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는 한탄한다]
[요리사가 그것도 모르냐]
['평양냉면 같은 춤'을 즐기는 법]
오빠는 한탄한다

부산 구포시장 유세 중 초등학생에게 “오빠”라고 부르도록 요구하는 정청래 대표와 하정우 후보. /국민의힘 성일종 의원 페이스북
오빠 소리 못 듣고 자랐다. 형제 중 장남이다. 학생 때는 오빠가 아니라 선배였다. 취직했더니 또 선배라고 불렀다. 오빠 소리는 나이 들어 만난 몇몇 친구에게나 들었다. 나도 오빠 소리 가끔은 듣고 싶었다. 아무래도 남동생보다는 여동생을 원했던 이유다. 동생은 이 사실을 모른다.
남자들은 오빠 소리 듣는 거 참 좋아한다. 아이유는 “나는요 오빠가 좋은걸”이라는 가사를 경력의 추진력으로 삼았다. 소녀시대는 “오오오옵빠를 사랑해”라며 정상을 지켰다. 주변 여자들은 이 노래를 싫어했다. 주변 남자들은 좋아했다. 대개는 환장했다. 나도 소녀시대 오빠 타령 들으며 잠시 오빠가 된 기분이 될 지경이었다. 티파니의 오빠였던 것 같다.
부산 북갑 선거 유세 중 터져 나온 ‘오빠 스캔들’로 오빠 소리 원 없이 들었다. 초등학교 1학년 아이에게 “오빠라고 해보라”라던 정청래 오빠 표정이 능글맞았다. 사실 뭐 큰일은 아니다. 아니다. 예전에는 큰일 아니던 것도 요즘은 큰일이 된다. 시대를 따라가려면 부지런해야 한다.
궁금해졌다. 남자가 오빠라 불리길 원해도 괜찮은 나이는 몇 살까지일까? 질문을 던졌더니 페이스북에 댓글이 달렸다. 남자들은 “36세”, “나이 차이 5세 내외”, “한계는 없을 것 같다”는 댓글을 달았다. 여자들은 “유딩까지나 귀엽다”, “19세까지 법으로 제한하자”, “정당 약관에 ‘오빠라고 해봐’ 하지 말 것을 1번에 넣어야 한다”라고 했다. 남자들은 오빠라 불리는 게 싫지는 않다. 여자들은 오빠 강요하는 남자가 매우 싫다.
오빠는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니다. 자연스럽게 획득해야 하는 호칭이다. 사촌 여동생들에게서 획득하거나, 절로 오빠라 부르고 싶어지는 매력으로 얻는 것이다. 물론 후자의 경우는 우리와 별 해당 사항이 없다. 하이닉스 직원이나 주주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도대체 하이닉스는 어디까지 올라가는 걸까? 어쩐지 이 글은 주식 못 하는 자본주의 열등생 오빠의 한탄으로 끝나게 됐다.
-김도훈 문화칼럼니스트, 조선일보(26-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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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사가 그것도 모르냐

전분 반죽은 물을 적게 흡수하고 높은 온도에서 수분을 빠르게 배출해 얇고 바삭한 튀김옷을 만든다. /유재덕 파불루머
주말이다. 봄볕이 길게 누운 고속도로를 달린다. 대학 기숙사로 떠난 딸을 데리러 가는 길이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옛 노래가 차 안의 적막을 더 또렷하게 만든다. 백미러 속 뒷좌석은 비어 있다. 신호 대기에 멈춰 서자 핸들 위에 내려놓은 손등이 햇볕을 받아 따뜻해진다. 그 온기에 옛 장면 하나가 떠올랐다. 중학교 1학년이던 딸이 퇴근한 나를 부엌으로 끌고 가 탕수육 재료를 잔뜩 펼쳐 놓던 날이다.
그즈음 선배 요리사가 운영하는 전농동 중식당에 가족과 함께 갔다. 탕수육과 새우칠리, 그리고 짜장면. 특별할 것 없는 메뉴였지만 아이들의 표정이 달랐다. 진정한 고수는 평범 속에 자신의 영혼을 갈아 넣는다. 아이들도 어렴풋이 느끼는 듯했다. 일주일이 지나 딸이 탕수육 재료를 사 두고 나를 기다린 이유였다. 중식 요리사는 아니지만 그날 나는 딸을 위해 혼신을 다했다.
탕수육은 대성공이었다. 의기양양하게 맛을 묻자 딸은 “뜨거우니 말 시키지 말라”고 했다. ‘말도 못하게 맛있다’는 말로 알아듣고 미소를 띠던 그 순간, 딸의 질문이 훅 들어왔다. “아빠, 전분 물 묻혀 튀긴 탕수육은 왜 핫도그보다 훨씬 바삭한 거야?” 쉽게 답을 주지 못하는 나를 올려다보며 딸은 ‘요리사가 그것도 모르냐’는 표정을 지었다. 진땀이 났다. 수십 년 칼을 잡은 사람이 중학생의 한마디에 흔들리고 있었다.
책을 찾아 읽기 시작한 것은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손으로만 익혀온 일에 머리와 마음을 보태야 한다는 것을 그 아이가 가르쳐 준 셈이다. 그렇게 읽은 책들이 모여 한 권의 책이 되었고, 일간지에 칼럼을 쓰는 자리까지 얻었다.
내비게이션이 목적지에 가까워졌음을 알린다. 기숙사 앞 공터에 차를 세우자 멀리서 캐리어를 끌고 걸어오는 딸이 보였다. 성인의 모습이다. 차창에 비친 내 얼굴은 딸의 질문에 진땀 흘리던 그때 그대로다. 아이를 낳아 키웠지만, 아이가 성장하는 동안 나도 자랐다. 아이가 나의 스승이기도 했다.
-유재덕 파불루머, 조선일보(26-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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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냉면 같은 춤'을 즐기는 법

