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비율 1위, 서울 제기동역]
[도시철도 무임승차, 모두를 위해 해법 찾아야]
[“임산부가 아니시면 자리를 비워 주시기 바랍니다”]
시니어 비율 1위, 서울 제기동역

칠순의 한 시인은 지하철여행 예찬론자다. “오전엔 춘천 닭갈비, 오후엔 온양 온천”이라며 또래를 불러 모으곤 했다. 한국 전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서울 시내를 넘어 경기·충청·강원 3도 유람이 가능하다. 4호선 오이도역에서 바다를 본 뒤 다시 1호선 인천역 차이나타운에서 짜장면을 먹은 날, 시인은 “오늘은 서해안 투어였다”고 너스레를 떨곤 했다.
▶최근 서울교통공사가 경로 무임승차 현황을 조사한 결과, 시니어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은 1호선 제기동역이었다. 둘 중 한 명(47%)이 65세 이상일 만큼 압도적이다. 이어 동묘앞역(42%), 청량리역·모란역(35%), 종로3가역(32%) 순이다. 절대 인원수로는 청량리역이 연간 76만 명으로 가장 많았고 종로3가역, 연신내역, 제기동역이 뒤를 이었다.
▶제기동역이 1위인 까닭은 역의 입지와 보행 거리 때문이라고 한다. 청량리역은 1호선 외에도 수인분당선, 경의중앙선, KTX가 지나는 거점역이라 젊은 층 환승 수요와 백화점 이용객 등 유료 승객 비중이 시니어보다 높다. 종로3가역도 ‘시니어들의 홍대’라는 탑골공원이 있지만 3개 노선이 교차하는 환승역이어서 시니어보다 유료 승객이 많다. 반면 제기동역은 오직 1호선만 지나는 단일역이다. 국내최대 한약재시장인 서울약령시장과 경동시장은 이 역의 2번 출구와 가장 가깝다. 또 저렴한 식당, 이발소, 콜라텍 등 고령층 특화 시설이 밀집해 있다. 시니어들이 쇼핑 뿐만 아니라 친구를 만나고 시간을 보내는 ‘문화적 허브’인 셈이다.
▶이번 조사에는 다른 연령대의 흥미로운 데이터도 나왔다. 직장인 비율 1위는 가산디지털단지역으로, 하차 인원 85% 이상이 평일 출근 시간대에 집중됐다. 2호선 성수역은 2년 연속 20대 이용 비중 증가율 1위다. 홍대나 강남역이 정체기에 접어든 사이, 성수역은 젊은 층 체류 시간이 타 지역보다 1.5배나 길었다. 또 대치역은 10대 , 명동역과 홍대입구역은 외국인 카드 사용량이 각각 1등이었다.
▶적자 누적으로 지하철 무임승차 제도를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일리 있는 말이다. 하지만 초고령 사회, 지하철은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라 시니어들과 사회를 연결하는 수단이다. 제기동역 시니어 비율 47%라는 숫자 뒤에는 고립을 거부하고 세상 밖으로 나온 노년의 활기가 있다. 단순한 통계 숫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실버 산업의 정교한 지도가 될 수도 있고, 지자체에는 맞춤형 복지의 나침반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수웅 논설위원, 조선일보(26-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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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철도 무임승차, 모두를 위해 해법 찾아야
최근 도시철도 무임승차가 논란이 됐다. 중동전쟁 여파에 따른 고유가와 대중교통 혼잡 문제로 대통령이 출퇴근 시간대 노인 무임승차 제한 가능성을 언급하면서다.
도시철도 무임승차는 노인에 대한 국가적 배려 차원에서 1980년 4월 대통령 지시로 시작됐고, 이후 1984년 6월 ‘노인복지법’, 1985년 1월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 등이 제정되면서 법적 근거를 확보했다. 1990년대 지방자치제도가 뿌리내리기 이전에 국가가 도입한 것이다.
도시철도 무임승차는 반복된 연구 등을 통해 사회·경제적 편익이 입증됐다. 다만 편익은 사회 전체(복지, 의료비, 경제 활성화 등)에서 발생하지만, 비용은 도시철도 운영 기관에 전가되는 불균형한 구조라는 게 문제다. 도시철도 운영 기관은 노동과 예산을 들여 ‘이동 서비스’라는 상품을 만들어 이용자에게 제공한다. 이용자는 그 대가로 운임을 지불하고, 운영 기관은 안전은 물론 서비스 개선과 유지를 위한 재원으로 운임 수입을 사용한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무임 수송 손실을 보전받을 법적·제도적 장치가 전무하다. 해외 지하철과 달리 우리나라에는 관련 규정이 없어 전국 도시철도 운영 기관은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빠져 있다.
