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지경 농어촌기본소득]
[전 부치기는 계속된다]
요지경 농어촌기본소득
국민 0.6%에만 돈 주는 정책
전국적 공돈 살포 경쟁 유발해
세금 1조원 들여 묻지 마 실험
정책 효과나 분석할 수 있겠나
전북 무주군이 다음 달 전체 군민에게 80만원씩 지급한다. 지방세를 포함해 연간 자체 수입이 500억원 정도인 무주가 180억원을 한방에 털어 넣는 사업이다. 소득과 자산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다 준다. 무주 안에서 석 달 안에 다 써야 하는 상품권으로 주는데, 군은 “즉각적인 지역 경제 부양 효과가 기대된다”고 설명한다. 글쎄다, 즉각 휘발된다는 말과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재정 자립도 전국 최하위권인 무주가 80만원 지급을 강행한 것은 이재명 정부의 공약 사업인 농어촌 기본소득 대상에서 탈락했기 때문이다. 전국 군 10곳을 정해 모든 주민에게 월 15만원씩 2년간 지역 상품권을 나눠주는 사업지에 선정되기 위해, 무주는 군민 1000여 명이 체육관에 모여 유치 결의 대회까지 열면서 뛰었지만 탈락했다. 그러자 자체 예산으로 일회성 돈을 뿌리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무주만 그런 것이 아니다. 정부의 기본소득 실험은 ‘옆 동네는 준다던데 왜 우리 동네는 못 받냐’는 박탈감을 건드렸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곤두선 지자체장의 생존 본능도 함께 건드렸다. 예를 들어 충북 옥천이 기본소득 대상지로 선정되자 인근 보은·영동·괴산군은 일제히 인당 50만~60만원씩 지급 계획을 내놓았다. 모두 재정자립도 20%를 넘지 못하는 지역이라 다른 재정 항목에서 끌어오거나 재난 때나 동원해야 할 비상금을 꺼내 썼다.
고육책인 면은 있다. 기본소득 대상지로 선정된 후 전남 신안군 인구는 3000명 늘었다. 갑자기 신안이 살기 좋아졌거나 큰 공장이 들어서지도 않았는데, 넉 달 만에 주민이 7.6% 증가했다. 외지에 나가 살던 대학생과 청년, 신안에 비빌 친척 집이 있는 사람들, 그간 사정상 떨어져 주민등록했던 이들이 신안군민이 되겠다고 몰렸다. 그 넉 달 동안 신안 옆 목포 인구는 3300명 줄었다. 월 15만원씩 받는 충남 청양 인구는 이 기간 900명 늘었고, 인근 공주는 700명 줄었다. 마찬가지로 경북 영양 인구는 800명 플러스, 안동은 1200명 마이너스다. 제로섬 게임이다.
농어촌 기본소득은 이번이 첫 실험이 아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경기도지사이던 시절, 연천군 청산면 한 곳을 찍어 실험을 했다. 5년간 한 사람당 월 15만원씩 주는 비슷한 방식이다. 시행 초기 청산면 인구는 몇 달 만에 10% 가까이 뛰었다. 반짝 급증했던 인구는 꾸준히 빠져나가 지금은 다시 시행 전보다 1.4% 줄었다. 같은 기간 연천군 전체 인구가 0.6% 줄었는데, 청산면의 감소 폭이 더 크다. 이런 청산면 사업의 효과를 제대로 따져 보기도 전에 지사 이재명은 대통령이 됐고, 경기도 사업은 국가 사업으로 갑자기 체급을 키웠다.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왼쪽)이 26일 전북 장수군을 찾아 농어촌 기본소득 지원금 수령자에게 지역상품권을 전달한 뒤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농식품부 제공
세금 1조2000억원을 들여 전 국민 중 0.6%가 혜택을 보는 이 사업은 2년간 계속된다. 돈 받은 주민에게 “어때요, 기본소득이 효과가 있던가요”라고 물어보면 ‘답정너’다. 공돈 받았으니 별점 다섯 개 후하게 줄 것이다. 받은 상품권을 그 지역에서 써야 하니 기본소득이 없을 때보다 지역 경제가 나아지긴 했다는 결과가 도출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비교군 설정, 지급 방식 차별화 같은 정교한 정책 설계가 없어, 투입된 세금만큼의 효과가 있는지 제대로 따져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 대통령은 당 대표 시절인 작년 이맘때 산불 이재민들이 모여 있던 안동체육관을 찾은 적이 있다. 그는 집을 잃은 할머니의 하소연을 들은 뒤 걱정하지 말라며 “나라에 돈 많아요”라고 했다. 정말 나라에 돈이 많다고 생각해 지역을 볼모로 서툰 실험을 거듭하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아니길 바란다.
