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시는 왜 '대장동 로펌'을 못 구해 애먹나]
[양심이라는 돌주먹]
성남시는 왜 '대장동 로펌'을 못 구해 애먹나
[박정훈 칼럼]
성남시가 대장동 손배 소송을 내며
대형 로펌들을 고용하려 했지만 다 거절당했다…
변호사마저 정권을 겁내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일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이 자리에서 이 대통령은 정성호 법무장관을 향해 "나 대신 맞느라 고생많다"고 격려했다. /뉴스1
지난주 국무회의에서 기묘한 장면이 목격됐다. 이재명 대통령이 정성호 법무장관을 향해 “요즘 저 대신에 맞느라 고생하신다”고 했다. 백조의 우아함엔 “수면 아래 엄청난 발의 작동이 있다”며 알쏭달쏭한 선(禪)문답을 덧붙였다.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정 장관이 대통령을 위해 무언가를 했고, 그것 때문에 공격받고 있다는 뜻이었다. 맥락 없이 나온 말이어서 무얼 지칭한 것인지 제3자는 알 도리가 없었다. 정 장관은 즉각 “잘 알고 있다”고 화답했다. 전 국민이 보는 생중계 회의에서 둘만 아는 이심전심(以心傳心)의 비밀 대화를 나눈 모양새였다.
단순한 격려는 아니었다. 대통령을 대신해 얻어맞은 장관이라면 집값 급등으로 비난받은 국토부 장관, 대출 규제로 원성 산 금융위원장이 먼저였다. 한미 관세 협상 때 기재부·산업부 장관도 야당 공격에 시달렸다. 국정 수행으로 고생한 장관이 수두룩한데 이 대통령은 법무장관만 콕 집어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수면 아래’라는 묘한 언급까지 달았다. 의미심장한 대목이 아닐 수 없었다.
짚이는 것은 있었다. 정 장관이 취임 이후 ‘맞느라 고생’한 것은 한 번뿐이다.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다. 그는 항소를 막은 ‘윗선’으로 지목돼 곤욕을 치렀다.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당하고 야당에게서 사퇴 요구를 받았다. 항소 포기는 이 대통령의 재판 리스크와 관련이 있다. 대장동 사건으로 별도 기소된 이 대통령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조치다. 외압 행사가 사실이라면 정 장관이 대통령을 위해 총대를 멘 셈이 된다. “나 대신 맞았다”는 대통령의 말이 딱 떨어진다.
대부분 언론이 그렇게 추정해 썼다. 작은 오보에도 득달같던 대통령실은 어떤 부인도, 정정 요구도 하지 않았다. 추측이 틀리지 않는다는 얘기였다. 그렇다면 보통 문제가 아니다. 법무장관이 대통령을 위해 항소를 막았고, 그런 사정을 이 대통령도 인식하고 있다는 논리적 필연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더 심각한 미스터리는 이 대통령의 ‘심리’였다. 자칫 정권 스캔들로 문제 될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얘기를 공개적으로 할 수 있는 그 강력한 멘탈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무엇이 그런 여유와 자신감을 만드는 걸까.
놀랍지만 새삼스럽진 않다. 이 대통령이 자신의 재판 혐의를 소멸시키려 올인하고 있다는 것은 비밀이 아니다. 개인 방탄에 국가 시스템을 동원하는 데도 주저하지 않는다. 이 대통령은 야당 대표 시절 거대 정당을 전속 로펌처럼 부렸다. 대통령이 되어서도 입법·행정권을 사적으로 활용한다는 논란을 부르고 있다. 여당은 법을 고쳐 대통령이 기소된 죄목 자체를 없애려 한다. 판사·검사를 압박하는 폭주도 서슴지 않고 있다. 합법의 외피를 썼지만 실상은 법치를 흔드는 헌법 교란에 가깝다. 국정 농단 시비를 부를 만한 국가 권력의 사유화다.
