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정치, 새해에는 그만 보고 싶다]
[특검 영향 장기 미제 사건 2배, 그래도 선거용 특검 또 한다]
[계엄 가담 방첩사 해편… 이젠 간첩 막는 ‘본업’에만 집중하라]
[정권 의혹은 모두 경찰에 넘겨 뭉개고 묻을 것]
[법이 법 같지 않은 세상에 필요한 것… "독일에 답이 있다"]
이런 정치, 새해에는 그만 보고 싶다

최근 만난 한 청년 정치인은 “내가 1억원이 없어서 공천을 못 받은 것 같다”고 했다. 새해 벽두부터 더불어민주당에서 터져 나온 이른바 ‘공천 헌금’을 겨냥한 말이다. 민주당 현역 의원들은 지방선거와 총선을 앞두고 적게는 1000만원, 많게는 1억원을 받고 공천에 힘을 썼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 정치인은 “‘구의원 코스 3000만원, 시의원 코스 1억원’이라는 공천 메뉴판이라도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공천 헌금 논란과 동시에 화제가 된 건 “너 IQ 한자리야?”라는 막말이 담긴 녹취다. 기획예산처 첫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이혜훈 후보자의 국회의원 시절 인턴 보좌진과 통화 내용인데, “널 죽였으면 좋겠다”는 식의 모욕적인 말이 한없이 쏟아진다. 압권은 “야!”라며 느닷없이 내지르는 고함이다. 또래들이 모인 단체 대화방에선 “PTSD(외상 후 스트레스장애)가 온다”는 반응과 함께 사회 초년병 시절 들었던 폭언 경험담이 이어졌다. 한 친구는 “도대체 얼마나 한이 맺혔으면 저 녹취를 9년이나 간직했겠느냐”고 했다. 피해 보좌진은 이때의 모욕을 잊지 않고 이를 바득바득 갈며 날을 기다렸을 것이다.
더 뜨악스러운 건 각종 논란을 대하는 정치인들의 자세다. 공천 헌금 의혹에 민주당 대표라는 사람은 김어준씨가 운영하는 유튜브에 나와 “‘시스템 에러’라기보다는 ‘휴먼 에러’에 가깝다”고 말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 당이 외치는 ‘클린 선거’가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다. 공천 헌금 수수와 더불어 아내의 구의회 업무추진비 사적 유용 의혹, 자녀들의 취업·편입 특혜 의혹 등 끝없는 논란의 중심에 있는 전 원내대표는 “법적 문제는 없을 것”이라며 탈당을 거부하고 있다. 이보다 앞서 있었던 민주당 현역 의원들의 성추행 의혹, 인사 청탁 등 낯 뜨거운 문제들에 대해서도 대부분의 의원은 별다른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다. 동지 의식일 것이다.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을 단순히 몇몇의 개인 문제로 치부하기는 어렵다. 공천은 돈으로 거래되고, 권력은 고성과 명령으로 행사되며, 문제가 불거지면 사과 대신 변명과 반격으로 대응하는 모습이 형태를 달리할 뿐 끊임없이 반복돼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모든 장면의 밑바탕에는 정치인의 특권 의식이 깔려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여의도를 떠난 한 전직 보좌관은 “공천권과 인사권을 쥐고 흔들면서도 겉으로는 공정과 정의 운운하며 ‘약자 보호’ ‘갑질 철폐’를 부르짖는 모습에 신물이 났다”고 했다.
청년들의 정치 불신은 거창한 이념 갈등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공천을 돈으로 사고파는 현실, 권력이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모욕하는 언어로 행사될 때 정치 불신은 더 뿌리 깊은 혐오로 바뀐다. 이런 모습을 보며 청년들이 정치에 뭘 기대할 수 있을까. 해가 바뀌었다. 이런 뻔뻔한 얼굴과 태도, 언어를 또다시 마주해야 한다면 정치는 청년들에게 미래가 될 수 없다. 적어도 새해에는 이런 정치는 그만 보고 싶다.
-이해인 기자, 조선일보(26-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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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검 영향 장기 미제 사건 2배, 그래도 선거용 특검 또 한다

12·3 비상계엄 관련 내란·외환 의혹을 수사했던 내란 특검팀의 조은석 특별검사. /뉴스1
검찰이 3개월 넘게 결론 내지 못한 장기 미제 사건이 1년 새 두 배 넘게 늘었다. 2024년 장기 미제는 1만8198건이었는데 작년 3만7421건이었다. 장기 미제 사건이 늘어난 건 3대 특검 파견으로 수사 인력이 줄었기 때문이다.