게다가 도입 당시(1984년) 4.1%에 불과했던 고령화율이 2025년 5배 이상인 21.2%로 증가하면서 손실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최근 5년간 서울교통공사가 부담한 무임승차 손실은 연평균 3645억 원에 달한다. 지난해 무임승차 손실은 4488억 원으로 당기순손실 8268억 원의 절반을 훌쩍 넘겼다. 더 우려되는 점은 향후 고령화율이 더 심화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가까운 미래에는 2명 중 1명이 무임승차 대상이 될 것이라고 한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도시철도 운영이 지방 사무라는 이유로 모든 책임을 지자체나 운영 기관에 떠넘기고 있다.
이런 가운데 2023년에는 국가보훈부 주도로 보훈보상대상자 무임승차제도까지 도입됐다. 또 다른 무임 대상이 추가된 것이다. 이번에도 정부는 도시철도를 배제한 채 코레일과 버스에만 손실 보전금을 지원했다. 서울교통공사는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 7월 국가보훈부를 상대로 민사 소송을 제기했다. 올해 2월에는 법원에 위헌법률심판제청도 신청했다. 이는 특정 기관에 대한 문제 제기가 아니라 고착화된 제도적 한계를 타파하기 위한 시도다. 보편적 복지 서비스라는 관점에서 새로운 대안을 찾고자 고심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도시철도는 국민의 일상과 직결된 공공 시스템이다. 원활한 운영은 곧 국민의 안전과 편의, 나아가 지역 발전으로 이어진다. 그렇기에 국민의 이동권을 보장하고 공공 서비스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는 것은 국가의 당연한 책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책임 소재를 따지는 소모적 논쟁이 아니다. 도시철도 운영 기관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재정 부담을 어떻게 사회적으로 분담할지 머리를 맞대야 한다. 전국 도시철도 운영 기관은 지난 46년간 무임 수송을 통해 공공 서비스의 한 축을 묵묵히 지탱해 왔다. 20년이 넘도록 국비 지원을 절박하게 호소해 온 이들의 목소리에 이제는 국가가 답해야 할 때다.
-최진석 철도경제연구소장, 동아일보(26-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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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산부가 아니시면 자리를 비워 주시기 바랍니다”
세파 견디는 청년들 덕에 무임승차하는 꼰대의 고민
평소에는 승용차로 출퇴근했는데 저녁 회식이 있거나 눈길이 미끄러울 때는 시간이 다소 더 걸리더라도 지하철을 이용했다. 그날도 무슨 일 때문인지 퇴근길에 지하철을 탔다. 복잡한 객차 안에서 대학생으로 보이는 청년과 우연히 눈이 마주쳤다. 순간 젊은이가 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처음 경험하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적잖이 당황했다. 주위 시선까지 집중돼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50대의 나이에 비해 이마가 훤하긴 해도 스스로는 건강을 자신하고 있는 터여서 엉겁결에 “괜찮다”며 사양했다. 학생은 굽히지 않고 몇 차례 더 권하다가 겸연쩍은 웃음을 지으며 어디론가 사라졌다. 빈자리만 덩그렇게 남았고, 말끄러미 지켜보던 어떤 이가 곧바로 비집고 들어와 앉았다.

자리를 양보받을 만큼 늙어 보이나 하는 씁쓸한 속내보다 “고맙다”며 앉았으면 더 좋았겠다는 후회가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선의가 거부당하는 예기치 못한 상황에 멋쩍어하는 학생의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마음 씀씀이를 헤아리지 못한 속 좁은 꼴통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약속 시간 맞추기가 편하고 특히 초행은 운전이 부담스러워 요즈음은 지하철을 자주 이용한다. 아직 웬만한 거리는 객차 내에 서 있어도 크게 불편하지 않지만 시간 앞에 장사 없다고 빈 좌석이 눈에 띄면 찾아가 앉는다. 과거에 젊은이의 호의를 거부한 도도한(?) 성깔도 세월의 무게에는 어쩔 수 없나 보다. 하지만 경로 우대증을 손에 쥔 아내는 남편과 달리 거리낌 없이 경로석을 찾는다. 혼자 앉기 민망한지 애꿎은 사람의 손목을 잡아당기기까지 한다. 마지못해 앉기도 하지만 멀지 않은 거리는 아내의 권고를 무시한다. 일반석에 빈자리가 있으면 앉고 아니면 약간 힘들어도 선 채로 있는 게 속이 편하다.
