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요한 예술만큼 사람을 뒤흔드는 건 없다]
[혁명가 베토벤의 항변]
집요한 예술만큼 사람을 뒤흔드는 건 없다
김기민의 '볼레로'를 보니 그 춤곡과 작곡가가 머릿속서 재생돼
여리게 시작해 거세지다 폭발… 끈질긴 몰두의 시간이 쿵쾅쿵쾅

1915년, 트럭 운전병이었던 모리스 라벨은 겨울이면 꽁꽁 언 땅을, 봄이면 비가 내려 진창이 된 땅을 달렸다. 날아오는 포탄과 저격병의 총알과 여기저기 파놓은 구덩이를 피해서 말이다. 제1차 세계대전 중이었다. 프랑스 최전선에 보급품을 실어 나르는 게 그의 일. 물에 젖은 병사들의 발은 세 배 크기로 부풀었다가, 괴사되었다가, 결국 잘라야 했다. 시체를 먹은 쥐들은 개만 해졌고, 부패한 시체에서는 악취가 풍겼으며, 귀청이 터질 듯한 소음에 시달렸다. 제1차 세계대전 중 라벨이 겪은 고난에 대해 읽다가 전쟁이란 온갖 소음과 냄새를 증폭시키는 일이기도 함을 새삼 깨달았다.
불타버린 나무들이 길게 이어진 길을 지나던 아침에 그 일이 일어난다. 파괴된 저택으로 들어가니 에라르 피아노 한 대가 놓여 있는 게 아닌가. 라벨은 생각나는 대로 쇼팽의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한다. 전쟁의 공포를 잊을 수 있던 순간이었다. 자신의 손가락 끝에서 나오는 음률들이 황홀하면서 짜릿한 곳으로 이끌었을 테니. 나중에 라벨은 그때를 인생 최고의 순간으로 묘사한다. 전쟁에서 살아 돌아와서 그럴 수 있었다. 또 할 수 있는 게 있었다. 그의 과업인 음악. 라벨은 전장에서 죽은 전우들과 세상을 먼저 떠난 프랑스인들을 추모하는 곡을 만든다. 1917년에 발표한 ‘쿠프랭의 무덤’이다. 그리고 1928년 ‘볼레로’를 만들었다.

22일 서울 역삼동 GS아트센터에서 공개된 '볼레로' 리허설에서 주역 '라 멜로디'로 붉은 테이블 위에 올라 36명 군무 무용수들과 함께 춤추는 마린스키 발레 수석 무용수 김기민. /인아츠프로덕션
나는 얼마 전에 ‘베자르 발레 로잔’과 함께 내한 공연을 한 마린스키 발레단 수석 무용수 김기민이 추는 ‘볼레로’를 보다가 그 음악을 작곡한 라벨을 떠올렸다. 전쟁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던 라벨을, 죽음 사이를 운전하던 라벨을, 우연히 발견한 피아노로 모든 걸 잊고 완벽한 몰입감을 느끼던 라벨을 말이다. 그가 무사히 귀환해 ‘쿠프랭의 무덤’을 만들고, 또 ‘볼레로’까지 만든 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전쟁에서 죽지 않고 살아 남아서 이런 곡을 만들었다니 얼마나 인류에게 축복인가라고 생각했다.
김기민이 ‘멜로디’가 되어 추는 ‘볼레로’를 본 지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무대 앞에 있는 것 같다. 이 글은 ‘볼레로’를 보고 나서 ‘볼레로’ 음악이 계속 머릿속에서 재생되는 자가 쓰지 않을 수 없던 글이기도 하다. 라벨의 ‘볼레로’는 워낙 유명한 음악이라서 안다고 생각했지만 김기민의 춤을 보면서 이 곡을 전혀 모르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나는 좀 이국적이면서 반복적인, 그리고 평면적인 춤곡으로만 ‘볼레로’를 인식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아주 여리게 시작해서 점점 거세지다가 끝내 폭발하는 게 ‘볼레로’였다. 위력적인 폭발이었다. 김기민의 손끝을 타고 라벨의 음악이 흘렀기에 이 모든 걸 느낄 수 있었다. 미세하게 움직이다가 점점 웅장해지는 김기민의 손과 발을 보면서 라벨의 음악을 본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라벨(사진 가운데 앉은 이)의 음악에 매료된 미국 작곡가 조지 거슈윈(맨 오른쪽)은 라벨에게 작곡을 배우고 싶어 했지만, 라벨은 ‘일류(一流) 거슈윈이 될 수 있는데 굳이 이류(二流) 라벨이 될 필요는 없다’면서 완곡하게 사양했지요. /모리스 라벨 재단
