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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 문화재 문제 이슈로 서울시장 선거운동 하나] .... [세운상가]

뚝섬 2025. 11. 11. 08:11

[與, 문화재 문제 이슈 만들어 서울시장 선거운동 하나]

[吳 시장은 왜 세운상가에 올라 '분노의 눈물' 흘렸나]

[세운상가]

[저무는 을지로 老鋪시대]

[부담 없이 드나드는 '사랑방'처럼… 한옥적 요소 더한 복합 문화 공간]

[테러 예방하는 도심 설계, 음주 돌진 차량도 막는다]

 

 

 

與, 문화재 문제 이슈 만들어 서울시장 선거운동 하나 

 

김민석 국무총리가 10일 서울 종로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종묘를 찾아 최근 서울시의 세운 4지구 재개발 계획에 대한 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김민석 국무총리가 10일 서울 종묘를 방문해 이곳에서 170m 떨어진 세운4구역에 고층 건물을 짓도록 한 서울시 결정을 비판했다. 김 총리는 고층 건물이 들어서면 숨이 막히게 된다”며 “서울시가 마구 결정할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앞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국가유산청장도 “모든 수단을 강구해 막겠다”고 했다.

 

서울시는 20년 전부터 세운상가 일대의 재개발을 추진했지만 종묘 문제로 이행이 되지 않았고 그러는 사이 세운상가는 58년 된 흉물로 전락했다. 결국 서울시가 세운상가를 허물고 최고 142m의 고층 건물을 만들되 종묘에서 남산까지 녹지 축을 만들어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겠다는 구상을 다시 내놓았다.

 

이 문제는 결국 소송까지 갔고 최근 대법원은 문화유산 보호구역 밖에서 하는 공사까지 제한할 수 없다는 내용의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 판결로 인해 세운상가 재개발은 물론 문화유산 주변의 도심 재개발도 탄력을 받게 됐다.

 

문화재 보호를 주무로 하는 부처들의 입장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정도가 있고 상충하는 가치는 서로 조화를 이뤄야 한다. 지금은 문화재 쪽에 너무 치우쳐 도시의 정상적 발전과 시민의 재산권 행사를 가로막는 지경이다.

 

이상한 것은 이 문제에 갑자기 장관이 나서 아무 상관 없는 ‘김건희’까지 들먹이며 격하게 반응하더니 이제 총리까지 나선 사실이다. 이들도 대법원 판결을 부정할 수 없다는 사실은 잘 알 것이다. 결국 내년 서울시장 선거를 앞두고 현직 오세훈 시장을 공격할 소재가 된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오세훈 시장은 “재정비 사업은 오히려 종묘의 가치를 높일 것”이라며 김 총리와의 토론을 제안했다. 정부가 정치적 목적 없이 순전히 문화재 때문이라면 이 토론에 응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주민들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공청회도 열 수 있다. 이 문제에 선거 정치가 개입하면 합리적 결론 대신 정쟁만 벌어질 뿐이다.

 

-조선일보(25-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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吳 시장은 왜 세운상가에 올라 '분노의 눈물' 흘렸나

 

[박정훈 칼럼] 

이념으로 폭주하는 운동권 정권이 바뀔 때 어떤 일이 생기는지,

왜 대다수 국민이 정권 교체를 바라는지,
서울시의 오늘이 예고편처럼 보여주고 있다 
 
 

 

1968년 준공 직후의 세운상가.

 

변방을 떠돌던 야인 시절, 오세훈 서울시장은 세운상가 앞을 지날 때마다 피를 토하는 심정이었다고 한다. 안타까움 때문이었다. 그는 시장에 첫 당선됐던 2006년, 세운상가군(群) 건물을 철거해 녹지화하는 계획을 세웠다. 주변 지역과 통합 개발해 종로에서 남산까지를 녹지 벨트로 잇는다는 도심 재창조 프로젝트였다. 그런데 무상 급식 논란 끝에 그가 물러나고 박원순 시장이 당선되면서 계획이 뒤집혔다. 낡은 건물을 ‘보존’하는, 이른바 도시 재생 방식으로 전면 수정된 것이다.