대통령의 강렬한 의지 앞에 국가 기관들은 속속 무릎 꿇고 있다. 공소 유지를 책임진 검찰은 대장동 항소를 포기하면서 사실상 대통령 편에 섰다. 시민단체가 항소 포기 관련자를 고발하자 경찰은 본청 수사팀에 배당하는 대신 수사 능력이 허약한 일선 경찰서로 사건을 넘겼다. 수사하기 싫다는 얘기였다. 감사원은 과거 감사 결과를 줄줄이 뒤집으며 친정권 대열에 합류했고, 헌법재판소는 민주당이 밀어붙이는 ‘4심제’에 찬성한다며 중립성 시비를 자초했다. 특검은 야당만 들쑤시고, 돈을 받았다는 여당은 건드리지도 않았다. 사법기관들이 ‘정권의 개’가 됐다는 소리를 들어도 할 말 없게 됐다.
성남시가 대장동 일당에 대한 재산 가압류를 신청했다며 낸 보도자료에 기가 막힌 구절이 있었다. ‘다수의 법무법인에 소송 대리인 선임을 타진했지만 난항을 겪었다.’ 대장동 일당이 갈취한 범죄 수익금을 회수하기 위해 민사 소송을 제기하면서 대형 로펌들에 변호를 맡기려 했지만 모조리 거절당했다는 것이었다. 큰 사건을 맡을 만한 역량이 되는 상위 로펌들이 하나같이 손사래를 쳤다고 한다. 결국 성남시는 자문 변호사를 내세워 급한 대로 가압류 신청부터 낼 수밖에 없었다.
돈이 되면 흉악범 변호도 마다하지 않는 게 로펌의 생리다. 대장동 소송은 청구액만 수천억 원짜리여서 수임료도 상당하다. 그런데도 로펌들이 피하는 것은 성남시의 상대편 피고인에 이 대통령이 포함돼 있기 때문일 것이다. 대통령과 반대편으로 찍히면 불이익받을까 겁내는 것이다. 반면 정권과 친하다고 소문난 로펌은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친민주당으로 유명한 L 변호사와 이 대통령의 연수원 동기 K 변호사가 이끄는 로펌엔 굵직한 의뢰인들이 장사진을 쳤다고 한다. 변호사 시장마저 정권에 장악됐다.
권력이 불편해하는 사건은 변호인조차 구하기 힘든 나라에서 사법 정의가 제대로 설 리 없다. 그런 지경을 만든 대통령은 통일교 스캔들이 터지자 “여야 막론 엄정 수사”를 지시했다. “존경한다고 하니 진짜인 줄 알더라”는 말이 떠오를 뿐이다.
-박정훈 논설실장, 조선일보(25-12-13)-
______________
양심이라는 돌주먹
얻어맞고 다 잃어도 과오 바로잡을 용기
카운트 끝나기 전에 승리할 기회는 있다
88 서울올림픽 복싱 결승에서 라이트미들급 국가대표 박시헌은 당대를 호령하던 미국의 로이 존스 주니어와 맞붙었다. “레벨이 달랐다”고 박시헌은 고백했다. 당시 경기를 유튜브로 다시 봤다. 선방했지만 안타깝게도 수준 차이가 존재했다. 라운드 종료 후, 그러나 주심이 들어 올린 건 박시헌의 손이었다. 3대2 판정승. 박시헌은 웃지 못했다. 본인조차 결과를 납득하지 못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는 머쓱하게 상대를 끌어안았다. 이 경기는 AFP통신이 뽑은 역대 올림픽 5대 판정 논란에 선정됐다.
스물세 살의 전도유망한 복서 박시헌은 대회 직후 은퇴했다. 승리를 도둑질했다는 야유가 거셌다. 은퇴로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었다. 지도자로 전향했지만 경기 중 석연찮은 판정이 나와도 제대로 항의조차 할 수 없었다. 대인기피증, 극단적 충동까지 찾아왔다. 그가 겪은 비극의 일부가 영화 ‘카운트’로 제작되기도 했다. 동네 꼬마들이 아들에게 “너네 아빠 금메달 가짜”라고 놀리는 장면 등은 모두 실화다. 영화에서 박시헌 역 주인공이 “금메달을 반납하고 싶다”고 하자 높으신 분들은 힐난한다. “올림픽이 장난이야?”
