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餘暇-City Life]

[자극의 시대, 조용히 헐거워진 가족] [자유가 있는 감옥] ....

뚝섬 2025. 11. 15. 07:19

[자극의 시대, 조용히 헐거워진 가족] 

[자유가 있는 감옥] 

[몸을 데우니 마음도 따뜻해졌다]

 

 

 

자극의 시대, 조용히 헐거워진 가족

 

가정 내 심화되는 디지털 의존의 일상화
함께 있어도 깊어지는 가족 간 심리적 단절
대화 감소로 공동체 기능 기반 약화 초래
상호 관찰과 배려가 관계 회복의 출발점

 

주말 오후, 남편과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이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둘러보니 주변은 고개를 숙인 채 각자의 화면에 빠져버린 사람들로 조용했다. 무언가를 기다려야 하는 순간마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풍경은 이제 우리가 머무는 공간 어디서든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그러다 일곱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엘리베이터 옆 주차 등록, 매장 안내 등의 안내문을 손가락으로 짚으며 한 글자씩 더듬어 읽고 있었다. 이제 막 한글을 배우기 시작한 듯, 알 듯 말 듯한 작은 목소리임에도 그 또렷한 집중력과 호기심이 반가워 나도 모르게 싱긋 미소가 지어졌다.

하지만 바라보며 웃고만 있기엔 안타까운 장면이 펼쳐졌다. 아빠의 모습이었다. 아이 옆 아빠의 손에는 당연히 스마트폰이 들려 있었는데, 화면에는 평소 나도 즐겨 보던 예능 프로그램이 재생되고 있었고 놀랍게도 양쪽 귀에는 이어폰이 꽂혀 있었다.

 

“아빠, 이 글씨 뭐야?”

모르는 글자를 발견한 아이는 몇 번이나 아빠를 올려다보며 도움을 청했지만 대답은 없었다. 묵묵부답인 아빠에게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아이는 결국 입을 다물었다. 아빠는 끝까지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서운함과 어리둥절함이 섞인 아이의 표정이 내 마음에 오래 남았다. 아이의 그 표정을 아이의 아빠는 정작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 사실도 말이다.

가족이 함께 있다고 어떻게 내내 서로만 바라보며 빠짐없이 반응해야 하냐고 묻는다면 그런 거대한 주장을 펼치려는 게 아님을 분명히 하고 싶다. 어딘가 좀, 무언가 달라진 가족의 모습을 그냥 지나치지 말자는 제언이다. 가족이란 본래 함께 머물며 서로의 변화를 눈으로 확인하는 공동체였다. 말하지 않아도 알던 기색, 작은 행동의 변화로도 감정을 읽어내던 시간의 힘이 있었다.

그랬던 가족이 달라지고 있다. 전처럼 주말을 함께 보내지만, 각자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가는 중이다. 식탁 위에는 대화 대신 스마트폰 화면이 분주하게 교차하고, 거실에는 서로 다른 화면이 재생 중이다. 가족의 물리적 거리는 여전히 가깝지만, 심리적 거리는 멀어지는 중이다. ‘함께 있음’의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 한 공간에 있어도 서로를 관찰하지 않고, 듣지 않으며, 기다리지 않는다. 그렇게 가족의 온도가 서서히 식어가는 중이다. 책임보다는 편안함을, 대화보다는 침묵을, 기다림보다는 각자의 속도를 선택한다. 가족의 기능은 여전하지만 온기가 빠져나간 자리에는 책임만 남고 말 텐데, 그래도 정말 괜찮을까.

각자의 화면에 몰두한 가족에게 생길 수 있는 본질적인 문제는 관심의 방향이 서로에게서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가족이 나누는 언어의 온도, 시선의 빈도, 함께 머무는 시간의 질이 모두 낮아지고 있다. 알고리즘이 대신 추천해 주는 정보와 취향 속에서 가족 간의 소소하고 우연한 대화와 마주침은 설 자리를 잃는다. 관계의 끈은 끊어지지 않았지만 이미 충분히 느슨해져 있다.

문제는 그 느슨함이 깊어질수록 다시 이어 붙이는 일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가족의 헐거움은 어느 날 불쑥 당해버린 억울한 사고가 아니다. 또한 헐거워지는 가족은 누구 한 사람의 탓만도 아니다. 각자가 살아내야 하는 하루가 너무 바쁘고 팍팍하다. 회사와 학교, 사회의 속도에 맞춰 정신없이 살아가다 보면 집 안에서만이라도 마음껏 쉬고 싶다는 욕구는 자연스럽다. 가족 각자의 취향에 맞춰 휴식의 욕구를 충족해 주는 자극으로 둘러싸인 거실이 완성된다. 그러는 사이 가족 간의 대화는 미뤄지고, 감정의 교류는 줄어들고 있다. 아마도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던 그 아빠는 평일 내내 회사 일로 지친 몸을 간신히 이끌고 가족과 함께 쇼핑몰을 찾았을 것이다. 충분한 노력이고 희생임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가족이 회복해야 할 것은 ‘늘 행복한 모습’도, ‘완벽한 소통’도 아니다. 당연함에 기대어 헐거워져 버리지 않도록 관계를 조금만 더 단단히 잇기 위한 작은 노력, 그 한 걸음이 다시 시작되면 된다. 저녁 식탁에서 잠시 화면을 내려놓는 일, 대답 없는 말이라도 한 번 더 건네는 일, 귀찮음을 무릅쓰고 한 번 더 눈을 맞추는 일. 그 작은 반복이 단절되었던 가족을 다시금 연결해 줄 거라 믿는다.

