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餘暇-City Life]

[바삭한 질감, 그리고 정교하게 엮인 맛] [이탈리아 피자와.. ] ....

뚝섬 2025. 11. 23. 05:40

[바삭한 질감, 그리고 정교하게 엮인 맛]

[이탈리아 피자와 미국式 피자]

[정우현 MP그룹 회장]

 

 

 

바삭한 질감, 그리고 정교하게 엮인 맛

 

피자에 대해서 나는 자주 고지식한 사람이었다. 나폴리식 화덕 피자가 아니라면 답이 없다는 식이었다. 오래전 나폴리에서 먹었던 피자 맛을 떠올리면서, 섭씨 500도까지 올라가는 장작 화덕 속에서 빠르게 익어 속은 촉촉하고 겉은 바삭한 질감이 살아 있어야 했다. 또한 글루텐이 많아 쫄깃하지만 또 이탈리아 밀가루로 만든 반죽 특유의 산뜻하게 잘리듯 씹히는 식감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서울 강남구 앰버 더 피자룸의 페퍼로니 피자.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그러나 피자라는 음식의 역사를 생각하면 누군가, 혹은 어떤 집단의 맹목적인 도그마(dogma)일지도 몰랐다. 피자는 이탈리아 남부 나폴리에서 올리브 오일 정도만 넣은 밀가루 반죽을 구워 흔한 식재료를 올려 먹던 가난한 음식이었다. 그야말로 소금 간을 하고 올리브 오일만 친 밀가루 떡에 가깝던 피자는 가난에 지친 이탈리아 남부 사람들이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며 다른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화덕에서 시작한 피자는 냉동 음식이 되었고 끝내 하와이안 피자라는 이름으로 파인애플까지 올라갔다.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모욕이고 이단이겠지만 그렇게 하얀 밀가루 반죽 위에 사정이 허락하는 대로, 혹은 상상력의 크기만큼 소스와 토핑을 올려 먹는 그 자유로움이야말로 사실 피자라는 음식의 본령이 아니었던가?

 

 

거창하게 그런 생각을 한 것은 이 집이 미국식 얇은 피자를 했기 때문이다. 대치동 뒷골목 반지하에 자리 잡은 ‘앰버 더 피자룸’이라는 피자집에는 땀을 뻘뻘 흘리며 커다란 삽자루 같은 것을 휘둘러야 하는 화덕도 없었다. 대신 테크 오븐 앞에 흰 조리복을 입은 청년 둘이 서 있었다. 주방과 손님이 앉는 홀은 경계가 없었다. 자리에 앉으니 피자 반죽을 쳐 오븐에 넣는 과정이 CCTV를 보는 것처럼 훤히 드러났다. 추운 바깥과 달리 실내는 오븐 덕분인지 따뜻했다. 재즈 연주자처럼 몸으로 느껴지는 온도와 색깔로 타이밍을 잡는 나폴리 피자와 달리 정교하게 재단하고 측정하는 모습이 실험실 연구원 같았다.

 

우선 시저 샐러드를 시켰다. 로메인 상추를 툭툭 자르고 삶은 달걀과 적양파 슬라이스, 이탈리아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치즈를 넉넉히 갈아 올렸다. 가볍게 버무린 마요네즈 베이스의 드레싱 풍미가 상큼했다. 상추잎이 아삭하게 씹혔고 치즈의 동물성 감칠맛이 길게 이어졌다. 곧 피자가 하나씩 테이블에 올라왔다. 이탈리아 북부에서 난 프로볼로네 치즈, 모차렐라, 백합 조개, 마늘을 올린 클램 피자가 시작이었다. 하얗게 녹은 치즈 사이사이로 도톰한 조갯살이 보였다. 이탈리아어로 ‘코르니초네’라고 부르는 피자 가장자리는 검은색이 드문드문 박혀 표범 무늬 같았다. 이미 잘려 있는 피자 한 조각을 들어 올렸다. 물기를 머금어 축 처지는 나폴리 것과 달리 얇고 바싹하게 구워 허공에 들어 올려도 피자가 처지지 않았다. 입에 피자 조각을 깊숙이 찔러 넣었다. 구운 빵처럼 바삭한 질감이 먼저 느껴졌다. 짭조름한 조개 맛이 익은 치즈, 마늘과 만나 졸이고 졸인 클램차우더 수프를 마시는 것 같기도 했다.

