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時事-萬物相]

[학교에서 사라진 것은 소풍만이 아니다] .... [여교사 수난 시대]

뚝섬 2026. 5. 15. 09:30

[학교에서 사라진 것은 소풍만이 아니다]

[영국·한국의 추락한 교권]

[4년 새 77% 늘어난 교사 성희롱, 쉬쉬할 수준 넘었다]

[여교사 수난 시대]

 

 

 

학교에서 사라진 것은 소풍만이 아니다

 

[朝鮮칼럼]

신뢰가 사라진 학교
교사는 위험관리자 됐고 가르침은 리스크가 됐다
증상만 보고 말하지 말고 그 아래 구조를 짚어야
해법과 제도가 바뀐다
 

 

이재명 대통령이 4월 28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저도 초등학교 5학년 때 경주 수학여행 간 게 평생의 기억으로 남아 있고 그 과정을 통해 배운 것도 참 많다”며 “혹시 구더기 생기지 않을까 싶어서 장독을 없애버리면 안 된다”고 했다. /뉴스1

 

공개 회의에서 대통령이 현안을 던진다. 장관과 전문가가 답한다. 시원해 보인다. 문제를 직접 챙기고 즉석에서 대책을 요구하는 모습은 정치적 효과가 크다. 그러나 위험도 있다. 리더가 던진 것은 진짜 문제인가, 아니면 눈에 띄는 증상인가? 묻고 있는가, 아니면 이미 해법을 정해 놓고 독촉하고 있는가?

 

정책 실패는 답이 없어서만 생기지 않는다. 더 자주, 문제 정의가 틀려서 생긴다. 문제 정의는 단순히 현상에 이름을 붙이는 일이 아니다. 현재 상태와 목표 상태 사이의 간극이 무엇이며, 그 원인과 책임을 어디에 둘지 정하는 일이다. ‘누구’의 문제인가도 중요하다. 그래서 문제 정의가 바뀌면 해법도, 책임도, 예산과 제도도 바뀐다.

 

지난달 28일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은 교육부 장관에게 “소풍이나 수학여행도 수업의 일부 아닌가. 구더기가 생기지 않을까 싶어 장독을 없애 버리면 안 된다”고 말했다. 교육 기회를 빼앗아서는 안 된다는 취지는 옳다. 소풍도 수업이고 운동회도 배움이다. 아이들은 교실 안에서만 자라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서 멈추면 증상만 본 것이다. 진짜 질문은 “왜 학교가 소풍을 안 가느냐”가 아니라 “왜 교사들은 소풍을 교육이 아니라 법적 위험으로 느끼게 되었느냐”이다. 전자는 교사의 소극성을, 후자는 학교를 둘러싼 책임 구조를 문제로 만든다. 두 질문이 여는 정책의 세계는 완전히 다르다.

 

과장이 아니다. 2022년 속초에서, 2023년 목포에서 현장체험학습 중 아이가 숨졌다. 두 사건 모두 인솔 교사가 1심에서 ‘업무상 과실치사’로 금고형 집행유예를 받았다. 물론 아이를 잃은 비극의 무게는 말로 다 할 수 없다. 하지만 체험학습에서 사고가 나면 교사 ‘개인’에게 법적 위험이 닥칠 수 있는 현실에서 교사들은 공포를 느꼈다. 

 

서이초등학교 교사 사망 1주기인 2024년 7월 1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이초교사거리에서 교사유가족협의회 관계자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조합원들이 고인을 추모하며 서초경찰서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다. /뉴스1

 

숫자도 같은 말을 한다. 2024년 교육활동 침해 심의는 4234건으로 5년 전의 세 배다. 교사 28명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고, 정년 전에 교단을 떠난 교사는 6년 만에 가장 많은 7400여 명이었다. 초등 교사 96%는 체험학습에 부정적이고, 80% 이상이 악성 민원이나 아동학대 신고를 두려워한다. 학교가 울리는 강력한 불안 경보다. 불안은 비겁함이 아니라 문제의 신호다. 교사들이 체험학습을 두려워한다면 그 감정을 훈계할 게 아니라 해석해야 한다. 왜 아이가 넘어지는 순간 교사는 교육자가 아니라 잠재적 피고인이 되는가.

 

증상은 한곳에 머물지 않는다. 초등학교에서는 악성 민원과 아동학대 신고가 생활 지도를 위축시킨다. 중학교에서 학교폭력은 학생 사이의 갈등 회복이 아니라 법률 절차의 문제로 바꾼다. 고등학교에서는 입시 과열이 생활기록부 문장 하나까지 이해관계의 전쟁터로 만들고 있다. 이런 증상들은 서로 닮았다.

 

문제가 달라지면 해법도 변한다. 안전요원을 늘리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것은 안전관리의 처방이지 책임 구조의 처방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당한 교육 활동 중 사고에 대해 고의나 중대한 과실이 없는 한 교사 개인이 법적 위험을 떠안지 않도록 기준을 선명히 하고, 소송 시 교육청과 국가가 법적 대응을 책임지며, 민원은 교사 개인의 휴대전화가 아니라 학교의 공식 창구에서 다뤄야 한다.

