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훈'이 그대로 보여주는 한국 정치 민낯]
[재야 거목 영입했던 정당이 뺄셈 정치만 고집하다니]
'이혜훈'이 그대로 보여주는 한국 정치 민낯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가 지난 1월 8일 서울 중구 예금보험공사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면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며 손사래 치고 있다./ 뉴스1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를 둘러싼 의혹이 끊이지 않고 있다. 9일에는 이 후보자가 심야에 보좌진에게 전화를 걸어 “너 그렇게 똥, 오줌을 못 가려?”라고 말하는 녹음 파일이 공개됐다. 인턴 직원에게 “내가 정말 널 죽였으면 좋겠다”고 한 데 이어 또 폭언이 나온 것이다. 이 후보자는 남편과 함께 서울·인천 등 수도권 일대에 상가와 땅을 사들여 30억원이 넘는 차익을 거뒀다는 부동산 투기 의혹에 더해, 결혼한 장남을 미혼으로 위장해 ‘가족 수’를 부풀리는 수법으로 수십억 원대 서울 반포동 아파트 청약에 당첨됐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사실이라면 주택법, 주민등록법 등 위반으로 수사·처벌 대상이다.
한국갤럽이 이날 공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 후보자가 장관으로 적합하다는 응답은 16%에 불과했다. ‘부적합하다’는 47%였다. 그래도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19일 열리는 청문회까지는 지켜보자는 입장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 후보자를 장관에 지명한 다음 “통합과 실용 인사”라고 했다. 하지만 정부 출범 후 지난 6개월간 야당을 ‘내란 정당’이라며 ‘해산돼야 한다’고 한 게 이 정권이다. 야당 중에서도 이 후보자는 계엄을 옹호하고 윤 어게인 집회에 참석한 사람이다. 이 대통령 말대로면 ‘내란 행위자’다. 이 후보는 이 대통령의 경제 정책을 ‘포퓰리즘 독재’라고 했다. 이런 이 대통령과 이 후보자가 갑자기 손을 잡고 등장한 것은 통합, 실용이 아니라 억지 정략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통합 탕평 인사라는 명분으로 야권을 갈라치고 여당 지지를 확장하기 위한 지방 선거 전략이었을 뿐이다.
국힘은 연일 이 후보자를 비판하지만 이런 이 후보자를 정치권에 발탁하고 강세 지역인 서울 서초에 공천해 3선 의원을 만들어준 게 바로 국힘 자신이다. 심지어 이후에도 두 번 더 공천을 줬다. 국힘은 이 사람을 20년간 국회의원 후보로 5차례나 공천했다. 지금 나오는 각종 의혹도 거의 모두 국힘 시절 벌어진 일이다. 이 후보자가 자기 당에 있을 때는 한마디도 없다가 상대편에서 장관 후보로 지명하자 그날로 제명하고 자기 당 시절 있었던 일들을 폭로하며 비난한다. 그래 놓고 “핵심은 청와대의 인사 검증 실패”라고 한다.
이 후보자 같은 사람이 승승장구하고, 갑자기 당을 바꿔 장관 후보자가 되는 것이 한국 정치다. 보좌진에게 갑질하면서 권력자에게는 잘 보여 공천받고, 당선되면 국익보다 자신과 가족의 이익을 더 생각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법을 어기는 일도 우습게 생각한다.
지금 민주당에서도 똑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공천 뒷돈 거래 혐의가 잇달아 터지고, 실세 의원 아내는 지역구 구의회 업무추진비 카드를 제 카드처럼 쓰고, 경찰의 이 사건 관련 내사 자료가 바로 그 실세 의원 손에 들어갔다. 공천 뒷돈을 폭로한 탄원서는 당내 최고 실력자 누군가에 의해 덮였다. 그런 민주당 정권이 이혜훈 같은 사람을 장관 후보로 지명한 것은 ‘유유상종’일지도 모른다. ‘이혜훈 사태’가 보여준 것은 여야 가릴 것 없이 사익을 추구하고 정략에만 몰두하는 우리 정치권의 민낯이다.
