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의 '국정원화', 몽테스키외의 경고]
[질문 회피하면 겪을 실패 3단계]
[계엄 1년, 국힘 의원 65명의 침묵]
법원의 '국정원화', 몽테스키외의 경고
정권 따라 복불복 운명 국정원
법원 판사들도 같은 처지 되나
몽테스키외의 300년 전 예언
"삼권분립 없으면 자유도 없다"

16년 전쯤 법원을 취재하며 만난 엘리트 판사의 말을 잊지 못한다. “판결이라는 건 사실 귀납법이 아니라 연역법이다. 결론을 선택하면, 어떤 논리든 만들어낼 수 있다.” 판사가 심증이나 사적 편향에 따라 결론을 정해 놓고, 근거를 끼워 맞출 수도 있다는 얘기였다. 재판은 증거를 통해 실체적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이고, 판결은 판사가 번민 끝에 내린 최선의 결론이라 생각한 기자에겐 충격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사법 불신에 빠질 뻔했지만, 다행히 그러진 않았다. 그런 ‘법 기술자’보다는 묵묵히 자기 양심과 싸우는 판사를 더 많이 만났기 때문이다.
그때만 해도 법원은 정치에 덜 오염돼 있었다. 간혹 정치가 사법을 침범했지만 판사들이, 언론이 그대로 두지 않았다. 판사들에게 촛불 시위 재판을 빨리 하라고 했다는 이유로 법원장이 뭇매를 맞았고, 진보 성향 우리법연구회는 판사가 정치 성향을 드러낸다는 것만으로도 질타의 대상이었다.
법원과 가장 대비되던 곳이 국정원이었다. 당시 더러 만난 국정원 요원들을 통해 알게 된 그곳은 딴 세상이었다. 정권 따라 승진하거나 좌천되는 복불복 인사가 난무했다. 새 정권이 들어서면, 그날로 부하 직원이 국정원장 컴퓨터를 뒤지고, 비서실을 감찰해 측근을 숙청한다는 ‘도시 전설’이 얼추 맞는 곳이었다. 대통령 직속 기관이니 어쩔 수 없겠다는 생각도 했지만, 국가 안보와 기밀을 다루는 곳이 정치판이었다.
당시 검찰은 국정원과 법원의 중간쯤 됐다. 정권 눈치를 보다가 죽은 권력에 칼을 들이미는 일이 대부분이지만, 가끔은 살아 있는 권력도 법의 심판을 받게 하는, 나름의 기개가 살아 있는 칼잡이들. 정권 따라 TK나 호남 출신이 번갈아 득세하곤 했지만, 조직 내 신망 높은 검사들은 라인 상관없이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그 외 공직 사회는 무채색에 가까웠다. “공무원은 영혼이 없다”는 말은 자조적으로 쓰였지만, 자기 색을 내세우지 않고 맡은 일을 하는 공무원들이 중용된 덕분에 우리 사회는 어느 정도 예측 가능했다.
그런데 지금은 검찰과 법원, 나아가 모든 공직 사회가 과거의 국정원을 닮아가는 모습을 본다. 내란 공무원을 단죄한다며 휴대폰을 털어 내 편 아닌 이들을 색출한다.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들은 파면, 대통령 측근 재판에 항의한 검사들은 감찰하겠다면서 ‘줄 서기’를 강요한다.
가장 심각한 것은 법원이다. 이 정권은 헌법상 독립된 판사를 향한 협박을 넘어, 노골적인 인사권 장악에 나서고 있다. 대법관 증원(14→30명)으로 자기편 판사를 채워 넣는 ‘코트 패킹(court packing·법원 물타기)’을 추진하고, ‘사법행정위’를 만들어 전체 판사 인사권까지 갖겠다고 한다. 베네수엘라 차베스 등 권위주의 독재 정권이 사법부를 장악했던 것과 같은 방식이다. 결과는 자명할 것이다. 권력은 정적을 제거하고, 수명을 연장하는 데 법원을 교묘히 이용한다.

프랑스 근대 철학자이자 법률가 몽테스키외는 1748년 저서 '법의 정신'에서 삼권분립 개념을 처음 정립했다. 그는 "한 쪽이 두가지 권력을 가지면 시민의 자유가 존재할 수 없고, 세가지 권력을 다 가지면 모든 것을 망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삼권분립을 처음 정립한 몽테스키외는 “동일한 인간·집단에 두 가지 권력이 결합됐을 때 시민의 자유란 존재하지 않는다. 세 권력을 다 가지면 모두 망치게 될 것”이라고 300년 전 예언했다. 그는 “사익이 공익으로 포장될 때, 공화정은 전제정으로 변질된다”고 경고했다.
