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없는 유엔’]
[트럼프의 주먹, 동맹국의 패닉]
‘미국 없는 유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9월 유엔총회 기조연설을 위해 6년 만에 뉴욕 유엔본부를 찾았다가 낭패를 겪었다. 회의장 가는 에스컬레이터는 중간에 멈췄고 연설문 프롬프터는 작동하지 않았다. 회의장 음향도 문제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유엔의 삼중 사보타주(정상 운영을 방해하려는 고의적 파괴)”라며 발끈했다. 미국 우선주의를 주장하는 트럼프 대통령과 다자주의 국제질서의 상징인 유엔은 처음부터 궁합이 안 맞는 쪽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집권 1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유엔을 ‘떠들고 즐기는 사람들의 사교클럽’이라고 비꼬고, “취임 후 유엔 상황이 달라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취임 후 첫 유엔총회에서 대선 슬로건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에서 ‘다시(again)’를 쏙 뺀 뒤 “유엔을 위대하게(Make the United Nations great)”라고 했다. 미국이 20세기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겪고 1945년 창설을 주도한 유엔의 과거를 부정한 것이다. 그러면서 “유엔은 관료주의와 잘못된 관리로 인해 잠재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며 개혁을 촉구했다.
▷집권 2기에선 더 독해졌다. 트럼프는 유엔 창설 80주년인 지난해 유엔 연설에서 “유엔이 하는 건 매우 강한 어조의 편지를 쓰고 실행에 옮기지 않는 것뿐”이라며 ‘유엔 무용론’을 제기했다. 결국 그는 7일 유엔 산하기구 31개 등 국제기구 66개에서 탈퇴하는 대통령 각서에 서명했다.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국제기구에서 탈퇴함으로써 납세자의 돈을 절약하겠다”고 했다.
▷미 국무부는 유엔 기구에 대해 “Adapt, shrink or die(적응, 감축하지 않으면 없어져야 한다)” 원칙을 제시했다. 미국 정책에 적응해 방만한 조직을 감축하지 않으면 사라져야 한다는 뜻이다. 미국 입맛에 맞는 지원만 하겠다는 일종의 ‘선별적 다자주의’ 방침이다. 미국이 건설한 자유무역과 다자주의 질서가 미 중산층을 붕괴시키고 국익을 훼손했으니 더는 세계의 경찰과 국제질서 수호자 역할을 위해 달러를 쓰지 않겠다는 것이다.
▷‘셰일 혁명과 미국 없는 세계’를 쓴 지정학 전문가 피터 자이한은 미국이 세계 경찰 역할을 포기하면서 국가 간 갈등이 심화하는 각자도생의 세계를 경고했다. 미국은 유엔 정규 예산의 22%, 평화유지활동(PKO) 예산의 25%를 대는 최대 분담국이다. 유엔은 2월에 분담금을 통보하는데, 제때 납부한 국가는 50여 개국에 그친다.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4월 기준 미국이 체납한 분담금이 모두 30억 달러가 넘는다. 미국의 돈과 군대가 빠진 유엔은 트럼프의 말처럼 ‘국제 사교클럽’에 불과하다. 세계는 ‘미국 없는 세계’를, 유엔 193개 회원국은 ‘미국 없는 유엔’을 대비해야 할 때가 오고 있다.
-박용 논설위원, 동아일보(26-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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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주먹, 동맹국의 패닉
美 베네수엘라 군사작전에 국내외 비판
‘세계의 경찰’ 배지 떼고 우방에도 주먹질
국제질서 기준 흔들며 유엔마저 무력화
반미도 맹신도 버려야 냉철한 변화 직시
“미국이 전쟁을 하는 건가요.” 미국 최정예 부대 델타포스가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끌어내 압송한 다음 날, NBC방송 진행자가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에게 가장 먼저 한 질문이다. 이어서 나온 질문은 베네수엘라에 지상군이 투입되느냐는 것. 미국인들의 우려와 궁금증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주는 인터뷰 도입부였다. 루비오 장관은 부인했지만, 곧바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차 공격도 가능하다고 엄포를 놨으니 전쟁 가능성이 과한 걱정은 아닌 분위기다.
미국의 이번 군사작전과 일련의 추후 조치들이 가져온 후폭풍은 일파만파다. 미국이 직접적 계기 없이 다른 주권국에 침입, 150여 대의 전투기를 투입하는 대대적인 군사작전을 벌이며 현직 정부 수반을 잡아간 경우는 전례를 찾기 어렵다. 1989년 미국이 파나마에 군대를 투입해 독재자 마누엘 노리에가를 체포한 사례가 있지만, 이는 그가 바티칸 대사관으로 피신했다가 미군의 집요한 심리전에 견디다 못해 투항한 것이었다. 당시 침공은 미군 장교의 사망에 대한 보복이라는 명분이 있었다.