 

개발 사업이 중단되면서 지은 지 50년 넘은 건물들은 흉물로 변해갔다. 주변 일대는 눈뜨고 보기 힘들 만큼 슬럼화가 진행됐다. 박 시장은 1000억원을 들여 건물들 사이로 공중 보행로까지 설치했다. 철거를 못하게 대못 박은 것이었다. 10년이 지난 뒤 오 시장이 다시 시정(市政)을 이어받았다. 그는 지난 가을 세운상가 옥상에 올라 폐허 같은 광경을 둘러보고는 “분노의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박원순 시정은 ‘보존 지상주의’에 빠져 도심 쇠락을 방치했다. 그 사이 서울의 도시 경쟁력은 10위에서 17위로 추락했다. 그렇게 10년 세월을 허비한 전임자의 무책임에 대한 분노였을 것이다.

 

대못은 시정 곳곳에 박혀 있었다. 오 시장은 서울시가 시민단체의 자금줄로 전락한 사실을 확인하고 경악했다. 매년 1000억원 규모의 시 예산이 보조금이며 위탁금 명목으로 시민단체들에 지원되고 있었다. 제대로 된 타당성 심사나 검증도 없었다. 시민단체가 신청하면 사실상 자동 지급되는 시스템이 제도화되어 있었다. 그렇게 서울시에 줄을 댄 등록 시민단체가 2300개에 달했다. 인건비와 운영비 태반을 서울시에 의존하는 단체들이 수두룩했다. 오 시장은 이를 ‘현금인출기(ATM)’에 비유했다. 과장이 아니었다.

 

M사단법인이라는 마을 공동체 사업 단체가 있다. 박원순 시장 당선 이듬해 세워진 이 단체는 설립 4개월 뒤부터 서울시 지원을 받기 시작됐다. 마치 시가 돈 대줄 것을 알고 설립한 것 같았다. 이후 10년간 M법인이 지원받은 액수는 626억원에 달한다. 절반 이상이 임직원 인건비였다. 더 기막힌 것은 M법인의 사무국장 등이 이 사업을 담당하는 서울시 과장급으로 채용된 것이었다. 시민단체 사람이 공무원 자리에 들어앉아 자기가 몸담았던 단체에 예산 배정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돈 주는 자와 받는 자가 사실상 동일인이었다. ‘짜고 치는 고스톱’이란 말이 어울렸다.

 

다른 영역도 다르지 않았다. 박원순의 서울시는 ‘OO센터’라는 이름의 중개소 조직을 만들어 시민단체 업무를 위탁했다. 그런데 ‘OO센터’ 직원 대부분이 시민단체 출신이었다.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이 중개소에 들어가 자기가 일했던 단체에 돈을 주는 식이었다. 사업 공고를 낼 때부터 특정 단체를 전제로 한 규정을 만들거나, 시 내부 회의에 참여하는 단체를 사업자로 선정하는 등의 ‘내부 거래’ 사례가 비일비재했다. 공정한 사업성 평가나 관리·감독이 이루어질 수 없는 시스템이었다.

 

그러니 세금 쓴 만큼 효과가 나올 리 없었다. 사회 주택 사업은 3500억원이 투입됐지만 공급 실적은 목표의 25%에 불과했다. 베란다 태양광 사업체 14곳은 118억원을 지원받고 3년도 안 돼 폐업해 ‘먹튀’ 논란을 불렀다. 61억원이 들어간 마을 생태계 사업은 요리·파티 같은 취미 활동의 밥값으로 쓰이는 게 고작이었다. 10년간 1조원이 시민단체와 관련 사업체에 투입됐지만 서울 시민들은 효과를 체감하지 못한다. 세금으로 시민단체 월급 주고 활동비 대 준 셈이 됐다.

