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육강식’ 세계질서 개편에 ‘核무장’ 계산기 두드리는 日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 photo 뉴시스·교도통신
‘한·일 등 동맹 관계 훼손 없이 중국과 우호증진’.
지난 12월 19일 발표된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 발언의 핵심 내용이다. 스페인어를 섞어가며 무려 50여명의 기자들 질문에 답하던 중 나온 얘기다. 일·중 갈등에 관한 미국의 입장을 정리한 내용이다. 지난 11월 7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대만 유사시 개입’ 발언 이후 무려 43일 만에 발표된 국무부 공식 입장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아직 ‘유구무언’이다.
루비오 장관은 쿠바 출신 이민 2세다. 공산독재 모순과 폐해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원래 대중국 강경파로 분류된 인물이다. 하지만 트럼프 2기 국무장관이 되면서 전혀 다른 캐릭터로 변한다. 중국 비난을 자제하더니, 마침내 ‘일본과 중국 모두 미국의 친구’라고 내뱉었다. 루비오의 발언을 듣는 순간 ‘과연 한꺼번에 10마리 토끼 포획이 가능한가’라는 의문부터 들었다. 루비오는 일본이 아주 가까운 동맹이라 표현하면서, 한국·호주·인도·뉴질랜드도 중요한 동맹이라 말했다. 일본도 중요하지만, 중국도 친구라는 말은 한국과 중국, 호주와 중국, 인도와 중국, 뉴질랜드와 중국 사이 갈등이 있어도 미국은 전부 좋은 관계를 가질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새해 2월로 4년째 접어든다.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 37개월보다 훨씬 긴, 46개월째 전쟁이다. 미국은 우크라이나나 러시아와도 전부 좋은 관계를 가지면서 전쟁을 끝낼 생각이다.
루비오가 “일본과 중국 모두 우호적으로 지낼 수 있다”고 한 말을 자세히 관찰해보자. 이재명 정부가 보면 반길 뉴스일 듯하지만, 미국 입장에서 보면 ‘일본은 동맹, 중국은 경제’로 서로 보듬어갈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일본에서는 난리가 났다. 다카이치의 대만 발언이 도화선이지만, 12월 6일 중국의 일본 자위대 전투기에 대한 레이더 조준에 관련된 미국 측 입장도 전무하다. 루비오는 “일·중 갈등은 늘상 있어왔다”고 어정쩡하게 말하면서 대만이나 레이더 조준에 관련된 발언 자체를 꺼내지 않았다. 다카이치의 ‘대만 유사시 개입’ 발언은 미·일 동맹이란 구도하에서 내려진 발상이다. 동맹국으로서 미군이 대만 전쟁에 휘말릴 경우 일본 참전은 불가피하다는 의미다. 그런데 정작 미국은 그 같은 다카이치의 원칙적·원론적 입장을 지지할 생각 자체가 없다. 자기 부인을 사랑하지만, 옆집 여성도 사랑하기에 모두와 함께 사이좋게 지내고 싶다는 얘기만 반복한다. 바람둥이들의 핑계에 불과하지만, 정작 남편은 마치 박애주의자인 것처럼 행세한다. 그런 남편을 믿고 살아갈 여성이 과연 이 세상에 존재할까?
일본 자극한 루비오 발언
루비오의 발언은 일본 외교안보 관계자들의 기존 세계관을 뒤흔드는 발상이다. 일본 고위관계자가 ‘일본 핵무장 필요성’을 오프 더 레코드를 조건으로 강조했다는 소식이 루비오 발언 직후 보도되기도 했다. 필자가 보면 의도적으로 흘린 ‘리크(Leak)’ 정보로 느껴진다. ‘미국을 믿지 못하겠다’는 의미로, 일본에서 금기시해온 핵문제가 마침내 터져나온 것이다. 핵무장 발언 이후 모습을 보면 중국은 극렬히 반대하고 있고, 미국은 애매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일본은 현재 플루토늄 4t을 축적한 상태다. 마음만 먹으면 5개월 내 핵무기 제조가 가능하다고 한다. 최대 1000개도 만들 수 있다. 대륙간 탄도미사일도 당장 개발할 수 있고, 자체 인공위성도 소규모로 제조해 띄울 수 있다. 찬성은 안 하더라도 미국이 반대하지 않는 한 일본 핵무장은 별로 어렵지 않다. 일본이 이렇게 반응하는 것은 루비오의 발언은 결코 일본이 받아들일 수 없는 발상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안보전략상품이라면서 ‘메이드 인 재팬’ 첨단 물건의 중국 수출을 금지하고 있다. 정작 미국은 중국과의 우호를 내세워 미제 첨단제품을 중국에 고가로 팔고 있다.
