멀’ 국정감사였다.
한 해 가장 뛰어난 활약을 펼친 축구선수에게 ‘발롱도르’라는 상이 수여된다. 1956년 프랑스의 축구잡지 ‘프랑스 풋볼’이 창설한 상으로 축구 선수에게 수여되는 가장 명예로운 상으로 불린다. 그동안 리오넬 메시가 8회,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5회 수상하는 등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영예를 안았다. 미국에는 유서 깊은 골든 라즈베리상도 있다. 아카데미 시상식 바로 전날, 한 해 최악의 영화와 영화인들을 선정해 발표한다.
그래서 준비했다. 제1회 국정감사 ‘빌런도르’. 바야흐로 화제성이 곧 수익과 권력으로 이어지는 유튜브 시대, 모두가 ‘빌런(악당)’을 자처하는 시대에 ‘빌런’이란 호칭은 더 이상 오명이 아니다. 아울러 스타 플레이어라면 모름지기 지지층과 반대층, 소위 ‘빠’와 ‘까’ 모두를 미치게 할 줄 알아야 한다.
2025년 국정감사의 밤하늘을 수놓았던 그 빛나는 빌런도르 수상자들의 명단을 공개한다.

2025 빌런도르 빌런도르
- 최민희 국회 과방위원장
대상 격인 빌런도르에는 최민희 의원이 선정됐다. 국회 과학기술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최 의원은 통상 ‘상임위원장은 국감 스타가 되기 어렵다’는 통설을 정면으로 거부했다.
자녀 결혼식 논란과 MBC 보도본부장 레드카드 건이 연이어 히트하며 만장일치 빌런도르의 영광을 안았다. 특히 “양자역학 공부하느라 딸의 결혼식을 챙기지 못했다”는 대사는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보좌관의 페이스북을 활용한 1인 다역 연기, 국회라는 무대를 딸의 결혼식장으로 활용한 로케이션 선정, 여기에 보도 내용을 문제 삼으며 MBC 보도본부장을 국정감사장에서 퇴장시킨 장면도 많은 이들의 경탄을 자아냈다.
선정위원회에 참여한 한 위원은 “최 위원장이 옐로카드를 내려고 했는데 꺼내보니 레드카드였던 것은 아닐까”라며 조심스레 우발적 퇴장설을 제기하기도 했다. 선정위원회는 “메이저리그 가을야구에 오타니 쇼헤이가 있다면 K국정감사에는 최민희 의원이 있었다”며 “그동안 ‘누가 최고의 빌런인가’로 논쟁이 많았는데 이번 국정감사에서만큼은 최 의원이 천하통일을 이뤄냈다”고 평가했다.
2025 빌런도르 올해의 팀
-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애초에 올스타전이었다. 위원장에 추미애 의원, 여당 위원에 김용민·박지원·서영교·장경태·전현희 의원, 야당 위원에 나경원·곽규택·신동욱·주진우·조배숙 의원, 비교섭단체와 무소속 위원으로 박은정·최혁진 의원까지. 메이저리그로 치면 뉴욕 양키스와 LA다저스의 월드시리즈였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많았다. 조희대 대법원장의 이석을 둘러싼 공방, ‘조요토미 희대요시’ 문구가 적힌 피켓, 전격적인 대법원 청사 현장검증, 참고인으로 나온 안미현 검사와의 집단 일기토까지 2025년 국정감사의 시작과 끝에는 늘 법사위원회가 있었다.
고성과 파행의 축제는 일상이었다. 한 언론사의 모니터단에 따르면 법사위원회 위원장의 마이크 점유 시간이 타 상임위보다 3배가량 많았다는 분석도 있었다. 레전드 팀에는 명장이 있기 마련이다.
선정위원회는 “국정감사 전 공방에서부터 팀 법사위원회의 활약은 예고돼 있었다”면서 “조국의 뉴노멀을 묻거든 고개를 들어 법사위를 보게 하라”라는 격언으로 선정 이유를 갈음했다. 앞으로도 법사위원회의 독주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대목이다.
2025 빌런도르 트로페 코파(신인상)
- 최혁진 무소속 의원
가장 눈부신 활약을 펼친 신인 선수에게 주어지는 빌런도르 신인상에는 무소속 최혁진 의원이 선정됐다. 그가 국정감사 첫날 흔들었던 ‘조요토미 희대요시’ 합성 사진은 단연 2025년 국정감사 대전의 시작을 알리는 사라예보의 총성이었다. 당시 현장에 있던 한 보좌진은 “넘을 수 없는 통곡의 벽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이렇다 할 소속사도 없이 고군분투하는 대형 인상파 배우의 등장에 여의도는 열광했다. 유튜브 영상의 조회수는 수십, 수백만을 상회했고, 최 의원은 국정감사 중에 1억5000만원 후원금 한도를 완판시켰다며 감사의 글을 올리기도 했다.
선정위원회에 따르면 최 의원은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과 함께 베스트커플상 최종 후보에도 올랐으나 막판에 탈락하며 2관왕의 영예를 놓쳤다.
바로 옆자리에서 주진우 의원에게 보낸 애틋한 눈빛은 과연 사랑과 혐오는 한끗 차이라는 속설을 증명했다. LOVE WINS ALL, 모든 형태의 사랑은 존중받아 마땅하다.