 

오 시장은 내년 예산안에서 시민단체 지원금을 절반으로 잘라냈다. 정치적 편항성 논란을 빚은 TBS 출연금은 33% 삭감했다. 그러자 거센 반발이 일었다. 시민단체들이 연대 기구를 결성해 ‘반(反)오세훈 투쟁’을 선언했다. 여기에 이름 올린 단체가 1090개에 달했다. 서울시에 뿌리 박은 기득권 먹이사슬이 얼마나 광범위한지를 보여주는 숫자였다.

 

서울 시의회 의석의 90%를 차지한 민주당은 ‘오세훈표 예산’을 난도질했다. 예산안 심의에서 오 시장이 추진한 중점 사업비를 모조리 ‘0원’으로 삭감했다. 반면 시민단체 지원금은 원래대로 전액 부활시켰다. TBS 출연금은 도리어 13억원 증액까지 시켜 놓았다. ‘여소야대’의 쓴맛을 보여주겠다는 것이었다.

 

서울시는 이념 폭주하는 운동권 권력이 교체됐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주는 현장이다. 그것은 한마디로 비정상의 정상화다. ‘시민단체’를 ‘586 운동권’으로, ‘보존 집착’을 ‘부동산 아집’이나 ‘탈원전’으로 바꿔 쓰면 문재인 정권도 다르지 않다. 왜 절대다수 국민이 정권 교체를 바라는지, 서울시의 오늘이 예고편처럼 보여주고 있다.

 

-박정훈 논설실장, 조선일보(21-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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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운상가 

 

일제 말, 총독부는 서울이 공습당했을 때 불이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종로3가~퇴계로를 남북으로 잇는 폭 50m 소개(疏開) 도로를 만들었다. 해방 후 이곳에 전쟁 이재민과 북에서 내려온 실향민이 정착해 거대한 빈민촌을 이뤘다. ‘종삼’이라 부르는 사창가도 생겨났다. 당시 서울시장 김현옥은 “수도 한복판이 이래선 안 된다”며 대대적 도심 정비에 나섰다. 건축가 김수근의 설계로 1967년부터 5년간 세운상가~진양상가로 이어지는 주상 복합 건물 6동(棟)이 차례로 들어섰다. 세운상가의 시작이었다

 

▶서울 시민 반응은 좋았다. 연이어 늘어선 콘크리트 구조물은 서울 근대화의 상징물이 됐다. 부자들은 상가 아파트에 앞다퉈 입주했고, 서민들은 그때만 해도 낯설던 엘리베이터를 구경하기 위해 몰려갔다. 첫 국회의원 회관도 1968년 이곳에 입주했다. 1970~80년대엔 전자제품 상가로 번성했다. 시인 유하는 ‘세운상가 키드의 사랑’에서 젊은 외국 여배우 사진과 도색 잡지까지 은밀히 거래되던 이곳을 ‘욕망의 이름으로 나를 찍어낸 곳’이라고 했다.

 

▶그러나 영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손정목 전 서울시립대 교수는 저서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에서 3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72~1976)이 끝날 때쯤 한국인은 굶주림에서 벗어나면서 아름다움과 추함을 분간하는 눈을 떴다고 썼다. 세운상가는 ‘번영의 상징’에서 ‘북한산~남산~한강을 잇는 서울의 녹지 축을 망친 흉물’로 전락했다. 아파트 주민들은 더 쾌적한 삶을 찾아 강남으로 떠났고, 의원회관도 이전했다. 가게들까지 용산 전자상가로 이사 가면서 공실률이 70%까지 치솟았다.

 

세운상가의 미래에 대한 오세훈·박원순 두 서울시장의 해법은 극과 극으로 갈린다. 오 시장은 2009년 노후한 세운상가를 철거한 뒤 공원과 어우러진 고층 빌딩가를 짓겠다고 했다. 박 시장은 반대로 갔다. 세운상가 건물을 보전하고 보행로를 만들었다.