지하철에는 핑크빛의 임산부 배려석이 마련돼 있다. “쉽게 알아보기 어려운 임신 초기 여성을 위해 자리를 비워 놓자”는 방송이 나오기도 한다. 출퇴근길 콩나물시루 열차에서 비어 있는 분홍색 좌석을 보면 아직 시민 의식이 살아 있다는 생각에 흐뭇하다. 반면에 자리가 넉넉한데도 간혹 배려석에 앉은 심술 맞은 남자 승객을 보면 달려가 한마디 던지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배려석의 옆자리에 앉아 짐을 배려석에 놓는 얌체족도 있다. 임신한 여성이 비켜 달라면 치워주겠다는 배짱으로 짐작되는데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다.
50대 초반쯤 됐을, 부부로 보이는 건장한 남녀가 지하철에 타자마자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마침 임산부 배려석과 바로 옆자리가 비어 있었다. ‘줌마’께서 재빠르게 배려석으로 달려가 앉더니 남성의 옷자락을 붙잡고 옆에 앉으라고 채근한다. 혹 있을지도 모를, 배려석에 앉았다는 무언의 비난을 오롯이 본인이 감당할 테니 걱정일랑 붙들어 매고 앉으라는 뜻으로 보인다. 남성이 꺼림칙한 듯 머뭇거리는 사이에 다음 정거장을 앞두고 마침 빈자리 옆 승객이 내렸다. 배려석에 앉아 있던 여성이 옳다구나 하고 재빨리 옆자리로 옮기면서 동반 남성을 올려다보며 새로 생긴 빈자리를 손바닥으로 탁탁 쳤다. 굳은 표정의 남성은 슬그머니 자리에 앉았다. 속으로 쓴웃음이 나왔다. 남녀 모두 일말의 가책을 느끼고 있다는 행동거지가 그나마 위안거리가 됐다.
얼마 전 지하철 임산부 배려석과 관련한 색다른 뉴스를 접했다. 멀리 광주에서 날아온 소식이다. 임산부 배려석에 승객이 앉으면 “임산부 배려석에 앉으셨습니다. 임산부가 아니시면 자리를 비워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안내가 자동으로 나온다고 한다. 소리가 나면 주위 사람들이 쳐다볼 것은 뻔한 이치다. 따가운 시선에 슬그머니 일어나는 여성도, 화들짝 놀라 줄행랑을 놓는 남성도 있다고 전한다.
배려를 안 한다고 망신 주는 일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도 있다고 한다. 아닌 게 아니라 조금 과한 측면이 분명 있다. 하지만 초기의 임부 보호를 위한 고육지책이라고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청년은 약자와 어르신을 배려하고 노약자는 청년의 따뜻한 마음을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정겨운 모습이 일상이던 때가 그립다. 만원 버스에서 자리를 양보받은 꼬부랑 할머니께서 안도의 한숨과 함께 무거운 책가방을 끌어당기며 친손자 대하듯 “공부가 힘들지 않냐”고 묻는 옛 풍경이 눈앞에 삼삼하다.
이제는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자리를 양보하는 사람을 찾기 어렵다. 아니 그런 문화 자체가 아예 없어지지 않았나 싶다. 더는 예의지국(禮儀之國)이 아니라는 한탄의 목소리가 있는 반면에 노약자석이 따로 마련돼 있는 만큼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어쨌거나 붐비는 시간에는 노약자석도 만원이라 노인도 서 있을 수밖에 없다. 배려 안 한다고 나무랄 수는 없지만 힘겨워하는 어르신을 보면서 안타깝기도 하다.
기운이 예전 같지 않은 어르신도, 지옥철 출퇴근길의 젊은이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몸과 마음이 고단한데 상대방을 헤아리는 마음을 기대하기 어려운 건 당연한 이치라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모두가 지금보다 더 어려웠던 지난날에는 어떻게 서로를 존중했을까. 각박하고 메마른 사회가 정이 넘치는 더불어 사는 세상으로 다시 돌아갈 방도는 진정 없을까.
녹록지 않은 세파에 휘둘리며 살아가는 젊은이 덕에 공짜로 지하철을 타는 꼰대가 뾰족한 해결책이 없을까 궁리해 보지만 묘수가 쉽사리 떠오르지 않는다.
-김동규 서울대 신경외과학 명예교수, 조선일보(23-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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