작년 6월 출범했던 3대 특검 파견 검사만 126명이었다. 수사 인력까지 합쳐 총 500여 명이 투입됐다. 웬만한 지방검찰청보다 많다. 성과는 거의 없었다. 내란 특검은 27명을 재판에 넘겼지만 대부분 공수처 수사로 이미 드러났던 사안이다. 해병대원 특검은 구속영장 10건을 청구했는데 9건 기각됐다. 이런 특검을 왜 했는지 모를 정도였다. 민중기 특검은 지난 8월 민주당 정치인이 불법 자금을 받았다는 통일교 관계자의 진술을 받고도 수사하지 않았다.
3대 특검은 180일 정도 수사하면서 200억원을 썼다고 한다. 공소 유지를 위해 더 많은 세금이 투입될 것이다. 여기에 투입된 예산과 인력을 검찰이 썼다면, 장기 미제 사건이 이렇게 늘어나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와 민주당은 2차 종합 특검을 한다고 한다. 정청래 대표는 2차 종합 특검을 올해 1호 법안으로 처리하겠다고 했다. 2차 특검 종료일은 지방선거와 맞춘다고 한다. 내놓고 선거용 특검을 하겠다는 것이다. 해 봤자 새로 나올 것이 없다는 사실은 정권 측이 더 잘 알 것이다. 그런데 정 대표는 3차 특검 가능성까지 언급하고 있다.
특검 남발로 민생 사건이 뒷전으로 밀릴 것이란 경고는 이미 수개월 전부터 예고됐지만 철저히 무시했다. 그러면서 김병기·강선우 의원 공천 돈거래 사건, 민중기 특검의 민주당 통일교 관련 봐주기 수사 등 특검이 아니면 해결할 수 없는 정권 비리 의혹에 대해선 깔아뭉개고 있다. 올해 10월 검찰청은 폐지된다. 쌓인 장기 미제 사건을 중수청에 이관할지, 경찰이 떠맡을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어떤 식이든 사건이 이관되면서 처리는 더욱 지연되고 국민 피해는 가중될 것이다.
-조선일보(26-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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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가담 방첩사 해편… 이젠 간첩 막는 ‘본업’에만 집중하라

군 개혁을 위해 구성된 민관군 합동특별자문위가 8일 국군방첩사령부를 해체한 뒤 재편성할 것을 안규백 국방부 장관에게 권고했다. 방첩사는 방첩 정보, 안보 수사, 보안 감사 기능이 있다. 이 중 수사는 군사 경찰인 국방부 조사본부로, 방첩 업무와 보안 감사는 각각 신설되는 가칭 국방안보정보원과 중앙보안감사단으로 넘기라는 것이다. 이로써 방첩사는 1977년 국군보안사령부 창설 이후 49년 만에 완전히 해편(解編)될 예정이다.
이는 방첩사가 간첩 활동을 막는 본연의 임무 대신 불법 계엄의 핵심 역할에 가담한 자업자득이라 할 것이다.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은 계엄 당일 여야 대표 등 정치인 10여 명의 검거를 지시했고, 수갑에 포승줄까지 챙긴 체포조가 국회로 출동했다. 계엄 전엔 북한을 거론하며 ‘불안정한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고 메모장에 적었다. 간첩 검거를 위해 부여받은 수사권을 윤석열 전 대통령이 적의를 드러낸 정치인 체포에 쓰고, 나라를 안보 위기에 빠뜨리려는 의도마저 드러낸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윤 전 대통령은 방첩사를 자신에게 충성하는 수족으로 만들려 했다. 방첩사령관에 충암고 후배인 여 전 사령관을 임명한 뒤 계엄 직전까지 수시로 삼청동 안가에 불러 계엄을 모의했다. 방첩사의 전신인 국군기무사령부는 이명박 정부 때 대선·총선 댓글 공작이, 박근혜 정부 때 세월호 유가족 사찰 등이 드러나는 등 불법 정치 개입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이 때문에 기무사가 사실상 해체됐지만 윤석열 정부 때 방첩사로 부활했다. 이후 더욱 노골화된 정치 권력과의 유착은 급기야 시대착오적 친위 쿠데타에 동원되는 결과를 낳았다.