 

▶오 시장이 엊그제 서울시의회에 출석해 “세운상가에 올라 분노의 눈물을 흘렸다”며 “반드시 계획을 새로 세울 것”이라고 다짐했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는 낡고 더럽던 동대문 일대를 외국 관광객들도 찾는 명소로 만들었다. 개발은 도시를 새롭게 탄생시킨다. 하지만 보존의 가치도 무시할 수는 없다. 유럽 도시엔 수백 년 된 아름다운 고(古)건축물이 즐비하다. 세운상가가 유럽 건축과 같은 보존 가치를 가진 건물이냐는 것이 쟁점일 것이다. 개발이든 보존이든 쾌적하고 멋진 변모로 시민을 행복하게 했으면 한다.

 

-김태훈 논설위원, 조선일보(21-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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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무는 을지로 老鋪시대

 

여름철엔 오전 11시 넘어부터 줄이 늘어섰다. 흐르는 땀을 훔치면서도 차가운 냉면 한 대접 받을 생각에 20~30분을 서서 기다렸다. 서울 을지로 3가 지하철역 공구상 거리의 을지면옥이다. 희끗한 머리의 이북 실향민도 많았지만 평양냉면 좋아하는 젊은 회사원도 적지 않았다. 육수와 동치미 섞은 국물에 담긴 메밀국수의 심심한 맛은 중독성이 강했다. 성수기엔 일주일에 서너 번씩 다니는 동료도 봤다. 편육 한 접시에 냉면 한 그릇을 눈치 보며 얼른 해치워야 하는 여름보다 손님 뜸한 겨울에 찾는 게 단골 대접받는 비결이라고도 했다.

 

▶이 식당은 혼자 오는 어르신도 살갑게 대했다. 소주 반 병, 편육 반 접시를 시켜놓고 앉은 손님도 눈에 띄었다. 플라스틱병에 든 200mL짜리 소주였다. 바쁜 점심시간 테이블을 차지한 어르신이 편육 안주 삼아 소주 반 병 비우고 국수를 시킬 때까지 종업원은 군소리 안 했다. 요즘 소주 반 병, 편육 반 접시 메뉴는 사라졌지만 어르신 자리 챙기는 정성은 여전하다.

 

▶1985년 개업한 을지면옥이 재개발로 철거될지 모르는 신세라고 한다. 이 자리엔 지하 7층, 지상 20층 규모 오피스빌딩과 상가가 들어설 예정이다. 서울시는 세운상가 주변을 재개발해 주상복합아파트를 짓는다는 계획이다. 안성집, 양미옥, 노가리 골목 같은 을지로의 대표적 노포(老鋪)와 맛집이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평양냉면은 몇 년 새 신세대 인기 메뉴로 급상승했다. 냉면 맛을 모르면 유행에 뒤진 구식 취급을 받을 정도다. 소셜 미디어에는 성지순례하듯 냉면집 사진이 올라왔다. 냉면 마니아라는 젊은 연예인도 잇따랐다. 가수 존 박은 "평양냉면의 심심한 맛처럼 내 인생도 그렇게 살고 싶다. 자극 없이 꾸준히 싱거운 맛처럼 살고 싶다"는 냉면 예찬자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어제 신년 간담회에서 "노포들을 보존하는 방향을 찾아보겠다"고 했다. 사업 인가까지 내준 재개발을 어떻게 바꾼다는 건지 알 수 없다. 근처 새 고층 빌딩으로 식당을 옮기면 그만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하지만 광화문 피맛골 식당들처럼 재개발로 고층 빌딩에 들어간 노포들이 예전 맛과 분위기를 못 살린 채 무너지는 경우도 꽤 있었다. 어제 점심도 빈자리 없이 손님으로 가득했다. 혹시 마지막일까 해서 찾아온 사람들이 많다. 이러다 시인 백석(白石)이 '이 희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 '그지없이 고담(枯淡)하고 소박한 것'으로 노래한 평양냉면 노포를 또 잃게 될까 단골들의 아쉬움이 크다.
 