집요함이라는 말은 상당히 과소평가되어 왔다! 모리스 라벨의 음악에 맞춰 춤추는 김기민을 보면서 생각했다. 라벨의 음악은 정말이지 집요했고, 김기민의 몸 동작도 정말이지 집요했던 것이다. ‘몹시 고집스럽고 끈질기다’라는 뜻의 집요함이 새롭게 들어왔다. 집요한 예술만큼 사람을 뒤흔드는 건 없었다. 박자를 일정하게 계속 쪼개면서 새로운 악기들을 동참시키는 라벨의 주법에 지지 않고, 일정하게 계속 플리에(발레에서 무릎을 구부리는 동작)를 하면서 손과 발의 쓰임을 발전시켜 나가는 김기민을 보면서 심장이 옥죄어 오는 느낌을 받았다. 자신의 한계를 몰아붙이며 대단한 몰입을 이루고 있는 음악과 몸 앞에서, 보는 사람도 타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볼레로’는 원래 니진스키의 동생 니진스카에 의해 안무된 작품이었다. 가장 유명한 것이 이번에 김기민이 춘 모리스 베자르의 작품이다. 붉은 원탁 위에 선 ‘멜로디’의 움직임이 격렬해지기 시작하면 원탁을 둘러싸고 있던 ‘리듬’들이 한두 명씩 일어나며 ‘멜로디’ 가까이 모여든다는 전개다. 멜로디에 의해 자극된 리듬이 다시 멜로디를 자극하고, 자극된 멜로디는 더 리듬을 자극하며 클라이맥스로 달려간다. 라벨의 ‘볼레로’에는 하나의 리듬이 169번 나오고, 주요 멜로디 2개가 반복된다. 단순한 반복으로부터 생겨나는 집요함은 전혀 지루하지도 평면적이지도 않았다. 풀잎에 떨어지는 이슬처럼 흐르다 이내 매머드의 심장 소리처럼 마음을 육중하게 광광 울려대는 무대는 바로 그 집요함으로부터 왔다고 생각했다. 완벽한 몰입의 순간을 여러 번 살았던 이들이 깨우쳐준 집요한 몰두의 시간이었다.
-한은형 소설가, 조선일보(26-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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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가 베토벤의 항변
1824년 5월 7일, 나는 오스트리아 빈 케른트너토르 극장(Theater am Kärntnertor) 객석에 있다. 교향곡 9번 ’합창’이 초연되고 있지만, 루트비히 판 베토벤은 청력을 잃은 상태라 지휘대 옆에 그림자처럼 서 있을 뿐 지휘는 미하엘 움라우프가 하고 있다.
베토벤은 1790년대부터 프리드리히 실러의 시를 마지막 악장의 가사로 삼고 싶어 했다. 교향곡에 합창을 넣는 구조, ‘환희의 송가’ 같은 텍스트를 사용하는 것 등은 당시 파격이었는데, 베토벤은 ‘음악’에서만이 아니라 ‘음악가’로서도 그러했다. 그는 예술가에게 돈을 지원하는 귀족들에게 감사하지 않았고, 왕보다도 우월한 창작자(창조자)인 자신을 추앙하라고 요구했다. 모차르트를 포함한 베토벤 이전 음악가들은 그렇지 않았다. 음악적 장인(匠人) 정도였다. 그러나 베토벤의 편지와 논평 속에는 ‘예술’은 물론 ‘예술가’, ‘예술성’ 같은 자의식 들끓는 단어들이 가득 차 있었다.
1971년 음악 평론가로서는 최초로 퓰리처상을 받은 해럴드 C 숀버그는 이러한 베토벤을 ‘본에서 온 혁명가’라고 명명한 다음 말한다. “베토벤의 독창성은 다른 작가와 다르다는 게 아니었다. 시대와 달랐다. 그러면서도 당대를 굴복시키며 미래로 진격했다.” 베토벤은 음악에 대해서는 낭만주의적인, 사회에 대해서는 혁명적 관점을 취했다. 여기서 후자는 공화정, 민주정 정도를 의미하며, 스스로 황제가 되기 이전의 나폴레옹을 지지해 작곡한 교향곡 3번 ‘에로이카’로 표현된다. 교향곡 9번 ‘합창’은 후대 낭만주의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했고, ‘에로이카’는 19세기 음악의 시작이었다.
한 인간으로서 벌레나 짐승 같은 ‘인간’에 절망하다가도, 과학과 예술의 빛 앞에서는 종종 그런 생각을 접게 된다. 베토벤의 음악은 인간이라는 종(種)에 대한 변호이자 어쨌거나 인간이 벌레와 짐승은 아니라는 항변을 준다. 나는 이것이 그가 청각을 잃고도 위대한 작곡을 해낸 사실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진다. 물론 실존적 구원은 각자의 숙제다.
-이응준 시인·소설가, 조선일보(26-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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