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듣고 탈북 결심", 끊어진 대북 방송 재개해야]
[그 이름은 배려가 아니다]
"라디오 듣고 탈북 결심", 끊어진 대북 방송 재개해야

지난달 29일 미 연방의회 하원회관에서 영 김 의원 주최로 열린 토론회에서 증언한 탈북민들이 김의원 등과 함께 했다. /영 김 의원실
미국 하원의원 토론회에서 탈북민 양일철 씨가 “2018~2019년 우연히 라디오를 들으면서 김씨 정권이 정말 무서운 사기꾼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됐다”고 했다. 한미 당국이 송출한 대북 방송을 듣고 실상을 깨달아 탈북을 결심하게 됐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양씨는 지난해 비무장지대(DMZ)를 통해 남으로 넘어왔다. 2018년 탈북한 이재희씨도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그동안 개보다도 못한 인생을 살았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이제는 이런 탈북민이 나오기 힘들어졌다. 이재명 정부가 대북 확성기 중단, 대북 전단 단속에 이어 50년간 해온 국정원의 대북 라디오·TV 방송을 모두 꺼버렸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요즘 세상에 인터넷 뒤지면 다 나오는데 뭔 대북 단파 방송을 하느냐”며 ‘바보짓’이라고 했다. 하지만 북 정권은 주민의 인터넷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외부 정보와 차단된 북 주민에게 대북 방송은 바깥 소식을 전해주는 유일한 통로였다. 탈북민 대상 조사에선 66%가 ‘대북 방송을 듣고 탈북 결심을 했다’고 답했다. 북을 탈출한 뒤 대북 방송을 한 사람을 은인이라며 찾아 나선 탈북민도 있었다.
양씨를 만난 제임스 모일런 미 하원의원은 대북 방송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더 많은 것을 알고자 하는 사람들의 힘이 변화를 만들어낸다고 믿는다”고 했다. 미 트럼프 행정부도 북 주민에게 외부 진실을 전파하던 VOA 방송, 자유아시아방송 등을 폐쇄했지만 미 연방 법원이 이 조치를 중단시켰다.
정부가 대북 전단을 막고, 방송을 중단하고, 한미 훈련을 줄이고, 9·19 군사 합의를 선제 복원하고, 북한을 아무리 ‘조선’이라고 불러도 김씨 정권의 대남 적대 정책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사이 북한 주민들의 인권 상황만 악화될 뿐이다. 지금 북은 한국 드라마를 봤다고 청소년까지 공개 총살하고 있다. 북한 주민도 우리 국민이다. 노무현·문재인 정부도 방송은 끄지 않았다. 대북 방송은 즉각 재개돼야 한다.
-조선일보(26-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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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름은 배려가 아니다
정확성 아닌 감성 앞세워
본질 흐려놓는 명칭 개정
正名 안되면 나랏일 망쳐
언어, 현실 또렷이 비춰야
출산·육아 등으로 경력이 단절된 여성을 ‘경력 단절 여성’이라 칭한다. 이제는 사용이 제한된다. 어감이 안 좋고 부정적 인식을 유발한다는 이유다. 그 대신 이들의 역량을 강조해 ‘경력 보유 여성’으로 바꿔 부르는 내용의 법안이 얼마 전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지자체마다 조례 개정도 잇따르고 있다. 듣기 좋은 말이지만 정확한 말은 아니다. 중단과 이탈의 맥락이 휘발되면서 대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는 소리가 돼버렸기 때문이다. 업무 현장에서는 “그럼 현직 워킹맘은 ‘더 경력 보유 여성’이냐”며 황당해하는 반응이 적지 않다.
‘쉬었음 청년’은 통계상 구직 없이 그냥 쉬고 있는 30세 미만의 비경제활동 인구를 뜻한다. 직관적이다. 그러나 이 용어가 게으름과 무기력함을 연상시킨다며 ‘준비 중 청년’ 등으로 대체하려는 움직임이 고용노동부 일각에서 일고 있다. 취업 공백기를 “잠시 멈춰 숨을 고르는” 시간으로 바라보는 응원의 취지라지만, 이건 방탄소년단이 촌스러우니 BTS로 바꾸자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청년들은 조소하고 있다. 문제는 그대로인데 언어만 자꾸 현실을 완화하는 방식으로 꾸며내고 있다는 문제 제기다. “대단한 발상입니다. 백수를 이렇게 바꿔 부르면 일자리가 생기는 건가요?”
나랏일의 기본은 이름을 올바르게 짓는 것이다. 정명(正名)이라 한다. ‘논어’에서 공자가 국정의 1순위로 꼽은 일이다.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주장이 정연하지 않고, 주장이 정연하지 않으면 정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정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예악이 베풀어지지 않고, 예악이 베풀어지지 않으면 형벌이 바르게 적용되지 않고, 형벌이 바르게 적용되지 않으면 백성들은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게 된다.” 이름이 그에 걸맞은 실(實)을 드러내지 않으면 스텝이 계속 꼬인다는 것이다. 다르게 쓰여도 똑같이 읽힌다면, 여전히 여성의 경력은 단절되고 수많은 청년이 집에서 숨만 고르고 있다면, 새 이름은 배려가 아니라 기만일 따름이다.
정책의 언어는 정감이 아니라 정확성을 향해야 한다. 삶의 개선은 따뜻한 착시가 아니라 차가운 직시에서 비롯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꾸 엉뚱한 데를 본다. 이를테면 국내 육아 휴직 사용 비율이 낮은 건 ‘육아 휴직’이라는 명칭이 지닌 휴직의 강조 용법 때문이며, 고로 ‘아이 돌봄 기간’으로 바꿔 불러야 한다는 주장이 정부 인구비상대책회의 등에서 거론되는 식이다. 세상 물정 어두운 순진한 친절은 반감을 낳을 수 밖에 없다. ‘혼외자(婚外子)’의 부정적 느낌을 없애겠다며 ‘출생 자녀’ 혹은 그냥 ‘자녀’로 바꿔 놓으면, 혼외자 갈등은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일까? 누군가를 감싸면 누군가는 떨어야 한다.
급기야 ‘북한’도 다르게 부르겠다고 한다. “상대의 실체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언어”로써 그들 방식대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약칭 ‘조선’으로 공식 명칭 변경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탈북민’은 ‘북향민(北鄕民)’으로 부르겠다고 한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탈북, 어감도 안 좋다”고 말했다. 입이 비뚤어져도 말은 바로 해야 한다. 이곳이 대한민국인 이상, 대한민국 헌법이 한반도를 우리 영토로 규정하는 이상 그곳은 북한일 수밖에 없다. 목숨을 건 탈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과거 궁중에서 똥을 매화로 높여 불렀다 해서 똥이 매화가 되는 것은 아니다. 세상을 흐리는 언어의 혼란, 이를 지적하면 되레 감수성 부족을 힐난한다. “똥 싼 주제에 매화 타령한다”는 속담이 이제는 무서워지려고 한다.
-정상혁 기자, 조선일보(26-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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