유엔의 승인 없이 주권 국가의 영토나 정치적 독립을 침해하는 무력 사용은 유엔 헌장 2조 위반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군사작전을 벌이면서 의회에 사전에 설명하는 등의 절차도 밟지 않았다. 전쟁범죄, 폭군 같은 단어들이 쏟아지는 안팎의 공세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눈을 부릅뜬 그의 사진과 함께 ‘까불면 다친다(FAFO)’고 적힌 포스터를 보란 듯이 올린 백악관 뒤에는 이번 작전에서 확인된 세계 최강의 군사력, 정보력이 받치고 있다. 이제는 나토(NATO) 동맹인 덴마크의 땅 그린란드에도 미군의 군홧발을 찍을 태세다. 배지를 뜯어낸 세계의 경찰이 갑자기 자기편으로 몸을 돌려 주먹질을 해대기 시작하는 형국이다.
국제질서의 기준과 규범을 세워온 미국이 스스로 이를 부정하고 있으니 유엔이 제대로 돌아갈 리 없다. 베네수엘라 상황을 논의하겠다며 5일 긴급 소집된 유엔 안보리 회의는 무기력함의 극단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우크라이나 무력 침공으로 국제적 비난을 받아온 러시아가 정반대로 미국을 비판하는 아이러니한 공방이 펼쳐졌다. 안보리는 결국 공동성명 하나 내놓지 못했다. 루비오 장관이 언론 인터뷰에서 “유엔이 뭐라고 하든 상관하지 않는다”고 대놓고 폄하하는데 반박도 못 한다. 중국, 러시아 대 서방의 극렬한 대치 속에 이미 제 기능을 상실해 가고 있던 유엔이다. 여기에 미국까지 국제법을 걷어차면서 안보리는 실효성 측면에서 사실상 종언을 고한 셈이나 마찬가지라고 본다.
신(新)군국주의를 예고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거친 행보에 동맹국들이 느끼는 당혹감은 짙다. 프랑스의 경우 베네수엘라 사태에 대해 대통령과 외교장관이 초기 다른 목소리를 냈는데, 반응 수위를 결정하기가 쉽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혼선이었다. 특히 유럽은 우크라이나 변수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미국의 국제법 위반 앞에 침묵했다간 러시아의 우크라 침공 논리에도 힘을 실어주는 결과가 될 수 있으나, 그렇다고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하자니 그의 심기를 건드려 가뜩이나 어려워지는 지원이 끊기는 수가 있다. 이중 잣대의 딜레마에 놓인 건 아시아 동맹국들도 마찬가지다. 일본만 해도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의 대만 관련 한마디에 응징과 보복의 또 다른 주먹을 휘둘러대는 중국을 상대하려면 미국 없이는 불가능하다.
돌변한 미국에 뒤통수를 맞은 동맹국들의 각성은 방위비를 늘리고 소(小)다자 안보, 경제협력을 모색하는 방식으로 구체화하고 있다. 프랑스와 영국은 사상 첫 핵협력도 시도 중이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는 “팍스 아메리카나는 끝났다”며 옛 미국에 대한 노스탤지어는 버려야 한다고 일갈했다. 필립 고든 전 미 부통령 국가안보보좌관이 포린어페어스에 ‘미국의 동맹들은 플랜B를 준비해야 한다’고 쓴 기고문은 정신이 번쩍 들 만큼 직설적이다. 그는 미국이 언젠가 과거의 미국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미몽에서 빠져나와 자체적인 대비책을 찾아야 한다고 촉구한다.
트럼프발 충격파에 대응하는 우리의 기조는 현재까지 신중하다. 다만 아직은 명확지 않아 보이는 큰 방향성을 제대로 잡으려면 형질 변형에 가까운 미국의 변화를 냉철하게 직시하는 게 우선이다. 지난해 관세 전쟁 때부터 수차례 경험했건만 외교적 패닉의 순간이 앞으로 몇 차례나 더 닥쳐올지 알 수 없다. 이럴 때 감정을 앞세운 반미주의는 위험하지만 ‘그래도 미국인데’ 식의 철 지난 맹신 또한 판단을 흐릴 뿐이다. 양쪽을 모두 철저히 배제하는 바탕에서야 한국의 플랜B 구상도 가능할 것이다.
-이정은 부국장, 동아일보(26-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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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국방비 수백兆원 늘리겠다며 “막대한 관세수입 활용”. 티끌 모으는 대신 ‘삥’뜯어 태산 쌓겠다는 것.
-팔면봉, 조선일보(26-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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