 

염장한 돼지 볼살인 관찰레를 베이컨처럼 얇게 자르고 마늘, 페코리노 치즈, 적양파, 흑후추를 듬뿍 뿌린 관찰레 피자는 기름진 육욕(肉慾)의 화신(化身) 같았다. 소금에 절인 돼지고기의 농축된 맛, 구운 마늘의 달고 쓴 맛이 치즈·후추와 어우러져서 카니발처럼 위와 아래, 낮과 밤으로 끝없이 열린 리듬을 만들어냈다.

 

초록 바질과 페퍼로니 햄, 모차렐라 치즈, 그린 올리브, 토마토소스로 맛을 낸 페퍼로니 피자는 그에 비하면 단정한 모양새였다. 하지만 빵과 절인 열매, 치즈에서 비롯된 각각의 다른 짠맛이 직조물을 짜듯 한 올 한 올 정교하게 엮은 솜씨로 이어져 맛이 아닌 감정의 양태로 나타나는 듯했다. 그 감정이란 자유이기도 했고 잘 다듬어진 삶의 방식이기도 했다. 한 사람을 마주할 때 느껴지는 철학, 혹은 평범하게 이야기하는 됨됨이일지도 몰랐다. 우리가 피자라는 음식을 먹으며 느끼고 싶고 이루고 싶은 마음과 삶도 아마 그럴 것이다. 이것이 아니면 안 된다는 누군가의 기준과 엄격하지만 가난한 마음을 바라지 않는다. 대신 음식을 같이 먹는 흥겨움, 모두에게 공평하고 넉넉한 여유로움, 삶의 한 조각을 함께 나누는 기쁨을 원한다.

 

#앰버 더 피자룸: 페퍼로니 피자 2만6000원, 관찰레 피자 2만7000원, 클램 피자 2만9000원, 시저 샐러드 6500원, 070-8671-1416.

 

-정동현 음식 칼럼니스트, 조선일보(25-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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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피자와 미국式 피자

 

미국의 세계 1위 피자 배달 브랜드 도미노 피자가 ‘피자의 고향(birthplace of pizza)’ 이탈리아 진출에 도전한 지 7년 만에 파산 신청을 하고 철수한다(file for bankruptcy and withdraw). 1960년 설립 후 90국 1만8800여 매장을 운영 중인 도미노 피자는 2015년 빠른 배달과 파인애플 등 미국식 토핑을 앞세워 피자의 본고장 정복에 나섰다(set out to conquer it). 그러나 2030년까지 880개 매장 확대 계획은 코로나19와 토종 업체들의 역공세에 맞닥뜨려(bump into their counteroffensive) 그나마 남아있던 지점 29개마저 폐쇄하면서 수포로 돌아갔다(crumble to dust).

 

피자는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음식 중 하나로, 이탈리아 나폴리가 고향이라는 설이 전혀 놀랍지 않은(come as no surprise) 사실로 받아들여져 왔다. 하지만 사학자들은 피자가 훨씬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say in unison). 고대 그리스, 로마, 이집트인들이 일찍이 지금의 피자처럼 여러 오일과 향초를 얹은 납작빵(flatbread topped with various oils and herbs)을 먹었다는 것이다. 서기 전 6세기 무렵에는 페르시아인들이 치즈와 대추야자 열매로 덮은 얇은 빵을 구워 먹었다고 한다.

 

현재와 같은 개념의 피자는 이탈리아 나폴리의 빈민가에서 끼니를 대신하는(substitute for meal) 먹거리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역사가들도 피자가 최초로 만들어진 정확한 시기를 꼭 집어 말하지는(pinpoint an exact date) 못한다. 다만, 그 기간을 어느 정도 압축해(narrow down the window) 설명하는 정도다.

 

토마토는 1500년대 무렵까지 유럽에 유입되지 못했다. 독이 있다는(be poisonous) 속설 때문이었다. 따라서 피자는 그 이전에 등장할(come into existence) 수 없었다는 것이 역사가들의 주장이다. 1799년에 나온 책에 피자는 토마토 소스와 치즈를 얹은 밀가루 반죽으로 소개돼 있다. 1700년대 후반 이탈리아 인구 센서스에 비로소 ‘피자 만드는 상인’이 있다는 기록이 나온다.

