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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진리교의 광기] [고의로 몸 부딪치는 일본 '부츠카리族' 정체] ....

뚝섬 2026. 3. 19. 08:09

[옴진리교의 광기]

[고의로 몸 부딪치는 일본 '부츠카리族' 정체]

[日 옴 진리교 사건]

 

 

 

옴진리교의 광기 

 

1995년 ‘옴진리교 사린 가스 사건’의 주범인 옴진리교 교주 아사하라 쇼코(왼쪽 큰 사진)에 대한 사형이 집행됐다. 사건 발생 후 23년 4개월 만이다. 작은 사진은 아사하라와 함께 사린 가스 테러를 저지른 6명의 옴진리교 간부들. 이들도 같은 날 사형이 집행됐다.

 

1995년 3월 19일 일요일, 나는 도쿄 지하철역 안에 있다. 내일 오전 8시쯤 여기서 무슨 사건이 벌어질지는 그 끔찍한 일을 저지를 당사자들 말고는 모르고 있다. 세상의 안전과 평화라는 게 거의 다 이런 처지다. 언제든 망치가 때리는 테라코타처럼 박살이 날 것인데, 사람들은 그것이 반석 위에 고정돼 불변하리라 착각한다. ‘도쿄 지하철 사린 사건’은 교주 아사하라 쇼코의 명령을 따르는 옴진리교 교인(조직원)들이 1995년 3월 20일 도쿄 지하철 3개 노선 5개 차량에 사린(신경 독가스)을 살포해 14명이 사망하고(2020년 3월 사망한 한 여성이 피해자로 인정돼 추가됨) 6300여 명이 부상당한 참사를 이른다. 사린(sarin)의 독성은 청산가리의 500배에 달한다.

 

옴진리교는 여러 강력 범죄의 배후로 지목되고 있었다. 이에 궁지에 몰린 아사하라 쇼코는 테러를 감행해 세상의 시선과 경찰 수사망에 혼란을 주기로 결심한다. 그는 사람을 ‘영적 인간’과 ‘동물 인간’으로 나눴다. 옴진리교의 최종 목표는 동물 인간들을 절멸시켜 인간 종(種)을 재설정하는 거였다. 정부를 전복한 뒤 진리국(眞理國)이라는 유토피아를 건설하려 했다.

 

지하철에 사린을 살포한 교인들은 심장외과 전문의, 전기공학 전공자, 와세다대학 응용물리학과 수석 졸업 대학원생, 도쿄대학 응용물리학과 출신, 일본 상위권 연구실 박사과정자, 공학원(코우가쿠인)대학 인공지능 연구자 등이었다. 가장 안 그럴 것 같은 사람들이 미신에 빠진 셈이고, 그게 또한 인간이다.

 

물론 이 사건에도 9·11 테러 때처럼, 몇 가지 예측 경고가 있었다. 예컨대 소설과 영화에서는 모두의 비웃음을 견디고 끈질기게 위험을 알리며 악과 싸우는 주인공이 있다. 그러나 현실은 이 서사를 거부했다. 정작 우리가 가장 궁금해해야 할 것은, 왜 그 잘난 인간들이 저렇게 혐오스러운 작자에게 빠져들까 하는 점이다. 누구도 이런 사이비 교단적인 일과 자신은 아무런 상관이 없으리라 장담 못하는 것은, 이런 미친 짓이 주로 ‘정치’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응준 시인·소설가, 조선일보(26-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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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로 몸 부딪치는 일본 '부츠카리族' 정체

 

일본은 남에게 불편이나 폐를 끼치지(cause inconvenience or trouble) 않는 ‘메이와쿠(迷惑)’ 문화로 유명하다. ‘迷惑(미혹)’은 원래 불교 용어로 ‘번뇌(anguish)’를 뜻했으나, 타인에게 물리적·정신적 피해를 주는 ‘폐’로 의미가 확장됐다.

 

그런 일본에서 낯선 사람에게 고의로 몸을 부딪쳐(deliberately collide with strangers) 강한 충격을 가하는 이른바 부츠카리족(ぶつかり族)’의 소행이 빈발하고 있다. 과거엔 가해자(perpetrator)가 주로 중년 남성들(middle-aged men)이었으나 최근엔 젊은 여성들도 가담하고 있으며, 피해자는 어린아이까지 확대되고 있다.

 

‘부츠카리’는 ‘부딪치다’라는 동사 ‘ぶつかる’에서 온 말로, 횡단보도·지하철·쇼핑몰 등 번잡한 장소(crowded place)에서 어린이나 여성 등 체구가 작고 연약한 이들을 의도적으로 들이받는(intentionally slam into vulnerable individuals) 것을 말한다. 우발적 접촉(accidental contact)이 아니라 미리 작정한 악의적 폭력 행위(premeditated malicious act of violence)로, 항의나 반격 위험이 적은(be unlikely to protest or fight back) 피해자를 노려 자행한다. 치고 지나간(ram into them) 뒤엔 사과는커녕 무슨 일 있었냐는 듯 뒤돌아보지도 않는다.

