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國史-文化]

[영조와 관우] [관포지교]

뚝섬 2026. 2. 24. 07:08

[영조와 관우]

[관포지교]

 

 

 

영조와 관우

 

왕자로 태어난다는 건 극단적인 행복이거나 불행이다. 왕이 되지 못한 왕자는 목숨을 부지하지 못하거나 정상적인 삶을 영위하기 어렵다. 조선 영조도 연잉군 시절 위태로운 삶을 살았다. 경종이 좀 더 건강했거나 왕자를 봤다면 목숨을 지키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불안을 이기지 못한 연잉군은 관우의 영(靈)을 모시는 관제묘(關帝廟) 중 하나인 동묘를 찾아 점을 치기도 했다. 관제묘는 임진왜란 때 명나라 병사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세워졌다. 관우는 중국에서 무장들의 우상이고, 출세의 신이며, 상인들의 수호신이었다. 모든 계층에서 추앙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 전후 조선에서도 삼국지가 유행하고, 임란 후 상업도 발전하면서 관제묘의 인기가 높아졌다.

연잉군은 더욱이 삼국지의 팬이었다. 왕이 된 뒤 관제묘 근처를 지날 때면 반드시 들러 참배했고, 묘의 상태와 심지어 관우상에 입혀 놓은 의복까지 신경 썼다. 신하들은 영조의 관제묘 참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관우는 장수이니 왕보다 격이 낮다. 영조가 살아 있는 관우를 만난다고 해도 관우가 영조에게 예우해야 하는데, 영조가 관제묘에 하례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영조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소설 ‘임진록’에 나오는 설정, 즉 명나라 만력제가 유비의 환생이고 선조는 장비의 환생이며, 관우가 신병을 이끌고 임진란에 참전해 조선군을 도왔다는 이야기까지 사실처럼 인용하며 관우 참배를 정당화했다.

그 노력이 통했는지 이후 왕들의 관제묘 참배나 관우 칭송, 소설과 역사의 혼용이 당연하게 이뤄졌다. 조선시대에 신하들은 왕이 해서는 안 되는 행동, 명분에 어긋나는 행동에는 결사적으로 반대했다. 그런데도 왕이 우기니 버젓이 드라마가 역사가 됐다. 이래서 권력자는 늘 멀리 보고 행동을 삼갈 줄 알아야 한다. ‘강하게 나가니 되더라’는 생각처럼 위험한 착각은 없다.

-임용한 역사학자, 동아일보(26-02-24)-

______________

 

 

관포지교

 

어려운 순간에도 변치않는 믿음, 돈독한 우정 뜻하죠

성씨 관(管) 성씨 포(鮑) 어조사 지(之) 사귈 교(交)

 

2026년 밀라노 코르티나 동계 올림픽이 막을 내렸습니다. 스노보드 여자 하프파이프에서 금메달을 딴 최가온(18)과 은메달을 딴 클로이 김(26·미국)의 돈독한 관계가 화제가 됐습니다. 클로이 김은 자신의 최연소 기록을 갈아치우며 무섭게 성장하는 최가온에게 노하우를 전수하며 응원했다고 합니다. 최가온도 롤모델이었던 클로이 김을 든든한 정신적 지주로 삼았죠. 둘은 경쟁하면서 성장했고, 서로를 지지했습니다. 나이 차이를 뛰어넘어 진정한 우정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요?

 

우정을 나타내는 대표적 고사성어는 ‘관포지교’입니다. 관중(管仲)과 포숙(鮑叔)의 사귐이라는 뜻으로, 우정이 돈독한 친구 관계를 가리키지요. 관중과 포숙은 중국 춘추 시대 제(齊)나라 사람입니다. 어릴 적부터 친구였던 두 사람은 성인이 된 후 같이 장사를 하게 됐습니다. 장사 수익이 나면 똑같이 나눠야 할 텐데, 관중이 항상 더 많이 가져갔습니다. 관중은 관직에 세 번 나갔다가 세 번 모두 군주에게 쫓겨났고, 전쟁에 세 번 출정했다가 세 번 모두 도망치기도 했습니다. 이런 행동은 친구라도 받아들이기가 어렵겠지요.

 

하지만 포숙은 관중에게 왜 그러냐고 한 번도 묻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관중이 그 시절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포숙과 동업할 때 내가 더 많은 돈을 가져갔지만 포숙이 나를 탐욕스럽다 여기지 않은 것은 내가 가난한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내가 군주에게 쫓겨났을 때 포숙이 나를 어리석다 여기지 않은 것은 내가 아직 때를 만나지 못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전쟁에서 도망쳤을 때 포숙이 나를 비겁하다 여기지 않은 것은 내게 늙으신 어머님이 계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포숙은 관중의 이런 처지를 알고 있었기에 제 몫을 더 챙기는 욕심, 군주에게 쫓겨난 무능력, 전쟁에서 도망친 비겁함을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관중도 포숙이 자신을 오해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자신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굳이 변명하지 않았던 것이죠.

 

관중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를 낳아준 것은 부모님이지만, 나를 알아준 것은 포숙이다.” 관중의 유명한 이 말은 포숙에 대한 완전한 신뢰를 담고 있습니다. 서로 신뢰가 있었기에 두 사람은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일을 겪으면서도 변치 않는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관중은 자신을 끝까지 믿어준 포숙의 지지에 힘입어 재능을 펼쳐서 결국 제나라의 재상이 됐습니다. 포숙도 제나라의 대부(고위 관료)가 됐고, 자손들도 10대에 걸쳐 대부의 지위를 유지했다고 해요. 관포지교는 참된 우정의 가치를 보여주는 성어입니다.

 

-채미현 박사·'상식 밖의 고사성어' 저자, 조선일보(26-02-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