항상 강조하지만, 일본은 한국과 달리 ‘모토 도그마 이념’과 무관한 나라다. 국가 최대의 목적이자 목표는 생존 그 자체다. 한국처럼 ‘무릎 꿇고 사느니 서서 죽겠다’는 식의 주자학적 세계관도 없다. 생존 그 자체가 불투명해질 경우 사무라이조차 장사꾼으로 변하고 가장 가까운 친구라도 내팽개칠 나라다. 1941년 12월 진주만 기습작전은 최적의 본보기다. 생존을 위해서라면 자국을 개방시켜준 은혜의 나라조차 공격한다.
일본의 핵무장 발언은 앞으로 자주 등장할 동아시아 최대의 화두 중 하나다. 한국과 달리 자체 원료와 발빠른 기술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일단 결정될 경우 속전속결로 완수될 수 있다. 전쟁이 끝난 지 이미 80년이 지났다. 피폭 악몽도 이미 무성영화처럼 느껴지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핵무장이 ‘결코’ 허세가 아니란 말이다. 다카이치의 ‘대만 유사시 개입’은 70%가 넘는 국민적 지지에 기초한 발언이다. 전쟁 중 벌어진 책임과 반성이 1972년 일·중 국교 정상화 이후 ‘중국 특별 배려’의 배경이자 이유다. 2025년 중국은 더 이상 일본의 배려 대상이 아니다. 루비오의 발언은 생존에 모든 것을 거는, 일본의 결의와 자세를 되새길 터닝포인트가 될 수 있다.
코어 5의 현실화 가능성
뱀에서 말(馬)의 해로 넘어왔다. 2025년 한국 정치를 되돌아보면, 이재명 정부도 탄생했고, 계엄에 대한 사법절차도 본격화됐다. 이런저런 글로벌 슬로건은 무성하지만, 각론도 없고 현실적이지도 않다. 전 세계가 AI 산업으로 요동을 치는데도, 한국은 차기 반도체 공장부지 선정 문제로 날밤을 새고 있다. 조선은 말과 무관한 쇄국의 땅이었다. 뱀처럼 배를 땅에 붙인 채 동굴 속에서 살아가는 나라였다. 힘을 외부로 분출하지 않을 경우 내부 불화와 분열로 나아갈 뿐이다. 바로 2025년 한국의 자화상이다.
2026년 말의 해를 맞아 과연 이동과 도전을 상식으로 대하던 20세기 ‘하면 된다 한국’으로 되돌아갈 수 있을까? 국제정세를 보면 ‘1970년대 한국 정신’으로 무장한다 해도 대응하기 어려운 현실이 밀려들고 있다. 핵심 키워드는 ‘코어 5(Core 5)’에 있다.
코어 5는 지난 12월 초 트럼프 대통령의 국가안보전략(NSS) 발표와 함께 세계 외교가의 빅 이슈로 부상했다. NSS는 먼로주의 유지와 인도태평양 수호를 골자로 한 미국 대외정책의 청사진이다. 코어 5는 NSS 초안에 있었지만, 당일 발표에서는 빠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백악관은 코어 5 자체를 부정한다. 워낙 충격이 크기 때문에 일단 보류했다고 보면 된다. 코어 5 구상은 간단하다. 미국, 중국, 러시아, 인도, 일본 5개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 정치 구도다. 인구 1억 이상 대국이자 군사·경제력에 기초한 5개 파워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정치다. 미국 혼자서, 또는 미국과 동맹관계에 있는 나라나 지역(북대서양조약기구)이 아니다. 이미 유효기간이 한참 지난 유엔의 5개 상임이사국이나 서방 G7(주요 7개국) 중심은 더더욱 아니다. 동서를 혼합한 5개국을 플레이어로 하는 새로운 파워 협상 체제가 코어 5 구상의 핵심이다.
NSS 초본을 접한 미국 미디어 보도에 따르면, 코어 5는 민주주의·인권 같은 가치 중심 연대가 아니다. 철저한 현실주의적 이익과 강대국 직접 거래를 통한 국제질서 유지가 최대 목적이자 목표다. 극단적으로 말해 대만 문제도 코어 5들 사이에서 해결할 수 있고, 북핵 문제도 서로 간의 이익에 맞춰 조정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5개국 입장에서 보면 해결이지만, 당하는 입장에서 보면 일방통행 통보다. 말을 안 들을 경우 코어 5의 공격에 처하게 된다. 너무도 트럼프다운 발상이지만, 코어 5 영역 밖 나라가 보면 반대할 수밖에 없다. 일단 영국, 프랑스, 독일이 빠진 코어 5라는 점에서 유럽 전체가 충격이다.
