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미치광이 전략'의 허와 실

미국 백악관 공식 인스타그램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사진과 함께 ‘FAFO’라는 표현이 담긴 게시물. 'FAFO'는 ‘Fuck Around and Find Out’의 앞글자를 딴 조어다. /백악관 인스타그램
2017년 1월 트럼프가 처음 취임한 이래, 그가 ‘미치광이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는 전망이 끊이지 않았다. 예측 불가능한 극단적 행동으로 상대를 위축시킨다는, 베트남전쟁 당시 핵 공격을 시사한 리처드 닉슨의 전략으로 대표되는 발상이다.
그 전망의 최근 시험대가 이란이다. 지난해 6월 핵 시설 폭격 직후, 이란 정부는 망신을 당하고도 의회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결의를 집행하지 않았다. 트럼프의 미치광이 전략이 성공한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올해 2월 개시된 이란 전쟁은 테헤란의 양보가 아닌 확전으로 이어졌다. WSJ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는 4월 “(이란) 문명을 소멸시켜 버리겠다”고 트루스 소셜에 게시한 후 측근에게 “최대한 불안정하게 보여야 이란이 협상한다”며 좌절감을 드러냈다.
문제는 트럼프의 자세가 ‘미치광이 전략’의 원형과는 다르다는 점이다. 닉슨이 베트남전쟁 당시 적에게 심으려 한 것은 ‘이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인상이었지, 만사에 예측 불가능한 지도자라는 이미지가 아니었다. 미치광이 전략은 ‘좁게 표적화된 비합리성’을 내포한다. 반면 트럼프의 관세·우크라이나·나토·중국을 오가는 전방위적 변덕은 미치광이 전략을 희석시켜 왔다. 당장 호르무즈 해협에 대해서도 “개방할 필요 없다” “동맹국들이 개방시켜야 한다” “미국이 개방할 수 있다”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
사실 미치광이 전략은 제대로 수행될 때조차 보증의 신뢰성은 약화시킨다. 양보의 대가로 나의 생존을 보장하겠다는 약속이 있어야 무기를 내려놓을 수 있다. 그러나 트럼프 버전의 미치광이 전략은 이란 지도부의 딜레마를 키운다. 미국이 이란의 비핵화와 호르무즈 개방을 믿지 못하는 만큼, 이란 역시 트럼프와의 안정적 합의가 어렵다고 판단한다. 결사항전을 지속하는 이유 중 하나다.
트럼프는 스스로 성공적인 미치광이 전략을 구사한다고 믿을지 모르지만, 그 노선 아래에서 미국의 자산이 소진되고 있다. 이란에 쏟아부은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은 대만 유사시 사용될 핵심 자원이다. 한국·괌의 사드 요격탄 재고도 중동에서 깎여 나가고 있다. 미치광이 연기가 미국 스스로의 하드 파워를 갉아먹고 있는 셈이다. 우리 역시 이 역학을 주시할 수밖에 없다.
물론 이 모든 것을 트럼프 한 사람의 작품만으로 환원하기에는 무리다. 수년간 지속되어 온 이란의 핵 위협, 수십 년 동안 누적된 동맹 부담의 불균형이 만든 구조적 피로가 있다. 다만 한국 입장에서 냉혹한 현실은 그대로다. 한미동맹을 대체할 안보 파트너는 당분간 없다. 일각에서 논의되는 유럽과의 협력, 중견국 연대는 하드 파워의 영역에서는 빈 구호일 뿐이다. 반도체와 방위산업이라는 카드도 동맹 바깥에서는 큰 지렛대가 되지 못한다.
결국 남은 선택지는 분리가 아니라 조율이다. 우리의 카드를 섣불리 소진하지 않으면서, 동맹의 뼈대는 지켜내는 일이다. 트럼프 내각 대부분이 대통령에게 반기를 들지는 못하면서도 내심 이란 전쟁을 원하지 않았다는 보도는 씁쓸한 안도감까지 준다. 트럼프가 의도한 미치광이 전략은 실패하더라도, 미국의 세계 대전략은 유효하다. 미국이 베트남전의 실패를 딛고 패권을 유지했듯, 제국은 비틀거릴지언정 쉽사리 침몰하지 않는다.
-홍태화 미국 외교정책연구소(FPRI) 아시아 펠로, 조선일보(26-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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