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와 작별한 첫 올림픽, 밀라노의 '생존 실험'을 보라]
[금메달의 가격]
과거와 작별한 첫 올림픽, 밀라노의 '생존 실험'을 보라
외형 과시는 옛말, 저비용 개최에 AI로 분석한 경기 플랫폼으로 중계
즐기는 방식에 갖가지 실험… 혁신 없이 전북의 2036 대회 유치 어렵다

6일(현지시간)이탈리아 밀라노 산시로 스타디움에서 2026 밀라노 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개막식이 열리고 있다. 밀라노=장련성 기자
이탈리아 밀라노와 코르티나담페초에서 제25회 동계 올림픽의 막이 올랐다. 이번 올림픽은 화려하기만 한 축제가 아니다. 거대한 공룡이 되어 버린 올림픽이 지난 파리 하계 올림픽에 이어 멸종을 피하기 위해 감행하는 ‘생존 실험’이다. 올림픽은 “더 크게 짓고, 더 화려하게 보여주고, 더 넓게 퍼뜨리는” 방식으로 성장해 왔다. 그러나 이 방식은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 비용과 환경, 세대 변화, 콘텐츠로서 경쟁력 및 미디어 소비 방식이 동시에 충돌하면서 올림픽은 체질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IOC의 아젠다 2020 개혁안이 적용된 첫 동계 올림픽인 2026 밀라노 코르티나는 올림픽의 지속 가능 모델을 시험하는 테스트베드다.
밀라노가 선택한 첫 번째 전략은 기존 시설의 최대 활용이다. 전체 경기장의 약 93%를 기존 시설이나 임시 구조물로 활용한다. 도시들이 막대한 비용 부담과 사후 후유증 때문에 유치를 꺼리자 IOC가 기존 시설 활용을 요구한 결과다. 이전 동계 올림픽을 보면 소치는 500억달러, 베이징 400억달러, 그리고 평창은 약 130억달러가 소요됐다. 경기장 시설 이외에도 도로 등 사회 인프라 비용이 포함되어 있긴 하나 과다한 지출이었고, 투자한 시설의 사후 활용도 역시 저조했다. 막판에 아이스하키 아레나와 슬라이딩 센터의 건설이 추가로 결정되어 목표보다 많이 초과되긴 했으나 밀라노의 예산은 평창의 70% 미만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사상 최초로 두 개의 성화대를 운영하는 분산 개최가 시도된다. 밀라노와 코르티나는 400㎞ 떨어져 있고, 경기장과 선수촌은 6개 이상의 도시, 2만2000㎢ 규모 광역에서 운영된다. 늘어난 이동 거리와 탄소 배출 논란에 조직위는 저배출 교통수단과 바이오연료 도입을 시도하고, 스폰서인 우버와 협력하여 이동·수송의 복잡성을 해결한다. 한 개 도시에 집적하여 운영되는 체제가 아닌 만큼, 올림픽 운영의 성공 요인은 얼마나 효율적으로 연결하고 움직이느냐의 문제로 바뀌고 있다.

하드웨어 투자는 소박해지지만, 기술은 ‘운영 체제의 근간’이 된다. 판정은 AI와 컴퓨터 비전으로 재구성된다. 오메가와 인텔이 협력하여 피겨스케이팅에서는 점프 높이와 체공 시간, 착지 각도를 AI가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스키점프에서는 모션 센서가 도약 속도와 비행 각도를 초당 수천 번 측정한다. 인텔의 3DAT 기술은 선수 신체의 관절 20여 개를 추적하여 스피드스케이팅과 쇼트트랙의 주법을 3D로 재구성한다. 기술과 파생 데이터가 신뢰와 재미를 보강해 콘텐츠의 경쟁력을 높인다.
방송에서도 중계차, 장비, 인력의 현장 파견이 대폭 줄어든다. OBS(올림픽방송서비스)와 알리바바가 협력하여 전체 신호의 65% 이상을 클라우드 기반으로 처리하고, 초저지연 5G로 고화질 영상을 실시간으로 전 세계 편집실로 전송한다. 현장 중심에서 원격, 분산 제작 방식으로 전환함으로써 비용과 탄소 배출을 30% 이상 줄이면서도 더 많은 콘텐츠를 제작, 전송한다. 경기장 운영에는 디지털 트윈 기술이 적용되어 관중의 이동 동선과 비상 대피 경로를 가상 공간에서 미리 시뮬레이션하고, 봅슬레이 1인칭 시점과 같은 VR·AR 콘텐츠도 제공된다.
가장 큰 변화는 역시 ‘보는 방식’이다. 공중파를 통해 전 국민이 함께 보는 것이 올림픽 관람의 전형적 모습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올림픽은 플랫폼과 구독 모델로 재편되고 있다. 미국 NBC는 올림픽을 자사 스트리밍 플랫폼과 묶어 가입자를 끌어들이는 핵심 콘텐츠로 활용한다. 유럽은 공영방송을 통해 최소한의 무료 시청을 보장하면서도, 대부분의 경기는 유료 플랫폼이 담당하는 절충 모델을 선택했다.
한국의 상황도 실험적이다. 지상파와 중계권 판매가 결렬된 JTBC가 독점 중계한다. 대신 JTBC는 네이버와 협력해 생중계와 다시 보기, 숏폼 클립을 하나의 디지털 플랫폼 안에 모으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1월 27일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동계 올림픽이 열리는 걸 모르는 사람도 많은데 왜 그래요?”라고 질문을 던졌다. 대통령의 질문에 국무위원들이 맥락과 다른 오답을 내놓아 빈축을 샀다.
정답은 JTBC 독점 중계에 따른 절대 노출량의 감소이고, 올림픽이라는 콘텐츠의 매력도가 과거에 비해 떨어진 것이다. 과거라면 ‘보편적 시청권’을 주장하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을 공중파가 순순히 물러난 것은 올림픽이 필수가 아니게 된 현실을 보여준다. 이번 실험이 향후 한국에서 올림픽이라는 콘텐츠의 위상과 미래를 가늠하게 할 것이다.