춤에도 평양냉면 같은 작품이 있다. 이야기와 캐릭터가 없고, 박자가 딱딱 떨어지는 음악이 없다. 현란한 점프와 회전 같은 테크닉도 없다.
언젠가 강진 어린이가 서울에 놀러 왔다. 처음으로 평양냉면을 맛본 뒤 당황한 표정으로 외쳤다. “냉면에서 아무 맛도 안 나요!” 평양냉면 마니아인 가족들이 두고두고 떠올리는 에피소드다. 음식이라면 매콤짭짤 새콤달콤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아이에게 슴슴하고 밍밍한 냉면은 낯설었을 것이다.
춤에도 평양냉면 같은 작품이 있다. 공연장을 나서는 관객이 당황하며 말한다. “춤에 아무것도 없어요!” 무엇이 없단 말인가. 이야기와 캐릭터가 없고, 박자가 딱딱 떨어지는 음악이 없다. 현란한 점프와 회전 같은 테크닉도 없다. 흔히 춤이라면 음악에 맞춰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이라 기대하지만 모든 춤이 그런 기대를 따르지는 않는다.
춤은 화려함을 더하며 풍성해지는 방향으로 나아가기도 하지만 장식을 덜어내고 간결해지려는 경향도 있다. 어느 한쪽이 진보했거나 우월하다고 말하긴 어렵다. 다만 절제는 풍성함을 전제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경험과 학습이 필요하다.
20세기 중반 이후의 현대춤은 덜어내는 법을 탐색했다. 춤이 왜 이야기를 전달하거나 음악을 시각적으로 설명해야 하는가. 안무가들이 춤의 구성 요소를 하나씩 의심한 결과, 볼거리가 없고 예측 불가능한 춤들이 무대에 등장했다.
춤 공연을 늘 보는 나로선 다양한 맛을 오가는 게 즐겁다. 어떤 날은 머리가 쨍할 정도로 강렬한 춤을 보고 다른 날은 슴슴한 춤을 즐긴다. 매 공연이 도파민을 팡팡 터뜨린다면 부담스럽고 지겨울 것 같다. 하지만 춤을 자주 접하지 않는 이라면 평양냉면 같은 춤을 단박에 즐기기 어렵다. 익숙한 이야기가 없고 눈을 사로잡는 테크닉도 없는 춤에서 무엇을 보아야 할지 막막해진다.
비결은 간단하다. 자꾸 맛보면 된다. 낯선 맛이 그렇듯 감각 역시 경험을 통해 조금씩 넓어진다. 새로운 맛을 자꾸 시도하다 보면 맛의 스펙트럼이 넓어진다. 평양냉면을 모두가 좋아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스펙트럼이 넓어지는 건 멋진 일이다.
문제는 스펙트럼을 넓히는 데 기꺼이 시간을 쓸 것인가이다. 오늘날 한정된 여가 시간을 두고 모든 문화예술이 경쟁한다. 지금 가장 강력한 상대는 OTT와 숏폼 콘텐츠이다. 예술의전당 사장이 된 장한나의 말처럼 “공연계의 진짜 경쟁 상대는 다른 예술가가 아니라 유튜브”가 된 지 오래다. 1분도 길다고 말하는 시대에 한 시간 동안 천천히 흘러가는 춤의 매력을 어떻게 설득한단 말인가.
그래도 희망을 본다. 평양냉면 마니아가 점점 늘어나고 있지 않은가. 천천히, 반복 끝에 열리는 세계가 있다.

오하드 나하린이 안무한 서울시발레단의 '데카당스' 공연. /세종문화회관
-정옥희 무용평론가, 조선일보(26-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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