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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의 '소 떼 방북'은 허망했다? 그는 두 가지를 봤다]

뚝섬 2026. 1. 4. 08:06

정주영의 '소 떼 방북'은 허망했다? 그는 두 가지를 봤다

 

"통일 비용이 아니라 통일 이익 생각하라"
스포츠·문화·경제 교류 순서로 확대 희망

 

1998년 6월 16일,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500마리 소 떼와 함께 앞장에서 소의 고삐를 잡고 휴전선에 나타났다. 83세 노구. 몇 년 사이 건강이 급격히 나빠져 쇠약해진 그의 걸음걸이가 보는 사람의 가슴을 조마조마하게 했다.

 

그의 소 떼 방북은 대한민국 국민과 북한, 한반도 통일의 이해관계국인 미국·중국·러시아·일본, 그리고 전 세계를 향해 외치는 통일 염원을 담은 소리 없는 절규였다. 국내뿐 아니라 세계 언론도 획기적인 세기의 시위 행사로 보도했다. 정 회장 특유의 발상과 기획이었다. 젊은 시절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아버지의 소 판 돈을 몰래 가지고 가출한 것을 갚는다는 상징성을 담고 있었다. 그는 왜 인생의 마지막 행사로 이런 계획을 했을까? 그것은 그가 평생 품었던 신앙에 가까운 통일 염원을 세계에 호소하는 행위였다.

 

대선 출마 때 당명도 ‘통일국민당’

 

정 회장이 일찍이 정치 참여를 선언하고 창당했던 정당 이름도 ‘통일국민당’이었다. 그는 통일을 위해서는 우선 비정치적인 분야부터 접근해야 한다고 했다. 인내를 가지고 스포츠 교류, 문화·관광 교류, 그다음에 경제 교류로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금강산 관광 개발, 스포츠 행사에서 남북 시합, 국제 스포츠 행사에 남북 단일팀 출전 시도, 개성공단 사업 등에 그가 집착했던 이유이다. 내부적으로 북한의 경제와 정치 상황이 어려울수록 북한은 더욱 체제 단속에 그만큼 민감해지고 폐쇄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접근에는 인내와 장기 비전은 필수다.

 

일찍이 시도했던 개성공단에서 보듯이 정 회장은 북한의 노동력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북한은 그동안 극심한 고난과 시련을 통하여 단련된 노동자들을 가지고 있다. 우선은 ‘고기국과 흰쌀밥’만 먹여 줘도 감지덕지할 생산성 높은 노동력이다. 북한 사람들이 모든 것을 빨리 배우고 적응력이 뛰어난 것은 남쪽 사람들과 같다. 정 회장은 북한의 노동력에 한국의 자본과 세계적 기술, 경영 능력, 세계 시장 기반을 보완적으로 결합하면 일본과 중국의 추격을 적어도 몇십 년 따돌릴 수 있다고 봤다.

 

또 다른 엄청난 북한의 잠재력 분야가 있다. 자원이다. 기술과 자본 부족으로 개발하지 못하고 있는 막대한 광물 자원. 철광석, 제철용 석탄, 희토류, 구리 등이다. 남한에서는 이런 광물의 수요가 엄청난 데 비해 매장량이 거의 없어 막대한 외화를 지출해서 외국에서 수입하고 있다. 그래서 남북한이 체제를 극복하고 협력하게 될 때 그 효과는 덧셈이 아니고 곱하기라는 이야기는 정 회장과 한국의 전문가들뿐 아니라 남북 관계를 연구하는 해외 석학들 사이에서도 일치하는 견해다.

 

통일의 이익을 길게 보라

 

일부에서는 말한다.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사업이 실패하지 않았느냐.” 긴 역사의 관점에서 볼 때 그렇지 않다. 이런 실패는 앞으로 남북 협력 증진과 보다 훗날 민족의 숙원인 통일을 위한 값진 토대를 쌓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정 회장의 통일을 위한 필생의 집념과 노력을 후대인 우리가 다시 평가해야 하는 이유다.

