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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사태와 한반도] [ ... 호메이니의 혁명은 왜 변질됐나] ....

뚝섬 2026. 3. 3. 10:23

[이란 사태와 한반도]

[총칼 아닌 '말'로 잡은 권력... 호메이니의 혁명은 왜 변질됐나]

[유럽 자강론]

 

 

 

이란 사태와 한반도

 

[김대중 칼럼]

우크라가 美와 동맹이고 미군이 주둔했더라면 러시아 침공은 없었다
이란 사태를 본 북한은 핵 무력화에 박차 가할 것.. 한반도 문제 더 미궁으로
 

1일 이란 테헤란에서 미사일 공격으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지난 달 28일 이란을 공격해 이란 최고 지도자와 군 수뇌부를 제거하자 이란 당국은 이스라엘과 걸프 전역의 미군 기지를 공격하며 보복에 나섰다./ AFP 연합뉴스

 

불과 두 달 전 베네수엘라의 마두로 대통령을 기습 체포해 미국 법정에 세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엊그제 전격적으로 이란을 공습, 최고 지도자 하메네이를 폭살함으로써 미국에 대립각을 세워 온 외국 수장(首長) 2명을 연달아 끝장내는 저돌성을 보였다. 트럼프 반대자들은 이런 트럼프를 세기의 무법자로 혹평하고 있지만 이제 세계의 반미 성향(反美性向) 독재자들은 벌벌 떨면서 문단속, 몸조심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트럼프가 이런 행동을 감행하면서 내세우는 명분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은, 하나는 미국인의 생명 보호이고 다른 하나는 그 나라 인민의 독재자로부터의 해방이다. 한마디로 ‘미국인을 건드리지 마라’, 그리고 ‘자국민을 억압하지 마라’는 것이다. 방식도 특이하다. 미국이 그 나라를 점령해서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독재자만을 제거하고 주권은 돌려주는 식이다.

 

그런데 트럼프의 이런 방식은 우크라이나에서는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오늘날 우크라이나의 종전 협상이 지지부진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만일 미국이 우크라이나와 동맹 관계에 있고 우크라이나에 미군이 주둔하고 있었다면 애당초 러시아의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먹으려고 호시탐탐하지 못했을 것이고 종전 협상이 시작됐어도 지금 같은 상황으로 끌려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것을 한반도에 비춰보자. 6·25 전쟁이 어떻게 시작됐고 70여 년이 지나는 동안 남북의 상황이 많이 달라졌어도, 미국과 동맹 조약이 있고 미군이 주둔하는 상황은 오늘의 한반도 평화를 이끌고 있는 결정적 동력(動力)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미국과의 연계다. 바로 미국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에 그런 인식에 금이 가는 상황이 일어나고 있다. 반미(反美) 의식에 오래 젖어 있던 사람들이 정권을 잡고 있다. 북한 정권에 대한 호의적 접근, 반일(反日)·반미 운동에 오래 몸담았던 운동권 사고(思考), 친중 사고에 젖어 있는 대륙파의 득세, 그리고 미국의 강대국 행세 등이 겹치면서 한·미 관계에 피로감이 나타나고 있다. 과시욕이 남달리 강한 트럼프는 기회 있을 때마다 ‘김정은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자신이 나서면 북한 제압이 문제없고 남북 관계가 호전될 것처럼 떠벌려, 좌파 세력들로서는 그것을 미국의 ‘친북 노선’인 양 착각하는 경향이 있어 왔다. 그리고 지금이 남북 간의 평화 정착 기회인 양 선전까지 하고 있다. 여기에 북한이 가세하고 있다. 지난주 북한은 9차 노동당 대회를 통해 무력(武力) 자랑, 한국 경멸, 미국과의 공존을 선전하며 한껏 세(勢)를 불리는 양상이다. 한·미 간의 군사 공조를 약화시키는 효과를 노린 듯하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이란 사태가 벌어진 것은 북한은 물론 세계의 여러 나라, 특히 반미 성향의 독재 국가들에 놀라운 ‘예상 밖의 일’일 것이다. 심지어 미국 내에서도 이란이 직접 미국을 도발하지 않았는데도 공격한 것은 미국인들의 평화 정신을 배신한 것이다, 이스라엘을 위한 대리 전쟁이다, 미국 의회의 전쟁 법안을 위반했다 등의 비판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의 이란 폭격을 지지하고 환영하는 나라는 바로 피격을 당한 그 나라, 즉 이란 사람들이란 사실에 우리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트럼프의 이란 폭격에서 북한은 어떤 메시지를 읽었을까? 이번 이란 사태는 북한으로 하여금 핵 무력화에 더욱 박차를 가하는 구실을 주고 있을 것이다. 이란에 완성된 핵무기가 있었다면 미국이 저렇게 쉽게 이란을 공략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데만 집중할 것인가, 아니면 핵무기에 너무 심취해 미국을 얕보는 처사를 삼갈 것인가 짐작할 따름이다.