<YONHAP PHOTO-2803> "하계올림픽은 전주에서" (전주=연합뉴스) 16일 전주월드컵경기장 일원에서 2036 전주 하계올림픽·페럴림픽 유치를 염원하는 '올림픽데이런 2025 in 전주'가 열리고 있다. 2025.11.16
한편 전북 전주가 2036년 하계 올림픽 유치를 준비 중이다. 올림픽이 왜 ‘짓지 않는 모델’과 분산 개최, 기술과 시스템으로 기존의 물량을 대체, 새로운 미디어 환경으로의 적응으로 방향을 틀고 있는지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과거 방식으로 접근한다면 유치조차 어려울 수 있다.
밀라노·코르티나 동계 올림픽은 거대하고 화려한 것이 더 이상 생존 조건이 아님을 보여준다. 재활용하고, 적게 투자하고, 소비 방식에 맞춰 미디어 플랫폼과 콘텐츠를 재구성한다. 분산된 경기장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 첨단 기술과 클라우드 기반 방송이 대규모 인력과 장비를 대체하여 안정적으로 작동할 것인지, 그리고 새로운 중계 구조가 얼마나 많은 시청자를 끌어들일 것인지가 앞으로 메가 스포츠 콘텐츠의 방향을 결정하게 될 것이다.
올림픽은 스포츠산업의 확대경이다. 가장 큰 시스템이 먼저 변하면, 그 변화는 다른 리그와 이벤트로 빠르게 확산된다. 밀라노-코르티나를 감상하며 선수들의 승부와 기록만큼이나 이 실험의 과정과 결과를 함께 지켜보는 일은 스포츠가 어떤 방향으로 진화, 발전하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흥미로운 관찰이 될 것이다.
-심찬구 스포티즌 대표, 조선일보(26-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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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메달의 가격
Shirley Bassey 'Goldfinger'(1964)

Shirley Bassey ‘Goldfinger’ (1964)
1964년 개봉한 ’007 골드핑거’는 역대 제임스 본드 시리즈 가운데 가장 상징적인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악당 오릭 골드핑거는 미국 연방정부의 금괴 보관소가 있는 켄터키주 포트 녹스의 금괴를 훔치는 대신 방사능으로 오염시켜 58년간 사용 불능으로 만들려 한다. 자신이 보유한 금의 가치를 천문학적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다. 한국인과 흑인, 그리고 여성에 대한 노골적인 비하가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만, 영화의 주제가를 부른 영국 웨일스 출신 가수 셜리 배시의 폭발적인 가창력은 금에 대한 인류의 집착을 완벽하게 표현했다. “골드핑거/ 그는 손대는 모든 것을 금으로 만드는 사나이/ 그는 오직 금만을 사랑한다네(Goldfinger/ He’s the man, the man with the Midas touch/ He loves only gold, only gold).”
2026년 이탈리아 밀라노와 코르티나 담페초에서 열리는 동계 올림픽의 금메달 한 개 제작 가격이 2300달러를 넘어섰다고 한다. 2024년 파리 올림픽 당시 900달러였던 것에 비하면 2.5배가 넘는다. 은메달은 더 극적이다. 파리 올림픽 대비 3배 이상 뛰었다. 트럼프의 관세 전쟁과 지정학적 불확실성 속에서 투자자들이 안전 자산을 찾아 귀금속으로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메달의 주재료인 구리 가격은 상대적으로 저렴해서 동메달 한 개의 금속 가치는 8000원 남짓이다. 금은에 비하면 엄청난 차이다.
1912년 스톡홀름 올림픽까지는 금메달을 순금 100%로 만들었다. 이후 IOC는 규정을 바꿨다. 현재 금메달은 순도 92.5% 이상의 은에 최소 6그램의 금을 도금한 것이어야 한다. 셜리 배시가 노래한 ‘골드핑거’는 금에 집착하는 악당의 냉혹함을 경고했지만, 동시에 금이 가진 영원한 매력을 증언한다. 하지만 8000원짜리 동메달이든 353만원짜리 도금 금메달이든, 피와 땀을 바친 모든 참가 선수들에게 그것은 진정한 ‘영광의 골드’다. 파괴될 수 없고, 영원히 빛나는. 마치 이 노래의 강렬한 브라스 사운드처럼.
-강헌 음악평론가, 조선일보(26-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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