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걸 민주주의라 부를 수 있을까]
["국민은 공소 취소 뜻 몰라" 본심 말해버린 민주당]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 개헌, 반대하면 '내란 세력'이라니]
[국힘 불참에 개헌안 표결 무산… 지선 후엔 與野 접점 찾아야]
이런 걸 민주주의라 부를 수 있을까
英 찰스 3세가 말한 '견제와 균형'의 원칙
한국에선 폭주하는 의회 권력이 허물어
행정부는 거기 올라타고 사법부는 무력해
대통령 기소 사건 '공소 취소'로 없앨 수도
사법부 장악한 정권을 끝장낸 헝가리처럼
비틀거리는 대한민국이 안길 곳은 국민뿐

왕은 위엄이 있었다. 조각나고 거친 소리로 가득한 세상에 완벽한 문장과 조용한 무게로 역사와 정치와 가치를 전파하고 외교의 극치가 어떤 것인지 보여주었다. 미국을 국빈 방문한 영국의 찰스 왕 이야기다. 진짜 ‘왕’인 그는 대통령의 ‘왕 행세’를 비난하는 ‘왕은 그만(No King)’ 시위가 벌어지는 미국의 수도 워싱턴의 한복판에서, 250년 전 영국의 ‘명분 있는 반란자(찰스 왕의 표현)’들이 건설한 신대륙 미국의 정치인들에게 ‘견제와 균형(checks and balances)’을 이야기하고 12번의 기립 박수를 받았다.
영국식 유머는 미국이 따라오기 힘든 영역이다. 유머가 없는 연설은 범죄라는 영국 통념에 따라 왕은 “우리가 아니었으면 지금 미국인들은 불어를 쓰고 있을 것”이라고 조크했다. 이란 전쟁으로 신경전 와중이던 미국에 온 영국의 왕은 9·11 당시 NATO가 지원했고, 아프가니스탄에서 영국 군인도 함께 싸웠으며, 우크라이나는 도움이 필요하다는 등의 정치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으면서도 상대에 대한 존중과 유머를 잃지 않았다. 외교란 그런 것이다. 이날 영국의 언론들은 하나같이 왕이 자랑스럽다고 논평했다. 반면 미국의 비평가들은 영국의 왕이 미국에 와서 민주주의 원칙을 가르치다니, 250년 전 건국의 아버지들이 상상도 못 했을 장면이라고 혀를 찼다.
왕(찰스 3세)이 말했듯, 과거 왕(찰스 1세)을 처형한 전력이 있는 영국의 의회는 아직도 개원식 때 여당 원내대표 격인 부시종장을 감금하는 의례적 전통을 따른다. 미국은 그런 절대 권력이 없는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겠다며 ‘왕’ 대신 ‘대통령’이 통치하는 제도를 만들고 입법·사법·행정이 상호 견제하고 균형을 이루는 권리장전과 민주주의 원칙을 천명했다. 250년이 지난 지금, 영국 왕이 미국 의회 연설에서 마그나카르타(대헌장)와 견제와 균형의 문제를 언급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메시지다. 아무리 우아하고 낮은 톤으로 이야기해도 그건, 영국 평론가들의 표현을 빌리면, 미국이 원래 어떤 나라였는지 아느냐는 무서운 역사적 경구(警句)라는 것이다.

28일(현지시각) 미국 국빈 방문 중인 찰스 3세 영국 국왕이 미국 워싱턴 DC 연방 의회 의사당에서 상·하원 합동 회의 연설 전 미 의원들과 악수를 나눴다. 이후 찰스 국왕과 카밀라 왕비는 백악관 사우스 포티코의 발코니에서 열린 환영 열병식을 관람했다. /X, 백악관
권력 간 견제와 균형이 얼마나 어려운지 굳이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다. 선출된 권력이 모든 권력 위에 군림하는 우리나라에서는 갈수록 균형이 아니라 권력 간 서열이 오히려 더 공고해져 가는 듯하다. 폭주하는 의회 권력과 그에 올라탄 행정부, 그리고 무력한 사법부가 한국형 삼권분립의 현주소다. 의회의 권력을 막을 힘은 어디에도 없어 보인다. 그런 이유로, 아마 역사가가 근래의 대한민국을 기술한다면 ‘견제와 균형을 상실한 권력의 시대’쯤으로 기술하지 않을까 싶다.