 

한국에 주는 메시지도 있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미국과의 우호적 관계를 유지해 나가는 것이 현명하다는 현실 인식이다. 우리로서는 세계 최강의 나라를 곁에 두고 있는 것보다 안전한 길은 없다. 그것이 우크라이나 사태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반면 우리가 핵으로 가는 길은 그리 순탄치 않아 보인다. 한국의 좌파 정부가 핵 문제에 의지가 없고 미국이 핵 확산을 더욱 경계한다면 우리는 미국의 핵우산에만 더 매달릴 수밖에 없는 핵 도돌이표에 봉착할 것이다. 이번 이란 사태를 보면서 한반도 문제는 더욱 미궁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다. 북한은 더 핵에 집착하고 우리는 손발이 묶인 채 한·미 관계는 시험대에 접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김대중 칼럼니스트, 조선일보(26-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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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칼 아닌 '말'로 잡은 권력... 호메이니의 혁명은 왜 변질됐나

 

"판사와 검찰의 목을 쳐라" 1979년 이란 매혹시킨 '혁명의 말'
집권 후 富 독점한 이권 카르텔, 악마라 칭한 美로 자식들 유학
 

 

이란은 쉽게 정복당하지 않는 땅이다. 험준한 산세와 좁은 해협이 요새와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첨단 군사 기술은 순식간에 심장부를 무너뜨렸다. 뉴스는 실시간으로 최고 지도자의 생사를 쫓느라 분주했지만, 포화 너머로 나는 한 노인의 그림자를 보았다. 하메네이 이전에 이란을 통치했던 혁명의 아버지, 호메이니(1902~1989)다.

 

흔히 철권(鐵拳) 통치는 총칼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그러나 성직자였던 호메이니가 정권을 잡기까지 서사는 ‘말의 승리’에 가깝다. 1979년 이란으로 가보자. 시민들은 피 흘린 시위 끝에 2500년 왕조를 몰아냈다. 계엄령이 선포됐지만 민심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왕정이 종말을 고했으나, 온갖 세력이 난립했다. 그런데 15년이나 조국 밖을 떠돌던 망명자, 호메이니는 어떻게 이 혼란을 정리한 것일까. 이란인들은 팔레비 왕조에 진저리 난 지 오래였다. 급진적인 서구화는 정체성을 짓밟았고, 상류층이 개방의 과실을 독식했다. 미니스커트 입은 여성들 사진이 이제야 회자되지만, 실상은 비밀경찰 ‘사바크’가 일상을 짓눌렀다. 바로 그 틈을 타 파리발(發) 한 남자의 ‘말’이 이란을 매혹시켰다.

 

“부를 몰수해 나눠주겠다. 왕족의 배를 가르면 국민의 피가 쏟아질 것이다.”

“물과 전기를 무료로 주겠다. 경제적 안락함은 권리다.”

“판사와 검찰의 목을 쳐야 한다. 국왕의 사냥개들이다.”

“독 묻은 언론의 펜을 꺾고 혀를 자르는 것이 혁명의 완성이다.”

 

훗날 혁명의 선봉에 선 바자르(상인)들을 중심으로 카세트테이프가 돌았다. 집 안 깊숙한 곳에서, 혹은 삼삼오오 모여 숨죽인 채 들었다. 테이프 속 메시지는 선명했다. 지직거리는 음질도 장애가 되지 않았다. 사이다 같은 일갈은 시민 의식을 깨웠다. 사법기관과 미디어가 왕조와 한통속이었으니, ‘논객’ 호메이니의 꾸짖음이 곧 정의가 되었다.

 

“권력에는 관심 없다. 승리 후에는 기도하며 살 것이다.”

 

사심 없는 영적 지도자! 이 선언은 압권이었다. 15년의 긴 망명 생활은 그를 ‘박해받는 고결한 지식인’으로 포장해 주었다. 내부 사정에 어두울 거란 우려조차 ‘세속에 물들지 않은 신성함’으로 승화되었다. 그렇게 ‘총칼 한 번 휘두르지 않고’ 호메이니는 ‘말’로 내부를 움직였다. 엄청난 환호 속에서 테헤란 공항에 내리던 장면은, 혁명의 화룡점정이었다. 