 

또한 정 회장은 “한반도 분단은 그 원인과 과정이 동·서독이나 다른 분단국들의 경우와 상당히 다르다”고 했다. 정 회장 자신의 경우도 한 부모 밑에 있던 가족이 강제로 나뉘어 헤어져야 했다. 남북이 김·이·박·정·최 등 같은 핏줄을 나눈 사람들인데도, 부모·형제·자매가 갈라져 대부분 소식도 전하지 못하고 살고 있는 비극적인 현실이 지속되고 있다.

 

6·25전쟁의 참상도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남북한 군인 합쳐서 사망자 수만 75만명, 민간 사망자 수는 남북한 300만명 가까이 이르는 가히 민족상잔의 비극이었다. 이러한 비극이 다시 발생할 가능성을 절대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가 가졌던 신념이었고 역사적인 소명의식이었다.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통일 비용이 엄청날 것이라는 말들을 한다. 그러나 우리가 부담하고 있는 막대한 예산의 국방비 부담은 왜 생각 못 하나? 또 통일이 가져올 이익은 왜 생각 못 하나?” 그는 개탄했다.

 

요즘 일각에서, 특히 통일 정책을 주관하는 주무 부처 장관이 소위 남북 두 국가론을 주장해서 여권 내부뿐만 아니라 여론에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런 주장의 깊은 속내를 알 수 없지만, 말 그대로라면 그것이 역사에 대해 중대한 죄를 짓는 것이 아닌지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우선 남북이 두 국가가 되면 전문가의 주장처럼 북한은 정체성 면에서 하나의 적대적 미수교국이 되어버린다. 우리에겐 ‘통일’을 주장할 권리를 상실하게 된다. 국제사회에서도 공감을 잃는다. 현대 국제법에 따르면 국가 간 국권 존중과 영토 보존의 기본 원칙이 존중되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북한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개입할 근거가 없어지게 된다. 완전히 외국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그것은 끈질기게 동북공정을 주장하며 한반도와 역사적 연고를 주장해 오고 있는 중국에 여차하면 북한 영유권을 주장할 확실한 명분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만큼 이 주장은 한반도를 둘러싼 이해 당사국 간의 지정학적 구도와 입장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위험천만한 발상이다.

 

북한 체제 붕괴에 대비해야

 

북한이 정권 체제 유지의 임계점 가까이에 도달했다는 견해가 전문가들 사이에 제기되고 있다. 누적 탈북민 수가 현재 3만5000명에 이른다. 엘리트 계층의 탈북도 늘어나고 있다. 북한 정권이 아무리 통제하려 해도 북한 주민들이 외부 세계 정보에 노출되는 것을 막는 데는 절대적 한계가 있다.

 

민주화 열기는 끓는 주전자의 증기와 같다. 어거지로 틀어막으면 시간이 갈수록 잠재적 폭발력은 더 큰 위력을 응축하게 된다. 그럴수록 북한 정권은 오직 핵폭탄에 목을 매게 될 것이다. 우리는 막다른 상황에서 북한 정권이 할 수 있는 돌발 행동을 예의 주시하며 대비해야 한다. 이런 현상에 슬기롭게 대처하며 인내를 가지고 한반도 통일과 관련해 역사에 떳떳한 길을 택해야 한다. 그것이 정 회장과 같은 선각자의 유지를 계승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역사에서 배움을 알지 못하는 민족은 희망이 없다’는 말이 새삼 절절하다.

 

박정웅 ㈜메이텍 대표·前태평양 경제협의회한국 사무국장

1974년부터 1987년까지 전국경제인연합회 과장, 부장, 국제 담당 상무를 역임하며 정주영 전경련 회장의 영어 통역, 연설문 작성, 의전을 담당했다. 현재 메이그린스톤국제건설팅 대표

 

-주간조선(26-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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