최근 그 의회가 또 하나의 일을 벌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발의한 ‘윤석열 정권 조작 기소 특검법’이 그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변호인을 지낸 이건태 의원 등 31명이 발의한 이 법은 특검에 공소를 취소할 권한을 주는 내용을 담고 있고, 대상 사건 12건 중 대통령 관련 사건이 8건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특검은 대통령이 임명한다. 모양만 봐도 이해충돌 소지가 다분한 이 법에 대해 여당은 조작 기소를 기정사실화하며 대통령도 법 앞에 평등하다는 논리를 펴고 있고, 야당들은 ‘이재명 셀프 면제 추진법’(국민의힘) ‘사법 내란’ ‘형사 사법의 주춧돌을 빼는 일’(개혁신당) ‘공소 취소 길 내는 조작 기소 특별법 반대 성명’(정의당)으로 한목소리로 비판하고 있다. 선거가 목전에 다가오자 구체적 시기와 절차 논의는 선거 후로 미루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지만, 내용이 바뀐 것은 없다. 여전히 대통령이 자기 사건의 기소 자체를 없던 일로 만드는 초유의 일이 마침내 벌어질지 모른다.
이번 법안뿐 아니라 사실 그 의회는 그동안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온갖 일을 밀어붙였고, 번번이 성공해 왔다. 윤석열 정부 때는 줄탄핵으로 국정을 마비시키고 예산을 잘랐으며, 법사위원장을 야당이 맡던 관례도 무너뜨리며 의회 권력의 틈을 내주지 않았다. 지난 정부 때 이미 권력 간 균형은 무너져 있었다. 그걸 대통령이 거부권으로 겨우 견제를 해 왔는데 계엄이라는 악수를 두면서 그조차 불가능해졌다. 지금의 야당은 균형은커녕 견제도 못하는 약체가 되어버렸다.

국민의힘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와 유정복 인천시장 후보, 개혁신당 조응천 경기도지사 후보가 2026년 5월 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윤석열 정부 조작 수사·기소 의혹 특검법안'에 대한 대응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회동하고 있다. /김지호 기자
250년 동안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성공적인 대통령제를 유지해 온 민주주의 선진국 미국에서도 견제와 균형이 위협받는다면, 그건 진짜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리고 생각해보니 민주주의 역사가 짧은 우리에게 견제와 균형의 경험 자체가 있었는지 의문이 들었다. 늘 싹쓸이 정치만 해온 우리는 권력을 뺏고 빼앗기고 휘두를 줄만 알았지 타협하고 나누고 서로 균형을 맞추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 몰염치한 행태를 보이는 지금 정치인들은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그들 또한 해본 적도, 보고 배운 적도 없으니 무엇을 기대할까.
균형을 잃고 비틀거리는 나라를 이끌어 온 건 언제나 국민이었다. 막나가는 권력을 두고 ‘연성 파시즘’이니 ‘민주 독재’ 같은 말을 하는 호사가도 있지만, 세계 10위권 민주 국가에 사는 국민의 자존심으로 나는 그런 독한 표현은 하고 싶지 않다. 민주 선진국도 어려운 ‘견제와 균형’을 이제 막 학습하려는 단계라고 봐주고 싶다. 그리고 당장은 균형이 없어 보여도 통시적으로는 늘 국민이 균형을 잡아왔고, 앞으로도 그러기를 바랄 뿐이다. 16년 동안 의회와 사법부를 장악하고 집권 세력을 위한 ‘행정법원’을 따로 설립하는 등 권위주의 행태를 일삼던 빅토르 오르반 체제를 국민의 힘으로 종식시키고 마침내 자유민주주의 회복의 대장정에 오른 헝가리처럼. 비틀거리는 대한민국이 안길 곳은 오직 국민뿐이다.
-박성희 이화여대 교수·한국미래학회 회장, 조선일보(26-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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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은 공소 취소 뜻 몰라" 본심 말해버린 민주당

형사소송법에 나와 있는 공소 취소 조항.
