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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은 내란" 첫 판결, 후속 재판서 엄격한 법리 판단을] ....

뚝섬 2026. 1. 22. 07:41

["계엄은 내란" 첫 판결, 후속 재판서 엄격한 법리 판단을]

[레닌의 수상한 죽음]

 

 

 

"계엄은 내란" 첫 판결, 후속 재판서 엄격한 법리 판단을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2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내란 우두머리 방조,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 사건 1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12·3 비상계엄 선포와 관련해 내란죄 중요 임무 종사 혐의로 1심 재판에서 23년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판사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당시 계엄 선포가 헌법 질서를 파괴하려는 목적의 내란이었다며 한 전 총리가 국무회의 소집 등을 통해 내란에 기여했다고 판결했다. 계엄을 형법상 내란죄로 본 판결은 처음이다.

 

형법 87조는 ‘국가권력을 배제하거나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으로 일으킨 폭동’을 내란으로 보고 있다. 판사는 12·3 계엄 포고령을 헌법 질서를 소멸시키려는 목적에서 발령된 것으로 보고 ‘국헌 문란’의 목적을 인정했다. 또 군과 경찰을 동원해 국회와 선관위를 점거·출입 통제한 행위를 폭동으로 보았다. 위로부터의 내란’이라는 것이다. 이 판결은 다음 달 19일로 예정된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혐의 1심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내란죄는 형법상 가장 무거운 죄목중 하나다. 이를 적용하려면 위헌·위법성을 넘어 한 지역의 평온을 해할 정도의 폭동과 헌법 기능을 소멸시키려는 확정적 목적이 엄격히 증명되어야 한다. 군의 국회 진입으로 국민에게 충격을 준 것은 사실이나 6시간 만에 끝난 계엄을 과거 12·12나 5·18처럼 유혈 사태를 동반한 사건과 같은 잣대로 심판하는 것이 법리에 부합하는지에 대해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이 부분은 윤 전 대통령 내란 혐의 1심 판결과 한 전 총리 항소심 등 후속 재판을 통해 엄격히 가려져야 한다.

 

판사는 계엄 당일 한 전 총리가 국무회의를 통해 내란의 절차적 요건을 형식적으로나마 갖추도록 함으로써 내란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판결했다. 계엄 당시 한 전 총리의 소극적인 행위에 문제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계엄 가담으로까지 봐야하는지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한 전 총리에 대한 특검의 구속영장을 법원이 기각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한 전 총리는 “계엄을 만류하기 위해 국무회의를 건의했다”고 했지만 판사는 인정하지 않았다. 심지어 특검이 구형한 징역 15년을 훨씬 뛰어넘는 23년형을 선고했다. 한 전 총리 등 당시 국무위원 거의 모두가 계엄에 관해 전혀 알지 못했다. 대통령의 지시를 받는 하급자 입장에서 어쩔 수 없이 끌려들어간 부분에 대해 너무 과도한 판결이 아닌지 항소심에서 가려야 한다.

 

-조선일보(26-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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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수, 1심에서 내란 혐의로 징역 23년형 선고받아. 총리 두 번 한 ‘조선 제1 관운(官運)’의 끝이 이건가.

 

-팔면봉, 조선일보(26-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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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의 수상한 죽음 

 

블라디미르 레닌의 초상화 /퍼블릭 도메인

 

1924년 1월 22일 나는 모스크바 남동쪽 약 10㎞ 지점 고리키 별장 앞에 있다. 1917년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을 성공시키고 1922년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을 출범시킨 블라디미르 레닌이 어제 저곳에서 네 번째 뇌졸중을 일으켜 숨을 거두었다. 역사적 인물들, 특히 절대 권력을 가진 이의 경우가 자주 그러하듯 그의 죽음에는 몇 가지 가설과 음모론까지 있다. 대표적 음모론으로는 스탈린이 소량의 독약을 장기간 몰래 먹였다는 레온 트로츠키의 주장과, 스위스 망명 시절 사창가에서 걸린 매독이 정신 착란을 일으켰다는 추문 등이 있다.

 

언젠가 좌익 운동가에게서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조직가, 선전 선동가, 훌륭한 리더, 이 세 사람이 함께하면 혁명에 성공할 수 있다고. 레닌은 이 세 가지 요소를 다 가지고 있었고, 거기에 더해서, 마르크스를 재해석하는 실전 ‘이론가’이기도(이어야만) 했다. 마르크스가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발상지로 예언한 자본주의의 소굴 서유럽에서가 아니라 후진 농업국 러시아에서 혁명을 실현해야 했기 때문이다. 공산주의 이론은 그 자체가 도식적이고 인위적이어서, 오류가 발생하면 ‘변수’라고 둘러댄 뒤 새로운 길을 제시해야 한다. 레닌은 그 방면에 탁월한 저술가였고, 분량으로는 100여 권을 남겼다. 결국 적이 됐지만 한때 동지였던 율리 마르토프는, 레닌이 어떻게 정권을 잡을 수 있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온종일 혁명만 생각하고, 혁명에 대한 글만 쓰고, 혁명에 관한 글만 읽는 인간이 어찌 집권하지 않을 수 있었겠소.”

 

레닌은 톨스토이와 베토벤의 광팬이었다. 베토벤을 듣다가 이랬다고 한다. “이걸 계속 듣고 앉아 있다가는 혁명을 못 하겠는데?” 조직에 대한 그의 신앙심은 대단했다. “나에게 조직을 주시오. 그러면 혁명을 일으켜주겠소.” 레닌의 조직은 훈련받은 혁명가들의 전위 정당이었다. 내 생각에, 좌익이든 우익이든 모든 강한 대중 정당 안에는 전위 정당이 놓여 있다. 그리고 최악의 대중 정당은 속물들이 우글거리는 정당이다.

 

-이응준 시인·소설가, 조선일보(26-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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