코어 5를 트럼프식 허세로 보는 사람도 있다. 필자는 정반대로 본다. 이미 미디어에 흘렸다는 점에서, 글로벌 반응과 가능성을 타진해 보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코어 4, 코어 10이 될지 알 수 없지만, 약육강식 강대국 중심의 협상구도가 트럼프 머릿속에 있다는 의미다. 명칭이나 논의 대상이 달라질 뿐 조만간 ‘약육강식’을 질서로 하는 강대국 체제가 나타날 수 있다고 필자는 확신한다.
핵무장에 대한 일본의 손익계산서
유럽과 함께 일본은 코어 5 발상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나라다. 코어 5에 들어가 있는 나라라고 자만하는 게 아니라, 일본이 빠진 코어 4가 될 가능성에 주의하면서 코어 5가 될 경우 손익계산서를 면밀히 두드리고 있다. 만약 코어 5에 들어갈 경우 일본은 핵무장을 안 한 유일한 나라가 된다. 평화주도 글로벌 체제하에서는 환영받을 나라지만, 약육강식 파워 구도하에서는 ‘코어 5 내 을의 입장’에 처해질 수 있다. 어른들 게임에 어린이가 뛰어들 경우 무조건 어른들 룰에 따라야만 한다. 필자 판단이지만, 일본 핵무장 논의는 루비오 발언에 대한 반발만이 아니라, 코어 5와 같은 현실주의 강대국 중심의 국제질서에 대한 준비라 볼 수 있다.
동남아시아와 일본을 잇는 해상보급로(Sea Lane) 손실은 일본이 분석한 태평양전쟁 패배의 가장 큰 이유다. 미군 함정과 잠수함 공격으로 해상보급선 95%가 궤멸됐다. 동남아시아발 원자재·석유·식량 보급선이 초토화되면서 전쟁에 졌다는 분석이다. 바로 대만과 센카쿠열도에 대한 일본의 집념을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 코어 5가 될 경우 핵이 없는 일본은 미국 정책을 따를 가능성이 높다. 그런 과정 속에서 해상보급로도 일본 의향과 반대로 흘러갈 수 있다. 코어 5에 들어간다고 해도 자국의 이해가 무시될 수 있다고 보고, 최종 보험으로 핵무장 논의를 꺼낸 것이라 볼 수 있다.
코어 5 논의는 잠시 나타난 황당한 발상이 아니다. 앞으로 한층 구체화되고 확실시될 미국 주도하의 글로벌 빅 픽처 구도다. 일·중 모두와 공평하고도 친하게 지내고, 나아가 한국, 호주, 인도, 뉴질랜드와도 중국과 더불어 공존공영할 수 있다는 것이 미국 측 생각이다. 돈을 앞세운 트럼프는 이 구도가 가능하다고 믿고 있다. 한국 정치를 보면 코어 5든 뭐든 그때 가서 생각하면 된다고 믿는 쇄국의 습성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 듯 하다.
“현재와 미래에 대한 국민의 불안을 희망으로 바꾸고, 강한 경제를 만들겠다.” 다카이치 총리가 하루에도 몇 번씩 강조하는 말이다. 취임 3개월째인 다카이치의 국정지지율이 75% 이상이다. 대부분 국민들이 새해 자민당 포스터 슬로건인 ‘강하고 풍요한 일본’을 믿고 있다는 의미다. 한반도 밖을 보면 강대국 논리에 기초한 신국제질서 등장이 초읽기다. 그러나 더 큰 걱정은 살기로 채워진 갈등과 반목의 국내 정치다. “비관론자는 모든 기회에서 어려움을 보고, 낙관론자는 모든 어려움에서 기회를 본다.” 윈스턴 처칠이 남긴 말이 그나마 위로가 되는 시대다.
-유민호 퍼시픽21 소장, 주간조선(26-01-01)-
==========================
'[세상돌아가는 이야기.. ] > [時事-萬物相]'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김현지에 전달됐다는 '김병기 돈 수수' 탄원서 누가 묵살했나] .... (0) | 2026.01.05 |
|---|---|
| [美, 마두로 축출… 더 거칠어진 ‘힘과 국익’의 시대] .... (1) | 2026.01.05 |
| [정주영의 '소 떼 방북'은 허망했다? 그는 두 가지를 봤다] (1) | 2026.01.04 |
| ['在來式 언론'과 '水洗式 대통령'] (1) | 2026.01.03 |
| [이혜훈 후보자 하루라도 빨리 물러나야 한다] [ .. ‘내란 청산’ 끝났다] (1) | 2026.01.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