민주당 박성준 의원이 라디오 인터뷰에서 “시민 10명 중 8~9명은 ‘공소 취소’ 뜻을 잘 모른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최근 발의한 ‘조작 기소 특검법’이 이재명 대통령 사건의 공소 취소를 위한 것이라는 비판 여론이 높아지는 것을 반박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다. 박 의원은 김어준 유튜브에 나와서도 “공소 취소가 뭐를 어떻게 하는 건지 자세히 아는 국민은 없다. 법률적으로 가면 피곤한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민주당이 주도한 ‘조작 기소 국정조사 특위’ 간사였고, 이번 특검법 발의를 주도했다.
박 의원 말대로 검찰청과 법원에 갈 일 없는 다수 국민은 기소나 공소, 공소 유지 및 취소 같은 수사나 재판 관련 법률 용어에 익숙하지 않다. ‘공소’는 검사가 법원에 범죄 피의자의 재판을 청구하는 것이고 공소 취소는 그 공소를 취소하는 것이다. 검사 자신이 수사의 과오를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전례도 거의 없다. 공소 취소가 되면 피고인의 범죄 혐의에 대한 재판은 없어진다.
박 의원이 발의했던 특검법엔 ‘공소 취소’라는 단어는 없지만 특검에게 재판이 진행 중인 사건을 검찰에서 넘겨 받아 공소 유지 여부를 결정할 권한을 부여했다. ‘공소 취소’의 길을 열어 둔 것이다. 민주당은 ‘공소 취소를 위한 특검’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 특검법에 어떻게든 ‘공소 취소’라는 말을 쓰지 않으려 한 것이다.
국민 일부가 공소 취소라는 법률 용어에 익숙하지 않다 해도 왜 이 대통령과 민주당이 무리한 국정조사를 하고 특검법까지 발의했는지 그 이유는 알고 있다. 공소 취소권을 부여한 특검이 수사할 사건 12건 중 8건이 대통령 관련 사건이고, 특검은 대통령이 임명한다. 피의자가 자신을 재판할 재판관을 임명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정의당과 경실련 등 진보 단체들조차 위헌 법률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집권 세력의 반(反)헌법적 폭주에 대한 비판이 예상을 뛰어넘자 이 대통령은 속도 조절을 주문했고, 민주당 지방선거 후보자들도 “선거에 악영향을 준다”며 반발하고 있다.
국민이 공소 취소의 뜻을 잘 몰라 지방선거에 주는 영향이 제한적이라는 민주당 의원의 언급은 말 실수가 아니다. 국민이 잘 모르니 선거 후에 특검법을 처리하고 이 대통령 사건 공소 취소를 해도 별 문제가 없을 것이란 계산이다. 국민을 바보로 아는 오만하고 반민주적인 발상이지만, 이 문제에 관한 한 이는 민주당의 본심이다.
-조선일보(26-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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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 투표 불성립된 개헌안 또 밀어붙이며 국힘을 ‘계엄 옹호’라 비난. ‘위헌’ 논란 특검법 만든 이들이 할 말인지.
-팔면봉, 조선일보(26-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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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 개헌, 반대하면 '내란 세력'이라니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35회 국회(임시회) 제1차 본회의에서 대한민국헌법 개정안이 상정되고 있다. /뉴스1
민주당이 7일 국민의힘을 배제하고 추진한 개헌안을 국회 본회의에 상정했지만 표결이 무산됐다. 국힘 의원들이 불참해 의결 정족수에 미치지 못한 것이다. 민주당 출신 우원식 국회의장은 매일 표결을 시도하겠다고 한다.
개헌은 국가 최고 규범을 변경하는 중대한 일이다. 애초 야당 동의 없이 밀어붙일 일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국민 관심도 저조하다. 개헌안이 상정되는 지 몰랐던 국민이 적지 않을 것이다. 민주당 혼자 북 치고 장구 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민주당은 그런 개헌안을 일반 법안 강행 처리하듯 밀어붙인다.
이번 개헌안은 전문에 부마민주항쟁과 5·18민주화운동 정신을 담고, 계엄에 대한 국회 통제권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민주당은 내용적으로 문제 될 것이 없는데 왜 야당이 반대하느냐고 한다. 하지만 이런 정도의 내용을 고치는 것이 20여 일밖에 남지 않은 지방선거와 같이 국민투표를 실시할 만큼 중대하고 시급한 일인가.