-김기철 논설위원, 조선일보(19-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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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담 없이 드나드는 '사랑방'처럼… 한옥적 요소 더한 복합 문화 공간

 

세종문화회관

 

서울시가 세종문화회관 옥상에 정원을 만든다는 계획을 지난달 공개했어요. 세종문화회관의 옥상은 광화문 광장과 경복궁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라 옥상이 조성되면 어떤 모습일지 큰 관심이 쏠리고 있어요. 세종문화회관은 1978년 개관 이후 50년 가까이 서울 한강 북쪽을 대표하는 문화·예술 시설로 시민들의 사랑을 받아왔답니다.

 

세종문화회관은 불길이 휩쓸고 간 자리에서 시작됐어요. 1956년 이승만 정부는 다목적 공연장인 서울시민회관을 짓기 시작했어요. 당시 부민관(현 서울특별시의회)과 시공관(현 명동예술극장)을 제외하면 행사나 공연 등을 열 수 있는 문화 시설이 없었기 때문이죠. 그렇게 1961년 4층 짜리 건물에 10층 높이의 탑이 결합한 모양의 서울시민회관이 완성됐어요. 그러나 1972년 대형 화재로 건물이 모두 불에 타면서 철거 후 새로운 시설을 세우게 됩니다.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전경. 서울의 대표적 문화·예술 시설인 세종문화회관은 1978년 문을 열었어요. /서울시

 

당시 박정희 정부는 5000석 규모의 대강당과 국제회의장, 공연장이 모두 있는 만능 복합 문화 시설을 만들고 싶어 했어요. 또 한국의 전통을 강조하기 위해 기와나 서까래(한옥 지붕의 뼈대)가 건물 외부에 드러나길 원했죠. 그러나 설계를 맡은 엄덕문 건축가는 “건축은 시대의 산물이기 때문에 우리 정서와 전통을 표현하는 다른 방법이 있다”며 박정희 대통령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대요.

 

그는 기와나 서까래를 만들진 않았지만, 대신 현대적인 방식으로 한국적인 면모를 보여주고 싶어 했어요. 높은 돌계단과 그 위에 넓은 돌바닥을 만들어서, 한옥의 안마당처럼 보이게 했어요. 시민들이 부담 없이 드나들고, 높은 곳에 올라 도심 소음과 혼잡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장소를 만든다는 목표도 있었어요. 이를 통해 세종문화회관을 서울의 ‘사랑방’으로 만들고자 했답니다.

 

세종문화회관의 하이라이트인 세종대극장은 대형 오페라나 뮤지컬을 상영할 수 있도록 4200석 규모로 지었어요. 당시 동양 최대급이었던 파이프오르간도 들여놨죠. 지금은 3000석이 조금 넘습니다. 대극장 지붕은 한옥의 처마처럼 만들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세종문화회관은 점점 변했어요. 국제회의장은 세종체임버홀로, 소극장은 M씨어터로 바뀌었죠. 세종문화회관이 처음 만들어졌을 땐 차도에 바짝 붙어 있었는데 이젠 바로 앞 광화문 광장이 보행자 중심 공간으로 탈바꿈하면서 시민들이 한결 더 편하게 머물 수 있는 장소가 됐답니다. 이제 옥상에 정원까지 생기면 엄덕문 건축가가 꿈꿨던 ‘서울의 사랑방’에 한층 더 다가선 모습이 될 것입니다.

 

-전종현 디자인·건축 저널리스트, 조선일보(25-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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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 예방하는 도심 설계, 음주 돌진 차량도 막는다

 

최근 몇 년간 우리나라 곳곳에서 차량 돌진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이달 초 서울에 온 일본인 관광객 모녀가 인도로 돌진한 음주 운전 차량에 치여 어머니가 숨지고 딸은 중상을 입었다. 사고 차량은 인도를 넘어 30m를 더 달렸고, 시민들이 주변에 있었다면 피해는 더 컸을 것이다.