그리고 지난 9월, 로이 존스 주니어의 인스타그램에 짧은 영상 하나가 올라왔다. 미국 플로리다 훈련장에 박시헌이 찾아온 것이었다. 반갑게 인사하며 포옹할 때만 해도 그 의중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던 존스는 박시헌이 금메달을 꺼내 보이자 금세 얼굴을 쓸어내리기 시작했다. “30년 넘게 당신을 링 위에서 기다렸다”며 “잘못된 걸 알고 금메달을 돌려준다”고 박시헌은 말했다. 한국말이 채 통역되기도 전에 과거의 경쟁자는 울음을 터뜨렸다. 존스는 “신의 은혜”라고 했지만, 그것은 전적으로 사람의 의지였다.

미국으로 건너가 로이 존스 주니어에게 88 올림픽 금메달을 건네주고 있는 박시헌. /인스타그램
양심의 가책, 이 퇴색된 옛말이 아직 누군가를 울릴 수 있다는 사실에 나는 안도했다. 2년 전 이뤄진, 존스가 늦게나마 공개하지 않았다면 세상에 알려지지도 않았을 만남. 결코 영리한 선택이라 할 수는 없는, 누군가에게는 바보 같은 일로 여겨질 것이다. 박시헌은 반칙하지 않았다. IOC는 모든 혐의를 기각했다. 어느 정도 홈 어드밴티지를 주장할 수도 있는 시합이었다. 요즘대로라면, 허위 사실이나 명예훼손 운운하며 법적 조치로 여론을 틀어막을 수도 있었다. “나도 피해자”라며 역공을 펼 수도 있었다. 이 모든 계책을 집어치우고, 그는 남자다움을 택했다.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 것, 피 터지게 싸우고도 잘못 앞에서 깍듯이 용서를 구하는 것, 주먹의 무도(武道)일 것이다. 그저 이기기 위해 무도(無道)해지는 세상에서 더는 남자다움에 대해 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진정한 남자가 사라지고 있는 세상에서 그러나 남자다움을 논하는 일은 더없이 중요할 것이다. 정의로움을 세 치 혀로 재잘대는 것만큼 부질없는 일은 없다. 말로 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바로잡기 위해 모든 걸 내려놓을 용기도 없이, 가당찮은 금(金)을 가슴팍에 치장한 가짜 투사들은 오늘도 안전하고 어설픈 싸움을 벌이고 있다.
박시헌의 금메달은 여지껏 한국 권투가 따낸 마지막 올림픽 금메달로 남아 있었다. 이제 그것은 한국에 없다. “주인에게 줬다”고 했다. 왕좌 탈환에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다만 중요한 것은 언제나 정신일 수밖에 없다. 링에서는 쓰러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카운트를 열까지 센다. 셈이 다하기 전 끝내 옳은 방향으로 몸을 트는 일, 패배만큼 불의에 아파하는 일, 그리하여 끝내 상처에 영광을 안기는 일, 지금 한국에 필요한 성취는 바로 이것일 것이다. 재도약은 그때 시작될 것이다.
-정상혁 기자, 조선일보(25-12-13)-
=========================
'[세상돌아가는 이야기.. ] > [時事-萬物相]'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직장 내 갑질' 같은 대통령 업무 보고, 민망·유치하지 않나] .... (0) | 2025.12.15 |
|---|---|
| [식당 내 노조 조끼] [식사의 심리학] (0) | 2025.12.15 |
| ["문명국의 수치" 민주당측 원로들도 우려한 위헌 법들] .... (2) | 2025.12.13 |
| [‘죽은 권력’은 특검이, ‘산 권력’은 경찰이… ] .... (1) | 2025.12.13 |
| ['워터게이트' 특종 기자 "트럼프, 닉슨보다 훨씬 더 나빠"] (0) | 2025.12.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