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이란, 북한의 핵보유 전략은 어떻게 달랐나]
[비핵화를 포기하면 北이 대화에 나설까]
[정권보다 원칙이 장수하는 나라]
이스라엘과 이란, 북한의 핵보유 전략은 어떻게 달랐나
이스라엘은 냉전 틈타 핵 개발, 이란은 이에 맞서 우라늄 다량 농축
北 비핵화는 골든타임 놓쳐… 5년 후 북핵은 세계 6위 수준 이를 듯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8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이란이 핵무기 개발 작업을 진행 중인 것으로 의심된다고 밝혔다. 사진은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맨 앞)이 2008년 4월 수도 테헤란에서 남쪽으로 322㎞ 떨어진 나탄즈 우라늄 농축 시설을 둘러보는 모습. /AP연합뉴스
1960년 12월 18일 세계 언론들은 일제히 특보(特報)를 냈다. 중동의 작은 나라가 핵을 개발하고 있으며 ‘이스라엘’이라고 지목했다. 소련 정찰기가 촬영한 디모나 현장 사진이 실린 뉴스는 일파만파로 퍼졌다. 소련 외교부 장관은 미국 워싱턴을 방문해 사태 해결을 압박했다. 벤구리온 이스라엘 총리는 “네게브 사막에 건설 중인 연구용 원자로는 오직 평화적인 목적”이라고 항변했다.
2년간 논란 끝에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은 이스라엘의 핵 개발 총책인 시몬 페레스를 백악관으로 불렀다. ‘이스라엘의 의도는 무엇인가?’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페레스는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중동에서 핵무기를 처음 꺼내 드는 쪽이 저희는 절대 아니라는 점입니다”라고 했다. 케네디는 엎질러진 일이라 판단했는지 혹은 엄청난 유대인 로비에 체념했는지 별말 없이 면담을 끝냈다. 핵무기의 존재를 부정하지도 긍정하지도 않은 페레스의 ‘핵 모호성(NCND)’ 전략은 이스라엘의 핵 정책이 됐다.
페레스는 이스라엘의 비대칭 핵 무력으로 아랍 국가들이 전면전을 감행하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스라엘 모래땅에 원전은 필수적이라고 설득했다. 모사드 등 정보기관은 소련의 개입을 의식해 반대했다. 과학자는 원천기술 부족, 관료는 막대한 재원 등을 들어 일축했다. 벤구리온 총리는 젊은 핵 선구자의 통찰력을 수용했다. 마침내 1966년 중동에 첫 핵 국가가 탄생했다.
이란은 텔아비브의 핵 개발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이란은 우라늄 농축 기술을 연구했다. 1970년에는 핵비확산조약(NPT)에도 가입했다. 팔레비 왕조는 친서방 정책을 펼치면서 미국과 평화적인 원전 이용을 협의했다. 이란 핵의 일차 씨앗은 1979년 이란 혁명이었다. 팔레비 왕조가 무너지고 하메네이 반(反)서방 정부가 들어서자 미국과의 협력은 중단됐다.
1980년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와 벌인 8년 전쟁은 이란 핵개발의 단초가 됐다. 종전 후 1989년 2대 지도자가 된 알리 하메네이는 “국제사회에서 이란의 친구는 없다”며 핵에 집착했다. 이란 신정체제 붕괴가 국가 목표인 이스라엘의 핵 역시 이란의 핵 개발을 자극했다. 이란은 미국과 이스라엘, IAEA의 이중 잣대를 비판했다. 2000년대 들어 이란이 레드라인인 20% 우라늄 농축을 넘어서자 국제사회가 비핵화에 나섰다. 2015년 미국을 비롯한 6국과 이란은 ‘포괄적 공동 행동 계획(JCPOA)’이라는 역사적 핵 협상을 타결했다. 15년간 이란의 우라늄 농축 금지가 포함됐다.