 

비판자들도 같은 함정을 조심해야 한다. 2023년 서이초 사건 이후 교권 보호 5법이 통과됐지만 교사들은 약 80%가 변화를 체감하지 못한다. 증상 하나에 처방 하나로는 신뢰 구조가 바뀌지 않는다. 학부모를 악당으로 만들자는 말이 아니다. 학부모도 불안하다. 문제는 그 불안이 교사 개인을 향한 민원과 고소로 곧장 번역되는 구조에 있다. 좋은 제도는 그 불안을 학교 공동체 안에서 받아낸다.

 

리더의 일은 증상을 크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아래의 구조를 묻는 것이어야 한다. “왜 안 하느냐”고 다그치기보다 “무엇이 하던 일을 못 하게 만들었느냐”고 묻는 것이 더 어렵고 더 중요하다. 답을 독촉하면 속도를 낼 수는 있지만, 우리를 잘못된 곳으로 더 빠르게 데려갈 수도 있다.

 

오늘은 스승의 날이다. 학교에서 사라진 것은 소풍만이 아니다. 신뢰가 사라졌다. 신뢰가 사라진 곳에서 교사는 스승이 아니라 위험관리자가 되고 가르침은 리스크가 된다. 오늘 우리가 선생님께 드려야 할 것은 꽃 한 송이만이 아니라 교사가 교사답게 다시 가르칠 수 있는 조건이다. 문제 정의가 틀리면 정책도 틀린다. 

 

스승의 날을 하루 앞둔 14일 경기 수원시 영통구 효동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담임선생님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있다. /뉴스1

 

-장대익 가천대 스타트업칼리지 석좌교수·인지과학, 조선일보(26-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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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단체들, 스승의 날 기념 행사 보이콧. 기념은 됐고 학생·학부모에게 당하는 모욕·폭행부터 해결해 달라는 호소.

 

-팔면봉, 조선일보(26-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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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한국의 추락한 교권 

영국에서 스승의 날에 교사에게 온라인으로 감사 카드를 보낼 수 있는 사이트 /팀 알퍼 칼럼니스트

 

한국의 ‘스승의 날’은 영국의 그날보다 50년 앞선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양국의 교사들이 맞닥뜨린 현실은 매우 험난하다. 영국 학교·대학 지도자협회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학교장 60%가 학부모로부터 언어폭력이나 협박을 경험했다. 그중 75%는 정신 건강 악화를 호소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도 몇 달 전 교사 과반(59%)이 학생에게 폭력을 당하거나 동료 교사가 폭력을 당하는 것을 목격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나와 같은 중년층 이상에게는 꽤나 충격적이다. 과거에 교사는 한국과 영국 모두에서 높은 사회적 존경과 권위를 누렸지만 이제 교권이 크게 약화됐다. 무엇이 이런 몰락을 초래했을까?

 

그 답은 ‘세속화’에서 찾을 수 있다. 영국 최초의 학교는 선교사들이 영국 땅을 밟은 직후인 8세기 후반에 생겨났다. 이 교회 학교에서는 문자·종교·음악을 가르쳤는데, 당시 학교의 목적은 문맹 퇴치가 아니었다. 성경을 읽을 수 있는 사제와 라틴어 성가를 부를 수 있는 성가대를 양성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내가 다니던 학교 교장은 영국 성공회에서 서품을 받은 성직자였고 학생들은 성경 구절을 암송하고 매일 아침 조회 때 찬송가를 불러야만 했다. 이렇게 성직자이거나 성직자에 가까운 존재인 교사를 모욕한다는 것은 예배 도중 목사에게 혀를 내미는 것처럼 불경스러운 일이었다. 유교 사회 조선에서도 스승은 마땅히 섬겨야 하는 권위를 지닌 존재였다.

 

그러나 현대화를 겪으며 현실은 크게 달라졌다. 영국 성공회는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성인 중 5%만이 예배에 참석하며 상당수 교회는 예배를 중단한 상태다. 젊은 세대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교사=성스러움’이라는 연결 고리는 무색해진 지 오래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못하던 시절을 사극을 통해서나 경험한다.

 

이처럼 양국에서 교사라는 직업은 특별한 소명이 아닌 수많은 직업 중 하나가 돼버렸다. 우리가 스승에게 가졌던 존경심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된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Why Nobody Respects Teachers Anymore

 

-팀 알퍼 칼럼니스트, 조선일보(26-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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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새 77% 늘어난 교사 성희롱, 쉬쉬할 수준 넘었다  

 

전국 초·중·고교에 접수된 교권 침해 신고 건수 중 학생 등에 의한 교사 성희롱이 2018년 187건에서 2022년 331건으로 77%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교권이 무너지고 학생들이 교사를 만만하게 보면서 성희롱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특히 신체적 발달 등으로 문제 학생들의 연령이 점차 낮아지는 반면 성희롱 강도는 높아지는 추세인 점도 심각하다.