글자를 물어보는 아이가 옆에 없었을 뿐, 그날의 난 주차장으로 향하는 내내 화면에 빠져 있었다는 점에서 그 아빠와 다를 게 하나 없었다. 그 가족의 안타까운 모습에서 나를 발견했고, 집으로 돌아온 난 스마트폰을 치워둔 채 아이들과 눈을 맞추려는 새삼스러운 용기를 냈다.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간 그 아빠와 아이가 화면이 사라진 공간에서 시시콜콜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깊은 잠에 빠졌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이은경 전 초등 교사·‘도파민 가족’ 저자, 동아일보(25-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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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가 있는 감옥

 

나에게는 함경북도 회령이 고향인 친구가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10대 때 혈혈단신 서울에 넘어와 지금은 대한민국 간호사로, 두 아이의 어머니로, 훌륭하게 자기 역할을 하며 살고 있는데, 문득 그 친구가 첫아이를 가졌을 때가 생각난다. 뱃속 아기에게 붙인 태명이 ‘마트’였다. 아니, 다른 귀엽고 예쁜 이름도 많은데, 왜 하필 마트야? 의아해하는 내게 그 친구가 말했다. 언니, 내가 한국 와서 제일 좋았던 게 뭐게요? 마트예요, 마트. 들어가면 없는 게 없잖아요. 사람이 살면서 필요한 건 다 있잖아요. 난 우리 마트가 세상에 태어나서 없는 거 없이, 배고플 일도 없이, 딱 마트처럼만 행복하면 좋겠어요. 마트는 그런 든든한 엄마 밑에서 무럭무럭 잘 자라 이제 멋진 초등학생이다.

 

또 다른 친구는 양강도 혜산에서 왔다. 부모님이 교원이라 그쪽 생활이 좀 넉넉한 편이었는데, 그래서인지 그 친구에게 남한 생활이 어떤지 물어봤을 때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누나, 여기는 말이죠, ‘자유가 있는 감옥’입니다. 자유가 있긴 한데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하고 꼼짝없이 집에 있어야 해요. 그러니 매일 돈 벌러 나가고 족쇄가 따로 없습니다. 돈 밑에 사람 있고 사람 위에 돈 있어요. 사는 게 옴짝달싹할 수가 없습니다. 지난여름 에어컨 청소하는 일을 했는데 날개를 끼우다가 부품이 부러져 대단하게 욕을 먹고 번 돈의 몇 배를 배상하고 나왔다고 한다. 참, 세상살이 쉽지 않지.

 

얼마 전 중학생 대상 북토크에서 한 여학생이 내게 당차게 물었다. 작가님에게 자유란 무엇입니까? 음……, 저에게 자유는요……, 생의 마지막 순간에, 그래, 그동안 살면서 진짜 후회 없는 선택을 했어, 하는 마음이 들도록 살아가는 것입니다. 쉽진 않겠지만요. 아직 열너댓 살밖에 안 되는 친구들은 아리송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한다. 미안해요, 여러분한테는 아직 이해가 잘 안 가는 답변일지도 모르겠네요.

 

-정수윤 작가·번역가, 조선일보(25-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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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데우니 마음도 따뜻해졌다


오랜만에 찾은 대중목욕탕서
어린 시절 마음을 떠올렸다

 

집에서 온수를 마음껏 쓰지 못했던 어린 시절에는 일주일에 한 번 대중목욕탕에 갔다. 갈 때마다 한 주간 쌓인 때를 최대한 벗기고 와야 했기에 목욕을 끝낸 내 손가락 끝은 라면처럼 쭈글쭈글했다. 가끔 손가락 끝에 라면이 보이지 않는 날엔 덜컥 걱정됐다. 목욕하고 귀가할 때면 엄마는 손가락에 침을 묻혀 내 손목을 문지르셨기 때문이다. 밀려나오는 게 없다면 합격. 그러지 않는다면 불합격. 부실하게 씻고 온 날이면 비공식 ‘때 감별사’인 엄마는 어김없이 말씀하셨다. “다음엔 더 ‘매매’(열심히, 빡빡) 씻고 온나.”

 

성인이 되고 나서는 자발적으로 대중목욕탕에 가본 적이 없다. 집에서 매일 하는 샤워로 충분했고, 가끔 시급할 때만(!) 때를 밀었다. 하지만 요 며칠, 잃어버린 가을을 애통해하다 보니 절로 온탕 생각이 났다.