2003년 이란이 IAEA의 사찰을 수용한 이후 12년간 진통 끝에 타결된 160쪽에 달하는 본문과 5개의 기술 부속서는 핵물리학과 제재의 국제정치학을 통합했다. 이행은 어려웠다. 비핵화와 제재 해제 관련 문장 하나하나 고무줄 해석이 가능해서 논란은 불가피했다. 공식적인 조약이 아니라 단순 합의(accord)에 불과해 미국 정권이 교체되자 휴지 조각이 됐다는 것이 테헤란의 주장이다. 2018년 협상을 탈퇴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6월과 지난 2월 말 폭격 등으로 핵 시설을 타격했다. 이란 전쟁의 명분인 핵 완성이 2주 정도로 임박했는지 여부는 정보 부족으로 판단 불가다.
핵보유 동기 이론과 냉전 전략가인 허먼 칸(Herman Kahn)의 ‘확전 이론(On Escalation)’에 따르면 특정국의 핵무기는 인접국의 핵 보유를 자극한다. 천연 우라늄이 풍부한 이란이 핵 개발 유혹을 뿌리치기는 쉽지 않다. 우라늄의 평화적 이용은 주권적 권리라는 강경파의 주장은 완강하다. 이란이 보유한 60% 수준의 440㎏ 우라늄은 농축을 80% 수준으로 높이면 핵무기 11기가 된다. 이란은 트럼프의 조급함을 역이용하며 ‘침대 축구’를 하고 있다.
동북아로 가보자. 1945년 일본이 원자탄 두 발에 항복했다는 소식에 놀란 김일성은 핵에 관심을 가졌다. 1953년 7월 휴전 무렵 전쟁 잿더미에서 원산에 핵물리학 도서관을 열었다. 소련 드브나 연구소에 핵물리학자 30명을 파견했다. 2006년 1차 핵실험 때까지 북한 정권의 역사는 핵 개발의 역사였다. 일제강점기 총독부 광산국이 탐사한 보고서는 북한의 우라늄은 양질이며 매장량이 400만t에 달한다고 했다. 비공식 세계 12위다. 김일성이 이란처럼 핵에 집착할 수 있었던 물리적인 이유다.
이스라엘과 이란 및 북한 3국은 판도라의 상자인 핵 보유에 진심이다. 3국의 핵 보유 비교를 통해서 미래를 조망해보자. 첫째, 핵 개발을 추진할 수 있는 충분한 우라늄 매장량은 이란과 북한의 공통점이다. 이스라엘은 원료를 수입한다. 둘째, 이스라엘은 프랑스로부터 100% 기술을 전수받았다. 이란과 북한은 자체 개발과 파키스탄 핵 아버지인 압둘 칸 박사로부터 농축 기술을 지원받았다. 셋째, 이스라엘이 핵 개발을 본격화한 1950년대 말은 1964년 중국 핵실험과 1972년 비확산(NPT) 체제의 감시 이전이었다. 냉전 체제의 어수선한 상황을 틈타 핵 보유에 성공했다.

美본토 타격할 수 있는 화성-17형 - 북한이 지난 25일 밤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항일빨치산 결성 90주년 열병식’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인화성-17형을 공개했다. ‘괴물 ICBM’으로 불리는 화성-17형은 최대 사거리 1만 5000㎞의 다탄두 미사일로 미국 전역을 동시 타격할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김정은은 이날“우리 핵무력의 기본 사명은 전쟁을 억제함에 있지만 이 땅에서 우리가 결코 바라지 않는 상황이 조성되는 경우에까지 전쟁 방지라는 하나의 사명에만 속박되어 있을 수는 없다”고 말해 핵무기를 이용한 선제 공격 가능성을 언급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북한은 황해북도 평산군 광산에서 우라늄 원석을 채굴했다. 김소월 시인의 고향인 영변에 암반 지형과 구룡강 용수 등을 활용해서 농축 시설을 건설했다. 한미 간 논란이 된 구성시에도 핵 시설을 건설했다. 최근 위성 정보에 따르면 영변과 평산에 우라늄 정광(yellowcake) 생산 시설을 증축하며 고농축 우라늄(HEU) 생산량을 늘리고 있다. 이란과 달리 북한의 핵 열차는 이미 출발했다. 비핵화의 골든타임을 놓쳤다. 5년 후면 핵무기는 세계 6위인 인도 수준에 도달한다.
