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 두 번 들어 올린 ‘케데헌’]
[K컬처는 '한국 것'이 아니라고?]
[유행 권하는 사회]
아카데미 두 번 들어 올린 ‘케데헌’

매기 강(왼쪽부터) 감독, 크리스 아펠한스 공동 연출자, L.M.웡 프로듀서가 15일(현지 시간) 미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돌비 극장에서 열린 제9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로 장편 애니메이션상을 받은 후 프레스룸에서 기념 촬영하고 있다. 2026.03.16 로스앤젤레스=AP/뉴시스
한국이 만들지 않았지만 가장 한국적인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15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제9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장편 애니메이션상과 주제가상을 수상하며 2관왕에 올랐다. 이로써 ‘케데헌’은 골든글로브, 그래미에 이어 오스카까지 거머쥐었다. 21일 방탄소년단(BTS)의 서울 광화문 복귀 공연에 세계인의 시선이 쏠린 가운데 ‘케데헌’의 낭보까지 전해지며 K팝의 황금시대가 열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케데헌’의 수상은 그동안 축적됐던 한국 문화의 힘이 폭발한 것으로 봐야 한다. 앞서 2020년 봉준호 감독이 영화 ‘기생충’으로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 등 4개 상을 휩쓸었다. 2023년 드라마 ‘오징어 게임’은 에미상 4관왕, 지난해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은 토니상 6관왕을 수상했다. 로제의 노래 ‘아파트’는 올해 그래미상 3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오스카상 수상 당시 봉 감독은 “내 앞에는 수많은 영화 선배님이 계신다”며 앞선 한국 영화감독들에게 그 공을 돌렸다. ‘케데헌’ 매기 강 감독은 이날 인터뷰에서 “영화감독으로서 가장 감격했던 순간은 ‘기생충’의 수상을 지켜봤던 것”이라고 했다.
‘케데헌’의 주인공인 걸그룹 ‘헌트릭스’는 K팝과 팬덤으로 악령을 퇴치하고, 한식을 즐겨 먹는다. 그 배경으로는 서울 곳곳이 등장한다. 한국 민속 문화가 영화에 스며들어 디즈니의 상상력 못지않은 환상적인 세계가 펼쳐진다. 강 감독과 ‘케데헌’을 공동 연출한 크리스 아펠한스는 “세계적인 영향력을 가진 한국 영화, 음악, 코미디를 버무려 수프처럼 만들자고 했다”고 말했다.
강 감독뿐만 아니라 ‘헌트릭스’ 보컬을 맡은 가수 3명은 어릴 적 이민을 갔거나 이민 2세들이다. 강 감독은 “나처럼 생긴 사람들이 주인공인 이 영화가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며 “이 상을 한국과 전 세계 한국인에게 바친다”고 했다. ‘골든’을 만들고 부른 이재는 “어린 시절 사람들은 K팝을 좋아하는 나를 놀렸지만 지금은 모두 우리 노래를 부른다”고 말했다. ‘한국적’이라는 다양성을 지키며 세계인이 즐기는 문화를 만들어낸 이들의 성취가 자랑스럽다.
-동아일보(26-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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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컬처는 '한국 것'이 아니라고?

작년 12월 31일 경기도 용인시 에버랜드 케데헌(케이팝데몬헌터스) 팝업에서 외국인 무용수들이 갓을 쓰고 춤을 추고 있다./고운호 기자
유튜브에서 한국 식당을 찾은 외국인이 밥과 고기를 상추쌈으로 가득 싸서 먹는 장면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런데 그들이 그 쌈을 중간에서 베어 물기라도 하면 댓글 창엔 불이 나게 마련이다. ‘안 돼 하지 마’ ‘노!’ ‘네버!’ ‘으악’은 예사고 ‘입을 크게 벌려 한입에 먹어야지!’라는 절박한 훈수가 줄을 잇는다. 기자도 그 장면 앞에선 저절로 비명이 나왔다.
그런데 그것은 혹시 ‘K컬처는 모름지기 이래야 돼’라는 고정관념에서 나온 것은 아닐까. 체코 프라하의 한식당에서 옆자리에 앉은 현지인 남성 두 명이 양념닭강정과 밥을 시킨 뒤 맥주도 없이 식사하듯 먹는 것을 봤다. ‘세상에 누가 저렇게 먹는담?’이란 생각에 흘깃 고개를 돌렸더니 그들은 참 맛있다는 표정으로 열심히 먹고 있었다.
“이제 K컬처의 ‘K’라는 접두사는 더 이상 ‘한국의’라는 뜻으로 이해해선 안 됩니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2년 화상으로 인터뷰한 조지은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가 이런 말을 했다. “그것에는 재미(fun) 있고 쿨(cool)하고 현대적(contemporary)이며 혼성체(hybrid)인 동시에 역동적(dynamic)이란 의미가 담겨 있어요.” 아직 ‘흑백 요리사’도 ‘아파트’도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도 나오지 않은 때였다.
K컬처를 한국만의 문화로 생각하고 한국이 그것을 독점하려 하면 안 되는 단계에 이미 이르렀다는 얘기였다. 한국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지만 세계 사용자가 향유하며 재생산하는 국제적 문화가 됐으니 그 나름의 생명력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학창 시절 귀가 닳도록 들어 온 “어디서 이런 근본 없는” ”야, 거기 지방 방송 꺼" 같은 핀잔이 통했던 사고방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도달한 셈이 아닌가.