-김정훈 기자, 조선일보(26-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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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부치기는 계속된다

설 연휴를 이틀 앞둔 19일 서울의 한 전집이 명절 준비로 분주한 모습이다. /뉴스1
어릴 적 설날 풍경을 그려보면 그저 모르는 얼굴들이 우리 집 마당에 빽빽하게 들어차 절을 하던 장면이 떠오른다. 할아버지 방에서 차례를 지냈는데 방 안에 사람이 다 들어가지 못해 마당에까지 흘러넘쳤다. 나는 우리 집에 오는 그 먼 친척뻘 되는 아저씨들이 정확하게 누군지 몰랐다. 그 사이에 끼어 있던 먼 친척 동생들도 누구의 차례상인지도 모른 채 절을 했을 것이다.
내가 살던 동네는 일종의 집성촌이었다. 주로 이가(李家)들이 모여 살았는데, ‘아빠의 작은아버지의 육촌 동생의 둘째 아들네’ 같은 고리로 연결돼 있는 식이었다. 이 동네에 아파트가 들어선다는 소문이 몇 차례 돈 뒤 기대를 접은 이들은 하나둘 이사를 떠났다. 그사이 누군가는 어떤 이유에선지 도망치듯 사라졌고 몇몇 어르신은 찾아오지 않는 자식들을 그리워하며 세상을 떠났다. 아무튼 지금은 몇 집만 남아 있다.
사람은 떠나갔는데 우리 집 차례상은 수십 년째 차려지고 있다. 엄마는 “이가(李家)에 시집온 뒤 단 한 해도 거르지 않았다”고 했다. 자녀의 수능, 해외여행, 이사 등 각자의 이유로 매년 집을 찾는 사람은 줄었지만 엄마는 늘 그 자리에 있었다. 마당으로 흘러넘친 아저씨들이 절을 하고 있을 때에도 엄마는 친척들이 한 달을 먹고도 남을 양의 떡국을 끓이고 또 끓였다. “이골이 난다”는 엄마에게 이제는 차례를 그만둬버리라고 여러 번 말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늘 같다. “네 아빠 앓아 눕는다.”
올해도 엄마와 나란히 앉아서 전을 부쳤다. 아빠 들으란 듯 “서울에서는 차례 지내는 집이 거의 없다. 우리도 이제 사 먹을 때가 됐다”고 했다. 아빠는 못 들은 척을 하며 밤가위로 숭겅숭겅 밤을 깎았다. 엄마는 “아무리 그래도 사서 먹는 건 맛이 없지 않으냐”며 “다음 설부턴 양을 반으로 줄여보겠다”고 했다. 아빠 핑계를 대고 있지만 정작 뒤집개를 놓지 못하고 있는 건 엄마 자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와 아빠는 어쩌면 기억 속에 있는 설날 풍경이 그리워 차례상을 붙잡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부모님은 어느새 할머니, 할아버지 나이가 됐고 나는 그 시절 엄마, 아빠의 나이가 됐다. 마당을 채우던 이름 모를 얼굴들은 사라지고 지금은 재롱 피우는 조카들이 부모님을 지킨다. 나 역시 언젠가는 이 부엌의 기름 냄새와 함께 엄마와 전을 부치는 장면을 몽글몽글한 추억으로 떠올리게 될 것이다.
요즘엔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가 명절을 각자 보내는 게 트렌드라지만 그럼에도 설은 여전히 모두에게 따뜻한 가족의 명절로 남아 있길 바란다. 전을 부치지 않더라도, 한 달 치 떡국을 끓이지 않더라도 한자리에 모여 음식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내년 설에도 나는 고향에 내려가 전을 부칠 것 같다. 이씨도 아니면서 이가네 차례상을 수십 년째 차리고 있는 엄마와 마주 앉아 아빠 흉을 볼 테지만. 다음에는 차례 그만둬버리라는 말 대신 “사실 엄마 전이 맛있긴 하다”고, “그간 너무 고생했다”고 말해줄 것이다.
-이해인 기자, 조선일보(26-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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