이란 전쟁은 핵 보유와 비핵화를 둘러싼 길고 긴 싸움이다. 일찌감치 핵을 보유한 이스라엘과 후발 주자 이란 간 충돌은 초크포인트(chokepoint)인 호르무즈 해협 위기로 종착지가 불확실하다. 이슬라마바드 협상이 이란 비핵화에 초점을 맞춘다면 휴전과 종전은 장기전이다. 이란을 북한처럼 방관하지 않겠다는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의 발언은 귀추가 주목된다.
백악관과 이란 혁명수비대 간 충돌은 극단으로 치닫는 치킨게임이다. 미국이 무력으로 해협을 개방하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베트남과 아프가니스탄에 이어 다시 지역 분쟁에 발목이 빠질 것이다. 호르무즈의 정상화는 ‘해는 저무는데 갈 길은 멀다’는 임중도원(任重道遠)의 상황이다.
-남성욱 숙명여대 석좌교수·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조선일보(26-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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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핵화를 포기하면 北이 대화에 나설까
북한 비핵화는 이제 끝났다는 말이 나온다.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을 사실상 핵보유국(nuclear state)으로 인정하고 있다. 미국에선 북한 비핵화 실패를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중국과 러시아, 이란 등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인 미국이 북한 비핵화라는 불가능한 목표에 매달리기보다 미국 본토 방어를 우선시하는 새로운 대북 정책을 내놔야 한다는 주장이다.
美서 커지는 비핵화 포기론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에는 미국의 북한 비핵화 목표가 어떻게 실패했는지를 다룬 여러 기고문이 동시에 실렸다. 북핵 6자회담 부대표를 지낸 빅터 차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는 기고에서 “비핵화는 달성이 불가능하다”며 “워싱턴은 이제 북한의 핵 무장을 해제한다는 전략에서 벗어나 미국의 안보를 강화할 수 있는 즉각적인 목표를 달성하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했다.
그가 제안한 ‘현실적인’ 대북 정책은 크게 네 가지다. 북한의 핵무기에 대한 미국 본토 방어를 우선시하고, 북한을 적대국에서 제외한다. 외교적 노력은 북한과 러시아의 협력을 약화시키고 한반도에서 남북 충돌 위험을 낮추는 데 초점을 맞춘다. 구체적인 방안으로 미국이 북한에 대한 선제 핵 불사용(NFU) 선언을 하고 한국의 대북 예방타격 계획인 ‘킬체인(kill chain)’ 등 대북 공세적 전략을 완화하면서 주한미군 감축 등 군축협상에 나서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 대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처럼 한미일 집단방위조약을 맺어 북한의 선제 핵 공격 위험에 대한 억지력을 갖추자는 구상도 담겼다.
파격적이지만 낯설지 않은 구상들이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북한에 군축협상을 의미하는 ‘중간단계(interim steps)’를 논의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고, 한국과 일본엔 핵 억지력 협력을 위한 새로운 협의체 창설을 타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지난해 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회동을 제안하며 북핵 인정과 대북제재 해제 가능성을 시사했다. 지난해 12월 내놓은 최상위 안보 전략 문서인 국가안보전략(NSS)에선 다른 적대국과 달리 북한에 대한 언급이 사라졌고, 최근엔 전작권 전환과 맞물려 주한미군 규모와 역할 조정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미국 조야에서 나오는 비핵화 포기론이 가리키는 방향은 ‘차가운 평화(cold peace)’다. 전쟁도 평화도 아닌, 북한의 핵 보유를 사실상 인정하되 충돌을 막는 현상 유지 전략이다.
북한도 미국을 향해 같은 신호를 보내고 있다. 김 위원장은 2월 노동당 9차 대회에서 대외 정책 방향을 밝히며 “대조선(북) 적대시 정책을 철회한다면 우리도 미국과 좋게 지내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실용으로 포장된 평화 만능론
한국에서도 비핵화 불가론은 더는 금기가 아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올 1월 신년 기자 간담회에서 “(비핵화가) 가장 이상적이기는 하지만 북한이 핵을 포기하겠느냐”며 “그건 아주 엄연한 현실”이라고 했다. 비핵화가 어려워진 현실에 맞춘 실용적인 해법이 필요하다는 취지다.