 

이런 고의 충돌 악행(deliberate malevolent collision)이 불거진 건 2018년으로, 한 남성이 도쿄 시내에서 마주 오는 여성들을 잇달아 어깨로 들이받는 영상이 공개되면서 ‘부츠카리 오지상(おじさん·어깨빵 아저씨)’이라는 말이 생겨났다(give rise to the term). 이후 여성 가해자도 등장해 ‘부츠카리 오바상(おばさん·아줌마)’ 호칭이 나오면서 남녀를 아우르는 ‘부츠카리족’으로 통합됐다.

 

심리학자들은 단순한 ‘진상 짓’이 아니라 일본 문화 깊숙이 자리한 고독과 억눌린 분노(deep-seated loneliness and suppressed anger)의 사회적 발현이라고 진단한다. 직장 내 입지 약화, 가족 관계 소외감(sense of alienation), 사회적 존재 상실감 등을 토로하지 못하는 구조적 억압이 일그러진 방식으로 분출되는 병리 현상(pathological phenomenon)이라는 얘기다. 낯선 약자에 대한 의도적 충돌을 왜곡된 방식의 존재 과시(distorted way of asserting one’s existence), 일시적 권력을 행사하는 변태적 수단(a perverse means)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처벌 가능성이 적다는 인식도 작용한다. ‘우연을 가장한 충돌(collision disguised as an accident)’은 ‘고의성의 모호함’을 악용해(exploit the ‘ambiguity of intent’) 반복적인 ‘재범’으로 이어진다. 명백한 상해를 입히지 않는 한 입증할 수가 없어 폭행·상해죄를 적용하기(apply assault or injury charges) 어렵기 때문이다.

 

부츠카리족’은 관계를 갈망하면서도 관계에 실패하자 ‘충돌’이라는 역설적 행위로 ‘접촉’을 시도하는 이들이다. 자신보다 약해 보이는 상대에게 화풀이하는(vent their anger) 일종의 ‘비겁한 갑질(cowardly power-tripping)’이라는 비유도 있다.

 

-윤희영 에디터, 조선일보(26-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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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옴 진리교 사건

 

도쿄의 주부 와다 요시코는 1995년 3월 20일 아침 5시 30분에 일어나 토스트와 달걀 프라이, 커피를 준비했다. 평소 아침을 거르던 남편은 그날따라 아침을 먹고 싶어했다. 남편은 7시 30분 지하철 히비야선(線)을 타고 출근했다. 2시간쯤 지나 회사에서 전화가 왔다. "사고를 당한 것 같다."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가던 중 라디오의 사망자 명단에 남편 이름이 나왔다. 배 속에선 딸이 자라고 있었다.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집에서 음악을 들으며 책 정리를 하고 있었다. 구름 한 점 없이 포근한 아침이었다. 오전 10시쯤 친구 전화를 받았다. 도쿄 지하철에 독가스가 살포돼 피해자가 많이 발생했으니 시내에 나오지 말라는 전갈이었다. 일본 사회를 충격에 몰아넣은 '옴 진리교 사린 독가스 사건'이었다. 출근길 시민 6300여명이 열차와 역사(驛舍)에서 피 흘리며 쓰러졌다. 
 

 

▶사건에 가담한 옴 진리교 신자 중에는 명문 도쿄대와 교토대 출신, 의사·은행원 등 엘리트도 있었다. 이들은 좌선(坐禪)으로 공중부양 할 수 있다는 등 교주 아사하라의 황당무계한 말에 넘어가 옴 진리교에 발을 디뎠다고 했다. 하루키는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의문을 갖고 피해자 60명과 옴진리교 전·현 신자 8명을 인터뷰했다. 그는 이듬해 낸 책 '언더그라운드'에서 이 사건에 현대 일본 사회의 병리(病理) 현상이 담겨 있다고 보았다. 

 

▶옴 진리교 교주 아사하라 쇼코를 비롯해 사건 주범 7명에 대한 사형이 지난 6일 일본에서 집행됐다. 아사하라의 사형 집행은 2006년 9월 대법원 확정 후 11년 10개월 만이다. 옴진리교 사건 주범 대부분은 테러 직후 붙잡혔다. 하지만 아사하라 재판은 '사형 폐지론자'인 변호사의 지연 전술 탓에 1심 선고까지만 257차례 열렸다. 사건 발생부터 따지면 23년 4개월 만에 형이 집행된 것이다. 일본 언론들은 "정부가 최후의 도망자까지 모두 붙잡아 사건 전체가 명확히 정리되길 기다린 것"이라고 분석한다.

▶아사하라 등에 대한 사형 집행은 일본 사법제도의 집요함과 철저함을 보여주는 사례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 남편을 잃은 와다 요시코는 20년 전에 이미 "왜 이렇게 질질 끌며 죽이지 않는가" "솔직히 아사하라는 내 손으로 죽이고 싶다"고 했다. 흉악한 사건으로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피해자들은 대부분 와다 요시코 같은 심정일 것이다.
 

 

-김기철 논설위원, 조선일보(18-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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