몽테스키외의 예언은 한국에서 현실이 되고 있다. 집행과 입법 권력을 장악한 현 정권은 지금 자정 능력이 작동하지 않는 것 같다. 국민이 피 흘리며 싸워 얻어낸 민주주의를, ‘민주’라는 명찰을 달고 훼손하는데도 아무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절제력을 상실한 권력을 막을 존재는 국민뿐이다. 깨어 있지 않으면, 무슨 일을 더 할지 모른다.
-류정 기자, 조선일보(25-12-05)-
______________
○법원행정처장, 與의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에 “삼권분립, 역사의 뒤안으로.” ‘야만의 시대’로 진입 중이란 뜻.
-팔면봉, 조선일보(25-12-05)-
______________
질문 회피하면 겪을 실패 3단계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오른쪽)와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운동장에서 한국사진기자협회 주최로 열린 '2025 사진기자가족 체육대회'를 방문해 인사하고 있다. 2025.11.8/뉴스1 ⓒ News1 사진공동취재단
여야는 날 선 말로 대치하지만 나쁜 점에 있어선 꼭 닮았다. 질문을 피한다는 것이다. 여야 대표들은 관행처럼 해오던 취임 100일 언론 회견을 나란히 건너뛰었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달 초 취임 100일에 관행적으로 해오던 언론 회견 대신 유기견 돌봄 봉사 활동을 했다. 당시 기자들 사이에선 ‘기자와 소통하느니 개와 대화하겠다는 것이냐’는 자조도 나왔다. 언론에 대한 깊은 불신으로 언론 개혁까지 당대표 공약으로 걸었기에 예견된 일이긴 했다. 하지만 당원의 물음에도 역시 입과 귀를 닫았다. 최근 본인 핵심 공약이던 대의원 권리당원 1인 1표제가 논란이 된 날에도 정 대표 대신 당 사무총장과 개별 의원들이 당원들의 분노를 처리해야 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 3일 비상계엄 1년과 취임 100일을 동시에 맞았다. 이날 그는 기자회견 대신 페이스북 입장문만 내놨다. 당에서 초선 등을 중심으로 계엄 사과 요구가 나오는 상황에서 기자들은 장 대표에게 어떻게 상황을 타개할 것인지 물으려 했다. 그가 입장문에서 말한 대로 “여의도의 언어가 아니라 국민의 언어로 소통”하려면 자신의 말만 쏟아내는 SNS가 아니라 양방향 소통이 되는 회견을 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이렇게 항변할지도 모른다. ‘온라인 여론을 살펴보며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있다’ ‘국민과 당원들과 대화하기 위해 전국 순회하지 않았느냐’고. 실제로 여당 대표는 “딴지일보가 민심 바로미터”라며 김어준씨 측 커뮤니티를 활용하고 있고, 야당 대표는 호남을 빼고 전국을 다니며 국민 대회를 열었다.
듣고 싶은 말만 듣는 건 소통이 아니다. 여야 대표들의 침묵은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정치적 리스크 관리 방식의 실패다. 질문을 피하는 순간 권력 내부의 판단은 검증받지 못하고, 검증받지 못한 판단이 결국 더 큰 오류를 낳는다. 소통의 의미를 오해하는 건 두 대표만의 문제는 아니다. 여권의 한 지도부 의원은 최근 식사 자리에서 “내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이 곧 방송국이고 페이스북이 신문, 인스타그램은 잡지”라고 자랑했다. 지지자들과의 접점만 늘리는 알고리즘의 장에서 강성 당원을 겨냥한 일방적 메시지가 곧 소통이라 믿는 것이었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말문이 막혔다.
질문을 회피하는 정치인들은 대체로 실패의 3단계를 거치는 것 같다. 1단계는 무시. 뒤따르는 기자들의 질문을 못 들은 척 넘겨버린다. 2단계는 우회. 정식 회견은 건너뛰고 본인에게 유리한 채널로 우회해 말하는 식이다. 3단계는 착시다. 우호적 여론만 보니 여론을 놓치면서 고립이 심화된다. 양당 두 대표는 취임 100일 즈음에 벌써 당 안팎에서 사퇴하란 말이 나오고 있다. 기자들의 질문은 곧 국민의 질문이기도 하다. 자초한 고립이 장기화되면 결국 중도 여론은 물론 자기 편 역시 잃고 말 것이다.