정작 정부에서 거론되는 대북 정책은 온통 북한과의 대화 재개에 맞춰져 있다. 비핵화를 포기하면 북한이 한국과의 대화에 나설까. 하지만 핵을 보유한 북한에 대한 외교적·군사적 지렛대를 어떻게 확보할지, 미국의 군사적 빈자리를 어떻게 채울지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충분히 이뤄지고 있는지 의문이다. 비핵화의 실패는 압박과 유화책 모두의 실패로 봐야 한다. 장밋빛 평화 만능론은 실용을 가장한 또 다른 이상주의다.
-문병기 정치부장, 동아일보(26-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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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보다 원칙이 장수하는 나라

이재명 대통령과 김혜경 여사가 지난 24일(현지 시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베트남 하노이 탕롱황성을 방문해 또 럼 당 서기장 겸 국가주석, 응오 프엉 리 여사와 전통 공연을 관람한 뒤 공연단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베트남이 2016년부터 시작한 외교 전략을 ‘대나무 외교’라고 한다. ‘뿌리는 단단히, 줄기는 곧게, 가지는 유연하게.’ 핵심은 가지의 유연함이 아니다. 휘어도 부러지지 않는 뿌리, 즉 원칙의 존재다.
지난 9개월간 베트남은 미국·중국·러시아 세 강대국 정상을 차례로 맞아들였다. 작년 4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베트남 통일 50주년 기념 행사에 고위급 외교관 파견을 금지했다. 베트남은 흔들리지 않았다. 곧이어 하노이를 찾은 시진핑 주석과 공급망·인프라·AI 협력 등 45개 협정에 서명했다. 미·중 갈등을 자국 발전의 기회로 삼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초 소셜미디어에 이스라엘군의 민간인 피해 영상을 공유하며 비판 메시지를 올렸다. 이스라엘 외무부가 반발하자 대통령은 맞받았다. 그런데 이스라엘 외무부가 정작 짚은 것은 다른 지점이다. 같은 중동 전쟁에서 이란에 대해 이 대통령이 침묵을 지키고 있다는 점이다. 며칠 뒤 정부는 이란에 50만달러 인도적 지원을 결정했다. 호르무즈 해협에 묶인 우리 선박 26척을 풀기 위해서였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유엔 인권이사회 북한인권결의안 공동 제안국 불참이 옳다”고 공개 발언했다가 번복하고 결국 공동 제안국에 이름을 올렸다. 북한 인권을 남북 관계의 협상 카드처럼 다루다가 여론에 밀려 돌아선 것이다. 물론 이란 지원은 호르무즈 해협에 묶인 우리 선박을 위한 국익의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다. 베트남도 국익을 위해 움직인다. 그런데 베트남의 실리는 일관된 원칙을 쌓아온 신뢰 위에서 나온다. 한국은 다르다. 이번 주에 이스라엘을 저격한 뒤 다음 주엔 이란에 돈을 주는 식이다. 상대국이 한국을 어떻게 볼지 뻔하다.
대나무 외교를 그대로 이식할 수는 없다. 대나무는 바람에 따라 몸을 구부리는 유연함으로 살아남는데, 단일 집권당의 연속성이 뿌리를 지탱한다. 5년마다 정권이 바뀌는 한국에서 유연함은 표류로 읽힐 수도 있다. 그렇다면 한국에는 소나무가 더 맞을지 모른다. 사계절 푸른 소나무는 유연하게 휘지 않지만 대신 어떤 바람이 불어도, 어느 계절이 와도, 제 빛깔을 잃지 않는다.
이 대통령은 얼마 전 3박 4일 일정으로 베트남을 찾았다. 베트남이 외교로 가꿔온 대나무숲의 의미를 곱씹을 기회였다. 유연함 뒤에 한결같이 지켜온 뿌리가 있다는 것, 그것이 오늘의 베트남을 만들었다. 미국이 등을 돌리고 중국이 손을 내밀어도, 베트남의 외교 나침반은 ‘국익’이라는 자기 자신을 가리켰다. 정권이 바뀌지 않아서가 아니라, 원칙을 정권보다 오래 살아남게 했기 때문이다.
소나무는 꺾이지 않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혹한에도 곧게 서 있기 때문에 아름다움을 유지한다. 베트남은 대나무 한 그루를 심어 지금의 숲을 가꿨다. 지금 한국 외교는 어떤 나무를 심고 있는가.
-안준현 기자, 조선일보(26-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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