 

지난 8월 경기도 용인에서는 식당으로 차량이 돌진해 1명이 숨지고 6명이 다쳤다. 5월에는 서울 강동구 길동시장 안으로 차량이 돌진해 12명이 부상했다. 지난해 서울시청 근처에서는 인도 돌진 사고로 9명이 숨지는 참사가 있었다. 방호되지 않은 공간으로 차가 돌진했다는 점에서 같다.

 

여전히 우리 사회는 이런 사고를 단순 교통사고로 인식한다. 하지만 차가 군중을 덮치면 테러든 음주든 급발진이든 결과는 같다. 개별 운전자 실수냐 테러 행위 예방이냐를 넘어 공간이 위험을 흡수하고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설계해야 한다. 이를 제도화한 개념이 바로 ‘테러 예방 설계’다. 이름 탓에 테러 전용 대책으로 오해받지만 실제로는 음주 운전, 급발진, 운전 미숙 등 모든 차량 돌진 사고를 예방하려는 도시 안전 설계다. 원인은 달라도 시민의 생명을 지키는 대응 방식은 같기 때문이다.

 

지난 1월 미국 뉴올리언스에서는 픽업트럭이 새해맞이 인파를 향해 돌진해 14명이 숨지고 57명이 다쳤다. 2016년 프랑스 니스와 2017년 영국 런던, 스페인 바르셀로나, 미국 뉴욕에서 벌어진 차량 돌진 테러도 차가 대량 살상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사고와 테러의 경계는 이미 희미해졌다.

 

이러한 사건 이후 미국과 유럽 주요 도시는 테러 예방 설계 개념을 도입해, 광장·보행로의 볼라드(자동차 진입 방지용 말뚝)와 조형물 등으로 방호를 강화했다. 테러뿐 아니라 일상 속 모든 차량 돌진에 대응하려는 조치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왼쪽)와 영국 런던의 테러예방설계. /김학경 제공

 

우리나라는 곳곳에 볼라드가 설치됐지만 차량 돌진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현행 ‘교통 약자의 이동 편의 증진법 시행규칙’은 볼라드를 속도가 낮은 차의 충격에 견딜 수 있는 구조로만 규정한다. 또 국토교통부의 ‘도로 안전시설 설치 및 관리 지침’에 따르면 난간과 보행자용 방호 울타리 설계 기준도 ‘사람이 기대거나 밀었을 때의 정적 하중’에 불과하다. 결국 우리나라에는 속도가 낮은 차를 막는 시설은 있어도 돌진 차량에 시민이 다치지 않게 할 법적 기준은 없는 셈이다.

 

‘건축물의 테러 예방 설계 가이드라인’과 ‘차량 테러 예방 및 대응 가이드라인’이 있지만 권고 사항일 뿐이다. 무엇보다 구조물 강도·간격·설치의 구체적·정량적 기준이 없다. 반면 미국에서는 차량의 속도·중량, 충돌 에너지를 반영한 구체적 설계 기준을 제시해 실무자들이 활용할 수 있다.

 

우리나라도 구체적 테러 예방 설계 기준이 필요하다. 그래야 ‘속도가 낮은 차량’뿐 아니라 돌진하는 ‘무기화된 차량’을 막을 수 있다. 이 기준을 토대로 법제화하면 공공시설과 광장의 방호 수준은 한층 강화된다. 설계 기준은 지하철역 출입구, 대형 행사장·광장, 학교·병원·노약자 시설 등 불특정 다수 밀집 공간부터 적용해야 한다.

 

최근 테러 예방 설계는 도시의 미관과 기능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방호 성능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벤치·화분·조형물·화단 등 도시 경관 요소도 충분한 강도를 갖춘다면 미관을 유지하면서 방호 시설로 활용할 수 있다. 테러 예방 설계는 선택이 아니다. 안전은 설계 단계부터 확보해야 한다.

 

-김학경 성신여대 융합보안공학과 교수, 조선일보(25-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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