-신지인 기자, 조선일보(25-12-05)-
______________
계엄 1년, 국힘 의원 65명의 침묵

국민의힘 소장파 의원들은 불법 비상계엄이 1년을 맞는 3일이 되기 전부터 장동혁 대표가 계엄에 사과하지 않으면 집단행동에 나설 것이라고 예고했다. 의원들 차원에서라도 윤석열 전 대통령의 12·3 계엄에 대해 국민 앞에 고개를 숙이겠다고 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3일 장 대표의 사과는 없었다. 그러자 ‘우리라도 사과해야 한다’며 초·재선 의원들이 나섰다. 하지만 대국민 사과문에 이름을 올린 의원은 소속 의원 107명 중 25명뿐이었다.
▷사과문엔 계엄을 막지 못해 국민에게 큰 고통과 혼란을 준 데 대한 사과, 계엄의 위헌성을 확인하고 윤 전 대통령을 파면한 헌법재판소 결정에 대한 존중, 윤 전 대통령 등 계엄을 주도한 세력과 단절하겠다는 약속이 담겼다. 별도 사과문을 낸 원내 지도부 10명, 개별적으로 사과문을 낸 의원 5명을 합쳐도 40명에 불과하다.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구속된 권성동 의원을 제외한 106명 의원의 절반에 한참 못 미친다. 윤 전 대통령의 주장을 따라 한 당 대표를 제외하면 결국 국힘 65명은 그 어떤 메시지도 없이 침묵했다.
▷국민의힘엔 당의 무게중심을 잡을 3선 이상 중진 의원이 34명 있다. 하지만 이들 중 계엄에 사과한 사람은 5분의 1 수준인 7명에 그쳤다. 윤 전 대통령 집권 시절엔 권력의 곁불을 쬐며 독단적 국정에 동조하고, 윤 전 대통령 탄핵은 반대했으며, 대선 패배 이후엔 쇄신을 좌절시키는 데 조용히 협력하며 자기 지역구만 챙겨 온 이들이 부끄러움도 모른 채 계엄 사과조차 못 하겠다고 버티는 꼴이다.
▷1년 전 그날 밤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단 18명이었다. 친윤 등 주류 의원 성향 50여 명이 국회 길 건너편 당사에 모여 있었지만 계엄이 불법이라는 한동훈 당시 대표의 입장이 생중계됐음에도 그 누구 하나 표결하러 본회의장에 가지 않았다. 1년이 지난 지금 생각을 바꿔 그나마 국민 앞에 염치라도 보이겠다고 나선 의원은 기껏 20여 명 늘어난 셈이다. 초선인 김재섭 의원은 4일 “25명을 중심으로 재창당 수준의 강력한 혁신 드라이브를 할 것”이라며 동참하는 의원들이 크게 늘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국민 앞에 마땅히 해야 할 사과의 용기조차 내지 못하는 것인지, 아예 생각이 없는지, 강성 지지층 눈치를 보며 다음 공천만 눈 빠지게 기다리는 것인지 모를 다수 의원들이 무슨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국민의힘은 계엄, 탄핵, 파면, 대선 때마다 번번이 새로 태어날 기회를 스스로 내던졌다. 그 뒤엔 ‘당이 어떻게 되든 내 의원 배지만 챙기면 된다’는 방관과 무책임이 있었다. 국민의힘 의원들 모두 알면서도 말하지 않는 비밀 아닌 비밀이다.
-윤완준 논설위원, 동아일보(25-12-05)-
===========================
'[세상돌아가는 이야기.. ] > [時事-萬物相]'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전투기·전차에 신기술 장착하는 北.. 우리 軍이 없는 기술도 갖췄다] (0) | 2025.12.05 |
|---|---|
| [위헌 '내란재판부' '판사 처벌법' 끝내 강행, 이성 잃은 정권] .... (1) | 2025.12.05 |
| [지렛대가 된 한국, '사드 보복' 그 이상에 대비하라] .... (1) | 2025.12.05 |
| [민주당의 '형, 누나' 문화] [무능한 줄로만 알았는데 '선수'였다] .... (0) | 2025.12.05 |
| [감옥 아닌 병원에 가야 할 사람들] .. [“의회 폭거에 맞선 계엄”… ] (1) | 2025.12.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