 

안 그래도 우리 동네에는 세월의 흔적이 켜켜이 새겨진 대중목욕탕이 있다. 하지만 어쩐지 덥석 가볼 용기가 나지 않아서 인터넷 검색부터 해봤다. 아쉽게도 매장 정보는 업데이트돼 있지 않았고 이용 시간과 휴무일, 요금 정보도 없었다. 다만 방문자 후기가 두어 개 달려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눈에 띄었다.

 

“예전 그대로예요.”

 

좋다는 얘길까, 안 좋다는 얘길까. 일단 가보는 수밖에. 주머니에 지폐 두 장을 고이 품고 속옷과 목욕용품을 챙겨 목욕탕으로 향했다. 출입문 안으로 들어서자, 안내 창구 앞에 ‘목욕 12,000원’이라고 쓰여 있었다. 창문 너머로 계산을 하니 어르신께서 주황색 수건을 두 장 건네주셨다. 어렸을 때는 수건도 챙겨갔던 것 같은데, 두 장이나 받다니 다행이었다.

 

목욕탕은 낡은 외관처럼 내부도 정겹기 그지없었다. 출입문 너머에는 아코디언 같은 미닫이문이 달려 있었는데 드르륵 여니 목욕을 마친 사람들이 몸을 말리고 있었다. 욕장 입구에는 입식 스테인리스 선풍기가 서 있었고, 한쪽 벽면에 붙은 거울 아래 화장대 위에는 동전을 넣어 사용하는 헤어드라이어가 놓여 있었다. 벽에는 줄 끝에 플라스틱 고깔이 붙은 벽걸이 선풍기가 돌고 있었다. 응답하라, 그때 그 시절! 마치 시간 여행을 온 것만 같았다.

 

얼른 욕장으로 들어가 샤워하고, 머리를 감고, 온탕 앞에 섰다. 대중목욕탕에 와서 가장 설레는 시간. 뽀글뽀글 기포가 올라오는 탕에 살짝 발가락을 집어넣자, 살이 데쳐질 듯 뜨거웠지만 조금만 견디면(!) 익숙해질 것 같았다. 쭈뼛쭈뼛 들어가 몸을 담그고 가장 편한 모서리를 찾았다. 이리저리 몸을 움직여 안정적인 자세를 만들고 나니 절로 안도의 한숨이 흘렀다. 오랜만에 따끈한 물에 몸을 담그고 있자니 온몸의 근육이 액체가 되어 흐물흐물 녹아내리는 느낌. 곧이어 마음속 응어리까지 풀어지는 것 같았다. 그래 이거지. 이 맛에 목욕탕 오지.

 

따뜻한 물은 마음도 덥힌다. 업무 중간에 호로록 마시는 차 한 잔이 그렇고 한겨울, 공중화장실 세면대에서 무심히 흐르는 온수가 그렇다. 싸늘해진 날씨에 푸석거리는 마음에는 온수가 좋다. 묵은때를 씻어 주고, 몸의 긴장을 풀어주고, 올겨울도 잘 한번 버텨 보자고 마음을 다잡게 한다.

 

내내 연탄을 때던 집에 처음으로 가스보일러가 들어온 날을 기억한다. 목욕할 때마다 가스레인지에서 물을 끓여서 쓰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안도감보다 고마움이 먼저 흘렀다. 어린 마음으로도 알았다. 따뜻한 물은 고마운 거라는 걸. 몸보다 마음을 먼저 데워준다는 걸. 그만큼 귀한 것이라는 걸. 오랜만에 찾은 대중목욕탕에서 그 시절 마음을 다시금 만났다.

 

목욕을 마치고 벽거울 앞에 서니 얼굴이 고구마 껍질처럼 붉었다. 아까 받아온 수건으로 몸을 닦고 머리에 물기를 털어내고, 벽에 붙은 선풍기 끈을 당겨 머리를 말렸다. 선반 위에는 목욕탕에서만 볼 수 있는 플라스틱 통에 든 스킨과 로션이 놓여 있었다. 뚜껑을 열어 열기가 남은 얼굴과 몸에 찹찹 바르니, 강한 화장품 냄새가 목욕탕 가득 퍼졌다.

 

가뿐한 마음으로 체중계에 올라가 보았다. 하지만 또 한 번의 인생 (최고) 몸무게를 목격하고 충격에 휩싸여 서둘러 내려왔다. 왜 나의 몸무게는 잴 때마다 최고치를 경신하는가. 찬바람을 좀 쐬야 할 것 같아 후다닥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왔다.

 

충분히 데워진 몸은 가을 저녁 바람에 당당히 맞설 수 있었다. 무심코 두 손바닥을 펴 보니 열 손가락 끝에 착실히 라면이 붙어 있었다. 어느덧 어른인 나는 엄마 대신 스스로 합격점을 줄 수 있었다. 오랜만의 목욕탕 나들이는 성공, 그리고 합격이었다.

 

대중목욕탕 나들이의 백미는 역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 오늘 밤만큼은 안 씻어도 된다는 사실조차 만족스러웠다. 따끈한 마음을 끌어안고 어둑한 길을 걸었다. 하염없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저녁으로 뭘 먹을지 궁리하면서.

 

-김신회 작가, 조선일보(25-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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