‘그런가’ 생각하며 한동안 잊고 있었던 조 교수의 말이 다시 생각난 것이 요즘이다. ‘케데헌’ 주제가가 그래미상까지 거머쥐었다. ‘삼국유사’의 비형랑을 연상케 하는 반인반귀(半人半鬼) 혼혈 주인공이 등장해 ‘벽을 부수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겠다’고 외친 ‘케데헌’은, 지금껏 한국 문화의 변방 정도로 여겨졌던 재미(在美) 한국계가 재해석한 글로벌 감수성의 K컬처였다. 그 코스모폴리탄의 시각에서 호작도와 한양도성과 목욕탕은 생각지도 못한 생명력을 얻었다.
K푸드를 소재로 최근 해외에서 등장한 ‘꿀떡 시리얼’이나 ‘회오리 오이무침’ ‘불닭볶음면 오믈렛’ ‘바나나커피우유’ 같은 변형 음식들은 우리 눈에는 영락없는 괴식(怪食)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조 교수가 말한 ‘재미있고 쿨하고 현대적이며 혼성체인 동시에 역동적’이라는 ‘K’의 의미에 꼭 들어맞는 콘셉트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면 이제 쌈 중간을 베어 물거나 양념닭강정을 반찬으로 먹는 외국인을 봐도 이해하려 해야 할지도 모른다.
-유석재 역사문화전문기자, 조선일보(26-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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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 권하는 사회
얼마 전 호주의 한 주류 매장 앞. 매장 유리 너머로 보이는 초록색 병 더미가 발걸음을 붙잡았다. 와인도 위스키도 아닌 소주로 추정되는 병이 박스 수십 개와 함께 매장 입구에 진열돼 있던 것이다. “한인 마트도 아닌데?” 하는 호기심은 곧 놀라움으로 바뀌었다. 정체는 바로 과일 소주였다. 수박, 망고, 복숭아, 요구르트.... 맛이 도저히 가늠이 안 되는 과일 소주들이 형형색색의 박스에 담겨 있었다. 언젠가 먹었던 과일 소주의 끝맛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작년 11월 호주의 한 주류 매장 입구에 과일 소주 박스가 쌓여 있다. 과일 소주는 작년 수출액 1억달러를 처음 넘기며, 일반 소주 수출액을 앞질렀다. / 이영관 기자
기자가 대학에 입학한 2015년, 당시 대학 신입생들에게 가장 유행했던 술은 과일 소주였다. 이걸 구하기 위해 각종 모임이나 학과 행사 때마다 전쟁을 치러야 했고, 먼저 그 술이 출시된 지역에 사는 가족과 지인 ‘찬스’로 이런 어려운 과제들을 해내곤 했다. 여기까진 괜찮았다. 문제는 유행이 과열됐다는 점. 거의 모든 주류 회사가 이 열풍에 뛰어들며 제품 숫자가 불과 1년 새 수십 개로 급증했고, 맛은 비슷하지만 이름만 다른 술들이 어느새 주류 매대를 점령하기에 이르렀다. 우리 사회가 유행을 권할수록, 유행은 더 빠르게 식어갔다.
이런 가정을 한번 해보고 싶다. 수많은 과일 소주가 우후죽순 생겨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최근 해외에선 과일 소주가 ‘원조’인 일반 소주보다 더 인기를 끌고 있다. 작년 수출액 1억달러를 처음 넘기며, 일반 소주 수출액(9600만달러)을 앞질렀다. 주류 업계에선 국내 주류 시장이 침체 중인 가운데, 과일 소주가 의외의 효자 역할을 하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단맛을 지닌 하이볼이나 과일주에 익숙한 외국인들이 과일 소주를 더 익숙해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금세 외면한 과일 소주의 경쟁력에 문화와 음식 전반에 걸친 K열풍이 도화선이 됐다는 말이 나온다.
변화는 점점 더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가속화된다. 소주 ‘새로’의 도수가 일주일 전부터 0.3도 낮아지며 15.7도가 됐다는 걸 아시는지. 2022년 새로가 처음 나올 때만 해도 ‘참이슬 후레쉬’(16.5도)보다 0.5%포인트 낮추며 파격적인 인하였지만, 이번엔 예년보다 잠잠한 듯하다. 주류 업체들이 술을 멀리하는 유행을 반영해 도미노식으로 도수를 인하하는 게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기 때문. 경쟁처럼 반복되는 도수 인하 속에 소주 본연의 정체성은 점점 희미해진다는 이야기도, 누군가에겐 관심 없거나 진부한 이야기처럼 된 지금이다.
매일 새로운 유행이 쏟아지고 있다. 내일의 유행이 어제의 유행을 덮는 일상이 반복된다. 이런 시대에도 쉽게 변하지 않는 무언가를 찾고 싶다는 건 욕심일 수 있다. 그러나 한 입 마셨을 때 잊고 있던 과거로 데려다 줄 수 있는 무언가를 언젠가 만나기를 소망한다. 참고로, 그날 밤 호주에선 과일 소주를 구매하지 않았다. 2만원 가까운 돈을 추억에 쓸 용기는 없었다.
-이영관 기자, 조선일보(26-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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