2025 빌런도르 베스트커플상
- 박정훈 국민의힘 의원·김우영 민주당 의원
마지막까지 각축전을 벌인 베스트커플상은 영화 ‘우리 문자했어요’의 박정훈 국민의힘 의원과 김우영 민주당 의원이 차지했다. “찌질한 X” “한심한 XX” “옥상으로 따라와” “한주먹 거리” 등등 주옥같은 명대사가 쏟아졌다. 영화 ‘말죽거리잔혹사’가 1970년대 말 교내 폭력의 온상을 추억하게 했다면 그 2004년작 영화를 재차 연상시키는 명장면의 연속이었다.
두 의원의 케미는 답답했던 국민의 응어리를 풀어줬다는 평가다. 한 선정위원은 “때로는 말보다 주먹으로 결론 내는 것이 빠를 때도 있다”며 내심 두 의원의 ‘현피’(현장 대결)를 기대했다고 털어놓았다. 실제 많은 호사가들이 “그래도 젊은 피 무시 못한다”며 박정훈 의원의 우세를 점치거나, 반대로 “운동권 출신도 광의의 운동인이다”라며 김우영 의원의 승리를 점치기도 했다.
두 의원의 케미는 교통사고 시 누가 더 잘못했는지 과실 비율을 따지는 유튜브 ‘한문철TV’의 열풍을 재연하기도 했다. 실제 선정위원회 내부에서 “6 대 4, 그래도 욕한 사람이 문제다” “아니다 7 대 3, 그렇다고 문자 스크린샷을 공개하냐”는 등 첨예한 갑론을박이 벌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선정위원회는 베스트커플상을 발표하며 “국회의원회관 10층 옥상에 공간이 있다”며 “모쪼록 다음 국정감사에서는 두 의원의 무규칙 UFC 경기가 성사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심판으로는 ‘헬스부 장관’으로 유명한 김재섭 국민의힘 의원을 추천했다.
2025 빌런도르 크리에이티브 아티스트상
- 유영하 국민의힘 의원
그동안 국정감사에는 다양한 방식의 여가활동이 주목받았다. 휴대폰 게임 ‘애니팡’을 즐기는 의원, 가을을 맞아 평소 게을리했던 독서를 만끽하는 의원 등 주로 온·오프라인 콘텐츠를 즐기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유영하 의원은 달랐다. 유 의원은 앞에 놓인 노트북으로 ‘고릴라’를 검색하더니 가장 귀염상의 고릴라 사진을 골라 따라 그리기 시작했다. 이어 연필을 바꿔가며 색칠까지 예쁘게 했다.
가히 백남준 선생의 미디어아트를 연상케 하는 신기원이었다. 현재까지 왜 그가 고릴라 사진을 그렸는지, 왜 침팬지도 오랑우탄도 아닌 고릴라였는지 아는 자는 아무도 없다. 유 의원은 10월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국감장에서 집중하지 못한 모습을 보여 미안한 마음”이라며 “왜 고릴라 그림을 그렸는지 궁금해하는데 진짜 별 뜻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 담백한 답변마저 모든 규범의 틀을 거부하는 가장 완벽한 포스트모던이었다. 유 의원의 신박한 예술혼에 선정위원회는 만장일치로 크리에이티브 아티스트상의 영예를 안겼다. “밥 로스의 환생”이라는 평을 이끌어낸 유영하 의원이 다음 국정감사에서는 또 어떤 동물을 그려낼지 귀추가 주목되는 이유다.
총평
빌런도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다
모두가 빌런을 자처하는 시대지만 모두가 빌런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시상을 마친 선정위원회는 여권 정치인들이 주요 개인상(빌런도르, 신인상)을 독식한 선정 결과를 의식한 듯 “이는 상대적으로 국민의힘의 존재감이 미약했음을 뜻한다”고 덧붙였다. 익명을 요구한 한 선정위원은 “오죽하면 나경원 의원 배우자의 ‘언니 없다’ 랩이 더 화제가 되었을까”라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그마저도 기습 호구조사를 진행한 무소속 최혁진 의원의 성과였다.
한편 이번 빌런도르 수상 결과는 연예계 시상식에서 통용되는 속설 ‘연말 시상식 수상은 상반기보다 하반기에 히트해야 유리하다’는 점도 입증했다. 당초 유력한 후보로 점쳐졌던 조희대 대법원장, 김현지 대통령실 1부속실장은 강력한 후보들의 등장에 맥없이 영광의 스포트라이트를 내줘야 했다. 한 경기도 출장하지 않고 유력 후보에 오르며 큰 주목을 받았던 김현지 실장이 최민희 위원장에게 “내 축의금은 돌려주지 않아도 된다”는 문자를 보냈다는 명백한 가짜뉴스가 퍼질 정도였다.
빌런도르 선정위원회는 시상을 마치며 “수상하신 모든 분들께 축하의 말씀을 전하며 이 정도 적벽대전을 벌였으면 보좌진들에게 최소 3일 휴가는 줘야 한다”며 인기영합성 입장을 밝혔다. 아울러 “앞으로도 빌런도르 시상식은 계속될 것”이라며 “웃으면 복이와요”라는 시상식의 취지를 간곡히 역설했다.
제정신으로는 버틸 수 없는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동료시민들께 평화의 인사를 올린다.
-주간조선, 조선닷컴(25-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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