 

피자가 미국으로 건너간 건 1910년대 초로 추정된다. 페퍼로니 피자는 이탈리아가 아닌 미국에서 생겨났다. 페퍼로니는 양념 맛이 강한 소시지(spicy sausage)의 한 종류로, 뉴욕주(州)에 살던 Ezzo 성씨 가족이 미리 얇게 썰어놓은 상태로 팔기(sell it pre-sliced) 시작했다. 피자 토핑용으로 쓴 건 1950년대 들어서였다. 코네티컷주 도시 뉴헤이븐의 한 피자 집이 처음 상품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초기엔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했다. 1980년대 들어 소시지 회사 Ezzo가 페퍼로니 전문 ‘도미노’라는 체인을 만들고, 그것이 도미노 피자로 발전하면서 페퍼로니가 가장 선호하는 피자 토핑으로 자리 잡게 됐다.

 

온갖 종류 토핑을 얹은 피자는 전 세계인의 최고 기호 식품(the most favorite food)이 된 지 오래다. “당신은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해줄(make everyone happy) 수 없다. 당신은 피자가 아니니까.” “”내가 피자를 바라보는 것처럼 나를 바라봐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고(can’t buy happiness with money) 말하는 사람은 피자를 사 먹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윤희영 에디터, 조선일보(22-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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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현 MP그룹 회장

 

"자기가 책에 쓴 대로만 경영했으면 구치소 신세 질 일은 없었을 텐데…." 미스터피자 창업주인 정우현 전 MP그룹 회장이 6일 구속됐다는 소식을 들은 한 외식업체 고위 임원은 이렇게 말했다. 정 전 회장이 2012년 출간한 자서전 '나는 꾼이다'를 두고 한 말이다. 토종 피자로 국내 1위에 오른 그는 최근 프랜차이즈 본부의 '갑질' 논란으로 대국민 사과를 하고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친인척이 운영하는 업체를 중간에 끼워넣는 방식으로 비싼 피자 치즈를 가맹점에 강매해 수십억원대 부당 이득을 보고, 탈퇴한 가맹점주가 낸 피자 가게 인근에 직영점을 열어 '보복 출점' 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국민적 공분이 거세게 일었다. 가맹점주에게 본사 광고비를 떠넘기고, 간판 교체를 강요했다는 의혹도 잇따랐다.

경남 하동 산골 출신인 정 전 회장은 1974년 동대문시장에서 섬유 도매업을 시작한 뒤, 1990년 외식업으로 진로를 틀어 '대한민국 1등 피자꾼'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그는 자서전에서 자신의 경영 철학을 '도우'(dough·꿈과 정성을 빚는다), '숙성'(꿈을 현실로), '토핑'(topping·아이디어와 차별화), '굽기'(뜨거운 열정) 등 4개 키워드로 풀어냈다. 피자 사업을 시작하며 세운 세 가지 원칙도 공개했다. 혼신의 노력으로 올인하고, 반드시 'A급' 식재료를 쓰며, 가맹점 이익을 위해 존재하겠다는 것이다. 갑질 논란으로 질타받는 그가 '본부의 도덕관(觀)'을 가맹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았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자서전에는 이런 대목도 나온다. "가맹점이 이익을 낼 구조를 연구하는 데 온 마음을 쏟았다. 그래서 '가족점'이라는 이름을 쓴다." "목이 쉬도록 설명하고 또 설명했다. 가맹점과 소통이 이뤄지지 않고 성공한 브랜드를 본 적이 없다." 그는 '위기 경영'에 돌입했던 2010년 당시를 회상하며 "비즈니스의 꽃은 초심(初心)을 잃었기 때문에 지는 것"이라고 했다. 정 전 회장이 '나의 또 다른 분신'이라던 자서전을 가맹점주들에게 강매하기보다, 책 속의 가치를 경영 현장에서 실천하는 데 힘썼다면 구속이란 상황까지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 경영학자는 "정 전 회장도 아마 그동안 일군 성공이 오로지 자신의 능력과 노력에 의한 결과라고 믿는 이른바 '자뻑 도그마'에 빠졌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가맹점주들의 불만 등 회사 안팎에서 위기를 알리는 경고음이 여러 차례 울렸지만, 과거의 '성공 공식'으로 돌파할 수 있다고 확신해 귀 기울이지 않았을 것이란 지적이다.

정 전 회장은 지난달 26일 서울 서초구 본사에서 "상생 협력을 기본으로 투명 경영 기업으로 다시 일어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사과문을 발표하고 깊이 허리 숙여 인사한 뒤 황급히 회견장을 빠져나갔다. 지난 6일 구치소로 향하는 그의 뒷모습에서 '세계 1등'을 힘주어 말하던 예전의 당당함은 찾을 수 없었다.


-채성진 산업1부 기자, 조선일보(17-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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