정보 수집과 수사권을 함께 가진 방첩사는 막강한 권력 기관이나 다름없었음에도 감시의 사각지대에 있었다. 또다시 정치 권력에 이용되는 일이 없도록 외부의 민주적 통제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간첩 활동의 징후를 찾아내는 업무와 수사 기능의 분리가 방첩 능력의 약화로 나타나지 않게 실효성 있는 보완책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지난해 정보사 군무원의 블랙 요원 명단 유출 사건에 뒷북 대응한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방첩 역량을 획기적으로 높여야 한다. 이를 통해 방첩 기관이 본업에만 집중하며 다시는 정치에 휩쓸리지 않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동아일보(26-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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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의혹은 모두 경찰에 넘겨 뭉개고 묻을 것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공천 헌금’을 건넸다는 내용의 탄원서를 작성한 전직 동작구 의원 A씨가 8일 서울 마포구 서울경찰청 공공범죄수사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뉴스1
김병기 민주당 전 원내대표 관련 의혹에 대한 경찰 수사가 진척이 없는 가운데 사건의 핵심 인물들이 증거를 인멸하는 정황이 나오고 있다. 강선우 의원에게 공천을 위해 뒷돈 1억원을 전달한 의혹을 받는 김경 서울시 의원 등 관련자들이 텔레그램, 카카오톡 등 메신저앱에서 최근 탈퇴 후 재가입했다고 한다. 기존의 대화 내용을 일괄 삭제할 때 사용하는 수법이다. 경찰이 이들의 휴대전화를 압수해도 범죄를 뒷받침할 만한 증거를 찾기 어렵다.
경찰은 8일 김병기 의원에게 1000만원을 건넸다가 돌려받았다는 전직 서울 동작구 의원을 불러 조사했다. 그는 다른 구의원과 함께 2023년 12월 공천 뒷돈을 폭로한 탄원서를 민주당에 전달한 사람이다. 김병기 의원이 해고한 보좌진이 이 탄원서를 작년 11월 관할 동작경찰서에 접수시켰다. 경찰은 그 즉시 해당 동작구 의원을 소환·조사했어야 하지만 뭉개고 있다가 사건이 표면화된 뒤에야 부른 것이다.
심지어 경찰은 이 사건을 배당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작년 말 강선우 의원 공천 뒷돈 문제와 김병기 의혹으로 번지고 시민단체의 고발이 접수되자 그제야 수사를 시작했다. 사건이 공개되지 않았으면 완전히 깔아뭉갰을 것이다. 그사이 핵심 혐의자인 김경 시의원은 지난달 31일 미국으로 출국해버렸다. 경찰이 도주를 방조한 것이다. 만약 국민의힘 공천과 관련된 뒷돈 사건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경찰 수뇌부는 이미 경질됐을 뿐만 아니라 수사까지 받고 있을 것이다.
특히 초기 수사를 담당한 동작경찰서의 행태는 그 자체가 범죄라고 할 수밖에 없다. 2024년 시작한 김병기 의원 아내의 구의회 법인 카드와 차남의 숭실대 입학 및 취업 청탁 의혹을 뭉개기 수사로 일관했다. 배우자 법인 카드 의혹은 결국 무혐의 처리했다고 한다. 의원 아내가 지역구 구의회의 업무추진비를 사적으로 사용해도 무혐의인가. 그 과정에서 김병기 의원이 동작경찰서장과 통화했고, 경찰의 내사 자료까지 건네받았다는 전직 비서관의 폭로도 나왔다. 경찰이 수사 대상에 대한 내사 자료를 수사 대상에게 전달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범죄가 아니면 무엇이 범죄인가.
지금 경찰은 수사 기관이라고 할 수 없다. 수사 기관의 외피를 쓰고 권력 비리를 덮는 하청 기관에 가깝다. 경찰은 앞으로도 법치를 수행하는 제대로 된 수사 기관이 될 수 없다. 그렇게 되려면 작은 씨앗이라도 보여야 하는데 전혀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 민주당 정권은 자신들 의혹은 모두 경찰에 넘겨서 뭉갤 가능성이 높다.
-조선일보(26-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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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 ‘공천 헌금’ 수사하는 경찰, 열흘째 핵심 피의자 압수수색 안 해. 권력 앞에 당당한 ‘민중의 지팡이’ 맞나요?
-팔면봉, 조선일보(26-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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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이 법 같지 않은 세상에 필요한 것… "독일에 답이 있다"
독일의 '추상적 규범 통제' 도입해야
최대한 존중받아야 하는 국회 입법권에도 분명한 한계가 있다. 헌법이 보장하는 삼권분립을 훼손하거나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는 위헌 법률까지 제대로 된 ‘법(法)’이라고 할 수는 없다. 민주당이 지난달 강행 처리한 내란 전담 재판부 설치법이 대표적이다.

김지호 기자 민주당이 지난달 23일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 재판부 설치 특별법’을 통과시키고 있다.