-조선일보(26-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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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야 거목 영입했던 정당이 뺄셈 정치만 고집하다니
보수 정당의 전성기는 언제였을까. 3당 합당 승부수로 군사정권을 종식시키고 문민정부를 만들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이 먼저 생각난다.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이 연속으로 집권했던 기간도 있다. 이 시기 18, 19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새누리당은 과반 의석을 연달아 차지했다.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압승과 이준석 전 대표의 30대 ‘0선’ 당 대표 돌풍, 윤석열 전 대통령의 정권 탈환과 지방선거 압승이 이어진 2021∼2022년도 꼽을 수 있겠다.
보수 원로 중에는 15대 총선을 치른 1996년 전후를 역대급 전성기로 지목하는 이들도 많다. 운동장을 넓게 쓰며 인적 쇄신에 성공하고 외연을 대폭 넓혔기 때문이다. 1994년 첫 지방선거 참패 이후 정권의 위기감이 고조되자 여당인 민주자유당은 좌우를 넘나들며 폭넓게 인재를 영입했고 당명도 신한국당으로 바꿨다. 이재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과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도 그때 당에 들어왔다.
야권과 진보 진영은 큰 충격을 받으며 배신감에 휩싸였다. 이재오와 김문수가 민주화운동사(史)에서 갖는 무게감과 파급력 때문이었다. 이재오는 재야·민중운동의 거목이었다. 다섯 번이나 감옥을 다녀오며 독재와 싸웠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수많은 운동가들이 김영삼의 통일민주당과 김대중의 평화민주당으로 향할 때도 민중당을 만들어 진보 진영을 지켰다.
동시대의 김문수는 노동운동의 대부였다. 노회찬 심상정은 김문수 앞에서 명함도 내밀 수 없다는 얘기가 지금도 노동계에서 전설처럼 회자된다. ‘노동자 정치세력화’와 ‘사회 변혁’을 내걸고 1980년대 가장 전투적인 노동운동을 전개했던 ‘서노련’(서울노동운동연합)을 이끌었다. 보안사에 끌려가 갖은 고문을 당하면서도 심상정의 이름을 불지 않은 것도 유명한 얘기다. 김문수도 두 민주당으로 가지 않고 이재오와 함께 민중당을 지켰다.
그랬던 이재오와 김문수가 보수 정당에 입당할 수 있었던 건 당시 총재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의 결단과 쇄신을 위한 당의 몸부림, 두 인사를 받아들인 유연성과 덧셈정치 등이 뒷받침한 결과였다. 김 전 대통령과 갈등을 빚다 127일 만에 물러난 ‘대쪽 판사’ 이회창 전 국무총리와 ‘모래시계 검사’ 홍준표도 1996년 입당했다. 인적 쇄신에 성공한 신한국당은 15대 총선에서 야권이 구축한 정권심판 프레임을 이겨내며 139석을 얻어 원내 1당 유지에 성공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이혜훈 전 의원을 지명한 날 국민의힘은 이 후보자를 즉각 제명했다. 지도부는 “김중배의 다이아몬드가 그렇게 탐났느냐”며 이 후보자를 배신자로 규정하고 낙마를 위해 총공세를 펼치고 있다. 장동혁 대표는 한 발 더 나아가 “해당 행위 인사들을 제대로 조치하지 못해 이런 일들이 벌어졌다”며 당성(黨性·당에 대한 충성도)을 강조하고 나섰다. 이어 친윤(친윤석열) 인사들을 지도부에 다시 기용하고 한동훈 전 대표를 징계하기 위한 윤리위도 가동시켰다. 한때 김문수와 이재오를 영입하며 덧셈을 거듭하던 정당이 어쩌다 이렇게 뺄셈만 하고 있을까. 장 대표에게 배신자 응징과 한 전 대표 징계보다 더 시급한 것은 이 질문에 답을 하는 것이다.
-유성열 정치부 차장, 동아일보(26-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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