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오나시스']
[‘페트로 달러’ vs ‘페트로 위안’]
'제2의 오나시스'

해운업계를 주름잡던 그리스 선박왕 오나시스는 1953년 세계 최대 규모인 4만5000t급 대형 유조선 ‘티나 오나시스’를 건조했다. 당시 주력이던 T2 유조선(1만6500t급)의 거의 3배인 이 선박에 ‘수퍼 탱커(super tanker)’란 이름이 붙었다. 요즘은 30만t급 VLCC(초대형 유조선) 정도 돼야 수퍼 탱커라고 한다.
▶문제는 이 배가 너무 크고 무거워서 수에즈 운하를 통과할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운하 수심이 이 배를 감당하지 못했다. 결국 이 배는 아프리카 최남단 희망봉을 도는 먼 항로를 택해야 했다. 중동에서 런던까지 운하를 통과하면 20일 걸렸지만, 희망봉을 돌면 35일이 걸렸다. 모두가 미친 짓이라 했지만 오나시스는 더 큰 유조선을 계속 주문했다. “전후(戰後) 재건에 석유는 필수적이고 배가 부족해질 것”이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그의 베팅은 1956년 나세르 이집트 대통령의 수에즈 운하 국유화 선언으로 극적인 반전을 맞았다. 운하 운영권을 뺏긴 영국·프랑스의 공격으로 2차 중동전쟁이 발발해 수에즈 운하 통행이 5개월간 봉쇄됐다. 용선료는 몇십 배로 폭등했고, 희망봉 항로를 독점했던 오나시스가 막대한 돈을 벌었다.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한국의 3위 해운사인 장금상선이 ‘최대 승자’ 중 하나로 부상했다고 외신이 보도했다. 장금상선은 1월 말 최소 6척의 초대형 유조선을 비어 있는 상태로 페르시아만으로 이동시켰는데, 이란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자 원유 수출 길이 막힌 석유 회사들이 빈 유조선을 저장 공간으로 쓰기 위해 몰리고 있다는 것이다. 하루 용선료가 50만달러로 1년 새 10배 급등했다. 이 가격이 6개월만 유지되면 배 사는 데 들어간 비용을 회수할 수 있다고 한다. 장금상선을 경영하는 정태순 회장이 이란 전쟁이 일어날 것으로 예측한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글로벌 석유 회사들의 요청이 쇄도하며 ‘제2의 오나시스’로 불리는 뉴스 메이커가 됐다.
▶예측은 과학이기도 하지만 시운(時運)이기도 하다. 1990년대 후반 월가 펀드매니저들이 닷컴버블 붕괴를 예상하고 주가 하락에 베팅했다가 큰 손해를 봤다. 닷컴버블은 이들이 손 털고 나간 2000년부터 붕괴됐다. 과학적 예측은 정확했지만 시운이 맞지 않았다. 수에즈 운하 봉쇄 소식을 들은 오나시스의 첫마디는 ‘신의 선물’이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다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는 진인사대천명이란 말을 여기에 쓸 수 있는지 모르겠다.
-나지홍 논설위원, 조선일보(26-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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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트로 달러’ vs ‘페트로 위안’

미국의 글로벌 패권을 지탱하는 두 축은 ‘군사력’과 ‘달러’다. 그리고 이 둘이 맞물리는 지점에 ‘페트로(Petro) 달러’가 있다. 1974년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협정으로 출범한 페트로 달러 체제에선 산유국은 달러로 석유를 거래하고 그 수익을 미 국채에 투자하고, 미국이 반대급부로 안보를 보장해 준다. 덕분에 미국은 기축통화국의 특권을 누리며 막대한 재정·무역 적자 속에서도 달러를 마음껏 찍어낼 수 있었다.
▷CNN은 13일 “이란 정부가 원유를 중국 위안화로 거래하는 유조선만 호르무즈 해협 통과를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중국은 ‘불량 국가’로 찍혀 미국 주도 금융결제망에서 퇴출당한 이란의 원유 90%를 사들이는 ‘큰손’이다. 이란으로선 봉쇄 중인 호르무즈 해협을 선별적으로 열어 중국과의 에너지 협력을 확대하고, 페트로 달러 시스템에도 균열을 내겠다는 계산일 것이다. 실제로 이란은 지금도 중국 유조선에 대해선 일부 통행을 허용하고 있다.
▷이란 혁명수비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20일 가까이 이어지면서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높은 유럽과 아시아 국가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프랑스, 이탈리아, 인도, 튀르키예 등은 자국 선박 통행을 위해 이란과의 개별 협의에 나섰다. 이들 국가가 위안화 결제를 받아들이면 세계 원유의 20%가 지나는 길목이 위안화 석유 거래의 전초기지로 탈바꿈하게 된다. 2018년경부터 ‘페트로 위안’을 추진해 온 중국 정부로선 현재 5∼10%에 머무는 위안화 석유 결제 비율을 크게 끌어올릴 기회다.
▷반면 페트로 위안의 부상은 미국 입장에선 악몽에 가깝다. 위안화 거래가 확산되면 산유국의 미국 국채 수요가 줄어 금리가 오르고 막대한 부채에 대한 이자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 달러 가치 하락과 함께 기축통화국 지위가 흔들릴 가능성도 있다. 미국이 과거 페트로 달러에 대한 도전을 용납하지 않았던 것도 이 때문이다. 이라크는 2000년 원유 결제 통화를 달러에서 유로로 바꿨지만, 미국은 이라크전 직후인 2003년 다시 달러로 되돌렸다. 최근 러시아, 인도 등이 위안화 거래를 확대하고 있지만 여전히 원유 결제의 80%가 달러화인 것도 미국의 강력한 의지 때문이다.
▷중국은 “군함을 보내라”는 미국의 압박에도, “페트로 위안을 돕겠다”는 이란의 구애에도 신중하다. “미국의 이란 폭격에 반대한다”는 원론적 입장만 밝히는 수준이다.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으로서 에너지 수급 안정이 최우선인 탓일 것이다. 그렇다고 “위안화를 기축통화로 만들겠다”는 시진핑 주석의 야심까지 사라진 건 아닐 터다. 에너지와 금융, 지정학적 이해까지 뒤엉킨 호르무즈 대치가 달러화와 위안화의 위상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우리도 주의 깊게 지켜볼 필요가 있겠다.
-장원재 논설위원, 동아일보(26-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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