 

이란 총선이 실시된 2020년 악바르 하셰미 라프산자니 전 대통령이 아야톨라 호메이니 전 최고지도자의 대형 초상화가 걸린 테헤란의 한 투표소에서 투표를 하고 있다. /AP 뉴시스

 

호메이니의 화술은 흥미롭다. 글자로 적은 단어들은 서슬 퍼렇지만, 실제 음성은 매끄러운 어조와 거리가 멀다. 선동하는 고음 대신 낮고 담담하며 투박하다. 주어와 서술어가 뒤섞이는 불완전함조차 ‘우리와 같은 고통을 겪는 이의 진심’처럼 들리는 효과를 냈다. 굳이 잘 보이려 애쓰지 않는 태도는 신비로운 권위를 주었다. 이는 유창하고 세련된 팔레비 국왕의 엘리트 화법과 극명하게 대비되며 빛을 발했다. 국민이 고통받는 시기, 정치인의 지나친 유창함이 도리어 가식적으로 들리는 것은 어느 사회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전략적 모호성’도 득이 됐다. 정치 언어는 시대의 욕망을 투사하는 빈 캔버스 같아야 자기 편을 늘리는 법이다. 호메이니는 헌법 체계 같은 구체성 대신 ‘신의 뜻’이라는 거대 담론을 내세워 여러 목소리를 포섭했다. 막연한 약속 위에 사람들은 각자만의 유토피아를 그렸다. 자유주의자는 민주주의를, 빈민층은 무상 복지를 꿈꿨다. ‘지리의 힘’의 저자 팀 마셜은 이를 가리켜 “광신주의자의 말을 제 입맛대로 오해하는 혁명기의 흔한 실수”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왕조를 몰아낼 때 힘을 보탠 아나키스트와 좌파 세력 등이 가장 먼저 숙청당했다.

 

성스러운 명분을 내세웠던 혁명수비대는 어느덧 국가 부(富)를 독점한 이권 카르텔이 되었다. 서구를 ‘대악마’라 저주하면서 정작 제 자식들에겐 악마의 땅 시민권을 쥐어주고 미국·유럽 유학을 보냈다. 특히 금수저들의 ‘말’이 공분을 샀다. 호화 요트 위에서 “능력 없으면 죽으라”며 조롱하거나, 특혜 논란이 일자 “부모 도움 없는 내 실력”이라 강변했다. 47년 전 이란을 매혹시켰던 혁명의 말은, 선민의식이라는 독(毒)에 오염되고 말았다.

 

물론 지금 이란인들의 심경을 하나로 재단하기는 어렵다. 독재자가 죽었다며 축포를 터뜨리기도 하지만, 조국에 떨어진 미사일은 새로운 시련을 예고하고 있다. 1979년 카세트 테이프 속 목소리에 희망을 건 이란인들, 그들이 꿈꾼 2026년이 이런 모습은 아니었을 것이다. 권력자는 ‘말’로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얻으며, 그 말의 유효기간은 언제까지인가. 테헤란에 떨어진 포화가 던진 질문이 묵직하다. 

 

이란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가 지난 1월 이맘 루홀라 호메이니 묘소를 참배했다며 공개한 사진. /X(옛 트위터)

 

-조수빈 방송인·강남대 특임교수, 조선일보(26-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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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자강론

 

미국의 그린란드 합병론을 계기로 유럽의 주요 강국들이 다 같이 미국을 비난하고 유럽 자강론을 부르짖게 됐다. 심지어 미국이 강대국의 지위를 잃어서 저런 난동을 부린다는 식의 말까지 했다. 독일 총리가 반대하긴 했지만 내부에선 자체 핵무장에 대한 논의가 제기됐다. 일본도 재무장을 향해 차근차근 나아가고 있다. 세계가 힘의 대결 구도로 재편되고 있다.

국제 정치의 작동 원리는 힘이다. 국제 조약은 문서가 아니라 군대를 통해 보장된다. 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적도 없다. 상식처럼 통하는 이 명언들은 모두 유럽의 경험을 통해 유럽인의 입에서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반세기 동안 유럽은 이를 잊고 살았다. 아니, 잊었다기보다는 잊은 척했거나 순진한 평화주의를 내세우고 반사이익을 누려 왔다. 2월에 열린 세계 최대 규모 안보포럼 뮌헨안보회의(MSC)는 유럽의 미국 규탄장처럼 됐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이에 대한 반성도 보인다.

지금 유럽은 겉으로는 미국의 배신과 타락을 소리 높여 비판하지만, 진정한 적은 그들 자신이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는 미국 의존을 줄이고, 유럽의 군대와 연합을 실전성 있는 체제로 바꿔야 한다. 군사비 확충, 징병제 재도입 등은 국민의 저항을 이겨내야 한다. 미국은 이를 위한 동네북이 돼주고 있다.

 

미국의 폭언과 횡포는 유럽 자강론과 재무장의 성공을 위한 계산된 자극일 수도 있다. 그러나 권력은 마약과 같은 속성이 있다. 힘으로 해결하다 보면 힘을 남용하게 되는 것이 역사의 철칙이다. 요즘 미국을 보면 중독 증세도 보이는 듯하다. 유럽도 자강에 성공하면 어찌 될지 모른다. 약하면 피해자가 되고, 강해지면 가해자가 된다.

이것만은 분명하다. 세계는 현실주의가 이상주의를 대체하는 주기에 접어들었다. 19세기 말 조선은 이러한 흐름에 반대로 행동하다가 비극을 맞았다.

 

-임용한 역사학자, 동아일보(26-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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