 

교권 침해 사례집을 보면 교육 현장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믿어지지 않는 일들이 적지 않다. 대구 한 중학교 학생은 수업 시간에 교사에게 “ΟΟΟ 선생님이랑 잤죠?” “아, 뒷모습 보니까 XX하고 싶네” 등 수차례에 걸쳐 교사에게 성희롱 발언을 일삼았다. 충남 지역 한 초등학생은 과학 실험 중 성적 행동을 하다 교사가 저지하자 “ΟΟ년이 ΟΟ하네” 등 욕설을 했다. 서울 한 중학교 학생은 소셜미디어에 “선생님 ΟΟ 만지고 싶다” 등 담임교사를 성희롱하는 글을 수차례 올렸다. ‘학생이니 타이르고 넘어가자’는 분위기가 여전히 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접수되는 성희롱 피해는 빙산의 일각일 것이라고 한다. 

 

이제 더 이상 교사의 인내 또는 지도로 해결할 수준을 넘었다는 것이 교육 현장의 목소리다. 사태가 더 악화하기 전에 방향을 잘 잡아 대처해야 한다. 도를 넘은 학생들의 경우 적극적으로 치료·상담을 받게 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또 잘못을 되풀이하거나 범죄에 준하는 행위를 한 학생들의 경우 ‘학교장 통고 제도’를 활용할 수 있다. 학교장이 문제 학생에게 보호 처분을 내려 달라며 가정법원에 신청하는 제도인데 심리적 부담감과 학부모가 항의할 우려 때문에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교사가 학생들을 지도하다 학생이나 학부모에게 아동복지법상 ‘정서적 학대’를 당했다고 고소당하는 일도 여전하다. 모호한 정서적 학대 행위 개념을 구체화해 아동 학대 신고가 무분별하게 이루어지지 못하게 해야 한다. 피해를 본 교사들은 1차적으로 교권보호위에 호소할 수밖에 없다. 이 위원회가 전문성이 부족해 오히려 피해 교사들에게 2차 피해를 주는 일이 허다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조선일보(24-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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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교사 수난 시대

 

새로 부임한 여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오자 학교 일진 학생 한 명이 노골적인 성희롱을 시작한다. "쌤, 쌤의 젖가슴은 왜 그렇게 큰 거예요?" "만져봐도 돼요"…. 당황한 교사가 "너 너, 버릇없이" 채 말을 이어가지 못하다 허둥지둥 교실을 뜬다. 아이들은 일제히 박수를 보낸다. 조정래의 소설 '풀꽃도 꽃이다'에 나오는 장면이다. 작가는 손주들을 키우며 공교육이 무너지는 현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

▶적어도 조 작가 또래 세대에게 선생님은 그런 존재가 아니었다. 박동규 서울대 명예교수는 초등학생 시절 여선생님을 이렇게 회상한다. '고무신을 못 사 신어 친구들에게 놀림당하고 운동장에 나가지도 못했는데 선생님이 다가와 나를 토닥이며 눈물 흘리셨다.' 서정주는 '첫사랑의 시'에서 '나는 열두 살이었는데요, 우리 이쁜 선생님을 너무나 좋아해서요'라고 했다. 여교사는 누나나 이모 같고, 때로는 어머니 같은 분이었다. 

▶이제 변해도 너무 변했다. 지난주 대전의 한 중학교 교실에서 상상도 못 할 일이 일어났다. 여교사가 교단에서 수업하는데 학생 9명이 자신의 신체 일부를 만지며 음란 행위를 했다고 한다. 고등학교 남학생이 여교사 어깨에 손을 얹으며 "누나, 사귀자"고 희롱하고, 중학교 체육 시간에 "선생님 팬티 준비해 우리에게 와 주세요!"라고 말한다. 이젠 초등학생까지 여교사 책상 위에 '섹스하자'라는 글 남기고 도망간단다. 한국교총에 신고된 내용들이다.

전국 교사 49만명 중 70%가 여선생님이다. 초등학교 교사 77%가 여성이고 아예 남선생님이 없는 학교도 있다가뜩이나 교사 권위가 흔들리는 요즘 여선생님들이 수난이다. 일부에선 '사춘기 장난'으로 치부하려 하지만 이건 도를 넘었다. 아무리 어린 학생의 짓이라 해도 범죄에 가깝다. 여교사 1758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70%가 성희롱이나 성추행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재작년 전북의 한 고교생은 여선생님에게 질문하는 척하면서 치마 속을 촬영하다 걸렸다. 그 학생은 중학교 때도 똑같은 비행을 저질렀다. 잘못된 행동이 반복되는 건 우리 교육 어딘가에 구멍이 뚫려 있다는 증거다. 대전 중학교 교실에서 9명이 '못된 짓' 하는 동안 나머지 아이들은 자괴감, 두려움, 분노 같은 복잡한 감정이 있었을 거다. 하지만 많은 경우 침묵한다. 교사 성희롱 신고가 한 해 100건 정도라 하지만 실제는 훨씬 많을 것이다. 교사는 수치스러워 신고 안 하고, 아이들은 못 본 체한다. 범죄와 폭력에 눈감은 교실. 그게 대한민국의 미래일까 봐 더 두렵다.

-안석배 논설위원, 조선일보(17-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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