민주당은 외부 인사들이 전담 재판부 판사 추천에 관여하는 안을 추진하다 위헌이란 지적이 나오자 법원 판사회의에 재판부 구성에 대한 전권을 주는 쪽으로 내용을 수정해 법안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우리 헌법은 군사법원만을 특별법원으로 정하고 있다. 헌법에 근거 없이 전담 재판부 같은 특별법원을 법률로 만드는 것 자체가 위헌이다.
이뿐 아니다. 민주당은 법원행정처를 폐지하고 법관 인사를 담당할 별도 위원회를 신설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 법을 왜곡해 적용했다는 이유로 판검사를 처벌할 수 있는 ‘법 왜곡죄’ 법안 처리를 공언한 상태다. 법원조직법 개정안은 ‘사법권은 법원에 속한다’고 규정한 헌법 위반이고, 법 왜곡죄도 정권 입맛에 맞는 판결을 강요하는 쪽으로 악용될 수 있어 위헌 소지가 크다.
민주당이 이런 법안들을 쏟아내기 시작한 건 대법원이 작년 5월 이재명 대통령 선거법 위반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하고, 일선 법원이 비상 계엄 관련자들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한 이후다. 자신들에게 불리하거나 마음에 안 드는 판결을 했다고 사법부를 압박하는 것이다. 압도적 의석을 무기로 ‘법’을 이용해 벌이는 독재 행태다.

이런 행태에 제동을 걸라고 만든 기관이 헌법재판소다. 헌재가 위헌 결정을 내리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헌재의 위헌 법률 심판에는 ‘사각지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헌법(111조1항)이 법률 등의 위헌 여부는 재판의 전제가 된 경우에만 심판할 수 있다고 규정한 데서 비롯된다. 즉 법원에서 재판 중인 사건에서 그 사건에 적용되는 법률의 위헌 여부가 문제가 됐을 때 법원이 직권으로 혹은 소송 당사자 신청을 받아들여 헌재에 위헌 여부를 가려 달라고 청구해야 위헌 여부를 심판할 수 있는 것이다. 재판이 걸려 있어야 위헌 여부를 다툴 수 있는 이 방식을 ‘구체적 규범 통제’라고 한다.
내란 전담 재판부 설치법에 대해 윤석열 전 대통령 측은 위헌 법률 심판을 제청해 달라고 법원에 신청하겠다고 했다. 윤 전 대통령이 관련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기 때문에 이런 경우는 위헌 여부를 따질 수 있다. 하지만 재판이 걸려 있지 않은 경우엔 위헌 법안이 방치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난달 초 민주당이 통과시킨 ‘항공안전법 개정안’을 보자. 통제 구역 내 무인 비행기구의 비행을 금지한 이 법안은 사실상 대북 전단 살포를 우회적으로 금지한 것이다. 앞서 헌재는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전단 금지법’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는데 이를 부활시키는 내용을 항공안전법에 넣어 통과시킨 것이다. 헌재 결정을 무시하는 것으로 명백한 위헌이다.
하지만 누군가 대북 전단을 날려 이 법안으로 기소돼 재판을 받으면서 위헌 법률 심판을 신청하지 않는 이상 이 법안의 위헌성을 따질 방법이 현재로선 없다. 위헌 여부를 따지려면 누군가 처벌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데 그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결국 위헌 법안이 방치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법조계 일각에선 ‘추상적 규범 통제’를 도입할 때가 됐다는 주장이 나온다. 법률의 위헌 여부가 재판의 전제가 되지 않는 경우에도 헌재가 시행된 법에 대해선 위헌 여부를 심사할 수 있는 제도다. 이를 도입한 대표적인 나라가 독일이다. 독일은 ‘연방정부와 주정부, 연방의회 의원의 4분의 1’을 위헌 법률 심판 청구권자로 정하고 있다. 다수당이 의석을 무기로 위헌적 법률을 통과시켜도 소수당이 추상적 규범 통제 절차에 따라 바로 연방헌법재판소에 위헌 심판을 청구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소수당이 법안 통과를 막기 위해 물리적 충돌을 빚을 필요가 없기 때문에 독일에선 이 제도가 정치적 평화를 이루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 여러 장점을 갖고 있다. 무엇보다 헌재의 위헌 심사 대상이 크게 늘어날 수 있다. 항공안전법 개정안처럼 위헌이지만 재판이 걸려 있지 않은 법안에 대해서도 일정 수 이상의 국회의원들이 위헌 법률 심판을 청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다수당도 법안을 만드는 데 조심할 수밖에 없게 된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다수당 횡포에 대한 강력한 견제 수단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입법 절차 하자를 이유로 위헌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길도 열린다. 지금도 다수결 원칙 위반 등이 법률의 위헌 사유가 될 수는 있지만 실제로는 위헌 여부를 다투기가 마땅치 않다. 재판이 걸려 있거나 기본권 침해가 있을 때 해당 법률의 위헌 여부를 다툴 수 있는데, 국회의원이나 국가기관 등은 그런 기본권 침해를 주장할 수 없고, 재판이 전제가 된 사건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그간 각 정당은 입법 절차 문제가 있는 법률의 위헌 여부를 국가기관 상호 간의 분쟁 해결을 목적으로 하는 권한쟁의심판을 통해 다퉈왔다. 직접 위헌 법률 심판을 청구할 방법이 없으니 우회적인 방식을 택한 것이다.