이재명 대통령은 “불법 계엄을 못 하게 하자는데, 반대하는 사람들은 불법 계엄 옹호론자”라고 했다. 지난 계엄을 막아내고 지금의 이 대통령을 만들어 준 게 현행 헌법인데 무엇이 문제라는 말인가. 계엄에 반대하지만 이번 개헌에도 반대하는 국민도 적지 않다. 그들도 내란 세력인가.
민주당은 이번에는 전문과 일부 조항만 고치고 다음에는 권력 구조를 고치는 ‘단계적 개헌’을 주장한다. 하지만 개헌은 한 번 하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래서 한 번 할 때 제대로 해야 한다. 권력 구조 개헌의 필요성은 많은 사람이 공감한다. 계엄과 탄핵을 거치며 현행 대통령제의 폐해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여야 간 무한 정쟁을 막기 위한 권력 분산도 절실하다. 노동·교육·연금 개혁을 위한 제도도 정비해야 한다. 그러려면 충분한 시간을 갖고 논의해 국민적 합의를 만들어내야 한다.
-조선일보(26-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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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힘 불참에 개헌안 표결 무산… 지선 후엔 與野 접점 찾아야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35회 국회(임시회) 제1차 본회의에서 대한민국헌법 개정안이 국민의힘 의원 불참으로 투표가 불성립 되고 있다. 2026.5.7/뉴스1
국회가 7일 6·3 지방선거 때 국민투표에 부치기 위한 개헌안을 본회의에 상정했지만 국민의힘이 불참해 ‘투표 불성립’으로 표결이 무산됐다. 국민의힘을 제외한 여야 6개 정당은 지난달 대통령 계엄권에 대한 국회의 사후 승인, 5·18민주화운동과 부마항쟁 정신 등을 헌법에 담는 개헌안을 발의했다. 더불어민주당은 10일까지 개헌안 처리를 시도하겠다고 했지만 국민의힘은 반대 당론을 고수하는 상황이다.
국민의힘의 거부와 달리 개헌 찬성 여론은 각종 조사에서 꾸준히 높게 나오고 있다. 이날 공개된 전국지표조사(NBS) 결과에서도 58%가 개헌에 찬성해 반대(29%)보다 2배나 높았다. 한국갤럽의 2월 조사에서는 78%가 국회의 계엄권 통제 강화에 찬성했다. 개헌안엔 계엄 선포 뒤 국회가 승인하지 않거나 해제를 의결하면 효력을 잃는 내용이 포함됐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국회의 해제 요구안 가결 뒤 다시 계엄을 시도하려 했다는 증언까지 나온 만큼 불법 계엄을 막기 위한 헌법 개정 필요성이 커진 것이 사실이다.
국민의힘은 이런 개헌에 참여해 1년 5개월 넘게 허우적대 온 위헌적 계엄의 수렁에서 헤어날 전환점을 만들 수도 있었다. 하지만 우원식 국회의장이 3월 개헌안을 제안하자 ‘선거 전 졸속 추진에 반대한다’며 논의 자체를 거절했다. 이는 지난해 대선 두 달 전 국민의힘이 보인 태도와도 사뭇 다르다. 당시엔 우 의장이 ‘대선-개헌 동시 투표’를 제안하자 권력 구조 개편 방식을 두고 여야 간 간극이 컸음에도 논의에 동참하겠다고 했다. 이번엔 5·18민주화운동 정신 등 국민의힘이 찬성하는 내용들이 포함돼 쟁점이 훨씬 적은데도 불참했다.
이번 개헌안은 여야가 공감할 사안부터 먼저 풀어가자는 단계적 개헌론의 첫 단추였다. 하지만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7월 국회에 개헌 논의를 요청한 이후 여야는 개헌 특위조차 구성하지 못한 채 10개월을 허송했다. 국민의힘은 개헌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 만큼 지방선거 이후에라도 곧바로 협의에 응해야 한다. 민주당도 국민의힘의 동참 없이 국회 개헌선을 넘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인 만큼 합의를 이끌어 낼 신뢰의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 그동안 개헌안이 번번이 좌초한 것은 당장의 정치적 유불리만 따진 탓이 컸다. 이번에도 그런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
-동아일보(26-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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