하지만 헌재가 권한쟁의심판에서 행정 처분 등은 무효로 할 수 있지만, 절차 하자가 있는 법률까지 무효로 결정해 사실상 위헌의 효과를 낼 수 있는지에 대해선 아직 확립된 판례나 이론이 없다. 헌재가 그간 국회의 절차상 위법은 인정하면서도 법률을 무효로 보기는 어렵다는 식으로 소극적 판단을 해온 이유다. 헌재는 민주당이 문재인 정권 시절 통과시켰던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법’에 대해서도 ‘위장 탈당’을 통한 법사위 심사 과정은 위법했지만 법 자체는 유효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추상적 규범 통제가 도입되면 절차 위반을 이유로 국회의원들이 바로 위헌 법률 심판을 청구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이다.
소송 남발의 우려가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심판 청구권자 범위를 독일과 비슷하게 ‘정부와 광역지자체, 국회 재적 의원 4분의 1 이상’으로 한정하고, 제청 요건도 좁히면 남소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고 법조계 인사들은 말한다. 이 제도를 도입하려면 개헌이 필요한데 이재명 정부의 1호 국정 과제가 개헌이다. 다만 그간의 행태로 볼 때 민주당이 먼저 나설 가능성은 거의 없다. 정치권이 안 하면 헌재라도 나서서 설득해야 한다. 이강국·박한철 전 헌재 소장도 제도 도입의 필요성을 역설한 바 있다. 전직 헌법재판관은 “사회적으로도 도입을 공론화할 때가 됐다”고 했다.
정당 파견원처럼 된 재판관 임명 방식도 바꿔야
추상적 규범 통제를 도입하려면 기본 전제가 하나 있다. 헌재가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껏 헌재가 보여온 모습은 이와는 거리가 멀었다. 재판관들이 각 정당의 파견원처럼 판단할 때가 적지 않았다. 헌재가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 탄핵소추안을 기각하긴 했지만 찬반 의견이 4대4로 갈린 게 대표적이다. 민주당이 이 전 위원장을 취임 이틀 만에 정략적으로 탄핵소추했는데도 진보 성향 재판관 4명은 탄핵에 찬성했다.
이런 상황은 재판관 임명 방식과 무관치 않다. 헌법은 재판관 9명을 대통령·대법원장·국회가 각각 3명씩 지명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서로 견제하라는 권력 분립의 이상이 담겨 있지만 이념, 정파로 갈려 실상은 그 반대가 되고 있다. 특히 문재인 정권 때는 재판관 9명 중 5명을 진보 성향인 우리법연구회, 민변 출신 등으로 채웠다. 이후 각 정당이 노골적으로 헌재에 자기 편을 심으려 했다. 민주당은 민주당원 같은 성향을 보인 마은혁 판사도 밀어붙였다.
재판관 임명 방식도 바꿀 필요가 있다. 재판관을 다 국회에서 선출하되 임명 가결 정족수를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으로 정한 독일 헌재의 모델을 검토할 만하다. 가결 정족수를 높여 정치 편향이 강한 후보는 통과하기 힘들게 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각 정당은 상대도 납득할 수 있는 후보를 찾으려 노력할 수밖에 없다. 이 역시 개헌 사항인데 추상적 규범 통제를 도입한다면 함께 논의할 필요가 있다.
☞추상적 규범 통제
법률의 위헌 여부가 재판의 전제가 되지 않은 경우에도 헌재가 위헌 심판을 할 수 있는 제도. 이를 도입한 독일에선 연방정부와 주정부, 국회 재적 의원 4분의 1 이상이 위헌 법률 심판을 청구하면 헌재가 해당 법률이 적용된 재판이 없어도 위헌 심판을 할 수 있게 돼 있다. 반면 우리 헌법은 법원에서 재판 중인 사건에 적용된 법률의 위헌 여부가 쟁점이 됐을 때만 헌재가 위헌 심판을 할 수 있게 돼 있다. 이를 ‘구체적 규범 통제’라고 한다.
-최원규 논설위원, 조선일보(26-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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